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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아지기 전에
회복하는 인간 에우로파 훈자 파란 돌 왼손 노랑무늬영원 발문 | 겹과 곁_조강석 작가의 말 |
Han Kang,韓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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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아야 궤적을 발견할 수 있다. 소설집 세 권이 출간되는 동안 한강 단편소설에서 변화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여수의 사랑』에서 인간과 세상에 대한 갈망을 간절하게 드러내며, 떠나고, 버리고, 방황하고, 추락하는 고독하고 고립된 존재들은 『내 여자의 열매』에서 그토록 갈망하던 세상과 서로를 서툴게 받아들이려다 어긋나버리고 상처 입는다. 그리고 『노랑무늬영원』에 이르러 재생의 의지와 절망 속에서 생명력은 더 강하게 타오른다. 존엄해진 존재는 여전히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마침내 상대를 껴안으려 시도한다. 끝내 돌아가고야 말 어딘가이자, 잎맥을 밀어 올리는 이파리, 회복기에 피어난 꽃, ‘점을 잇는’ 작업 동안 오롯이 담아내고자 했던 자연스러운 변화와 흐름은 표지에 사용된 사진작가 이정진의 작품과 조화를 이룬다.
한편 변함없는 것은 한강의 치열한 물음이 아닐까. ‘살고 싶다, 살아야겠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놓지 않으며, 인간이라는 존재, 삶과 죽음, 이 세상에 대해서 스물한 편의 소설 내내 묻지만 필연적으로 답에 도달할 수 없다. 그러나 파르스름한 불꽃 같은 그 물음 자체가, 물음에서 파생되는 고독의 열기와 세심한 슬픔이 작품 속 그들을 그리고 우리를 사랑하고 살아 있게 하는 힘이 된다. 변화했으나 변하지 않았으므로, 신중하게 소설들의 배치를 바꾸었고 몇몇 표현들을 손보았지만 두어야 할 것은 그대로 두었다. 앞서 “누구”를 묻던 『내 여자의 열매』 속 작가 자신의 물음에, 『노랑무늬영원』의 새로 씌어진 작가의 말을 이어본다. 그 궤적을 함께 되짚어보길 권한다. 누군가, 스무 해 남짓 홀로 써왔다. 한강은 여전히, 걷고 있다. 알고 있다. 이 소설들을 썼던 십이 년의 시간은 이제 다시 돌아올 수 없고, 이 모든 문장들을 적어가고 있었던 그토록 생생한 나 자신도 다시 만날 수 없다. 그 사실이 상실로 느껴져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결코 작별의 말이 아니어야 하고, 나는 계속 쓰면서 살아가고 싶은 사람이니까. ―‘작가의 말’(2018), 『노랑무늬영원』 지극히 단순하고 말갛게, 직관적으로 다다른 어떤 자리에 불현듯 찾아드는 청량한 삶의 감각 『내 여자의 열매』 첫 소설집 이후 5년 만에 출간한 두번째 소설집. 〈채식주의자〉 연작의 씨앗이 된 「내 여자의 열매」 등을 포함한 단편 여덟 편의 배치를 바꾸고 표현과 문장을 다듬어 새롭게 선보인다. 『내 여자의 열매』에서 인간은 작은 박새처럼 쉽게 파괴될 수 있는 연약한 존재인 동시에, 분열되고 찢긴 삶에 숨을 불어 넣어 다시 태어나고자 삶의 투쟁을 벌이기도 한다. 새로 해설을 맡은 문학평론가 강지희는 한강 소설 속 여성 인물에 주목한다. “그들은 체념하며 포기하지도 격렬하게 싸우지도 않은 채 고요하게 자리해 있는데, 누구보다 강하고 생동하는 욕망 속에 있다”. 표제작인 「내 여자의 열매」에서 자유를 꿈꾸던 아내의 계획은 모아둔 돈을 전세대금으로 넣으며 멈춘다. 남편은 처음부터 “세상 끝” “가장 먼 곳” “지구 반대편까지 쉬엄쉬엄” 가보고 싶다던 아내의 꿈을 비현실적이고 낭만적인 몽상이라 취급한다(p. 19). 결혼 생활은 남편에게 “모든 것이 적당히 덥혀진 욕조의 온수”(p. 35)처럼 따뜻한 것이었으나, 아내는 점차 말수를 잃어가고 햇빛만을 갈망하며 살갗 전체에 푸른 피멍이 번진다. 남편이 출장에서 돌아온 날, 아내는 식물이 되어 있다. 식물로 변한 아내는 오히려 생생해지고, 강인한 활력이 넘쳐흐른다. 더 이상 어떤 상처도 입힐 수 없고, 무엇에도 파괴되지 않는 존재가 된 것이다. 표면적인 결혼 생활에 지친 「아기 부처」의 ‘나’, 「철길을 흐르는 강」에서 무기력한 시간을 견뎌야 하는 여자, 엄마가 떠난 뒤 광기에 빠진 아빠와 떠도는 「해질녘에 개들은 어떤 기분일까」의 아이 등 소설 속 인물들은 자신을 짓누르는 고단한 세계를 고요하고 격렬하게 거부하면서 내적인 투쟁을 통해 맑고 빛나는 세계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작가의 말 첫 창작집을 낸 뒤 칠 년여 동안, 그사이 첫 장편소설을 삼 년간 쓰기도 하며, 제법 긴 간격을 두고 써갔던 단편들이다. 첫 단편집을 묶고 나면 그것이 매듭이 되어 다음 단편집이 변화한다고들 말한다. 이 소설들을 다시 읽으며 그 말을 실감했다. 이 책에서, 나는 나아가고 있다. 조금씩 몸을 뒤채이며 달팽이처럼 전진하고 있다, 그가 낼 수 있는 최대치 속도와 힘으로. 소설들의 배열을 바꾸었고, 몇몇 표현들을 손보았다. 이 책의 개정판을, 첫 소설집과 세번째 소설집의 사이에 나란히 놓아둘 수 있도록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표지에 사진을 싣게 해주신 이정진 작가님께도 감사드린다. 2018년 가을, 서울에서 한 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