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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然史혁명의 선구자들
이종찬
한울아카데미 2022.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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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장 · 왜 자연사인가

1절 어떻게 이 책을 쓰게 되었는가
2절 왜 자연사에 관심이 없을까
3절 자연사혁명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4절 열대 자연의 이해

2장 · 서양 자연사학의 역사적 계보

1절 기축 시대의 자연사
2절 희랍의 자연사
3절 헬레니즘과 이슬람의 문명융합
4절 헤르메스 자연사, 자연신학, 자연철학의 관계
5절 ‘신세계 발견’ 시대의 자연사

3장 · 카를 린네, 자연과 인간을 분류하다

1절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열대 탐험
2절 왜 ‘린네 자연사혁명’인가
3절 린네 ‘사도’의 전 지구적 열대 탐험
4절 자연사의 시각적 공간화

4장 · 르클레르 드 뷔퐁, 자연사를 체계화하다

1절 왕립과학아카데미의 아메리카 탐험
2절 프랑스 자연사에서 풍토 이론의 위상
3절 ‘뷔퐁 자연사혁명’과 라마르크의 진화론
4절 계몽주의 자연사: 루소, 볼테르, 디드로

5장 · 조셉 뱅크스, 전 지구적 식물원 네트워크를 만들다

1절 10대의 거대 지주, 30대의 왕립학회장
2절 쿡, 뱅크스, 포르스터의 남태평양 탐험
3절 ‘뱅크스 자연사혁명’: 영국, 제국의 날개를 달다
4절 열대 자연사와 서구 예술의 관계

6장 · 알렉산더 훔볼트, 식물지리학을 정립하다

1절 미래세대를 위한 융합적 탐구
2절 계몽주의에서 낭만주의로: 칸트, 헤르더, 괴테
3절 유럽과 아메리카의 ‘식민적 문화융합’
4절 ‘훔볼트 자연사혁명’: 열대 공간의 발명

7장 · 알프레드 월리스, 종의 생물지리학을 성취하다

1절 다윈에 가려진 자연사학자
2절 자연사, 자연신학, 정치경제학의 접속 공간
3절 말레이제도 탐험: 무엇이 진화를 추동시키는가
4절 ‘월리스 자연사혁명’: 생물지리학, 진화론, 제국주의

8장 · 찰스 다윈, 융합적 자연사를 완성하다

1절 ‘주노미아’에서 ‘자메이카위원회’까지
2절 제국의 항해, 다윈의 열대 탐험
3절 ‘다윈 자연사혁명’: 자연선택, 귀납과 연역의 종합
4절 ‘다윈주의’의 신화와 진실

9장 · 자연사에서 자연학으로

1절 라마르크의 부활: 후성유전학
2절 지구의 자연학: 엔트로피, 생물권, 공생진화
3절 인류세와 기후위기
4절 지구 대멸종: 자연학의 정립이 절박하다

저자 소개 1

LEE JONG CHAN,李宗燦,이별빛달빛

인간은 우주적 존재이다. 그래서 동아시아 한자문명권의 깊은 역사가 만들어낸 남성적 이름을 기억의 저편으로 보내면서, 코스모스(Kosmos) 젠더를 선언한다. 自然史혁명의 선구자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이런 깨달음을 하게 되었다. 21세기부터 열대학(tropical studies)을 정립하면서, 《난학의 세계사》, 《파리식물원에서 데지마박물관까지》, 《열대의 서구, 朝鮮의 열대》, 《훔볼트 세계사》를 세상에 내보였다. 이를 위해 콩고와 아마존 열대우림, 칼리만탄, 우간다, 쿠바, 멕시코, 에콰도르, 브라질,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인도, 베트남 등에서 탐사 활동을 했다. 또
인간은 우주적 존재이다. 그래서 동아시아 한자문명권의 깊은 역사가 만들어낸 남성적 이름을 기억의 저편으로 보내면서, 코스모스(Kosmos) 젠더를 선언한다. 自然史혁명의 선구자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이런 깨달음을 하게 되었다.

