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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 데버라 스톤 15
서장_장애와 정치이론 ─ 바버라 아네일·낸시 J. 허시먼 21 1장 정치이론과 국제적 관행에서의 장애: 평등과 자유를 재정의하기 ─ 바버라 아네일 57 2장 비장애중심주의적 계약: 지적장애와 칸트의 정치사상에서 정의의 한계 ─ 루커스 G. 핀헤이로 99 3장 롤스의 정의론에서 장애의 부인과 그의 비판가들 ─ 스테이시 클리퍼드 심플리컨 167 4장 장애를 만들어 내는 장벽, 할 수 있게 만드는 자유 ─ 낸시 J. 허시먼 205 5장 울스턴크래프트, 홉스, 그리고 여성들의 불안에 존재하는 합리성 ─ 아일린 헌트 보팅 251 6장 난독증을 위한 선언 ─ 캐시 E. 퍼거슨 291 7장 비배제적 민주주의에서의 성원권과 참여를 다시 생각한다: 인지장애, 아동, 동물 ─ 수 도널드슨·윌 킴리카 337 8장 한나 아렌트와 장애: 탄생성과 세계에 거주할 권리 ─ 로레인 크롤 맥크레이리 397 9장 단절된 존재들과 접속하기: 정신장애와 정치 혼란 ─ 테리사 맨 링 리 445 10장 장애와 폭력: 민주주의적 포함과 다원주의에 대한 또 다른 요구 ─ 조앤 트론토 495 11장 ‘치료’와 ‘편의제공’을 다시 생각한다 ─ 낸시 J. 허시먼·로저스 M. 스미스 523 옮긴이 후기 566 참고문헌 571 찾아보기 619 |
Nancy J. Hirschmann
Barbara Arne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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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항상 도움의 관계망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어떤 사람들이 다른 사람보다 좀 더 도움을 필요로 할 수는 있지만,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에서 그리고 언제나, 그 누구도 타인의 도움을 받지 않고 살 수는 없다. 당신이 한 켤레의 신발을 신은 채 걷고, 책을 읽고, 컴퓨터를 사용하고, 친구에게 조언을 구하고, 차를 운전하고, 어떤 도구를 빌리고, 아침 식사로 따뜻한 오트밀을 만들고, 문자를 보내고, 은행 계좌를 사용하고, 선거에서 투표를 하는 모든 순간, 당신은 당신에게 그런 활동이 가능하도록 만들어 준 수천 명의 사람들 덕분에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 가운데 일부는 더 이상 생존해 있지 않고, 그들 가운데 일부는 이 행성의 반대편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또 그들 가운데 일부는 아마 당신의 집에 초대하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들일 것이다. 그들 모두가 당신을 돕고 있고, 당신은 그들 없이 삶을 영위할 수 없다. 이런 진실은 정치이론, 정치학, 공공 정책에 지속적인 도전 과제를 제기한다. 우리는 단순히 ‘의존의 보편성’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 이 책이 강력하게 요청하고 있는 것처럼, 상호 돌봄과 도움이 우리 인간 존재에게 공기나 물과 같음을 인정하는 데까지 나아가야만 한다.
