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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와이
계수나무 2022.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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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저자 소개2

魯迅,본명 : 저우수런(周樹人), 자 : 위차이(豫才)

중국의 문학가, 사상가, 혁명가이자 교육가. 본명은 저우수런이고 자는 위차이이다. 중국 현대 문학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루쉰은 당대의 중국 예술과 화에서 다른 어떤 작가와도 비견될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한다. 중국 공산당이 국민적 영웅으로 찬양한 루쉰은 중국혁명의 지적 원천으로서 추앙받아 왔으며, 마오쩌둥을 위해 사상적 기반을 마련한 인물이기도 하다. 저장성 사오싱(紹興)의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조부의 하옥, 아버지의 병사 등으로 어려서부터 고생스럽게 살았다. 청년시대에 진화론과 니체의 초인철학, 톨스토이의 박애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1898년 난징의 강남수사학당에 입학,
중국의 문학가, 사상가, 혁명가이자 교육가. 본명은 저우수런이고 자는 위차이이다. 중국 현대 문학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루쉰은 당대의 중국 예술과 화에서 다른 어떤 작가와도 비견될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한다. 중국 공산당이 국민적 영웅으로 찬양한 루쉰은 중국혁명의 지적 원천으로서 추앙받아 왔으며, 마오쩌둥을 위해 사상적 기반을 마련한 인물이기도 하다.

저장성 사오싱(紹興)의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조부의 하옥, 아버지의 병사 등으로 어려서부터 고생스럽게 살았다. 청년시대에 진화론과 니체의 초인철학, 톨스토이의 박애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1898년 난징의 강남수사학당에 입학, 당시의 계몽적 신학문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1902년 졸업 후 일본에 유학, 고분학원을 거쳐 1904년 센다이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였으나, 문학의 중요성을 통감하고 의학을 단념, 국민정신의 개조를 위하여 문예 활동에 힘썼다.

1905~1907년 혁명당원의 활동에 참가하고, ‘마라시력설’, ‘문화편지론’ 등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 무렵 유럽의 피압박민족 및 슬라브계 작품에 공감하여 1909년 동생 저우쭤런(周作人)과 ‘역외소설집’을 공역하는 한편, 망명중인 장빙린(章炳麟)에게 사사하였다. 1909년 귀국하여 고향에서 교편을 잡다가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자, 남경임시정부와 북경정부의 교육부원이 되어 일하면서 틈틈이 금석 탁본의 수집, 고서 연구 등에 심취하였다. 1918년 문학혁명을 계기로, 처음으로 ‘루쉰(魯迅)’이라는 필명을 사용, 중국현대문학사상 첫번째의 백화소설인 ‘광인일기’를 발표하여 신문학운동의 기초를 다졌다.

5·4운동 전후 ‘신청년’ 잡지의 일에 참가하여 ‘5·4’ 신문화운동의 선봉이 되었다. 1918년에서 1926년에 이르는 동안 창작을 계속하여 소설집 ‘눌함’, ‘방황’, 논문집 ‘분(墳)’, 산문시집 ‘야초’, 산문집 ‘조화석습’, 잡문집 ‘열풍’, ‘화개집(華蓋集)’, ‘화개집 속편’ 등을 출판하였다. 이 중에 ‘공을기(孔乙己)’, ‘고향’, ‘축복’ 등을 발표하여 중국 근대문학을 확립하였는데, 1921년 12월에 발표된 중편소설 ‘아Q정전(阿Q正傳)’은 중국현대문학사상 불후의 대표작으로 세계적 수준의 작품이다. 많은 외국 작가의 작품을 번역하였고, 1920년 이후에는 베이징대학, 베이징여자사범대학 등에서 교편을 잡았다.