21세기부터 열대학(tropical studies)을 정립하면서, 《난학의 세계사》, 《파리식물원에서 데지마박물관까지》, 《열대의 서구, 朝鮮의 열대》, 《훔볼트 세계사》를 세상에 내보였다. 이를 위해 콩고와 아마존 열대우림, 칼리만탄, 우간다, 쿠바, 멕시코, 에콰도르, 브라질,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인도, 베트남 등에서 탐사 활동을 했다. 또한 유럽,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호주 등의 주요 도시에 있는 식물원과 자연사박물관을 탐방, 조사했다.

서울대, 존스홉킨스대, 하버드대, 하버드-옌칭연구소, 니담-케임브리지연구소, 웰컴연구소 등에서 공부와 연구를 했다. 현재 아주대학교 열대학연구소와 의과대학 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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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2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712쪽 | 1258g | 153*224*28mm
ISBN13
9788946081277

책 속으로

대서양의 카나리아제도는 대서양과 남태평양으로의 항해에서, 모리셔스섬은 인도양 항해에서, 자바·반다·술라웨시 지역의 많고 많은 섬은 동남아시아 항해에서, 타히티를 비롯한 폴리네시아·멜라네시아·미크로네시아의 수많은 섬은 남태평양 항해에서, 바하마제도를 비롯한 카리브해의 수많은 섬은 유럽의 아메리카 항해에서 중요한 생물지리적 공간으로 각각 작용했다. 유럽인들은 이러한 열대의 섬을 발견·탐험하고 식민화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문학적·예술적 상상력을 펼쳐나갔고, 열대 자연에 대한 제국의 욕망을 전 지구적으로 실현해 나갔다.
--- p.64 「1장·왜 자연사인가」중에서

플리니우스도 다양한 형태로 거래되는 수많은 물품에 항상 호기심을 가졌다. 자신이 다녔던 지역의 수많은 식물, 동물, 광물들에 대한 수많은 자료들을 수집했다. 그가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잠들 때까지 이 엄청난 문헌들을 옆에서 낭독했던 노예의 목은 항상 잠겨 있었고 필경사도 원래 문헌을 베껴 쓰느라고 손이 쉴 날이 없었다. 플리니우스의 『자연사』는 이런 고된 과정을 거쳐서 태어났다.
--- p.111 「2장·서양 자연사학의 역사적 계보」중에서

데카르트는 암스테르담이 17세기 유럽에서 “사람들이 바라는 신기한 상품들을 모두 갖춘” 도시가 되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암스테르담 시장에 나와 있는 거의 모든 상품은 르네상스 유럽의 자생적인 발명품이 아니었다. 그것은 유럽의 열대 탐험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유럽 사회가 열대의 자연 산물을 유럽 사회로 전유하려는 욕망을 실현하려는 과정에서 상품이 생겨난 것이다. 암스테르담 시장에서 매일 새로운 상품들을 접하면서, 데카르트는 (…) 시장에서 눈으로 본 상품과 진리라고 들었던 지식 사이의 괴리를 직면했다. 사물의 객관성 또는 지식의 확실성이 심각한 도전을 받게 된 것이다.
--- p.141 「2장·서양 자연사학의 역사적 계보」중에서

린네의 분류 방법이 현재까지도 널리 사용되는 중요한 이유는, 그의 이명법이 단순할 뿐만 아니라 실용적이기 때문이다. (…) 라틴어로 된 린네의 이명법은 이런 혼란을 없앨 수 있었다. 유럽 각 나라의 언어가 달라 초래될 수 있는 불편함도 해소될 수 있었다. 게다가 무역 시장에서 약용식물들을 거래할 경우에도 이명법은 토착 언어에 따른 식물명보다 유럽의 무역 상인들에게 편하게 다가왔다.
그런데 이명법이 열대 현지에서도 점점 사용되면서, 매우 중요한 문제가 발생해 왔다. 지금도 그렇다. 열대 원산지의 토착 이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식물의 감성적인 특징이 이명법을 사용할 경우에 은폐되기 마련이다.
--- p.184 「3장·카를 린네, 자연과 인간을 분류하다」중에서

