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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필연적인 궁금증
저 건물은 도대체 뭐지? 8 네 건물을 끌어들인 까닭 18 건축은 음식인가, 마술쇼인가 34 수졸당에 한마디 거들기 41 이 여정은 혁명주의부터 시작한다 47 제1부 함께 잘살아보자 - 모더니즘 01 산업혁명이 탄생시킨 요구들 무엇이 영란은행을 낯설게 하는가 57 런던 시민이 느꼈을 그때의 감상들 63 건축, 부르주아의 등장을 선언하다 66 02 빈을 뒤흔든 건물 한 채 오스트리아 황제는 로스 하우스를 왜 혐오했을까 72 빈에서는 그때 무슨 일이? 81 아돌프 로스의 선택은 필연적이었다 84 03 1932 MoMA의 낯선 풍경 뉴욕 시민들에게 친숙한 도시란 87 MoMA에 전시된 유럽의 낯선 풍경 91 그래서 무엇을 남겼나? 100 04 세종로에 나타난 그 건물의 사연 정부청사가 들어선 순간 103 그때 정부청사는 왜 낯설게 느껴졌을까 106 05 전 세계 어디서나 마주치는 그 녀석 모더니즘은 어떻게 이 땅에 들어왔나 114 국제주의 양식이 한국에 유입된 유일한 모더니즘? 118 세계 어디서나 비슷한 건물을 만나는 까닭 122 제2부 다 같을 필요는 없다 - 포스트모더니즘 01 기계에서 희망을 찾은 유럽 건축가 모든 건물이 다 같을 필요는 없다 129 퐁피두 센터의 건축가는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었을까 131 기계, 영감의 원천이 되다 138 02 미국 건축가, 역사에서 실마리를 찾다 푸르트 이고 폭파에서 건축가는 무엇을 보았을까 142 화가는 건축가의 선배다? 146 다비드가 마이클 그레이브스에게 가르쳐 준 것 151 03 전주에서 만난 마이클 그레이브스 전주시청사는 그저 모방일 뿐인가 159 숨은 건축가는 공무원이었나 164 그렇게 비난받을 건축물인가? 170 제3부 틀 안에서도 다를 수 있다 - 약한 해체주의 01 1988 MoMA의 낯선 풍경 1932가 떠오르는 까닭 177 당신이 안 먹어봤을 먹을거리를 팝니다 181 1988 식당에서는 무엇을 팔까? 183 02 박스 예쁘게 쌓기의 달인 로마 유적은 해체주의의 예고편 191 모더니즘 건축은 정말 지루한 것인가 198 03 청담동에서 만난 예쁘게 쌓기 단순한 건물이 더 장식적이라는 것을 아시나요? 208 청담동에서 흔히 보이는 정체불명의 건물들 216 04 삐뚤빼뚤 쌓기의 원조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와 렘 쿨하스의 차이 220 피터 아이젠만의 현란한 건축적 수사는 어디서 오는가 226 파라메트릭 디자인은 창의적이지 않다? 235 05 파주에서 만난 삐뚤빼뚤 쌓기 피터 아이젠만은 박스 삐뚤빼뚤 쌓기만 했을까 242 피터 아이젠만 흉내 내기 247 제4부 틀을 깨버리다 - 강한 해체주의 01 박스 찌그러뜨리기의 발명 젊은 날 누구나 파격을 꿈꾸지 않았던가? 255 찌그러뜨려서 얻는 것들 266 02 여의도에서 만난 찌그러뜨리기 설명할 수 없는 저 삐딱한 건물의 정체 270 아키텍토니카의 비밀 273 그저 다르면 아름다운 것인가? 276 03 다시, 곡면 건축 아무리 봐도 모를, 저건 뭘까? 286 뭐가 뭔지 모를 형상에 담긴 뒷이야기 290 04 동대문에서 만난 곡면 건축 메시가 좋아? 호날두가 좋아? 300 자하 하디드와 프랭크 게리의 관계 308 에필로그 : 부의 집중, 건축을 뒤흔들다 316 이미지 출처 3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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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부분은 ‘왜 저렇게 했는가’다. 어떤 이유로 저 형태를 고안했는지 이해하려면 설계자가 처한 특수한 상황을 우선 알아야 한다.