--- p.20 나 자신의 경험을 말하자면, 내 아버지가 죽기 전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점점 더 ‘장애를 갖게’ 되었을 때, 그가 자신의 정신과 몸에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일련의 제약에 맞서 날마다 고투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는 깊은 비애감과 상실감을 느꼈다. 불치병이나 노령으로 인한 이와 같은 기능의 상실은 보편적이다. 그러나 이것이 강조되어야 하는 정확한 이유는, 삶의 말년에 겪는 심신의 제약과 관련된 슬픔 및 비극적 감정이 수많은 장애인들의 일생에 걸친 경험을 뒤덮어 버려서는 안 된다는 사실 때문이다. 장애인들은 그들 자신을 불운하거나 비극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타인들과 다를 뿐인 것으로, 그리고 예방하거나 치료받아야 할 어떤 것이 아니라 보존하고 보호받아야 할 인간 다양성의 한 표현으로 여길 수 있다. --- pp.86~87 궁극적으로 장애는 언제나 부정적이거나 심지어 비극적인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차원과 부정적인 차원 양자 모두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특히 장애에 대한 부정적이고 비극적인 이미지가 비장애인의 시각으로부터 장애인에게로 투사된 것이라면 말이다. 기존의 정치이론에 대한 도전은 결국, 장애란 하나의 결함이며 본래적으로 그리고 언제나 부정적이거나 비극적인 것이라는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관점 ― 그것은 다시 자기 자신을 단지 인간 다양성의 한 차원으로 간주하길 원하는 장애인들에게 거대한 언어적·사회적 장벽을 생성해 낸다 ― 을 대체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강력한 언어를 찾아내는 것이다. --- p.54 마지막으로 대다수 자유주의 이론에서 의존에 대한 반대말로 정의되는 자유 또는 자율성은 지금과는 상당히 다른 이해에 의해 대체되어야만 한다. 여기서 자율성 또는 ‘자립 생활’이 많은 장애인들에게 중요한 원칙이 되어 왔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이는 (일부 돌봄 이론가들이 논하는 것처럼) 자율성 개념이 무의미한 것이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자유와 의존 간의 이원론이 다른 어떤 것으로 대체될 필요가 있음을 말해 주기 때문에 그러하다. 다른 어떤 것이란 상호 의존(interdependence)일 터인데, 나는 상호 의존이 장애 포용적인 정치이론의 근원적인 지도 원칙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컨대 장애의 ‘소재지’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우리를 평등에 대한 형식적 정의가 아닌 실질적 정의로 인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장애의 ‘본질’과 원인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우리로 하여금 자유주의 이론의 자율성/권리 대 의존성/필요의 이원론을 상호 의존의 원칙으로 대체하도록 이끌어 준다. --- p.96 어떤 대안적인 척도에서 보자면, 우리 모두는 다양한 방식과 상이한 정도로 의존적이기도 하고 또 자립적이기도 하다. 우리가 생애 주기의 어떤 특정 단계에 있는가뿐만 아니라, 이 세계가 일부 인간의 변이에만 응답할 수 있도록 차별적으로 구조화되어 있는 정도에 따라서 말이다. 평등에 대한 실질적 정의와 더불어 상호 의존성이 장애의 전통적인 ‘소재지, 본질, 원인’을 뒷받침하는 이원론 ― 대다수 자유주의 이론가들에게 그 책임이 있는 ― 을 대체한다면, 정치이론은 평등과 자유라는 핵심 개념에 대한 재정의를 통해서, 시민권에 대한 그 자신의 이해 속으로 장애인을 완전히 포함시키는 긴 여정을 시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p.97 사회계약을 둘러싸고 있는 것으로 ‘비장애 중심주의적 계약’을 도입하는 나의 주된 목표는, 사회계약론에 잠재해 있는 능력 중심적인 배제의 양식을 전면에 부각함과 동시에, 이런 주변화의 형식들이 서구 정치사상의 역사에서 정의에 대한 가장 권위 있는 관념들 가운데 상당 부분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쳤는지 평가하는 것이다. 나는 사회계약론의 장애에 대한 적대적 관계를 설명하는 데 있어 능력의 문제가 하나의 규정적 요소임을 인정하지만, 그런 능력이라는 요소가 계약론이 장애인에 대한 자격부여를 구조적으로 꺼리고 있는 영역과 그 정교한 이유를 충분히 해명해 주지는 못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다른 곳에서 논한 것처럼, 로크나 루소와 같은 사회계약론자들은 그들의 이론에서 제시하는 기본적인 정치적 권리 가운데 많은 것으로부터 지적장애인과 신체적 장애인 양자를 배제한다. 