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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펴내며 ■5
화보 ■12 서장 왜 백제의 이주지식인에 주목하는가 ■15 1. 문제의식 _15 2. 선행 연구의 검토 _21 3. 연구 시각과 방법론 _30 제1부 백제 이주지식인의 형성 배경과 시기 설정 ■39 1. 이주지식인의 형성 배경 _40 2. 동아시아의 주민 이동과 백제의 이주 사례 분석을 위한 시기 설정 _62 제2부 백제 이주지식인의 시기별 활동 양상 ■75 제1장 4세기~5세기 중·후반 국가체제의 구축과 이주지식인의 활동 ■78 1. 백제의 국가체제 정비와 중국계 이주지식인의 활동 _78 2. 4~5세기 백제, 왜국의 관계와 백제계 이주민의 정착 양상 _89 3. 왜국에서 활동한 초기 백제계 이주지식인 _106 제2장 5세기 후반~7세기 중반 동아시아문화권 형성과 이주지식인의 역할 ■131 1. 동아시아 정세의 변화 _131 2. 중국-백제 관계에서 활약한 이주지식인 _136 3. 백제-왜국 관계에서 활약한 이주지식인 _144 제3장 7세기 후반 백제 멸망 이후 유민 지식인의 활동 ■191 1. 당으로 간 백제 유민 _192 2. 백제 유민의 이주와 왜국의 정황 _208 3. 일본 고대 율령국가 형성과 백제 유민 지식인 _215 제3부 백제계 이주지식인과 일본 고대국가 ■243 제1장 일본의 국가체제 확립과 백제계 이주지식인의 주요 활동 ■244 1. 일본 문자문화의 전개와 백제계 이주지식인의 활약 _245 2. 교육기관의 성립·발전 _267 3. 율령의 편찬 _288 4. 불교 등 사상 분야의 정비 _294 제2장 일본의 이주지식인 수용·정착 조치 ■313 1. 이주지식인의 정착과 활동의 배경 _313 2. 백제계 이주민에 대한 일본의 주요 조치 _316 제3장 백제계 이주지식인의 정체성 ■347 1. 백제 멸망 이전 _347 2. 백제 멸망 이후 _349 제4부 백제사에서 이주지식인의 역사적 의미와 현대적 함의 ■355 1. 이주지식인 활동의 역사적 의미 _356 2. 현대적 함의 _368 Abstract ■373 표 및 그림 목차 ■379 참고문헌 ■381 찾아보기 ■3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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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특히 백제계 이주민이 정착한 지역은 기나이의 가와치河內 지역과 나라奈良분지였다. 가와치지역에서 백제인이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5세기대 가와치의 개발과 경영이 왜 정권의 현안 가운데 하나였음을 의미한다. 백제계 이주민이 그 사회의 절실한 필요에 부응할 수 있는 선진 기술을 가진 존재였고, 왜국으로부터의 절실한 요청이 있었으며, 이주자 자신 또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성과를 이룰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세 가지 조건이 맞물려 백제로부터 기술자의 이주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가와치평야의 개발과 이에 따른 농업생산력의 발달은 왜국 정권의 물적인 토대를 확고히 다졌다.
--- p.98 확실한 것은, 6세기(513)에 왜의 요청으로 백제에서 오경박사가 파견되었다는 사실이다. 단양이-고안무, 마정안-왕류귀의 순서로 왜국에 파견된 오경박사는 단양이와 고안무의 교체 사례를 볼 때 대체로 3년 동안 체재하다가 귀국했다. 6세기 전반의 제박사諸博士와 승려의 교대 파견은 군사원조에 대한 반대 급부로서, 백제와 왜국 두 나라의 필요성에 기인한 것이다. 오경박사와 여러 분야의 박사가 지식인이자 기능 보유자이기 때문에 6세기 전반 백제사회에서 제반 분야에 대한 지식의 축적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말해 주기에는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 p.277~2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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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를 거점으로 한 지식인의 이동과 전파로 동아시아 교류사를 관통하다
점점이 존재했던 백제의 ‘이주지식인’을 키워드로 동아시아 세계의 거대한 그물망을 직조한 역작이 나온다. 저자 김영심 박사는 최신 연구 성과와 고고자료를 결합하여 고대 국가의 발전 과정을 단계적·체계적으로 포착한다. 이주지식인 개인의 서사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사상사·외교사·관제사·학술사가 동시에 교차된다. ‘이주지식인’이란 자유로운 이동과 지식에 대한 접근이 제한되어 있었던 고대사회에서 ‘지식인’ ‘이주’의 영향은 상당히 컸던바, 저자는 이 둘을 합쳐 ‘이주지식인’이라는 범주를 최초로 정립하였다. 이 개념은 동아시아 교류를 살피는 매우 효과적인 틀이 된다. ‘한자’에 대한 소양을 가진 지식인들은 각종 제도, 외교 등 지식과 기술을 갖춘 전문가로서 이주사회의 발전에 기여했다. 저자는 왕인, 아직기 등만이 아니라 유학승인 현광, 발정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의 활약을 풍부하게 소개한다. 이주의 근거로써 하남 감일동 등 중국계 고분군과 공주, 부여 등 왜계 무덤은 물론 가와치, 야마토 등지의 백제 유물 유적이 총망라되어 분석된다. 고대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이 책에서 주목한 지식인은 중국계와 백제계 이주지식인이다. 저자에 따르면, 두 지식인의 경우 지식 및 제도를 수용하여 전파하는 순차적 흐름이 서로 달랐다. 백제에서는 4세기 후반의 통치체제 정비에 중국계 지식인, 왜국에서는 4세기 말 5세기에 걸쳐 생산 기반을 마련하고자 백제계 기술자를 제공받았다. 이러한 차이는 이들을 수용하는 사회 발전단계의 차이에 기인했다는 것이다. 특히 백제계 이주지식인에 대해서는 4세기부터 백제 멸망(660) 이후까지 1단계(수용기)-2단계(재생산기)-3단계(관사 설립기) 변천에 따라 이주 원인과 활동, 그 의의를 상세하게 논증한다(제2부). 6~7세기 왜국에서는 백제로부터 오경박사와 불교가 전래된 이후 호적·정적丁籍 등 문서행정이 발전하고, 7세기에는 문서행정이 지방사회까지 확대되어 나갔다. 따라서 독자들은 제도·문화의 전파만이 아니라 동아시아 각국의 정치체 정비 및 발전의 추이까지 파악할 수 있다. 문화 교류를 보는 시각 문화의 전파와 기술의 전수과정에서 저자는 이주지식인의 활동과 함께 이주지의 수용 역량도 검토한다. 백제와 왜국이 사상(유·불교), 외교, 행정, 교육제도 등을 어떤 경로와 방식으로 받아들였는지를 면밀히 추적한다. 이 가운데 백제 멸망 이후 왜국에 건너간 백제 유민들이 왜국의 ‘지원’에 힘입어 율령국가 건설에 적극 참여한 것이 특기할 만하다. 예컨대 중앙의 관인 양성 기관인 대학료의 전신인 학직두에 귀실집사, 대학료의 학직에 허솔모 등 대표적인 백제 유민과 그 후손이 임명되었다는 것이다. 백제인의 이주를 다룬 연구는 여럿 있다. 그러나 이 주제로 동아시아 문화권의 얽히고설킨 지식지형도를 펼쳐 낸 저작은 드물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일국사 관점을 탈피하며, 일방적 전파 대신 상호 교류의 시각을 견지하는 점에서 동아시아 이주사의 새 장을 여는 전범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