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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엄마와 함께한 글쓰기, 삶을 치유하다
제1장 미열처럼 계속되는 분열: 다시 찾아가는 흔들림의 자취 ¶ 노화도 성장이다 ¶ 젊음 신화 시대의 이면 ¶ 노화에 저항하는 문화에 저항하기 제2장 엄마가 미친 것 같아: 일상을 뒤흔든 분열의 서막 ¶ 치매가 전부가 아니다 ¶ 나이듦에 대한 공포와 분열적 반응 ¶ 부정성에 대한 은밀한 공조 ¶ 노년과 긍정성 제3장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 엄마: 풀리지 않는 암호 같은 증상 ¶ 증상이 보내는 신호 ¶ 나에게 나를 가두기 ¶ 나이에 기대하는 것들 ¶ 시기가 따로 없는 성장통 제4장 잃어버려야 찾을 수 있는 것들: 자기부정의 자기방어라는 모순 ¶ 흔들리는 노년의 좌표 ¶ 사회가 정해 놓은 인간상 ¶ 길을 잃어야 보이는 것들 제5장 나는 나를 모른다: 억눌린 정서, 왜곡된 기억 ¶ 이기적인 기억과 집착 ¶ 마음이 흐르는 경로 ¶ 사건은 해석일 뿐 제6장 가깝고도 오랜 외로움: 스스로를 가두는 감옥 ¶ 위험한 정체성 ¶ 원래 그런 것은 없다 ¶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제7장 혹시 나 때문은 아닌지: 단절과 자책을 넘어 ¶ 분열증과 마음의 호소 ¶ 순수한 감정은 없다 ¶ 원인과 결과의 사잇길 제8장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나를 찾아가는 여행 ¶ 분열의 시공간적 속성 ¶ 개념적 언어의 탈주 ¶ 삶과 죽음의 역설 제9장 엄마의 엄마가 되다: 돌봄의 순환 고리 ¶ 대상을 찾아 나선 감정 ¶ 치유를 꿈꾸는 상처 ¶ 존재가 곧 차이다 제10장 그에게서 내 모습을 보다: 네 안의 나, 내 안의 너 ¶ 노년은 삶에 부여된 기회 ¶ 응시하는 힘, 마주보는 용기 ¶ 평범함과 특별함 ¶ 목적이냐 관계냐 제11장 유한하고 소중한 삶: 불안을 딛고 나아가기 ¶ 불안에 대처하는 자세 ¶ 변화를 위한 작은 움직임 ¶ 마음을 정리하는 지혜 ¶ 생성과 소멸의 사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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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와 공감, 그로 인한 깨달음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고, 완성이 없는 과정이지만 그 과정을 지날수록 감사함이 더해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후에는 아픔의 눈물이 감사의 눈물로 바뀌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그 둘은 처음부터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삶 전체를 쥐고 흔들 만한 아픔을 겪었거나 겪고 있는 사람들과 그 가족들, 그리고 티 나지 않게 크고 작은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이 글을 쓰는 데 함께 했습니다.
---「머리말, 엄마와 함께한 글쓰기, 삶을 치유하다, 6쪽」중에서 엄마는 가족들, 그중에서도 특히 딸에게, 자기도 미처 알지 못했던 자신의 모든 면모를 낱낱이 보여 준 노년의 어느 한때를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혹독한 살풀이 같았던, 어쩌면 평생의 치부일지도 모를 시절을 엄마는 가위로 도려낸 듯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화산처럼 폭발하던 엄마의 그 강렬한 시절 중 어느 것 하나도 잊어버리지 못하는 나는, 그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 엄마와의 마주침이 생경할 때가 많았다. ---「1장, 미열처럼 계속되는 분열, 16-17쪽」중에서 ‘엄마, 우리 함께 다시 가보자.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엄마가 그토록 아파했는지. 그리고 왜 그것들을 다 잊어버리게 되었는지. 그곳에 무엇을 남겨 두고 왔는지. 직접 가서 확인해 보자. 가서 우리가 지나온 길의 여정을 잘 마무리하고 오자. 엄마.’ ---「1장, 미열처럼 계속되는 분열, 22-23쪽」중에서 나이듦, 노화를 부정하려는 심리 근저에는 공포가 깔려 있다. 