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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실천문학사 2022.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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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문학의 시집(실천시선)

책소개

목차

제1부

귀향 13
소쩍새 소리 들으면서 14
그냥에 대하여 15
어비리 물가에서 17
율동소 18
인도다녀와서 19
멸망의 노래 20
속. 그냥에 대하여 22
묵조선 반나절 25
오락가락 27
옻나무 단풍잎 만나 29
우화하나 31
벗 33
숨은 꽃 34
그 시절 그리워 36
열하에서 38
두 사람 40
며칠의 타력 42
어느 옥색 44
어느 후렴 47
카이스트 거위 48
차이는 어여쁘다 50
나 자신에게 52
때죽 꽃 53
태평양 55
무제 57
훌쩍 떠나 58
말과 더불어 60
어느 전망대에서 61
격포에서 줄포에서 63
피아니시모 65
무주 구천동 앞서 67
내 찬 손 녹여 69
익산 미륵사터에서 71
감포에서 72
저녁 여주 74
김성동을 곡함 76
그곳 78
무의 노래 80

제2부

그때그때 83
아시아 아저씨 84
잘못 든 길 85
진실을 추억하며 86
식탁소감 87
함석헌옹을 기리면서 88
하나 아니라 여럿이니라 89
싸구려 91
바람의 씨앗 92
제비 93
으스스 94
여강 어느 날 95
약력 97
추모 98
우주놀이 99
한숨의 밤 100
승화 101
어떤 통신 102
송혜희 좀 찾아 주세요 103
손 105
역설하나 106
그리움이 이루나니 107
0이여 108
고백 109
지상에서 110
권유 하나 111
김종철 112
어떤 시론 113
백척간두 114
향수 115
헤겔에게 116
해몽 117
상극 상생 118
어느 절창 119
나훈아론 120
아득할 손 121
백기 122
소원 123
빈 마음이라니 124
길가메시 후반 125
어느 백일몽 126
고비사막에서 127
역설 128
난바다 129
나의 시대관 130

제3부

작은 노래(45편) 133

해설 김우창 155

저자 소개 1

高銀, 호:파옹(波翁), 본명:고은태(高銀泰), 법명:일초(一超)

한국의 대표적인 참여시인. 본명은 고은태로 1933년 전북 군산에서 출생하였다. 1952년 20세의 나이로 입산하여 승려가 되었으며 법명은 일초(一超)로 효봉선사의 상좌가 된 이래 10년간 참선과 방랑의 세월을 보내며 시작 활동을 하다가 1958년 『현대문학』에 시「봄밤의 말씀」「눈길」「천은사운」등을 추천받아 등단하였다. 1960년 첫 시집『피안감성』간행하였으며 1962년 환속하여 시인으로, 어두운 독재시대에 맞서는 재야운동가로서의 험난한 길을 걷기도 하였다. 초기시는 주로 허무와 무상을 탐미적으로 노래한 반면 이후 어두운 시대상황과 맞물리면서 현실에 대한 치열한 참여의식과 역사
한국의 대표적인 참여시인. 본명은 고은태로 1933년 전북 군산에서 출생하였다. 1952년 20세의 나이로 입산하여 승려가 되었으며 법명은 일초(一超)로 효봉선사의 상좌가 된 이래 10년간 참선과 방랑의 세월을 보내며 시작 활동을 하다가 1958년 『현대문학』에 시「봄밤의 말씀」「눈길」「천은사운」등을 추천받아 등단하였다. 1960년 첫 시집『피안감성』간행하였으며 1962년 환속하여 시인으로, 어두운 독재시대에 맞서는 재야운동가로서의 험난한 길을 걷기도 하였다. 초기시는 주로 허무와 무상을 탐미적으로 노래한 반면 이후 어두운 시대상황과 맞물리면서 현실에 대한 치열한 참여의식과 역사의식을 표출하었다. 영웅주의에 물들지 않고 진솔한 삶의 내면을 드러내는 독특한 시 세계를 보여주었다.

