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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왜 비판적 계몽인가
1부 루쉰 읽기의 맥락과 해석 루쉰 소설과 5·4운동 루쉰, 혹은 전략과 진실 사이 루쉰의 리얼리즘 이론 소설가로서의 루쉰과 그의 소설세계 루쉰과 근대적 체험으로서의 고향 상실 한설야 소설 속의 루쉰 1990년대 한국의 「광인일기」에 관하여 2부 루쉰 읽기의 쟁점과 토론 동아시아적 시각으로 본 세 편의 「고향」: 치리코프·루쉰·현진건 문자문화와 시각문화: 문화연구의 루쉰관에 대한 검토 왕멍과 김지하를 통한 「광인일기」 다시읽기 루쉰 소설의 페미니즘적 해석에 대한 재검토 각성과 무화의 반복이 뜻하는 것: 「아Q정전」 다시읽기 중국에서의 프레드릭 제임슨의 루쉰 읽기 수용 루쉰의 산문과 산문시에 대한 재검토 후기: 나사의 전진과 후퇴, 그리고 추락 부록: 루쉰 약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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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가가 나서서 큰소리로 한 번 외치면 듣는 사람이 떨치고 일어난다라고 일본 유학 시절의 루쉰이 산문 「악마파 시의 힘」에서 묘사했고, 그로부터 15년 뒤 첫 소설집의 서문에서 “나는 팔을 높이 들고 한 번 외치면 그 외침에 응하는 자가 구름처럼 몰려드는 그런 영웅이 결코 아니었다”고 썼던 그 영웅형상의 계몽은 현실에 부딪혀 실패했다. 그 실패한 계몽이 몇 년의 시간이 지난 뒤에 「광인일기」에서 광인의 모습으로 그려진 것이다. 광인의 모습이 된 것은 그 계몽이 파산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광인일기」를 쓰면서 그 계몽의 파산을 그리는 작가 루쉰은 이미 그 계몽을 벗어난 것이다. 하지만 벗어나서 그가 도달한 곳은 여전히 계몽의 세계다. 이 여전한 계몽의 세계에서 루쉰은 전과는 다른 방식의 추구를 시도한다. 「광인일기」의 광인 묘사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이미 각성한 계몽가가 아니라 아직 각성이 충분하지 못한, 그래서 스스로 계몽해야 하는 미성숙한 주체다. 작가는 이 미성숙한 주체에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고 동화시킨다. 작가가 자신도 아직 계몽 주체를 완성하지 못했고 미성숙 상태에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에 이 동일시와 동화가 가능하다. 그리고 이 미성숙 상태에 대한 자각을 바탕으로 자신이 속한 역사적 시기에 대해 비판하는 것이 광기 이후 루쉰의 실천 내용이다.
--- p.8 루쉰의 문학과 사상은 혁명으로부터 흘러나와 끝내 혁명으로 흘러들어 간다. 혁명은 루쉰에게 근본적 동기가 되었고, 1906년 문화운동에 투신하면서부터 1936년에 죽기까지 한결같았다. 처음부터 루쉰이 문제 삼았던 것은 진정한 혁명이었고, 유명한 환등사건에서 잘 나타나는 것처럼 진정한 혁명에 있어 문제는 ‘병든 국민성’이었다. 단편소설 「약」이나 산문 「태평가결」 같은 데서 잘 나타나듯, 그 병든 국민성이라는 것은 봉건적 현실에 압박받으면서도 스스로 그 봉건적 현실을 유지시키는 데 기여하는 마비된 민중을 일컫는 것이다. 혁명가가 민중을 위해 피를 흘릴 때 민중은 그에 대해 결코 감사하지 않으며, 다만 어떤 개별적 사실과 관련한 자신의 이해에만 관심이 있을 따름이다. --- p.90 1990년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루쉰을 폄하하는 발언들이 점점 더 많아졌다. 현재적 의의에 대한 회의, 포스트식민주의적 비판, 포스트 모더니즘적 비판, 페미니즘적 비판 등 폄하의 이유도 다양해졌다. 그러나 이 모든 폄하들은, 그것들이 활발한 그만큼, 역설적으로 루쉰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다. 1990년대 이래의 도덕이상주의 논쟁, 자유주의 논쟁, 혁명 이상주의 논쟁 등 여러 사상 논쟁들이 끊임없이 루쉰을 주요 사례로 삼은 것도 마찬가지로 이해될 수 있다. 물론 폄하만 늘어난 것은 아니고 루쉰의 긍정적 의의를 새롭게 검토하는 다시읽기도 다양해졌다. 필자가 중시하는 것은 이 다시읽기다. --- p.267 루쉰은 부엉이를 좋아하여 자신의 책 표지 디자인에 스스로 그린 부엉이 도안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 루쉰의 부엉이는 황혼이 진 뒤에 날개를 펴기는 하지만, 이미 이루어진 일을 뒤늦게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둠 속에서 불길한 울음소리를 내어 그를 흉조고 악조라고 여기는 사람들을 두려워하게 만들기 위해서 날아오릅니다. 루쉰은 그 울음소리를 자신이 추구하는 이른바 ‘진정한 악성(惡聲)’, 즉 이 어두운, 부정적인 세계에 저항하는 비판적이고 전투적인 위악적 언술과 동일시했습니다. 루쉰의 글과 부엉이의 불길한 말이 닮았을 뿐만 아니라 루쉰과 부엉이가 닮기도 했습니다. --- p.34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