뷔퐁은 자연사를 지구의 역사로 확대했다. 그것은 ①지구와 행성의 형성, ②지구 내부에 있는 용암의 분출로 인한 산맥의 형성, ③바닷물에 의한 육지의 지속적인 침수, ④바닷물이 빠져 나가고 난 후에 전개된 화산 활동, ⑤코끼리와 지구 남쪽의 동물들이 북쪽으로 이동한 과정, ⑥대륙 사이의 분리, ⑦자연에 작용하는 인간의 힘이 각각 그것이다. (…) 아프리카와 아메리카대륙이 분리되기 이전에는 코끼리와 여타 열대 동물의 서식지가 서로 달랐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두 대륙이 나누어진 후에, 코끼리가 다른 열대 동물들과 서식지를 공유했다. 뷔퐁은, 독일의 기상학자이며 지구물리학자인 알프레트 베게너가 『대륙과 해양의 기원』(1912)에서 ‘대륙이동설’을 논의하기 이전에 이런 설명을 했다는 점에서, 지구의 역사에 대한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주었다.
--- p.259 「4장·르클레르 드 뷔퐁, 자연사를 체계화하다」중에서

뱅크스가 탐험을 마치고 런던에 돌아왔을 때, 파킨슨을 비롯해 여러 화가들이 그린 작품이 무려 1천 점이 넘었다. 이 작품들은 『뱅크스의 식물 화첩』이라는 이름으로 1905년에야 처음 흑백으로 인쇄되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고도 75년이 지난 1980년에야 한정판 컬러로 출간되었다. 그사이에 뱅크스가 수집했던 원본 그림들은 런던자연사박물관에 소장되었다. 왜 그는 생전에 이런 화첩을 발간하지 않았을까? (…) 두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다.
--- p.315 「5장·조셉 뱅크스, 전 지구적 식물원 네트워크를 만들다」중에서

이렇게 볼 때, 훔볼트의 『식물지리학: 열대 자연도』는 현대 과학에서 의미하는 ‘식물지리학’과는 전혀 다른 내용을 담고 있다. 다시 강조하지만, 훔볼트가 의미하는 식물지리학은 지오-인문학, 식물학, 지리학, 기후학, 정치경제학을 자연사의 융합적 지평에서 탐구했던, 종합적인 학문으로서의 자연사학인 것이다.
--- p.413 「6장·알렉산더 훔볼트, 식물지리학을 정립하다」중에서

월리스는 다윈보다도 먼저 종의 진화에 관한 논문을 썼다. 그 제목은 「변종이 원형에서 무한정으로 멀어지는 경향에 대해」(「트르나테 논문」으로 약칭)이다. 다윈이 비글호 항해를 시작한 이후로 약 20여 년간 고심했던 진화 이론을 월리스가 논문으로 만든 것이다. 월리스는 1858년에 이 논문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의 우체국을 통해 다윈에게 발송했다. 다윈은 같은 해 6월 18일에 월리스의 우편물을 받았다고 말했다. 「트르나테 논문」을 읽는 순간 그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그동안의 모든 땀과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것이 뻔했다. 라이엘이 나서지 않았더라면, 월리스가 라마르크 다음으로 진화론의 두 번째 창안자가 될 뻔했다.
--- p.429 「7장·알프레드 월리스, 종의 생물지리학을 성취하다」중에서

다윈은 자서전 『나의 삶은 서서히 진화해 왔다』에서 에어위원회를 주도했던 칼라일에 대해 주목할 만한 이야기를 적어놓았다. 다윈은 형 이래즈머스의 집에서 칼라일을 몇 번 봤으며, 그를 자신의 집으로 두세 번 초대하기도 했다. 다윈이 볼 때 “칼라일은 거의 모든 사람을 비웃었다.” (…) 이보다도 다윈을 가장 불편하게 했던 것은 노예제도에 대한 칼라일의 생각이었다. 다윈은 노예제를 적극적으로 지지한다고 장광설을 풀어놓았던 칼라일에 대해 “역겨울 정도”라고 표현했다. 두 사람은 결국 20여 년이 흘러 자메이카 사태가 불거지면서 서로 다른 견해를 취했다.
--- p.522 「8장·찰스 다윈, 융합적 자연사를 완성하다」중에서

라마르크가 『수리지질학』과 『생물체의 조직화에 관한 연구』를 동시에 출간한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동물철학』의 탄생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이 세 저작을 상호연결하면서 탐독할 때, 라마르크의 진화론과 생명의 기원 이론을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다윈이 라이엘의 지질학에 기초해서 자연선택 이론으로 나아간 것과 달리, 라마르크는 혼자서 그것도 반세기 이전에 지구의 자연사에 근거해서 종의 진화 법칙을 정립했던 것이다. 라마르크의 위대함이 바로 여기에 있다. 에드워드 윌슨, 스티븐 제이 굴드, 리처드 도킨스와 같은 신다윈주의자들은 이 점을 놓쳤다.