1974년 시집 『문의 마을에 가서』를 출판하며 시인으로서 확고하게 자리매김하였으며 이후 시ㆍ소설ㆍ수필ㆍ평론 등 100여 권의 저서를 간행하였다.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민주회복국민회의, 민족문학작가회의 등에 참여하며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에 앞장섰으며 계속해서 1984년『고은시전집』을 냈고 1986년『만인보』간행을 시작하였다. 1987~94년 서사시『백두산』, 1999년 시집『머나먼 길』을 간행하고, 미국 하바드대학 하바드옌칭 연구교수, 버클리대 객원교수를 역임하였다. 전세계 10여개 언어로 50여권의 시집, 시선집이 간행되었다.

현재 유네스코 세계 시 아카데미 회원 한국대표이자 서울대학교 초빙교수, 단국대학교 석좌교수이다. 저서로 『허공』,『개념의 숲』,『오십년의 사춘기』, 『고은 시 선집』, 『고은 전집』(총 38권) 등 1백여 종이 있으며, 2010년에는 연작시편 『만인보』가 전 30권으로 완간되었다. 2011년에는 작품활동 53년 만에 처음으로 사랑을 전면에 내세운 연시집 『상화 시편』을 발표했다.

한국문학작가상, 만해문학상, 중앙문화대상, 대산문학상, 만해대상 등 국내 문학상 10여 개를 비롯하여 스웨덴 시카다 상, 노르웨이 비외르손 훈장 등 국내외 주요 문학상을 두루 수상했다. 최근 매년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면서 한국의 첫 번재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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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12월 20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136쪽 | 344g | 123*207*20mm
ISBN13
9788939231283

출판사 리뷰

지금 여기 그리고 넓은 우주
―고은 시집 『무의 노래』의 시 세계


이번 시집의 시들은 시이면서 인생론이고 철학적 발언이다. 그리하여 발언 하나하나가 그 자체로 깊이 생각해볼 만하다. 고은 시인의 시력은, 조금 거칠게 말하는 것이지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서정적인 시이고 그다음은 현실참여에 관계되는 시이다. 그리고 이번의 시집, 『무의 노래』는 앞의 두 시풍詩風에 비하여 말하건대 서정시나 참여시를 벗어나 더 넓은 주제들을 생각하는 시들의 모음이다. 이 시들의 주제는 제목에 나와 있듯이 ‘무無’이다. 그러나 여기의 무는 반드시 없는 것이나 부재不在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불경佛經에서 흔히 말하듯이, 자잘한 현상의 실재들을 부정하면서 그 너머에 있는 존재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사람이 지각하고 경험하는 사실들을 넘어가는 세계를 의미한다.

고은 시인의 작품들은 처음부터 경험의 세계를 떠난 일이 없다. 전前이나 지금이나 그의 시들은 대체로 인간의 경험 세계에 가까이 있었고, 그것이 그의 시의 특징이다. 이번 시집의 제목이 시사하는 것은 그러한 경험적 사실들을 보다 넓은 관점, 무 또는 공空의 관점에서 재평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경험적 사실들은 보다 넓은 관점에서 파악되는 진리의 세계 또는 우주 안에서의 변화 또는 변이變移로 파악된다. 이보다 넓은 관점은 종교, 특히 불교의 관점을 말하기도 하지만, 역사, 지리, 천문학, 입자 물리학 등이 열어주는 광범위한 관점을 포괄한다. 그러면서 그것이 현재의 순간을 직시하고자 한다.달리 말하건대, 무無의 바탕 위에서 다시 강조되는 것은 삶의 현실의 세부 사항들이다. 그리고 이것은 평상적인 삶의 현실이고, 그것을 넘어가는 것이 있다면, 그것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는 일상적인 삶의 자연이다.