---「저 건물은 도대체 뭐지?」중에서 포스트모더니즘과 해체주의는 같은 배에서 태어난 형제나 다름없다. 출생연도로 보면 포스트모더니즘이 해체주의의 형님뻘이다. 형은 생각과 생김새가 부모님을 좀 더 닮았다. ---「이 여정은 혁명주의부터 시작한다」중에서 국왕이나 귀족을 위한 공간 구조가 아니라고 굳이 변화를 줘야 하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변화한 시대상을 반영한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이런 맥락 덕에 런던 한복판에 독특한 형태를 지닌 영란은행이 나타난 것이다. ---「런던 시민이 느꼈을 그때의 감상들」중에서 부가 특정 계층에 집중되는 시기에는 부르주아가 건축의 주요 봉사 대상이었다. 반면, 부의 집중이 누그러지는 시기에 건축은 부르주아보다 일반 시민 계층을 주요 대상으로 했다. ---「그래서 무엇을 남겼나」중에서 경성부민관은 꽤나 모던한, 소위 모더니즘 건축의 한 계열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다. 그런데 유럽의 모더니즘과 비교해 보면 역사주의 양식적 표현이 적지 않게 가미된 것을 볼 수 있다. 왜 그랬을까? ---「국제주의 양식이 한국에 유입된 유일한 모더니즘?」중에서 모더니즘이 대세이던 때, 사람들은 건축에 정답이 있다고 믿었다. 제1차 세계대전 종전부터 제2차 세계대전의 뒷마무리가 대체로 끝나갈 무렵까지가 그랬다. 이때는 정답이 있었다. ---「모든 건물이 다 같을 필요는 없다」중에서 맥락을 바꾼다는 면에서는 ‘낯설게 하기’와 유사한 방식으로 ‘파격’이 있다. 파격은 예술 사조의 시대 구분을 막론하고 나타나는 특징이다. 마이클 그레이브스의 건축에서 나타난 거대한 기둥과 주두는 파격으로 볼 수 있다 ---「다비드가 마이클 그레이브스에게 가르쳐 준 것」중에서 전주시청사는 이런 맥락에서 탄생했다. 민족 고유의 것을 만들자니, 전통과의 연계는 당연히 필요한데, 국립중앙박물관과 같은 방식은 곤란할 것 같다. 그런데 미국을 보니 마이클 그레이브스의 건축이 있었다. ---「그렇게 비난받을 건축물인가?」중에서 이때 르 코르뷔지에의 심정은 어땠을까? 본인이 주장해 지켜온 도그마를 버릇없는 젊은이들이 무너뜨리려 한다고 고깝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면 그냥 한물간 세대가 된다. 르 코르뷔지에 정도면 그 수준을 훨씬 넘어선다. 그는 깨끗하게 인정했다. ---「로마 유적은 해체주의의 예고편」중에서 디테일에 목숨 거는 순간이 오면 그건 벌써 모더니즘이 아니라 모더니즘 흉내를 내는 모더니즘이라는 것을.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이나 ‘글래스 하우스’쯤 되면 진정한 모더니즘이라고 보기도 힘들다. ---「단순한 건물이 더 장식적이라는 것을 아시나요?」중에서 2010년경부터 우리 도시에 나타난 낯선 풍경은 피터 아이젠만의 두번째 단계와 유사하다. 사실 누구의 영향을 받았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직육면체를 삐뚤빼뚤하게 쌓아서 독특한 형태를 만든다는 건 누구라도 생각해 낼 수 있는 소소한 아이디어일 테니. ---「피터 아이젠만 흉내 내기」중에서 제2차 산업혁명이 잉태한 기계는 인간에게 이전의 기계와는 다른 힘을 주었다. 그렇다면 또 그런 이미지를 소모하려고 창작자들이 달려들 것도 뻔한 일 아니겠는가. ---「젊은 날 누구나 파격을 꿈꾸지 않았던가?」중에서 고층 건물 상단부(머리)에 웬 뜬금없는 독수리라니, 의아해하는 사람이 상당수였다. 프랭크 게리의 답은 간단명료했다. “새로운 형태적 모티브를 실험하는 중입니다.” ---「뭐가 뭔지 모를 형상에 담긴 뒷이야기」중에서 자하 하디드의 곡면은 어딘가 ‘본 듯한’ 낯섦이고, 프랭크 게리의 곡면은 ‘전적인’ 낯섦이다. ---「자하 하디드와 프랭크 게리의 관계」중에서 부를 과시용으로 쓰는가 혹은 부를 사회적 공존을 고려하면서 사용하는가에 따라 장식이 늘기도 줄기도 한다. 부를 과시하는 경향은 부의 집중이 심화하는 시기에 나타난다. ---「부의 집중, 건축을 뒤흔들다」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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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집중’을 읽은 자와 읽지 못한 자
르 코르뷔지에와 피터 오우트 ‘현대 건축의 아버지’로 불리는 르 코르뷔지에. 그의 걸작으로 꼽히는 롱샹 성당. 1955년에 완공된 이 건물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장식을 쓰진 않았지만, 당대 모더니즘 원칙이나 국제주의 양식 기준에서는 멀어도 한참 멀리 갔다고 평가받았다. 그렇지만 완공된 지 7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의 대표작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롱샹 성당이 완공되기 14년 전, 피터 오우트가 지은 ‘쉘 본부 빌딩’. 이 건물도 당대 건축 평단에서 박한 평가를 받았다. 지금도 그 이름을 기억하는 이가 몇 없다. 그런 신랄한 혹평을 받게 된 건 국제주의 양식에서 벗어난, 모더니스트들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거대한 문양의 장식을 썼기 때문이다. 르 코르뷔지에와 피터 오우트, 둘 모두 당대 흐름과 맞지 않았는데 왜 이런 차이가 생긴 걸까? 두 사람은 시대정신을 읽는 능력이 크게 차이 났다. 르 코르뷔지에는 그런 면에서 탁월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진행됐던 1941년에 과한 장식을 쓴 건축을 선보인 피터 오우트. 전후 복구 사업은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한동안 숨죽였던 부르주아들이 고개를 들 때인 1955년에 독창성을 뽐낸 건축을 세상에 내놓은 르 코르뷔지에. 역시 괜히 현대 건축의 아버지가 아니다. 르 코르뷔지에는 한때 사람보다 물류와 교통이 중심이 된 다소 비인간적이라고 볼 수 있는 계획도시를 꿈꾸기도 했다. 모더니즘이 강세였던 ‘함께 잘살자’가 시대정신이었기에 가능한 접근이었다. 그러나 그는 시대가 요구하면, 자신의 원칙까지 뒤집으며 건축에 새 옷을 입혔다. 분명 그는 ‘부의 집중’ 현상과 건축의 상관관계를 본능적으로든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저자는 현대 건축의 변화 흐름 근저에 ‘부의 집중’ 현상이 있다고 말한다. 실제 ‘부의 집중’ 현상은 건축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면서 우리 도시의 풍경을 바꾸고 있다. 시대 흐름을 읽고 앞날을 예측하는 자만이 르 코르뷔지에가 될 수 있다. 과거를 통해 과거 사실만 배운다면, 피터 오우트가 될 것이다. 21세기의 르 코르뷔지에가 되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