--- p.599 「9장·자연사에서 자연학으로」중에서

출판사 리뷰

린네에서 다윈을 거친 자연사 탐험의 역사,
근대 자연사혁명의 실체를 만나다
세계사의 관점에서 탐구하는 ‘자연사와 인류사의 공명’


근대 서구 문명은 열대 탐험, 그리고 서구와 열대의 자연사학자 사이의 ‘식민적 문화융합’으로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으며, 그 탐험 과정에서 생물학, 지질학, 기후학 등 근대 학문의 비약적 발전이 있었다. 이 책은 그 중심에 있던 린네, 뷔퐁, 뱅크스, 훔볼트, 월리스, 다윈 등의 행적을 따라가며 그 열대 탐험의 방대한 혁명적 역사를 최대한 쉽고 재미있는 해설로 낱낱이 보여준다. 탐험 행로를 보여주는 많은 지도와 사진, 삽화를 통해서도 이해를 돕고 있다.

또한 이 책은 진화론의 주창자로 알려진 다윈 주변의 상황을 탐구하며, 다윈보다 먼저 진화론에 관한 논문을 쓴 월리스가 있었음에도 왜 다윈이 진화론의 주창자로 자리매김했는지 당시 상황을 알려준다. 그리고 용불용설로만 단편적으로 알려진 라마르크가 사실은 서구에서 처음으로 진화론을 정립한 자연학자라는 점을 확실히 하면서, 20세기가 다윈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라마르크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구석구석 보여주는 근대 서구사의 뒤안길
크고 작은 식민 융합의 역사를 지식 사례로 담아내다


이 책은 린네, 뷔퐁, 뱅크스, 훔볼트, 월리스, 다윈의 여섯 선구자를 각 장의 제목으로 중심에 놓고 있지만, 그 여섯 명의 행적뿐 아니라 그와 관련된 수많은 인물들의 행적을 함께 소개하며, 당시 식민 융합의 생생한 역사를 구석구석 흥미롭게 또는 무겁게 보여준다. 루소가 뷔퐁의 집으로 찾아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린 장면이라든지, 한국에서는 거의 가르치지 않지만 역사적으로 엄청난 변혁을 가져온 ‘콩고-아이티 노예혁명’과 같은 사건을 논의하기도 한다. 귀족들이 당시 열대 지역에서 알려진 수많은 동식물과 광물 자료로 지식과 부를 획득하는 장면, 열대 탐험 중 말라리아와 같은 전염병으로 사망한 사례와 그 반대로 서양인들이 원주민에게 퍼트린 성병과 같은 전염병 사례 등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다. 16세기에 무인도였던, 뷔퐁이 주목했던 모리셔스섬이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의 지배를 차례로 받으면서 섬의 이름이 계속 바뀌고 도도새의 멸종을 맞기도 한 역사도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이름으로 이 섬에 온 지배자들은 도도새를 깡그리 먹어치웠다. 지구상에서 이 섬만의 고유한 종이었던 도도새는 이렇게 멸종되고 말았다. “아는 만큼 먹어치운다.”라는 말이 이들에게 딱 맞는 말일 것이다. 그들은 모리셔스섬만이 뿜어내는 무궁무진한 자연의 보고가 엄청난 교역 가치가 있다는 점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252쪽: 4장·르클레르 드 뷔퐁, 자연사를 체계화하다)