쇠여
쇠로 돌아가 돌이거라
구리여
너도 흙이거라
석탄이여 푸른 나무로 돌아가거라

아후라마즈다의 불 영생의 불
소매끝 바람으로
네 오랜 불 꺼라

돈의 석유여
피의 석유여
네 고향 땅속 극락으로 내려가거라
때가 왔다
탐욕이여
오늘 밤 자정
네 고향 공허로 돌아가거라
여기에 여기 그대로 돌아오라
-「귀향」 전문

시집의 머리에 실린 「귀향」이란 시 전문으로 이 시집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귀향은 옛 고장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말한다. 이 시에서는 사람 사는 세계 자체가 보다 근원적인 상태로 돌아갈 것을 호소하는 일이 된다. 이 시에서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불로서 불을 끄는 것, 또는 신의 불의 한 끝으로 인간의 불을 끄는 것이다. 인간의 섣부른 불은 온전한 신의 불로 꺼질 수 있다. 더 간단히 불은 불로 끌 수 있다. 시인의 이러한 모순 어법은 이 시집에서 두루 보이는 설법의 형태이다. “불로써 불을 꺼라.” 귀향한다는 것은 그러한 거대 행위의 의미를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그것은 위에서 비친 바와 같이 일단은 소박한 삶-자연으로의 삶의 회귀를 말한다고 할 수 있어 이 시집의 주제와 상통하고 있다.

속은 겉이 아니란다

다 겉이면
속 없는 겉뿐이란다

껍데기여 오라
껍데기여 오라

나 보수반동으로 사뢴다
돌이켜보건대

이 세상은 드러내기보다
덮어두기
꼭꼭 숨기가 더 많다

성현 반열의 위의威儀이든
영웅 제위諸位의 공훈이든
여느 사람
한 생애도
반 생애도

다 드러내면 세상의 자원資原 무너져

숨은 것
꼭꼭 숨어라
감춘 것
제발 들키지 마라
어미가 새끼 숨긴다

가지 마라 두메 너머 두메 거기 꽃하나
-「숨은 꽃」 전문

「숨은 꽃」은 인간의 내면에 대한 깊은 관심과 종교적인 영감이 가득한 고은 선생에게는 놀라운, 그러면서도 깊은 의미를 갖는 제안을 한다. 즉 내면이 인간의 본질을 구성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회의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그 외면이라는 테제(명제)다. 모든 사람들의 내면을 들추어내기 시작하면, ‘세상의 자원資源’이 사라진다. 인간의 내면적 진실은 감추어두는 것이 그것을 보존하는 참다운 방법이다. 그것은 숨어 있는 꽃이라야 한다.

외계의 역사 인식 설정으로

근대 서구 중심사관 시건방져
진단학회
실증사관 철 몰라
아我와 비아非我의 단재 투쟁 사관
아니 사마천 중화사상 사절
아메리카 선택노선 사절
훌쩍 떠나

지상의 수작 떠난
우주 암흑 물질

입자의 언어
파동의 언어로 서술할터
골백번 죽은 초신성超新星으로 서술할 터
-「훌쩍 떠나」 부분

「훌쩍 떠나」 는 한국의 테두리를 벗어난 시각, ‘인간 세상 떠나버린 시선’을 말하고, ‘외계의 역사 인식’을 설정하겠다고 말한다. 진단학회의 민족 사관,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을 역사의 동력으로 보는 신채호의 민족주의 사관, 다른 실증주의 사관을 떠나서 또 사마천의 중화주의, 아메리카 중심의 사관을 떠나서, ‘지상의 수작 떠난/ 우주 암흑 물질/ 입자의 언어/ 파동의 언어’, ‘골백번 죽은 초신성超新星으로 서술’하겠다고 한다

무가 있어야 한다
무 없으면
다 없다
서울도 서울 삼각산도
저 아래
김포 통진 한강 하류도
바람 끄트머리 내가 말한다
무가 있어야 한다
무가 있어야 한다
미친 유有 한복판
무 있어야 한다.
-「무無의 노래」 전문

“무無의 노래”는 1부의 마지막 시로 1·부의 시들에 대한, 말하자면, 형이상학적인 결론을 내리는 시이다. 여기의 무는 ”허虛“ 그리고 ”공空“이기도 한데, 그것이 없으면, ”나“도 없고 서울도 삼각산도 없다. ”유 한복판/ 무 있어야 한다“시는 이러한 선언으로 끝난다. 2부의 시가 말하는 내용도 1부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시인의 세계관을 조금 더 추상적으로말하고 있다.

