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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적당한 힘 11 서퍼 14 무딘 피 16 착지자세 18 서표 21 접이식 23 눈부신 구역 26 셔츠 28 그를 이팝나무라 부르면 31 샌들 33 후숙 35 제2부 우리은하 십육 배 크기 41 효수 43 극빈 45 창문의 형태 47 뒤뜰 혹은 뒤란 49 오디를 따는 아침 51 목공 53 접은 계절 55 소름 57 은박지 돗자리 59 곰솥 61 제3부 건전지를 교체하세요 65 조롱 67 여름 창고 69 버팅겨라, 풀씨만큼만 71 푸른 바퀴 73 틈 혹은 금 75 약관 77 이러저러한 일들 79 한밤의 차단기 81 줄무늬가 빈다 83 같이 아픈 일 85 제4부 실 91 닳아 있는 혼자 93 동백이 95 깃털 96 모두 저녁을 찾으러 간다 99 평평한 날짜들 102 거울 속엔 사람이 105 바람을 빌려 쓸 수 있다면 108 동그란 것들은 다 착하다 110 반쪽과 둥근 것의 공장 113 내년 115 해설 이병국 121 시인의 말 140 |
김정미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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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삶의 한가운데서 ‘꽤 괜찮은 제자리’를 찾아가는 김정미 시집 『착지자세』
― ‘여전히’의 오늘에서 ‘아직’의 내일로 건너가는 삶의 자세 김정미의 세 번째 시집 『착지자세』에는 쉽게 안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비정규직과 파트타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가난한 골목의 이웃들, 불안한 관계 속에서 상처받고 혼자가 된 존재들이다. 이들은 세상이 요구하는 모양에 맞춰 몸을 접고 웅크리며 때로는 중심을 잃는다. 시인은 이들을 ‘여전히’ 반복되는 오늘에 가두지 않는다. 아직 끝나지 않았기에 다른 삶으로 나아갈 수도 있는 ‘아직’의 시간을 그 곁에 놓는다. 『착지자세』는 바로 그 사이에서 삶을 지탱하고 다시 움직이게 하는 힘이 무엇인지 묻는 시집이다. 2025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적당한 힘」은 “새를 쥐어 보았습니까?”라는 물음으로 시작한다. 새를 다치게 하지 않으면서도 놓치지 않을 만큼의 힘. 너무 세지도 약하지도 않은 그 절묘한 힘은 관계를 맺고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삶의 감각으로 확장된다. 「서퍼」에서는 매 순간 처음인 파도 위에서 넘어졌다 다시 일어서며 다음 파도를 기다리고, 「접이식」에서는 필요할 때 펼쳐졌다가 필요 없으면 스스로를 접어야 하는 “언니와 오빠, 그리고 나”의 삶을 보여준다. 표제작 「착지자세」는 이러한 시적 사유가 집약된 작품이다. 체조 선수가 공중회전을 끝내고 “양팔을 벌려 흩어지려는 중심을 끌어당”기며 착지하듯, 시인은 “한껏 자유롭던 사람도/한곳에 착지하면/힘껏 녹이 스는 사람이 된다”고 말한다. 그 곁에는 “퇴근만 있는 아버지”가 있다. 어느 날 “전망”이라는 말을 어렵게 꺼내놓는 아버지를 가족은 “부축”한다. 시인은 마지막에 이렇게 쓴다. 아무도 잡아주지 않는 공중의 문제였지만 녹스는 일로도 꽤 괜찮은 제자리가 된다 불완전한 착지는 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자리가 된다. 이 불완전한 착지의 감각은 「푸른 바퀴」에서도 이어진다. “낡은 트럭 바퀴에 담쟁이넝쿨이 달라붙어” 있고, “설득에 든 녹슨 볼트들의 틈에선 붉은 꽃이” 핀다. 광폭의 속도를 버린 바퀴는 “초록의 속도”를 익히며 “몇 광년의 시간을 달릴” 꿈을 꾼다. 멈춰선 것들에서 다른 속도와 다른 삶을 상상하는 이 시선은, 「곰솥」에서 상처를 오래 품고 끓여낸 존재가 마침내 ‘진국’이 되는 과정과도 맞닿는다. 『착지자세』는 완전한 안정도 완전한 자유도 허락되지 않는 삶의 한가운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접히고 웅크리면서도 다시 몸을 펴고, 파도에 넘어지면서도 다시 일어서고, 멈춰선 자리에서도 다른 삶의 속도를 꿈꾸는 사람들. ‘여전히’의 오늘에 발을 딛고 ‘아직’의 내일을 향해 다시 중심을 잡는 일, 그것이 이 시집이 우리에게 건네는 삶의 자세다. 그리고 그 자세는 지금 이곳을 통과하는 모든 이들에게 조용한 위로가 되어줄 것이다. * 시인의 말 나의 혼자와 홀로를 궁금해 하는 일이 꽤 괜찮은 제자리로 돌아오는 일 같아서 눈부신 구역을 여름의 가능성으로 빌려오고 싶었다 몇 번 접은 지금의 온도에 아직, 남은 말을 맡겨보기로 했다 2026년 여름 김정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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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몸 밖에 나갔다 들어오는 자세일수록 더 높은 점수를 받”는 체조 선수가 “자기 몸에 영영 갇히게 되면” 은퇴할 수밖에 없듯이, 무릇 예술가라면 주어진 몸을 벗어나서라도 추구해야 하는 것이 자유의 몸놀림일 것이다. 그러나 자유의 몸놀림은 어느 순간 답답한 몸부림이 되고 답답한 몸부림조차 점점 더 굳어가면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안정으로 포장되는 착지다. “양팔을 벌려 흩어지려는 중심을 끌어당”기고서야 “꽤 괜찮은 제자리”가 되는 착지. 김정미 시의 사유가 깊어지는 곳도 이 대목이다. 제자리라고 하는 그 자리는 정말로 괜찮은 것인가? “아무렇지 않게 말해서 아무렇지 않게 된 내가/ 그칠 것 같지 않은 나를 꺼”내듯이 건네는 질문의 이면에는, 내가 진정으로 바랐던 것이 과연 자유였는지 아니면 안정이었는지조차 희미해진 자의 회한과 체념과 불안이 고통스럽게 숨어 있다. 김정미 시의 사유가 겹겹이 비유를 두르고 층층이 다른 표정으로 읽히는 이유다. 안정과 자유라는 두 개의 욕망으로 삶이 설명되지 않듯, 둘 사이에서 파생되는 온갖 풍경 역시 어느 한 가지로 정리되지 않는다. 간단치 않은 삶을 담아내는 간단치 않은 시는 덕분에 이렇게도 많은 얼굴로 우리 앞에 당도한다. 마치 자신의 자화상을 보듯이 복잡한 심경의 독자가 마지막에 착지하듯이 붙드는 질문도 이런 것이겠다. 내가 원했던 삶은 과연 내가 원했던 삶이었을까? - 김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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