‘인류사’와 공명하는 ‘자연사’의 자리매김이 필요하다
기후위기 시대에 더욱 절실해진 자연학의 정립


서구 중심의 인류사 관점에서 열대 자연사 탐험은, 서구 세계가 열대 식민지를 어떻게 개척하느냐의 관점으로 연구되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사혁명이라는 관점은 제대로 정립되지 못한 채 은폐되고 폄하되어 왔다. 또한 한국에서도 압도적으로 인류사 중심의 역사 교육이 이루어지고, 자연사에 대한 인식은 ‘박물학’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윈에 관한 수많은 영어책에는 그가 ‘naturalist’라고 되어 있지만 한국에서는 그를 생물학자로만 인식할 뿐이고 naturalist의 뜻을 제대로 번역해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은이는 다윈을 포함한 자연사혁명의 선구자들을 ‘자연사학자’로 부를 것을 제안한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단 한 번도 ‘생물학’이나 ‘생물학자’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서장」의 첫 문장에서 다윈은 자신이 “자연사학자로서 비글호에 승선”했음을 천명했다. 마지막 장 「요약과 결론」에서도 그는 자연사와 자연사학자라는 용어를 여러 번 사용했다. 심지어 그는 “미래에는 젊은 신진 자연사학자들이” 종의 불변성과 가변성이라는 “문제의 양면을 공평하게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까지 한 것으로 보아서, 앞으로도 자연사학자라는 용어가 계속 사용될 것이라고 여겼다. (35~36쪽: 1장·왜 자연사인가)

한편으로 현재의 기후위기에 관한 탐구는 자연학과 인간과학의 공명과 협력을 더욱 절박하게 요청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은이는 18~19세기의 자연사혁명에 주목하면서, 이에 고대 지중해에서부터 발달된 자연사학, 자연철학과 점성학, 중세 유럽과 아랍의 자연신학과 연금술, 근현대의 자연과학을 통합하는 ‘자연학’의 정립이 절실하다고 주장한다.

‘자연사’의 역사와 이해를 위하여

1장 / 왜 자연사인가


1장 1절에서 왜 자연사혁명인가에 대해 화두를 던진 후, 2절에서는 자연사/자연사학에 대해 그동안 관심이 없었던 까닭을 논의한다. 3절에서는 자연사가 무엇인지를 개괄적으로 규명한다. 서구에서 근대 자연사가 정립되던 시기의 조선의 상황을 설명하고, 현대 한국에서도 자연사에 대한 인식이 ‘박물학’의 범주를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를 논의한다. 4절에서는 자연사혁명의 선구자들의 공통분모에 해당하는, 열대 자연과 자연사에 대해 설명한다.

2장 / 기축 시대에서부터 신세계 발견 시대의 자연사까지

2장 1절은 초기 인류의 지능을 자연사의 지평에서 살펴본 후에, ‘기축 시대’의 종교와 자연사의 관계를 논의한다. 2절에서는 문명적인 모든 것의 기원을 희랍에서 찾으려는 서구 중심적 인류사의 입장에서 벗어나, 바빌로니아, 이집트, 지중해 연안의 아프리카 북부의 점성술과 연금술 등 여러 요인들이 희랍 자연사와 자연철학의 발달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를 논의한다. 3절은 중세의 자연사가 헬레니즘과 아랍의 문명융합을 통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보여준다. 4절은 근대과학의 등장을 ‘헤르메스 자연사, 자연신학, 자연철학’ 사이의 불편한 관계로 논의하면서 자연사가 학문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5절은 유럽에서 열대 탐험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논의한다.

3장 / 네덜란드 황금시대와 린네 자연사혁명

3장 1절은 스웨덴에서 출생하여 네덜란드에서 자연사를 배웠던 린네의 학문적 탐구 과정을 설명한다. 2절은 ‘린네 자연사혁명’이 ‘자연의 경제’와 어떻게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논의한다. 3절은 린네의 제자인 17명의 ‘사도’들의 탐험 지역을 중심으로 자연사 탐구를 어떻게 수행했는지를 설명하고 열대 생물의 시각화와 공간화를 종합적으로 이해해야 함을 강조한다. 4절은 자연사와 근대 회화의 관계를 논의하면서, 에드워드 사이드가 심혈을 기울여 논의했던 ‘오리엔탈리즘’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자연사가 어떤 역사적 힘으로 작용했는지를 보여준다.