1924년 저우쭤런과 어사사를 조직하고, 1925년 청년문학사와 미명사(未名社)를 조직하였으나, 1926년 8월 베이양 군벌의 문화 탄압과 격돌한 베이징 학생애국운동 지지로 말미암아 베이징을 탈출, 아모이대학 중문과 주임으로 부임하고, 1927년 1월 당시의 혁명 중심 광저우(廣州)에 이르러 중산대학의 교무주임이 되었다. 1927년 가을 상하이의 조계에 숨어 쉬광핑(許廣平)과 동거하며 문필생활에 몰두하는 한편, 창조사, 태양사 등 혁명문학을 주창하는 급진적 그룹 및 신월사(新月社) 등 우익적 그룹에 대한 논전을 통하여 매우 전투적인 사회 단평(短評)의 문체를 확립하였다.

한편 소비에트 러시아 문학작품을 번역하여 소개하기도 하였다. 1930년 전후하여 중국자유운동대동맹, 중국좌익작가연맹과 중국민권보장동맹에 참가하여 국민당 정부의 독재 통치와 정치 박해에 항거하였다. 1931년 만주사변 뒤에 대두된 민족주의 문학, 예술지상주의 및 소품문파(小品文派)에 대하여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였다. 1927년부터 1936년까지 역사소설집 ‘고사신편’을 출판하였고, 대부분의 작품과 잡문은 ‘이이집’, ‘삼한집’, ‘이심집’, ‘남강북조집’, ‘위자유서’, ‘준풍월담’, ‘화변문학’, ‘차개정잡문’, ‘차개정잡문 이편’, ‘차개정잡문 말편’, ‘집외집’과 ‘집외집습유’ 등에 수록되었다.

또 1931년부터 판화 운동도 지도하여 중국 신판화의 기틀을 다졌다. 루쉰의 일생은 중국 문화사업에 지대한 공헌을 이룩하였다. ‘미명사(未名社)’, ‘조화사(朝花社)’ 등 문학 단체를 영도하고 지지하였으며, ‘국민신보부간’, ‘망원(莽原)’, ‘어사(語絲)’, ‘분류(奔流)’, ‘맹아(萌芽)’, ‘역문(譯文)’ 등 문예잡지를 주편하였고, 청년 작가를 열성적으로 적극 배양하였다. 외국의 진보된 문학 작품을 번역하는 데 힘쓰고, 국내외의 저명한 회화, 목각을 소개하였으며, 대량의 고전문학을 수집, 연구, 정리하고, ‘중국소설사략’, ‘한문학사강요’를 저술하였으며, ‘혜강집’을 정리하고 ‘회계군고서잡록’, ‘고소설구침(古小說鉤沈)’, ‘당송전기록’, ‘소설구문초’ 등등을 집록하였다. 죽기 직전에는 항일투쟁 전선을 둘러싸고 저우양(周揚) 등과 논쟁을 벌이기도 하였으나, 그가 죽은 뒤에는 대체로 그의 주장에 따른 형태로 문학계의 통일전선이 형성되었다.

그의 문학과 사상에는 모든 허위를 거부하는 정신과 언어의 공전이 없는, 어디까지나 현실에 뿌리박은 강인한 사고가 뚜렷이 부각되어 있다. 1936년 10월 19일 폐결핵으로 말미암아 상하이에서 세상을 떠나고 민중 만여 명이 자발적으로 공제(公祭)를 거행하여 훙자오만국공묘에 묻혔다. 1956년 루쉰의 유해는 훙커우공원에 이장되었다. 1938년 ‘루쉰전집’ 20권이 출판되었다. 그를 혁명의 모범이자 사상의 근원으로 여긴 마오쩌둥에 의해 20세기 내내 중국을 지배한 개혁과 혁명적 변화의 선동가로서 거의 신적인 존재로까지 추앙받았다.

인민정부 성립 후, 루쉰의 저서는 분야별로 나뉘어 ‘루쉰전집’ 10권, ‘루쉰역문집’ 10권, ‘루쉰일기’ 2권, ‘루쉰서신집’이 간행되었고, 루쉰이 편교(編校)한 고적(古籍) 여러 종류도 다시 간행되었다. 1981에는 ‘루쉰전집’ 16권이 출판되었다. 베이징, 상하이, 사오싱, 아모이 등지에는 전후하여 루쉰 박물관, 기념관 등이 건립되었다.

