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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제1부 걸어가는 나무들 나무·1 / 나무·2 / 나무·3 / 채석강 / 지리산 철쭉 / 사슴 / 유달산 / 거울 앞에서·1 / 거울 앞에서·2 / 임진강 / 걸어가는 나무들 / 변성기 / 부부 / 법성포 / 생각 / 램프 / 새벽을 밟으며 / 서해에서 / 바람 소리 / 무등산·1 / 무등산·2 / 동해 / 선운사 / 어머니·1 / 어머니·2 / 눈 속에서 / 손 / 샐비어 / 잔을 들면 / 농부 / 신발 / 백자를 닦으며 / 탑 / 방장산 / 봉숭아·1 / 봉숭아·2 / 낙화암 / 백마강 / 간이역 / 실 / 오월이면 / 산사에서 / 숲에 서면 / 꽃 한 송이 / 무궁화 / 화분 제2부 맨몸으로 서는 나무 봄날 / 에밀레종 / 초야 / 연 / 연을 띄우며 / 강강수월래 / 이제 남은 것은 / 달맞이꽃 / 도요지에서 / 서석대 / 초롱꽃 하나 / 패랭이꽃 / 상사화 / 아파트에서·1 / 아파트에서·2 / 그 눈빛 / 강가에 앉아 / 비에 젖는데 / 금강초롱꽃 / 낙화 / 감꽃을 주우며 / 녹우당 가는 길 / 이름 하나 / 두견새 / 남강 / 난이 되어 / 목련으로 피어 / 갈재 / 선운사 마애불 / 출근 / 바닷가에서 / 그믐 / 달팽이 / 증심사 종 / 한 해를 보내며 / 맨몸으로 서는 나무 / 삶 / 아버지 / 쑥 / 추석날에 / 영산강 / 그 사람 / 바람 곁에서 / 모양성에 오르며 / 고추잠자리 / 매화사 / 아까시꽃이 질 때 / 가락지 / 바늘 / 목련 / 단풍잎 / 독백·1 / 독백·2 / 별후 / 석류 / 목재소의 밤 / 도라지꽃 / 차창에서 / 가을에 / 꽃·1 / 꽃·2 제3부 허공에 길을 내어 그대에게 간다 새해 / 바다 / 목어 / 설야 / 대춘 / 강물 소리 / 벌레 두 마리 / 산이 되고 강이 되어 / 거미가 되어 / 난 하나 기르듯이 / 있고 없음을 / 저 물소리 / 가로수는 / 어디 가고 있는가 / 선운사 동백꽃·1 / 아버지의 자리 / 단풍 / 인내 / 복사꽃 필 때면 / 풀잎 / 잎 / 해탈 / 칼날이 되는구나 / 열사의 나라에 / 계절은 오는데 / 감 / 사랑 / 선운사 동백꽃·2 / 오월 / 무지개 / 돌칼 / 가을은 / 겨울 이야기 / 삶 / 문밖에 서서 / 갈대밭에서 / 마이산 / 금강산 / 회문산 / 군화 한 짝 / 풀각시 / 세밑 / 고향 / 호수 / 종鍾 / 봉숭아 꽃물 / 마이산 / 운주사 입구 / 모양성 답성 / 홍류동 / 구룡폭포 / 비로봉 / 귀면암 / 만물상 / 웃는 사람 / 피었다가 지고 제4부 화목이나 되어라 화목이나 되어라 / 우리 / 소지 / 떠나는 것들 앞에서 / 독도 / 돌 / 탑 / 허기 / 억새꽃 / 새벽 어시장 / 옷 / 조운 생가에서 / 배롱나무 / 식영정 / 섣달 스무여드렛날 / 살구꽃 / 소 / 뻐꾸기 울음소리에 / 백두산 천지 / 까치집 / 사금파리 / 조국의 하늘 / 새 아침 / 사람아 사람아 / 미당 가는 길 / 산수유 / 고희 / 이름 / 바퀴벌레 / 안개성 / 연 / 광개토대왕비 앞에서 / 선운사 상사화 / 운주사 와불 / 고창 고인돌 / 이팝나무꽃 / 차 한 잔을 놓고 / 낙법落法 / 하관 / 징소리 / 길 / 거미가 줄을 치듯 / 손 / 이별도 때로는 / 울음소리 / 풀씨 / 제일祭日 / 회고 / 할아버지와 손자 / 떠난다는 것 / 창 전원범 시조 문학 평설 |
우송,友松 全元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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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낙이 불렀던
백제적 선운산가禪雲山歌 천년 내내 숯불로 타며 동백꽃으로 피는데 올해도 뚝뚝 지고 있네 기다림의 눈물로 ---「선운사 동백꽃 1」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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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문학은 글자 맞추기가 아닌 시다
자유시가 언어의 자유분방한 개성적 창조를 통해서 병렬적 미학을 형성하는 것이라면 시조는 정통적 특유의 율격을 통하여 완결적 미학을 이루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시조 문학의 율격은 우리의 정서를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고, 고유 정서와 변화하는 현실을 함께 수용할 수 있으며, 이 율격적 형식은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생리에서 빚어진 호흡의 시라 할 수 있다. ...(중략)... 시조 문학이 왜 존재해야 하며, 왜 오늘날에도 계속 씌어져야 하는가, 시조 문학도 시의 범주 안에 존재하는 것인데 왜 시로서의 격을 늘 문제 삼는가. 실험과 시도라는 이름으로 시조 문학 본래의 특성을 왜 부수려고만 하는가, 이렇게 많은 문제들을 항상 제기하는 까닭이 무엇인가. 그것은 모두 시조 문학의 존재 이유나 본래적 특성을 무시하고 파괴하는 것만이 능사인 것으로 생각하는 소수의 사람과 시조 문학을 무슨 상황 묘사나 심경 토로의 도구쯤으로 아는 많은 사람들의 그릇된 시조관 때문에 나온 것이 아닐까. 시조는 시조여야 하며 현대 시조는 시여야 한다는 두 가지에 대한 고집, 그것이 나의 시조 문학 창작법이라 하겠다. 끝으로 시조를 3·4조의 율격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은, 시조 율격의 우리말 특성인 음보율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무식하다고 한다. 시조 문학은 3장 6구 4음보 시가로 알고 써야 맞다. 우리말도 모르고 어떻게 글자 맞추기로 시를 쓴단 말인가. - 머리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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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범의 시조가 보여 주는 주된 정조는 그리움이며, 그의 정신이 거처하는 곳은 회상의 언덕이다. 그의 회고적 정서는 어찌 보면 탄식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쓸쓸하면서 맑은 정신 지향은 번잡한 우리 현대인들에게 마음의 휴식처를 마련하여 준다. 즉,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시 정신을 시인이 가지고 있을 때, 시조는 잘 정돈되고 완결된 상태로서의 정신적 휴식의 순간을 가져다 주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시조를 통해 추구해야 할 미덕 중의 하나이다. - 염창권 (시인, 광주교육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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