4장 / 프랑스 자연사와 뷔퐁 자연사혁명

한편 프랑스에서는 뷔퐁이 자연사혁명의 선구자가 되었다. 4장 1절은 프랑스 과학아카데미가 아메리카로 탐험대를 왜 파견했으며, 그 결과가 이 혁명으로 어떻게 연결되었는지를 설명한다. 2절은 몽테스키외를 중심으로 18세기 프랑스의 풍토와 기후 이론을 논의하면서, 뷔퐁이 이런 상황을 어떻게 인식했는지를 살펴본다. 또한 프랑스의 부갱빌 제독과 자연사학자 필리베르 코메르송의 남태평양 탐험이 계몽사상에 어떻게 녹아들어갔는지를 규명한다. 3절은 ‘뷔퐁 자연사혁명’의 본질을 논의한다. 뷔퐁은 여러 자연사학자들과 파리식물원에서 교류하면서 열대 자연사의 특성을 파악했다. 그렇지만 그는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계속 전해진 ‘존재의 대연쇄’를 끝내 해체하지 못했다. 4절은 뷔퐁 자연사혁명이 어떻게 프랑스 계몽사상의 젖줄이 되었는지를 논의한다. 루소가 열대 동물인 오랑우탄에 대해, 디드로가 타히티섬의 자연법에 대해 각각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살펴본다면, 두 인물의 계몽사상은 뷔퐁 자연사혁명에 굳건하게 근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5장 / 영국의 번영과 뱅크스 자연사혁명

5장 1절은 10대에 이미 거대 지주가 될 만큼 부자였던 영국의 뱅크스가 린네의 제자인 다니엘 솔란더를 만나서 어떻게 자연사학자가 되었는지를 설명한다. 2절은 뱅크스가 제임스 쿡의 남태평양 탐험에 참여해서 무엇을 했는지를 설명하고, 귀국 후에 30대 초반에 어떻게 왕립학회장의 위치에 오르게 되었는지를 논의한다. 3절은 뱅크스가 큐식물원을 중심으로 전 지구적 식물원 네트워크를 만들어가면서 어떻게 자연사혁명을 추동시켰는지를 분석한다. 세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던 쿡 함장의 전 지구적인 탐험에 힘입어, ‘뱅크스 자연사혁명’은 유럽의 변방에 지나지 않던 영국을 제국의 중심으로 올려놓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어 4절은 남태평양의 원주민 아우토루, 투파이아, 마이, 이 세 자연사학자가 유럽의 열대 탐험과 문화예술에 미친 영향을 살펴본다.

6장 / 아메리카 열대지역 탐험과 훔볼트 자연사혁명

6장 1절은 독일인 훔볼트가 열대 탐험에 대한 꿈을 어떻게 갖게 되었는지를 설명한다. 훔볼트 탐험이 린네와 뱅크스의 그것과 달랐던 점은, 당대 유럽의 최신 측정 기구들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이는 ‘훔볼트과학’이 탄생하는 데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2절은 ‘훔볼트 자연사혁명’에 사상적으로 영향을 미친 칸트, 헤르더, 괴테를 각각 논의한다. 3절은 훔볼트가 에스파냐의 식민지인 멕시코, 쿠바, 오리노코, 에콰도르, 페루에서 열대 탐험을 어떻게 수행했는지를 보여준다. 훔볼트 자연사혁명은 호세 데 칼다스와 같은 ‘크리오요’ 자연사학자와의 ‘식민적 문화융합’을 통해 이루어졌음을 상세히 설명한다. 4절이 논의하는 훔볼트 자연사혁명의 핵심은 그가 탐험했던 열대의 자연사를 근대적인 공간으로 발명했다는 데 있다. 열대 공간은 식물지리학, 식민적 문화융합, 낭만주의 풍경화라는 세 차원의 유기적 네트워크를 통해 발명되었다.

