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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6
들어가며 14 1 파르테논 신전 22 2 로마 판테온 46 3 성 필리베르 수도원 66 4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86 5 파치 예배당 108 6 일 제수 성당 128 7 뒤랑의 파리 판테온 154 8 빅토리아 앨버트 뮤지엄 180 9 바이센호프 주택단지 204 10 시애틀 도서관 228 에필로그 246 참고문헌 254 사진 저작권 2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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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아테네인들은 어째서 직육면체를 찌그러뜨렸을까? 일관성이 있게 찌그러뜨리는 것은 정확하게 각진 직육면체를 만드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든 일이다. 뭔가 이유가 있지 않고서는 선뜻 할 이유가 없다.-34쪽(1 파르테논 신전)당대 로마인들에게는 가장 이상적 형태인 구를 완전하게 표현하는 것이 중요했다. 산탄젤로성의 원은 그 이상에 미치지 못하는 형태였을 것이다. 평면에서도, 단면에서도 원이 확실하게 인식되어야 한다.
---「2 로마 판테온」중에서 경이로움이 신적 가치이고, 신이 인간을 보호해 준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것이 바로 안전감이다. 성 필리베르의 사람들에게는 경이로움과 안전감이 최고 가치였다. 그들이 플로티노스가 제공한 플라톤제 색안경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3 성 필리베르 수도원」중에서 고딕 성당은 인간의 감각을 일부나마 용인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성상의 감각적인 표현으로 이어졌다. 성상 표현을 인간이 인지하려면 빛이 필요했고, 그걸 수제가 해냈다. 빛이 들어온 성당의 천장은 이제 좀 더 높이 올라가야만 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승리가 확인되는 순간이다. ---「4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중에서 르네상스는 ‘어느 날 갑자기’라고 해도 좋을 만큼 금세 시들해졌다.62 주도적인 어떤 경향이 시들해졌다는 것은 다른 것이 나타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르네상스 건축의 특징을 간결한 기본 형상의 사용과 비례라고 본다면, 그 뒤를 이어 나올 건축의 특징이 짐작되지 않는가? ---「5 파치 예배당」중에서 같은 건물인데도 당대인과 현대인이 본 일 제수는 다르다. 이유는 간단하다. 여러 차례 설명했듯, 우리는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뇌의 해석을 거친 결과물을 보기 때문이다. 당대인들과 현대인들이 다른 것을 본다는 말은 결국 다른 해석을 한다는 것이다. 뇌는 무엇인가를 관찰하는, 즉 보는 시점까지의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해석한다. ---「6 일 제수 성당」중에서 뒤랑 이전의 건축은 이데아적 형상을 추구했다. 그런데 뒤랑의 시대에는 이데아적 형상을 추구하지 않는다. 아니 그렇게 하지 못한다. 왜? 전례가 없는 용도의 건물을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전례가 없는 용도의 건물에 부합하는 이데아적 형상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7 뒤랑의 파리 판테온」중에서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빅토리아 앨버트 뮤지엄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찾아낼 수 있다. 건축의 추가 다시 아리스토텔레스 쪽으로 기울어졌다. 건축의 추가 아리스토텔레스로 기울어지는 순간, 우리는 또다시 플라톤을 예상하게 된다. ---「8 빅토리아 앨버트 뮤지엄」중에서 모더니즘 건축에서 기능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원칙이기에 이데아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가능하다. 건축이라는 예술은 기능을 재현한다. 그리고 그런 노력에는 기능주의라는 이름이 자연스럽게 붙는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모더니즘 건축은 또다시 플라톤의 부활이다. ---「9 바이센호프 주택단지」중에서 시애틀 도서관을 설계한 콜하스의 눈에 쓰인 것은 ‘해체주의 철학의 해체’라는 색안경이었다. 중요한 것, 그리고 책 전반에 걸친 여정을 통해 모든 장 말미에 다시 한번 강조할 것은 콜하스와 같은 시도들이 용인 또는 격려되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예술론 덕이라는 점이다. ---「10 시애틀 도서관」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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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론과 비결정론, 절대주의와 상대주의, 수학적 비례와 감각적 조합까지철학이 건축의 기준이었던 그 순간을 읽다
건축이 단순한 기술이나 양식의 집합이 아니라, 철학적 사유의 결정체다. 파르테논 신전부터 시애틀 도서관까지, 이 책이 따라가는 열 개의 건축물은 각각의 시대와 철학을 품고 있다. 단지 돌과 벽돌로 만들어진 공간이 아니라, 그 시대 사람들이 ‘세계를 어떻게 이해했는가’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인식의 구조물이다. 저자는 말한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라는 두 철학자가 건축의 시간 속에서 끊임없이 교차하며 등장한다고. 그에 따르면 2천5백 년 전의 사유가 여전히 현대 건축가들의 손끝에서 살아 움직인다. 결정론과 비결정론, 절대주의와 상대주의, 수학적 비례와 감각적 조합―이 모든 것들이 철학서가 아니라 건축 도면과 공간 안에서 실현되고 있다. 우리는 흔히 건축을 ‘양식’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이 책은 묻는다. 누구의 시선으로 그 양식을 보았는가? 현대인이 보는 파르테논과 고대 아테네인이 본 파르테논은 다르다.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은 경험과 철학, 그리고 시대의 문화에 깃들어 있다. 이 책은 건축을 시대의 색안경으로 읽어내는 시도를 한다. 그 시도는 어느새 우리의 감각에도 작용하기 시작한다. 책을 덮고 나면 일상에서 마주치는 건축이 더 이상 ‘배경’이 아니다. 그 안에 시대의 질문, 삶 속에서 빚어지는 갈등, 철학적인 다양한 선택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르네상스가 바로크로 넘어가는 순간, 플라톤에서 아리스토텔레스로 바뀌는 전환점?이 모든 것이 건축이라는 공간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건축으로 미학하기』는 건축을 공부한 이들이 아니더라도, 사유하는 미학, 형태 너머의 많은 생각들, 그 공간이 지닌 가치와 철학을 알고자 하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그것은 결국, 우리가 아름다움이라 부르는 것이 무엇에서 시작되었는지를 묻는 일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