나이 들어 가는 나와, 아직은 괜찮은 나는 시시각각 공포와 안도를 오가며 흔들린다. (…) 어느 날 문득 거울 앞에서 발견한 주름진 낯선 얼굴이나, 서서히 떨어지는 시력, 색과 밀도가 점점 옅어지는 머리카락, 혹은 오랜만에 만난 지인의 주름진 얼굴 같은 것에 씁쓸해하면서 잊고 있던, 혹은 거부하고 있던 자신의 나이듦에 대한 인식을 가다듬는다. ---「2장, 엄마가 미친 것 같아, 47쪽」중에서 엄마가 사는 세계의 시간은 결코 단선적으로 이어져 있지 않았다. 과거, 현재, 미래가 기억 같은 걸로 이어져 있지 않았고, 개연성도 없었으며, 오직 순간순간만 있을 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부모 자식 같은 관계의 끈은 유지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현재 엄마의 세계에서 자리잡은 최소한의 연계점 같았다. 관계라는 희미한 바탕 위에 사건들은 뒤죽박죽 얽혀 있었고, 사실과 허구는 불분명하게 이어져 있었으며 감정은 그 복잡한 얽힘 속에 인과성 없이 요동치는 듯했다. ---「3장,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 엄마, 57-58쪽」중에서 마수미가 말한 ‘길을 잃은 상황’은 스스로 선택한 경로일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외압에 의해 주어진 와해의 경험이다. 생전 처음 겪는, 혹은 이전에 겪었으나 여전히 생경한, 나침반 하나 없이 사막 한가운데 던져진 듯한 느낌으로 이제까지의 경험과 감각을 총동원해서 길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온갖 이정표와 안내자가 빼곡한 곳에서는 그것들만 좇아 목적지에 다다르면 되지만, 사막 한가운데에서는 오로지 자신이 판단의 지표가 되어야 한다. 고통스러울 수 있는 사유가 일어나고, 모든 감각이 서로를 감싸고 서로로부터 풀려나오며 그동안 쌓아온 경험과 지식, 상상력이 총동원되어 집중된다. ‘던져짐’ 혹은 ‘마주침’이라는 사건이 자기 발생적 주체를 생성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흔히 표현하는 ‘힘든 일을 겪고 나서 성숙해졌다’라는 말과 상통하는 바가 있다. ---「4장, 잃어버려야 찾을 수 있는 것들, 98-99쪽」중에서 세상 그 어떤 상대도 다 녹여 낼 듯한 눈빛은 제 자식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강렬했다. 순식간에 무언가에 압도당한 듯한, 그 압도당한 무언가를 위한, 물불 안 가리는 전사가 된 듯한 또 하나의 존재가 출현한 것 같았다. “날 죽이려는 거지, 다 날 죽일라고. 이런 나쁜…… 내가 모를 줄 알고!” 커다란 고함과 함께 엄마는 내 목에 둘러져 있던 긴 스카프를 어마어마한 힘으로 잡아당겼다. ---「5장, 나는 나를 모른다, 106쪽」중에서 그러한 영원성에 대한 희망에 불길한 전조를 드리우는 용의자로 지정되기 쉬운 것이 바로 변화이다. 변화를 소멸의 전조로 여기는 것이다. 시각의 변화, 사고의 변화, 가치관의 변화, 신념의 변화, 외모의 변화 등이 성숙과 풍요로움의 원천이 되려면 자신을 포함한 주변부 모두의 유한성을 자각하는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데, 두려움 때문에 문 앞에서 서성거리다 돌아서버리면 영영 다른 길로 접어들어 더 이상 문을 찾지 않을 수도 있다. ---「6장, 가깝고도 오랜 외로움, 145쪽」중에서 세상에서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이 이름밖에 없다는 듯한, 불안하게 흔들리면서도 절박한 목소리가 나를 깨웠다. 요 며칠 귀에 인이 박이도록 들었던 ‘미영아’는 이름이 불리는 사람이 어떻든 전혀 상관없이 오로지 부르는 사람을 위한 부름이었다. 마치 나는 엄마 에게 부름을 받으려고 있는 존재 같았다. 궁금할 때, 답답할 때, 아플 때, 불안할 때마다 답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단지 부를 수 있는 사람으로서 필요한 존재 같았다. ---「7장, 혹시 나 때문은 아닌지, 160쪽」중에서 현대 의학과 병원 시스템의 범주 바깥에 있는 환자와 보호자가 갈 곳은 없었다. 찬밥 신세 같은 병실살이로 하루를 더 흘려보내고 나니 어떤 오기 충만한 결심이 마음속에서 꼿꼿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나는 아침 회진을 온 정신과 담당 의사와 가족들 앞에서 엄마를 퇴원시키고 집으로 돌아가서 통원 치료를 받게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때까지 무언가를 계속 혼자 중얼거리던 엄마마저 소리를 멈춘 채, 걱정 가득한 가족들의 눈빛만이 적막을 대신했다.