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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판 작가의 말
프롤로그 1983년, 1학년 봄 1984년, 2학년 여름 1985년, 3학년 가을 1987년, 4학년 겨울 에필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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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영의 관심사는 오로지 연극과 영화였다. 조선대학교에 온 목적은 도쿄에서 4년간 마음껏 연극을 관람하고, 졸업 후에 들어갈 극단을 찾기 위해서였다. 고교 진로지도 때 자신을 괴롭혔던 선생들을 동경하는 마음은 손톱만큼도 없었다. 선생 같은 건 자기 가치관을 남에게 강요할 수 있는 오만한 종자들이나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 pp.25~26 “매일 하루 총화, 토요일 밤에 주 총화, 월말에 한 달 총화. 우리는 이미 참회 전문가야.” --- p.71 “그분은 본명을 말씀하실 수 없었던 거죠. 얼마나 힘든 삶이었을까 싶어서……. 오 사장님은 민족 학교에 다니면서 당연히 본명을 써온 저로서는 알 수 없는 고생을 하셨을 거예요. ‘본명 선언’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니까요. 자기소개를 하기 위해서 죽자 사자 고민한다고 들었어요. 일본 학교에 다니는 자이니치로서는 피할 수 없는 문제니까요.” --- p.96 자유로운 복장으로 캠퍼스를 거니는 미대생들을 바라보며 들릴 리 없는 대화에 귀를 기울여봤다. 담장 너머의 저들은 이쪽의 존재에 대해 생각은 할까? 아무도 상대해주지 않는 자문자답을 하자니 서러웠다. 입에서 새어 나온 시니컬한 한숨이 미대생들의 웃음소리에 지워졌다. --- p.118 “차별에 맞서다 폭행을 당한 사람이에요, 국적이 뭐가 중요합니까?” “당연히 중요합니다! 우리와 일본인은 사회적 입장도 가치관도 모두 다릅니다!” ‘우리’라는 말에 숨이 막혔다. 나는 너와 다르다고 외치고 싶었으나 참았다. --- p.133 올 것이 왔구나, 미영은 생각했다. 국적이나 가족에 대해 물어보면 솔직하게 이야기하려고 했지만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성질의 것들이 아니었다. 하나를 얼버무리면 나중에 거짓말이 늘어날 것 같아 무서웠다. --- pp.143~144 그 후에도 여러 역에 정차했지만, 미영이 창문을 여는 일은 없었다. 승강장에 있는 사람들은 멀리서 특별일등차량을 바라보았다. 일본에서 온 방문단을 보면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드는 평양 시민들과 달리, 작은 역에서 마주친 사람들은 험악한 표정을 드러냈다. 평양 시민의 미소보다 이 짧은 여행에서 마주친 험상궂은 표정이 더 진솔한 모습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 나라를 알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 p.184 “이제 무리해서 안 와도 돼. 돈이랑 시간이 있으면 다른 나라에 가. 어디서 살든 국적을 바꾸든, 자유롭게 살면 돼. 넓은 세상에서!” --- p.1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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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영이 자이니치든 조선인이든, 그런 건 신경 안 써”
무지와 무관심이 낳은 오만한 배려 미영은 입학 첫날부터 통금 시간을 어기고 연극에 탐닉하는 자유분방한 신입생으로, 규율이 엄격한 조선대학교에서는 돌연변이 같은 존재다.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이 체제에 순응하는 척해야 하는 ‘조대’의 일원이기도 하다. 『도쿄 조선대학교 이야기』는 그런 미영이 높은 담장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가려는 성장소설이면서 일본인 미대생 구로키 유와의 연애를 그린 청춘소설이다. ‘금녀의 구역’으로 여겨지던 학교 앞 라멘집에 당당히 홀로 들어간 미영은 구로키 유를 알게 된다. ‘자유’를 상징하는 그는 미영에게 동경의 대상인 동시에 미영의 처지를 일깨워주는 인물이다. 함께 영화를 관람하고 식사를 하면서 두 사람은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혐오 집단의 표적이 되어 곤경에 처한 사건 이후로도 미영과 구로키의 마음은 굳건하다. 오히려 둘의 사이가 멀어지게 된 계기는 외부적인 요인이 아니라 “나는 미영이 자이니치든 조선인이든, 그런 건 신경 안” 쓴다는 구로키의 말이었다. 