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작가의 말 / 12
프롤로그 / 17 콘크리트 판화 / 23 불길한 편지 / 36 모조리 부숴라 / 42 가석방 / 52 핏물이 다 흐르도록 / 63 다 맞아주겠어 / 69 기계인간이지만 배가 말랑해 / 85 전봇대에 묶인 프로메테우스 / 92 안 들려 진짜 안 들려 / 110 슈스케를 위한 헌정 / 119 그 줄무늬만큼의 유전자는 / 133 지나칠 수가 없잖아 / 143 쥐는 꼬리를 남긴다 / 151 그래, 이론상으로는 / 157 암바사 농약 / 173 뒤꿈치로 걷는 사람들 / 184 주인 없는 신발들 / 202 악마의 발소리 / 210 탄흔들 / 221 눈물샘이 받은 충격일 뿐 / 232 호박구더기 / 246 불쌍한 내 새끼 / 259 울기 연습 / 272 주문 따윈 없어도 돼 / 277 달팽이 집 / 288 에필로그 / 301 |
김동하의 다른 상품
|
내가 다리 위에 서 있는 건 달아나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무엇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은 건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어디로 가고 싶은지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결국 다리에 이르러 멈추어 서고 말았고 잠자리 따위나 세고 있는 거다. 내 혈관 속에 시멘트가 흐르는 것 같다. 움직이지 않으면 서서히 굳어버릴 거다.
나는 곤충이나 벌레 옆에 내딛는 내 발을 신의 발이라고 부르는 습관이 있었다. 녀석은 내 발의 정체를 결코 알 리 없었다. 나는 내 곁에도 내가 알지 못하는 신의 발들이 떨어지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녀석은 늘 과장이 심했다. 그러나 나는 토를 달지 않았다. 녀석이 과장해서 말한다면 나는 축소해서 받아들이면 됐다. 과장은 재밌지도 않고 더군다나 금방 들키고 만다. 과장은 심할수록 말하는 사람 스스로를 작아 보이게 할 뿐이다. 나는 어떤 충동이 들면 미친 듯이 행동하고 마는 버릇이 있는데 그건 그 순간에는 내가 사라지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렇게 의식이 흐릿해지는 순간이 좋았다. ‘미안하다’는 말에 익숙해지고 나면 최악의 인간이 되는 건 시간문제다. “형은 스물네 살이 맞아. 오십 살 남자는 나 같은 애에게 담배를 주지 않으니까.” “보여주고 싶은 일기라고나 할까. 물론 진짜 비밀까지 적기는 어렵겠지만. 그런 의미에서 가장 솔직한 편지는 부치지 못한 편지지.” 아마도 지금의 나는 진공관과 비슷한 상태일 거다. 텅 비어있지만 지랄맞게도 빈 공간이란 게 남아있는 상태. 그래서 제자리에서만 버틸 수 있는 상태. “화는 내도 돼. 하지만 거기에 휩쓸려서는 안 돼. 그랬다가는 화가 났던 이유를 잊게 되거든.” 그 희미한 발소리들은 죄다 나를 향해서만 다가오는 것 같았다. 낮달 같은 발소리들. 나는 발소리들이 멀어질 때에야 안심했다. 그래서 오늘처럼 바람이 세게 불거나 소나기가 내리는 날이 좋았다. 나는 호박구더기 같은 인간이 좋다. 나 같은 애 앞에서도 부끄러워 달아날 줄 아는 인간 말이다. 그런 인간들은 아무도 해치지 않는다. 감옥을 다녀온 사람은 알아. 세상에 감옥 아닌 곳은 없지. 우리에게 필요한 건 감옥에서 사는 법이야. 나를 봐. 이게 울지 않고 살아온 인간의 모습이다. “그래? 그런 이야기라면 얼마든지 해줄게. 네가 잃어버린 게 생길 때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이야기를 지어 줄게.” --- 본문 중에서 |
|
집의 내부와 소년의 내면이 무너진다.
허물어진 구조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아버지를 보며 붕괴된 꿈에 깔린 채 성장해가는 한 소년의 그로테스크한 성장기. “몸이 사라진 달팽이집은 반투명하다. 우렁이보다 훨씬 약한 껍질이지만 아무리 약해도 제 몸보다 조금이라도 단단한 껍질이라면 도움이 된다. 그러나 껍질은 결국 안을 지키기 위한 가장 근접한 바깥이다. 때로는 말랑하고 연약한 몸을 밖으로 내밀어야 한다. 그래야 산다.” 고부갈등을 견디지 못한 어머니의 가출, 그리고 그 이후 집을 부수고 다시 짓는(리모델링) 아버지, 그리고 그런 일련의 과정을 바라보며 겪게 되는 주인공의 갈등과 혼란, 그리고 아픔을 통해 주인공의 내적 성장을 이뤄가는 모습을 그린 성장소설. 겉으로 드러난 집의 외양은 변함이 없으나 내부는 새로운 형태로 바뀌어가는 과정이 소설 전반에 걸쳐 진행된다. 집의 변화는 공동체의 변화와 주인공의 인식 변화와 병치된다. 가정과 집이 동시에 붕괴되는 상황 속에 놓인 주인공 소년은 환경의 변화에 따라 인식 또한 점차 변화해 간다. 소년은 과거의 무거운 기억(죄의식)에 사로잡혀 지낸다. 그러던 중, 교도소에서 출소한 사촌 형, 그리고 이웃들의 존재가 소년의 내면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다. 소년의 아버지가 집을 허물고 재건하는 과정은 소설의 시작부터 끝까지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다. 집 전체를 무너트렸다 짓는 형태가 아니라 방을 옮겨 다니면 부수고 재건하는 일련의 과정은 우리에게 가족이란 존재가 무엇인지를 암시한다. 작가는 집을 허물며 동시에 다시 완성해가는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인물의 성장과 인식변화를 드러내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작중 소년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로는 출소한 사촌 형. 소년은 이 사촌 형과의 관계를 통해 폭력의 본질에 대해 골몰한다. 이른 나이에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어른들의 세계를 겪은 아이들이 흔히 그렇듯, 소년도 위악적이고 냉소적이다. 그런 소년의 내적갈등은 어찌 보면 그 역시 이제 막 사회인이 된 사촌 형의 내적갈등과도 일면 상통하는 대목이다. 소년의 입장에서는 무섭지만 강인해 보이는 존재로서 자신의 롤모델로 삼고 싶은 형이지만 그런 형에게도 두려움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소년은 사촌 형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무모한 행위들을 벌여 나간다. 이미 방황을 겪은바 있는 사촌 형은 소년의 일탈을 무턱대고 막기보다는 일정한 거리에서 지켜봐 준다. 그러던 중 소년은 마침내 자신을 묵묵히 믿어준 사촌 형에게 그간 자신을 억눌러왔던 끔찍한 기억을 털어놓는다. 한편 집안의 공사는 이제 마지막 안방만을 남겨두고 있다. 그 방은 온 식구가 같이 잠을 자던, 그리고 어머니와 아버지의 기억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곳이다. 소년은 어머니가 집을 나가자 집안 공사를 시작한 아버지를 원망했었다.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지우려 집을 허무는 것이라 짐작한 탓이다. 그러나 안방 공사를 앞두고 망설이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이 공사를 시작했던 진짜 이유를 공감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