어쩌면
지동설이
천동설 이상으로
바보 이야기가 될지 몰라

어쩌면 천동설이
지동설을
바보 이야기로 되돌릴지 몰라

무엇하나

거짓말 하나도 거짓말 아닌 것 하나도
그대로 둔 적 없는 것

우주변야變也
-「그때 그때」 전문

「그때 그때」는 변함없는 이론이나 큰 이론은 없다고 말한다. 천동설도 지동설도 어느 것이 확실하다고 할 수는 없다고 시인은 말한다. 더 일반화하면, ‘거짓말 하나도 거짓말 아닌 것 하나도/ 그대로 둔 적 없는 것’이다. 확실한 것은 ‘우주 변야變也’이다.

토성 부근 사이클론 시속 1천6백 킬로
지구 사이클론 시속 5백 킬로

우리 은하 항상계恒常界도
온통 태풍 속

나라는 것 한낱 바람의 씨앗
- 「바람의 씨앗」 전문

「바람의 씨앗」에서 시인은 모든 것이 우연이며 그것은 나 자신에도 적용된다고 말한다. ‘나라는 것 한낱 바람의 씨앗’일 뿐인 것이다. 우주의 운행도 그렇다. 토성이나 지구의 순환 속도는 극히 자의적이다. 은하의 항성계恒星系는 또 그 나름의 ‘태풍 속’에 있다.

뛰는 놈 위 나는 놈
일진회 두목 송병준이
조선을 1억 원으로 흥정하자
잽싸게
이완용이 나서서
막장 떨이 3천만으로 흥정하여
다음날 팔아먹는다
총감 이또 히로부미 앉아서
7천만 원 챙겼다
망국도 싸구려 망국
-「싸구려」 전문

아 0이여 0이여

0을 더해도
0을 빼도
0을 곱하고 나누어도
0은
몇만 몇십만으로 이어가도
0은
오로지 0이로소이다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소원이어라

0이여
-「0이여」 전문

「0이여」는 여기에 따르는 교훈을 말하자면 수학적으로 표기한 것이다. 0은 ‘더해도’, ‘빼도’ ‘곱하고 나누어도’ 아무런 변화를 가져 오지 않는다. 사람이 갖는 많은 희망이 헛되게 끝난다는 것을 이러한 0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이 허무감은 시대적 경험의 결과이기도 하겠지만 개인적 경험에서 나오는 관찰이기도 할 것이다.

티끌 하나를 쪼개고 쪼개어
미세먼지
초미세먼지
세포
원소
원자
쿼크
이윽고 힉스

내일 모레 극소 입자 힉스도 별 수 없이 쪼개어질 것 아닌가

죽음 앞둔
스티브호킹 대오각성
마침내 불교 연기론에 이르러
40억 년 단세포로
10만 년 인류로
온갖 진화
온갖 유전의 원인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

아유 150억 년 전의 대폭발로 거슬러 가
-「우주 놀이」 전문

「우주 놀이」는 인간의 삶을 입자 물리학의 소립자들과 천체 물리학, 스티브 호킹의 이름도 들어가며, 거대 우주와 우주의 역사, ‘150억 년 전의 대폭발’ 사이에 위치하게 한다. 이 거대한 우주의 역사 속에 놓인 인간 존재는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이것이 아마 고은 시인이 묻는 물음일 것이다.

가수 나훈아

어떤 가수로 남고 싶은가라는
흔한 질문에

세상은 우리를 유행 가수라 한다
유행은 무엇인가
흘러가는 것 아닌가
나 또한
노래로 흘러갈 뿐이다

멋져
멋져

엔간히 한 소식
-「나훈아론 」 전문

「나훈아론」에서 “나 또한/ 노래로 흘러갈 뿐이”라고 말하고 그것이 예술의 한 속성이며 동시에 ‘엔간히 한 소식’임을 말함으로써 서로 ‘무의 노래’로 부르고 읊고 있음을 표현하고 있다.