배려의 말이 의도와 상관없이 배제의 언어가 되어 미영을 상처 입힌 것이다. 저자는 신경 써야 할 문제를 신경 쓰지 않음으로써 누군가의 존재를 지워버리는 무신경함이 때로는 적극적인 차별만큼 위험할 수 있음을 이처럼 절묘하게 드러내 보인다. “알아! 알지만, 신경 쓰이지 않을 리가 없잖아……. 나는 유가 일본인이라는 걸 신경 써. 의식하지 않을 수 없어. 그건 무리야. 그러면 실례인 것 같아. 만약 내가 ‘유가 일본인이라도 상관없어’라고 하면 기분이 어떨 것 같아?” _213쪽 ‘자유를 위한 고난이라면 도전해볼 가치가 있다’ 굴종을 거부하는 개인의 작은 투쟁 소설은 현재의 미영이 바에서 여대생들의 졸업 여행 이야기를 듣고 과거를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이 작품 안에서 북한으로의 졸업 여행은 비중 있게 다뤄진다. 미영은 음악가인 친언니 미희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 하나로 졸업 여행에 참가하지만, 평양에서 언니를 만나지 못한다. 언니와 함께 평양 악단 단원이었던 형부의 말실수로 인해 중국 접경 지역인 신의주로 추방당한 것이다. 낙담하던 미영은 친구의 조언에 따라 실상은 감시자인 최 지도원을 매수해 열차를 타고 신의주로 향한다. 미영은 정차 역에서 영양실조에 걸린 모자에게 먹을 것을 나눠 주고 짐짝처럼 다뤄지는 북한 주민들을 보며, 낙원이라던 ‘조국’의 참혹한 현실에 경악한다. 어렵게 만난 언니는 자기비판과 구타로 정신을 놓아버린 남편을 두고도 부모과 조국을 향한 원망보다 어떻게든 평양으로 돌아가겠다는 강인한 의지를 보여준다. 그러면서 미영에게 “행복해지는 게 네 의무”라며 더 이상 허울뿐인 조국에 연연하지 말고, 자신을 위해 살아가라고 당부한다. “공부도 연애도 마음껏 해! 미영이는 나처럼 되면 안 돼. 너 자신을 위해 살았으면 좋겠어. (…) 너는 내 분신이니까. 내 몫까지 행복해져야지! 조직이라는 둥 가족이라는 둥 바보 같은 말을 하면 용서 안 할 거야. 후회하지 않도록 살아. 알았지? 조선에서 살아가는 삶도 벅차지만, 이 나라를 짊어지고 일본에서 사는 것도 만만치 않을 거야.” _196쪽 학교로 돌아와 졸업을 앞둔 미영은 모교인 오사카조선고급학교의 국어 교원이 되라는 지시를 받는다. 모두가 “주어진 ‘혁명 초소’에서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해야 하는 현실에서 미영은 일생일대의 기로에 놓인다. 내 인생이니까, 그렇게 몇 번이고 자신을 설득할 때마다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박미영 동지! 당신을 오사카조선고급학교 국어 교원으로 배치합니다.” “…….” 침묵이 흘렀다. 미영은 바닥의 한 점을 응시했다. _232쪽 『도쿄 조선대학교 이야기』는 계속해서 과거와 마주하며 질문하기를 멈추지 않는 양영희가 영화 대신 선택한 또 하나의 투쟁 방식이다. 픽션과 논픽션을 넘나들며 조형해낸 이야기는 독자에게 끊임없이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자유를 제한하는 시스템에 저항하며 자기다운 삶을 사는 일, 나와 다른 존재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일의 긴요함은 지금 더욱 이야기되어야 할 것이다. 저자의 말 2018년 일본에서 출간한 첫 소설 『조선대학교 이야기』는 나의 실제 체험을 바탕으로 가상의 요소를 더해 썼다. 연극을 사랑하는 대학생 주인공 박미영은 1964년생인 나 자신을 모델로 삼았고, 그녀가 청춘을 보낸 1980년대 도쿄의 모습을 그리움을 담아 충실히 재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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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조선대학교 이야기』는 재일조선인의 역사와 현실을 꾸준히 필름에 담아온 양영희 감독의 첫 소설이다. 일본에서는 차별받았고 한국에서는 정치적 탄압의 표적이 되곤 했으며 북한에서는 선전의 도구가 되어야 했던 재일조선인의 이야기를 오해와 망각의 영역에서 가까스로 끌어올려 눈부신 영화로 입체화했던 양영희의 카메라가 이번에는 소설로 향한 것이다. 1980년대 일본의 조선대학교에 입학했지만 민족이나 이념보다는 자신의 꿈과 사랑을 찾아가고 싶었던 양영희의 페르소나, 박미영의 서사를 환영한다. 『도쿄 조선대학교 이야기』를 읽은 뒤 나는, 책장 너머에서 눈물을 삼키면서도 씩씩하게 웃어 보이고 있을 박미영을 안아주며 오해되고 잊혀가는 재일조선인의 과거와 현재를 이토록 인간답게 기억하게 해주어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 조해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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