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긍정의 침묵이 조금 더 흘렀다. ---「8장,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188쪽」중에서 어찌 보면 나이듦은 이러한 분리의 독단과 오만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연스러운 과정이고, 소중한 기회일 수 있다. (…) 유한성에 대한 임의적 직시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짐으로써, 삶과 분리된 죽음으로 흐려진 시력을 회복하고 혜안을 찾아 모든 유한한 것은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체감하고 체현할 수 있는 단계이다. 느려진 생체 리듬과 둔해진 감각, 수분이 빠져나간 피부 조직은 어떻게든 되돌려 복원해야 할 현상이 아니라 속도에 맞게 수용해야 할 자연의 질서이다. ---「8장,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197-198쪽 가끔씩 자신의 삶에는 온전한 자기만의 선택이 없었다고 말했던 엄마가 진정으로 원한 삶은 어떤 것이었을까 궁금해졌다. 만일 엄마가 스스로 선택하고 원하는 삶을 살았다면 지금처럼 무언가를 움켜쥐지도, 놓아 버리지도 못하는 갈라진 마음 때문에 힘들지 않을 수 있었을까. ---「9장, 엄마의 엄마가 되다, 211쪽」중에서 엄마는 오래 묵혀 둔 자신과의 얽히고설킨 관계를 회복하려고 조금씩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다. 가난해서, 일하느라, 혹은 남들처럼 부대끼며 사느라 소외시키고 방치했던 자신을 이제야 아프도록 보듬어 안는 것 같았다. (…) “그래, 엄마. 괜찮아. 눈물이 다 마를 때까지 우셔요. 엄마가 다 울 때까지 내가 옆에 있을게.” ---「10장, 그에게서 내 모습을 보다, 234쪽」중에서 “엄마, 다 지나간 일이라 이제 괜찮아. 아프지 않은 엄마로 다시 돌아와 줘서 고마워 엄마.” 나는 소리 없이 눈물만 떨구는 엄마에게 조용히 말했다. 혼신의 힘을 다해 엄마를 걱정했던 많은 사람이 엄마가 나아가는 모습을 보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듯이 엄마도 그랬으면 했다. 이제는 아팠던 시절뿐 아니라 그 아픔을 만들어 낸 엄마의 모든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워졌으면 한다. 엄마가 혼자 지내왔다고 생각하는 길을 되짚어 보면서 그 안에 스며 있는 많은 존재와 의미들을 느낄 수 있게 되길 바랐다. ---「11장, 유한하고 소중한 삶, 257쪽」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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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인구 1%에 달하는 조현증, 그중에서도 노인 조현증 가족의 이야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부모의 나이듦을 마주 볼 수 있는 용기이다 조현증은 흔히 사회적 낙인으로 인해 감춰지고, 특히 노인 조현증은 ‘노망’이나 ‘치매’로 오인되어 명확하게 포착되지 못한다. 그러나 조현증은 전 인구의 1%, 100명 중 1명이 걸리는 비교적 흔한 정신질환이다. 『엄마의 엄마가 된다는 것』은 그중에서도 노인 조현증을 앓은 어머니와 그를 돌보는 딸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저자는 현실과 망상,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분열하는 엄마의 위태로운 노년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그 과정에서 맞닥뜨린 당혹스러움, 불안, 갈등, 혼란 등을 있는 그대로 보여 준다. 그리고 마침내 저자는 자신이 받았던 돌봄을, 분열적 노화를 겪는 엄마에게 돌려주며 ‘엄마의 엄마’가 되는 돌봄의 순환을 그려 낸다. 우리는 누구나 부모의 나이듦을 마주하고, 부모의 돌봄을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이번에는 자기 자신의 나이듦을 마주하게 된다. 