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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Ⅰ. ‘낙오’라는 이름의 저항 스키로 도 닦기 어떤 마음은 보인다 짓는(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동경 2달간의 강제 디톡스 대형마트를 가지 않는다 ‘업데이트하시겠습니까?’ ‘대충 잘 살자’는 말에 대하여 카톡 안 하는 고집 카톡도 안 하는 나는 문자메시지 ‘중독’이다 ‘낙오’라는 이름의 저항 코로나19 시대의 ‘자발적 자가격리 Ⅱ. 천개의샘 이름, 뒤집지 말자 내 이름을 사랑한다는 것 이름의 역사를 아시나요? ‘자영이’를 아시나요? 모자 쓸 용기 천개의샘 〈싱어게인 무명가수전〉: 이름이란 마감형인간 무엇이 사람을 바꿀까? 다시 공부하는 사람들 “괜찮을까요?” “안 괜찮습니다만…” 미래를 보다 Ⅲ. ‘온전한 개인’으로 사는 일의 어려움에 대하여 ‘아무개 교수입니다’와 ‘교수 아무개입니다’의 차이 ‘개별자’ 되기의 어려움: 어디 사람인데? ‘온전한 개인’으로 사는 일의 어려움에 대하여: 어떤 정체성은 ‘약점’이다. 자넨 고향이 어딘가? “경상도 사람들은 교육을 어떻게 시키길래…” “며느리는 며느리지, 뭐!”_ ‘건강한 거리’를 위하여 서로를 가능한 한 끝까지 ‘개별자’로 인식하는 일, 지금 시작합시다 Ⅳ. 돛단배가 언제 가장 빨리 갈 수 있는지 아시나요? 돛단배가 언제 가장 빨리 갈 수 있는지 아시나요? 너는 알아서 잘하잖아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나도 아프다 해도 되지 않을까 상처를 직면하는 글쓰기 당신에게 가장 아픈 상처를 준 사람은 누구? Ⅴ. ‘어쩌다 선생’의 자기고백 ‘어쩌다 선생’의 자기고백 “꿈 = 직업 정하기?” 질문이 잘못되었다! 잘못된 질문의 부작용: 꿈이 사라졌다? 진로 문제는 젊은이들만의 문제? ‘원형질’이라는 것 원형질대로 사는 것이 더 좋은 것일까? 나의 원형질: “9시에 출근하는 직장에는 안 다닐래요” 원형질은 변하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원형질에 딱 맞는 단 하나의 일? Ⅵ.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시달릴 젊은 그대들에게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시달릴 젊은 그대들에게 이래도 불안, 저래도 불안, 그래도 공무원? 그런데… 개인의 안녕이 가장 중요한 공무원? 어쩌다 직업?! 아니라 생각되는 길을 가는 학생을 더는 말리지 않는다 ‘용감한’ 선택 늘 “아직 잘 모르겠어요”라는 멋진(!) 친구들 ‘나쁜 속담’: 가다가 중지하면 아니 간만 못하다 학생들의 ‘잃어버린 청춘’을 함께 슬퍼함 네모가 세모에게 닫는 글 감사의 글 부록 | 학생들과의 기억 기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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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일을 삶에서 소외시키지 않는 방식을 직접 선택하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지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참 ‘다행이다’ 싶습니다. 그분들이 나를 직접 먹여 살리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왠지 그분들을 보며 내 삶이 아직은 ‘안전’할 수 있겠구나, 이 나라의 내일이 있겠구나, 안도합니다. 적어도 이 경우에 인생은 복리의 법칙에 따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삶의 재미와 의미를 찾고 발견하고 누리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사회가 ‘행복한 사회’라고 말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지 않을까요? 그런 사회 안에 사는 내 행복지수도 자연스레 높아지겠지요? 그래서 내 주변에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만들어가는 행복한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더 자주 많이 만나고 싶습니다. 그들이 나눠주는 건강한 기운으로 나도 조금은 더 행복해질 수 있을 테니까요.