3부의 ‘작은 노래’의 시들은 보다 긴 시에서 말한 것들을 간단한 언어로 요약하고 있다. 그러니만큼 그것에 구태여 길게 주석할 필요는 없다. 알기 어려운 것이 요약되어 표현되어 있는 것이다. 그 내용은 앞의 시들에서처럼 이야기한 것을 다시 줄여서 말하는 것이다. 사실 해설이 별로 필요 없는 관찰들로 차 있는 것이 ‘작은 노래’의 단시들이다. 아래에 몇 개 소개해 본다.

*
가을이
가을인 까닭 있을까
가을에는
나도 가을

*
이 세상에 없는 의미
평등
그리고 자유
이 세상에 넘치는 허사虛辭

*
악惡 언제나 어디나
선善 어쩌다

또 사막 하나 열었다
낙타 없이

*
살아서
바다낙조

죽어
달밤

나 배불러

*
아무데도
먼 곳 없다
먼 곳 없으므로
가까운 곳 없다
문명은 무간지옥인걸

*
대문 밖
쌓인 눈 눈 가래로 밀어낸다
미안하이
미안하이
실컷 쌓이다가 녹을 것을

*
아무래도 망치려고 왔다
인류말이야
인류야말로
흥망을 원숭이적 부터안다
흥이 망의 망나니인 것
유有가 무無의 모가지인 것

*
니체는 10대의 철학이다
그러다가
30대의철학이다
그러다가
그러다가
80대의 철학이다

내 그림자에 따라붙는 영겁회귀

*
프로이트
애도는짧게

데리다
애도는길게
그이들막상막하

나는야 3년상이나 49재 잊어먹고 수시隋時의 애도

시인의 말

시집 『초혼』과 『어느날』이 나온 뒤로 5년이다. 다섯 번의 가을을 애지중지로 지내는 동안 둘은 하나와 하나로 돌아간 적 없다. 늘 둘로 무애無涯의 율律을 자아냈다. 시와 시속의 화자 사이의 팽팽한 시절 인연이다. 쓰기와 읽기로 손과 눈이 놀았다. 거의 연중무휴로 시의 시간을 살았다. 몇 날 며칠을 읽어야 하는 긴 서사시의 교열을 뒤이어 내 오장육부의 완연한 파도들이 울긋불긋 시편들로 쌓여왔다. 이런 날들의 평상 가운데서 나의 황홀한 플랑크톤 빛 알갱이들이 남몰래 춤추었다. 본디 무시무종無始無終의 공간을 떠도는 파동이 내 운명의 입자들을 몰고 다닌다. 이런 무작위의 생태가 이따금 두렵기도 하고 기쁘기도하다. 아내의 탁마가 있었고 딸도 돌아와 있는 동안 초고들을 입력해 주었다. 이런 가족의 은덕이 세상의 은덕과 함께 나의 정신의 모항母港을 열어주었다. 저 1970년대 말 어렵사리 태어난 실천문학사가 작가 윤한룡의 정성으로 튼실해지면서 이번 시집이 거기서 나오게 되었다. 감은이 깊다.
2022년 가을
고은

추천평

이번 시집의 시들은 시이면서 인생론이고 철학적 발언이다. 그리하여 발언 하나하나가 그 자체로 깊이 생각해볼 만하다. 발언들은 독자가 곧 알게 되는 것이 아닐지 모르지만, 여러 차원의 사실과 전거에 이어져 있다. 그리하여 이 연결을 생각해 보아야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바르게 파악할 수 있다. 이번의 시들을 자세히 보는 것은 고은 시인의 시와 입장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20세기와 21세기를 거쳐 살아온 한국인의 어려웠던 상황을 알아보는 일이 된다. - 김우창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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