이처럼 노화의 과정에서 생기는 질병과 그 상황을 마주하는 당사자, 그리고 그를 돌보는 이들이 겪는 변화와 갈등의 이야기는 인생이라는 여정을 걸어가는 모든 인간이 직면하는 지극히 평범한 ‘보통’의 과정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가오는 나이듦과 노년을 응시하고 마주 볼 수 있는 마음과 태도를 준비하는 일이다. 저자 자신의 구체적인 경험과 인문학적 성찰로 빚은 이 돌봄 이야기는 나이듦이라는 피할 수 없는 과정을 맞이했던, 맞고 있는, 맞이할 모든 이들에게 “너 안의 나, 내 안의 너를 기꺼이 만날 수 있도록 용기 낼 수 있게끔 우리를 초대”한다. 엄마를 돌보며 나이듦과 노년의 의미를 묻다 엄마에게 찾아온 혹독한 노년의 한때, 그 시간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들 이 책에는 두 가지 흐름이 상호 교차하며 흐른다. 하나는 저자 자신의 이야기, 즉 조현증을 앓는 어머니를 돌본 경험을 풀어낸 스토리텔링이다. 다른 하나는 저자가 자신의 경험 속에서 나이듦, 노년, 돌봄, 죽음 등의 문제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얻은 인문학적 성찰들이다. 저자는 어머니를 돌본 시간을 반추하며 나이듦과 노년, 그리고 이를 대하는 우리의 사회·문화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고 인생의 노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아 나간다. 그리하여 저자는 노화의 의미를 쇠퇴와 하락이 아닌 ‘성장’의 관점으로 재해석하며, 노년을 맞는 이들과 그 곁을 지키고 있는 모든 이에게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노화도 성장이다 나이듦, 노화는 흔히 손실과 퇴행을 의미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저자는 나이듦의 의미를 구하며 오히려 ‘성장’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계속해서 늘어나고 많아지는 것을 성장이라고 본다면 신체적 측면에서는 일정 시기가 되면 성장이 다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렇게 이해한다면 성장과 관련해서 중요한 것, 바로 ‘깊이’와 ‘농도’를 간과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깊이와 강렬도는 길이와 무게의 한계를 넘어서는 까닭에, 양적이고 물질적인 성장이 다해도 우리는 깊어지고 축적되는 굴곡의 성장기를 여전히 유지한다. 저자는 이와 같이 ‘성숙’으로 대변되는 깊이의 성장에는 끝이 없고, 이 성장기의 마지막을 가리키는 시기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 죽음일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저자는 노화는 우리의 신체가 서서히 죽음을 맞이하려고 준비하는 작용 속에서, 어떻게 하면 그런 현상들과 어우러져 자연스럽게 상호작용할 수 있는지 다시 한번 시험대에 오르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즉, 노화를 미처 못다 이룬 내적 성장을 추구할 수 있는 제2의 성장기로, 삶에 부여된 기회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화에 저항하는 문화에 저항하기 우리는 나이듦을 실제 현상과는 달리 갑작스럽게 불현듯 다가오는 것처럼, 마치 일종의 ‘발견’처럼 느낀다. 현상과 발 맞추어 제때 노화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은 노화를 애써 바라보려 하지 않았던 습관들의 축적물이다. 저자는 이것이 ‘나이듦이라는 필수적인 과정의 수긍’을 방해하는 구조가 너무 견고하고 광범위해서 의식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산재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우리 사회에서 노화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기보다는 방지되어야 할 현상으로 치부된다. 그리하여 노화 방지(안티에이징) 산업이 해마다 성장하며, 제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는 말이 칭찬으로 통용된다. 