--- p.24 워낙 궁금한 것이 많은 인간이기도 하지만, 어떤 공간을 방문할 때 꼭 하는 일 중 하나가 공간 명의 ‘역사’를 확인하는 겁니다. 어떤 공간을 공들여 만들면서 이름을 ‘함부로’ 짓는 사람은 많지 않을 테니까요. 공간 명의 뜻과 이유를 알게 되면 그 공간에 대한 이해가 한층 높아지지요. 근무하는 학교 근처 카페 중에 ‘주비’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곳이 있습니다. ‘두루 향기롭다’라고 이름의 뜻도 같이 적혀 있지요. 딸의 이름이라 들었습니다. 이런 이름을 지어주는 부모가 있는 이 따님. 몸 맘 건강하게 아주 잘 클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카페 주인장과 잠시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본인의 카페 또한 ‘두루 향기롭기를’ 바라는 마음이 읽혀서 좋았습니다. --- p.67 당시 가끔 교수님들이 물으셨습니다: “자넨 고향이 어딘가?” 살짝 고민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뭐라고 답을 해야 하나…. 사실 고민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서울입니다” 하면 될 일이었죠. 그러나 당시 내가 선택했던 대답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부모님 고향은 해남이시고, 저는 서울에서 나서 자랐습니다.” 나는 당연히(!) 서울 말씨를 쓰고 있었고, 부모님 고향을 물은 것도 아니었으니, 저리 대답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리 대답했어야만 했습니다! 대체 왜 나는 그런 대답을 했으며, 또는 해야만 했으며 심지어 앵무새처럼 계속해서 그 답을 반복 재생산했던 것일까요? (고향이 어디냐는 질문에 나는 지금도 똑같이 답을 합니다.) --- p.117 이 글을 쓰는 소극적 이유는 상담 오는 학생들에게 읽고 오라 하려고 입니다. 매번 비슷한 말을 반복해야 하는 상황이 싫어서, 이 글을 읽고 오면 그다음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습니다. 보다 적극적인 이유는 우리나라 초중고 교육에서 진짜 이것만은 당장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진로 교육입니다. 초중고 진로 교육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은 물론 아니라서 조심스러운 측면이 있지만, 중등교육을 거쳐 대학을 온 학생들을 통해 알고 있는 정보만으로도 이 정도 이야기를 할 ‘자격’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 p.162 여행도 그러할진대, 우리 삶은 더 말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큰 그림 없이 길을 가는 것 같아 보이는 젊은 친구들, 너무 걱정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늘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며, 오늘을 행복하게 지내고 있으면, 그렇게 이미 내일을 만들어가는 중이니 말입니다. 그리고 그 내일의 모습이 하나의 직선이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으니 말입니다. 어차피 우리 모두에게 미래는 의문문이며, 우리는 오늘을 살 수 있을 뿐입니다. “아직 잘…”을 외치면서도 꼬물꼬물 뭔가를 계속하는 F는 내일의 불확실성을 오늘 건강하게 잘 살아내면서 미래를 미리 보여주기 하는 것 아닐까요?(그는 지금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5년 뒤, 10년 뒤는 그도 나도 모르지요. 다만 그 친구가 현재 본인의 삶을 ‘완벽하진 않아도 충분하다’고 느낀다는 건 그의 글(〈벗자편지〉 중)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 p.2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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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나를 선생이라 불러준, 선생으로 살게 해준
그들의 오늘이 너무 외롭지 않기를, 너무 힘들지 않기를…’ 우리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면서도 때로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한창 뜨개질에 빠져 있을 때 옷 한 판을 다 뜰 때까지 밥도 먹지 않고 잠도 자지 않았던 저자. 바로 그러한 성품을 갖고 사는 저자는 여전히 투덜투덜 자신과 싸우며 자신과 화해하며 자신을 다독이며 겨우 살아가고 있다. 그러는 와중에 매일 자신과 같은 길을 걸어가는 ‘학생’이라는 이름의 ‘거울’을 바라본다. 그들이 그저 덜 아팠으면, 덜 헤맸으면 하는 마음에 잡아끌기도 하고 다그치기도 했다고 말한다. 그러다 보니 무엇이 되어서가 아니라 무엇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가끔은 얼굴 떠올리게 되는 선생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저자. 이 책은 ‘어쩌다 선생’으로 살아온 세월이 무엇을 보든 무엇을 듣든 생각나는 학생이 있고,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떠올리는 ‘천상 선생’이 건네는 소박한 메시지이다. 한 페이지씩 넘길 때마다 자신의 삶에서 건져올린 풋풋하면서도 공감이 가는 스토리가 가득하여 읽는 재미를 더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