7장 / 생물지리학, 진화론, 제국주의: 월리스의 자연사혁명

생몰연도로 본다면 다윈을 월리스보다 먼저 배치하는 것이 맞지만 월리스를 먼저 다룬 까닭은, 그가 종의 진화를 다윈보다도 먼저 발표했음에도 그의 업적이 가려져 왔기 때문이다. 7장 1절은 이렇게 된 연유를 논의한다. 또한 월리스가 당대 사회개혁가 로버트 오언을 통해 자연사학의 길에 어떻게 들어섰으며, 헨리 베이츠와 함께 아마존에서 어떻게 탐험을 했는지를 설명한다. 2절은 1780년대부터 1840년대까지 영국에서 자연사, 정치경제학, 자연신학이 어떻게 서로 맞물리면서 진화론의 형성으로 이어졌는지를 논의한다. 월리스의 진화론에 영향을 미친 중요한 저작들을 분석하면서, 자연사·정치경제학·자연신학이 월리스와 다윈의 진화론에 미친 영향을 규명한다. 3절은 첫째, 월리스가 말레이제도를 탐험한 과정을 특히 다윈의 탐험과 비교하여 살펴본다. 둘째, 월리스가 이 지역의 네덜란드식 식민주의를 어떻게 인식했는지를 논의한다. 셋째, 월리스는 진화론을 정립하는 데 자연신학을 어떻게 자리매김했는지를 살펴본다. 4절은 ‘월리스 자연사혁명’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살펴본다. 첫째, 월리스 자신이 탐험한 칼리만탄섬의 지역 이름을 따서 명명한 ‘사라왁 법칙’이 증기기관의 원심조속기 원리와 어떻게 상관있는지 설명한다. 둘째, 월리스가 종의 생물지리적 분포와 지질학적 구조 사이의 상관성에 주목하면서, 트르나테섬에서 어떻게 종의 진화를 착안했으며, 그 유명한 ‘월리스 선’을 어떻게 발견했는지를 규명한다.

8장 / 자연선택 이론: 다윈 자연사혁명

8장 1절은 다윈이 할아버지 이래즈머스가 쓴 『주노미아』를 읽은 이후로 종의 진화에 어떻게 눈뜨게 되었는지와, 가문의 이해관계가 걸린 열대 자메이카에서 일어난 사건에 개입하게 된 과정을 논의한다. 2절은 다윈의 탐험이 비글호 항해를 통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살펴본다. 다윈은 역사지질학과 생물지리학에 근거해서 갈라파고스에 서식하는 핀치를 비롯해 다양한 생물 종들을 수집했다. 3절은 첫째, 라마르크의 환경-적응 중심의 진화론과 월리스의 「트르나테 논문」보다도 자신이 최초로 진화론을 정립했다고 세상에 알리기 위해 다윈이 얼마나 절치부심했는지를 설명한다. 둘째, 다윈은 정치경제학, 자연신학, 과학철학적 방법론, 열대 자연사를 어떻게 융합해서 자연선택 이론을 정립했는지를 규명한다. 셋째, 1859년에 처음 발간된 『종의 기원』이 초판에서 최종판인 6판으로 개정되는 과정에서, 그 내용이 각각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그리고 다윈이 그렇게도 벗어나려 했던 라마르크의 환경-적응 이론을 왜 수용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논의한다. 4절은 다윈이 표방했던 진화론이 다윈주의의 이름으로 중층적인 의미를 갖게 된 여러 가지 상황을 검토해 본다. 아울러 기독교가 다윈주의를 어떻게 혼란에 빠트렸는지도 살펴본다.

9장 / 자연사에서 자연학으로

라마르크는 ‘자연학’을 지향하기 위한 출발점이다. 9장 1절에서는 다윈이 라마르크에 대해 어떤 유형의 콤플렉스를 갖게 되었는지를 살펴본다. 아울러, 20세기 중반부터 논의되어 온 후성유전학을 통해 라마르크의 진화론이 어떻게 환생하고 있는지를 강조한다. 2절은 자연학의 역사적 계보를 다룬다. 라마르크·훔볼트·마시·베르나츠키·마굴리스로 이어지는 자연학의 계보를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3절은 지구과학의 주요 개념인 층서학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인문학에서 오랫동안 지켜져 왔던 자연사와 인류사의 경계를 왜 무너뜨려야 하는지를 규명한다. 또한 “지구상의 모든 생명의 힘은 극지방에서 열대로 갈수록 더욱 강해진다.”라는 훔볼트의 가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자연학의 지평에서 검토하며, ‘가이아’ 이론과 공생진화론을 결합함으로써 자연학의 이론적 토대를 어떻게 정립해야 할지를 모색한다. 4절은 이미 시작된 ‘지구 대멸종’의 절박한 상황에서, 열대우림의 파괴가 어떤 중대한 의미를 갖는지를 논의한다. 자연사혁명의 선구자들이 열대 탐험을 통해 근대 자연사를 정립했음을 염두에 두면서, 자연사·자연철학·자연신학·자연과학의 융합적인 학문으로서의 자연학의 존재 이유를 깊이 성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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