루쉰의 다른 상품

만주에서 태어났으며, 홍익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였다. “우리 독도에서 온 편지”, “목장”, “할아버지 방패”, “풀꽃”, “나는 지금 네가 보고 싶어”, “무던이”, “압록강은 흐른다”, “어머니”, “이미륵의 이야기”, “외쏙독이”, “떠돌이 개 깽깽이” 등의 작품을 쓰고 그렸다. 오랫동안 방송 광고 필름(CF) 감독으로도 활동하고, 직접 쓴 시나리오로 영화도 연출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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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7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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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용량
PDF(DRM) | 139.87MB ?
글자 수/ 페이지 수
약 177쪽 ?
ISBN13
9791192056616

출판사 리뷰

오늘을 사는 ‘나’와 ‘우리’의 모습

아큐는 청나라 말기 농촌에 사는 날품팔이 일꾼이라는 특정인으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아큐는 그 당시의 중국의 민중을 상징하기도 하고 시대를 초월한 불특정 다수를 의미하기도 한다. 자신을 둘러싼 사회의 변화에는 무지한 채 눈앞의 이익만을 좇으며, 강자에게는 끝없이 굽히고 약자 앞에서는 으스대는 비열한 아큐의 모습을 오늘을 사는 내 안에서 발견하지 않을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아큐정전”은 중국 민중의 모습을 잔인할 정도로 숨김없이 드러냈지만,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민중을 자극하고 나라를 바로 세우려면 정신이 바로 서야 한다는 강렬한 메시지를 주고 있다.

정신적 승리법 - 근거 없는 합리화

아큐는 자신의 참모습을 볼 줄 모른다. 정확하게 현실을 인식하고 해결방안을 찾기보다는 문제의 본질은 파악하지 못한 채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무조건 자신이 승리했다고 생각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 아큐의 승리법은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 합리화하여 항상 이겼다고 생각하는 ‘정신적 승리법’이다. 맹목적인 망상이나 턱없는 자기 비하, 치욕과 실패에 대한 필요 이상의 건망증과 자기합리화, 욕을 먹거나 낭패당한 후 자기보다 약한 자에게 행하는 분풀이, 그리고 그 모든 상황을 몇 잔의 술로 모두 잊어버리는 단순함 등이 어리석은 아큐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아큐는 마지막 장면의 총살당하는 극한 상황에서조차 놀랄 만큼 무감각한 태도를 보여 준다. 그래서 그의 ‘정신적 승리법’이 효력을 발휘하면 할수록 주위 사람들의 조롱은 도를 더해 간다. 이 책은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는 약했던 청나라 말기의 민중들을 다루었다고 하나 그것이 어디 백여 년 전의 중국인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일까? 어리석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한 아큐의 모습은 부정적 자기만족에 익숙한 현대인들의 또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조롱과 냉소 그리고 무관심

어리석은 아큐는 마을 사람들로부터 늘 하찮은 취급을 받는다. 그러나 자신의 이름조차 모르고 서른이 되도록 살아올 수밖에 없었던 한 인간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아큐를 볼 때의 답답함보다 오히려 더 섬뜩하다. 아큐의 신체적 약점인 머리의 흉터를 놀리고, 성안에 들어갔다 돌아온 아큐가 좋은 물건을 싼값에 팔자 그의 행적을 의심하면서도 그 물건에는 탐을 내던 주민들은 결국 혁명 무리가 저지른 마을의 도난 사건을 그에게 뒤집어씌워 아큐를 죽음으로 내몬다. 그러나 한 인간을 대하는 비인간적 태도의 절정은 소설의 맨 마지막 아큐의 처형을 그리는 장면에 있다. 그가 살던 ‘웨이좡 사람들은 모두 아큐가 나쁜 놈이라고 욕했다. 그가 총살당한 것이 나쁜 놈이라는 증거라고 했다. …… 성안의 분위기는 더욱 나빴다. 총살은 목을 자르는 것만큼 볼 만하지 않았다는 게 그 이유였다.’ 죽음의 순간에도 남들의 구경거리에 지나지 않았던 아큐의 모습은 집단 내에서의 따돌림과 차별의 문제가 심각한 오늘날의 모습과 겹쳐지며 우리 모두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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