또, 생산성이 떨어지는 존재로서의 노인됨을 지칭하는 것으로 여겨지며, 이로 인해 세대 갈등이나 노인 소외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저자는 이 같은 사회와 문화에 맞서, ‘반노화에 저항하는 주체성’을 만들어 가자고 말한다. 그렇게 한다면 피할 수 없는 노화를 거부하는 모순적인 상황에서 비롯되는 불안과 갈등을 덜어내고 소외된 마음의 소리에도 귀 기울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삶과 죽음의 분리를 넘어 우리는 누구나 조금씩, 매일 변화를 겪으며 조금씩 나이 들어 간다. 그리고 그 방향은 누구나 알고 있듯이 죽음을 향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나이 들어 간다는 것, 산다는 것은 곧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 눈앞 도처에는 삶만 있을 뿐 죽음은 보이지 않는다. 도시화와 현대화가 진행될수록 죽음은 더욱더 매끈하게 보이지 않는 곳으로 숨어 버리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렇게 죽음이 옮겨진 자리를 영속성이라는 환상이 차지한다고 말한다. 나아가 이러한 삶과 죽음의 분리를 자연과 인간의 분리와 유사한 형태로 인식한다. 즉, 자연을 마음대로 지배할 수 있다는 착각과 죽음의 질서를 조절할 수 있다는 착각은 서로 비슷하게 구조화된다는 것이다. 저자에 의하면 나이듦은 이러한 분리의 독단과 오만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연스러운 과정이자 소중한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저자는 죽음을 사장시킨 삶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틈새마다 스며 있는 ‘죽음 감수성’을 되살려 내자고 말한다. 소유와 축적을 허용하지 않는 유한성의 직시야말로 삶 자체에 대한 애착을 있는 그대로 살려 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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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길을 잃을 때, 지나왔고 또 다가올 내 길의 방향성을 의식하곤 합니다. 책 속의 주인공과 그 가족은 한때 길을 잃었습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날 수 있게 초대해 주신 엄마. 그 엄마가 정신질환을 앓게 된 것입니다. 엄마는 퇴행하고 내가 엄마의 역할을 해야 하는 엄마가 됩니다. 혼란과 두려움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가족들은 엄마의 회복을 위해 전력투구합니다. 이 책은 전 인구의 1%에 달하는 조현증, 그중에서도 노인 조현증 가족의 이야기이며 생활 철학 인문서이기도 합니다. 용기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것이 아닌, 두렵지만 한 발짝 나아가는 것. 이 책은 너 안의 나, 내 안의 너를 기꺼이 만날 수 있도록 용기 낼 수 있게끔 우리를 초대해 주는 책입니다. 지금 여기 나의 지난 흔적들을 바라보는 유연함과 그럼에도 무르익어 가는 현재의 소중함을 만나셨으면 합니다.” - 신차선 (심리치료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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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일상적 노화의 그늘 속에 있는 분열적 노화를 상세히 그려 내고 있습니다. 분열증이라는 상황에 처한 실존의 떨림은 우리의 가슴속에 전달되어 하나의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그 결과 가장자리를 묵묵히 지키는 딸의 돌봄의 손길은 가슴 절절한 밑바닥의 감정과 더불어 심연 속 대(大)긍정의 마음을 느끼게 합니다. 여러 화두를 넘나들며 관찰하고 선한 본성의 작용을 유도하는 묵조선(?照禪)과 같이 배치된 필자인 딸의 입장은 전락성으로부터 어머니를 구조하겠다는 절절한 한 사람의 실존이 가진 용기를 드러내 보입니다. 놀라운 극적 반전이 아니라, 삶과 생각의 전환의 이야기이기에 더욱 큰 박수를 보냅니다.” - 신승철 (철학자, 생태적지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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