로크와 루소 모두에게, 정신과 몸은 양도할 수 없고 상호의존적인 것임과 동시에 끊임없는 유동의 상태로 존재한다. 인격에 대한 이런 유물론적 설명에 따르자면, 정신에서 합리성의 인지적 발달은 필연적으로 이에 선행하는 건강하고 장애가 없는 몸의 신체적 발달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이성은 단지 얼마간 모호하고 우연적인 방식으로 몸과 연관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장애가 없는 정신은 장애가 없는 몸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그에 따라 로크와 루소는 신체적 장애인을 사회계약에서 배제하는 것을 정당화한다. 비장애인의 신체적 표준 바깥에 놓여 있는 그들의 ‘기형인’, ‘불구의’ 혹은 ‘부적절한’ 몸들이 정신에서 이성적 사고의 발달에 필요한 신체적 능력을 산출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말이다. --- p.106 최근 학자들은 비판적인 장애권의 시각에서 사회계약론을 추궁하기 시작했다. 이런 비판들은 주로 이성적 능력이라는 문제에 기반을 둔다. 이성이라는 계약의 문턱이 심각한 지적장애를 지닌 이들에게 극복할 수 없는 진입 장벽이 되고, 그에 따라 그들이 정의(Justice)라는 계약의 영역으로부터 배제되는 방식에 대한 개요를 제시하면서 말이다. 그렇지만 내가 보기에, 능력이라는 문제에만 전적으로 기반을 두고 사회계약론을 비판하는 것 ― 중요하고, 필요하며, 설득력이 있기는 하지만 ― 은 그런 이론적 전통의 핵심에 자리 잡은 차별적인 비장애 중심주의를 폐기하는 데 충분치 않다. 이런 방식의 해석과 비판은 계약론적 틀에 대한 이론적 태만을 낳는다. 이와 동시에 (내가 칸트에 대해 논하는 바와 같이) 장애인을 그들의 정치이론에 대한 체현된 적대자로 구성함으로써 장애를 명시적으로 선별해 낸 근대 사상가들이 제시했던, 장애에 대한 경험론적 기술을 종종 간과한다. 이런 적대적 구성에 따라 장애인은 단지 이성적 능력이라는 계약론의 문턱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그런 문턱을 통과했더라도 사회계약에서 배제된다. 즉 장애인은 사회계약론의 능력 중심적인 진입 장벽과는 무관하게 의도적이고 배타적으로 정의의 비주체로 ― 인격, 시민권, 그리고 때로는 인간 종의 경계 바깥에 있는 존재로 ― 간주된다. --- p.107 많은 신체적·정신적 장애인이 타인들로부터 개인적이고 ‘직접적인’ 돌봄을 필요로 하며, 그렇지 않은 장애인도 타인들과 사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사람들이 그들 자신의 개인적인 돌봄 제공자를 고용하도록 허용하는 영국 법률은 학대의 정도를 얼마간 감소시키는 데 기여하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대 사례 가운데 높은 비율이 여전히 이런 관계에서 발생한다. --- pp.503~504 그러나 〈미국장애인법〉이 가져온 장애 인식의 개선에도 불구하고, 장애를 비극, 상실, 고통으로 여기고 경험하는 이들과, 그것을 우리의 사회생활을 풍요롭게 해주는 가치 있는 차이로 여기고 경험하는 이들 사이의 분할은 지속되고 있다. 물론 많은 장애들은 이 두 입장 사이의 어딘가에 복잡한 방식으로 놓여 있다고 간주하는 편이 타당하다. 치료와 편의제공 사이의 관계에 대해 사고할 때에도 마찬가지로 그런 복잡성을 고려하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 p.526 이와 같은 경험에 비추어 보면, 장애학자들과 활동가들 사이에 존재하는 ‘치료’에 대한 적대감과 의구심은 충분히 이해할 만한 것이다. 더구나 장애를 ‘열등’하고 ‘도착’되어 있으며 ‘왜곡’된 상태로 간주하고, 그런 몸은 ‘교정되어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압도적으로 전달했던 20세기의 의료적 관행과 우생학이라는 맥락을 고려한다면 말이다. 치료라는 개념은 의학이 “사람들을 돕기 위한 가치중립적 기술이라기보다는 사회적 통제의 한 형태”로 전환되었음을 나타내는 표식이자 그 같은 전환과 함수관계에 있었으며, 오늘날 그런 것처럼 사람들은 장기적인 돌봄의 필요에 대비하는 것보다 치료에 더 높은 위상을 부여하게 되었다. 따라서 “장애인의 치료와 변화를 추구하는 가운데, 급진적인 외과적 중재와 치료 프로그램이 실행되었으며 … 그것은 대개 극심한 고통을 주는 수술과 처치로 귀착되었다.” 의료 전문가들은 오늘날의 고문에 비견될 수 있는 수술들을 장애를 치료할 수 있는 ‘최첨단’의 선구적인 방법으로 간주했다. 많은 이들이 장애를 지닌 몸은 살 가치가 없는 것으로 여겼던 듯하고, 따라서 어떤 고통이 뒤따르더라도 몸의 손상이 제거되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었다. 대개 그런 처치는, 마이클 올리버의 표현을 빌리자면 ‘천년왕국설’의 어조를 띠었다. ‘기적 같은 치료’, 완벽하고 절대적인 회복, 가까운 미래의 정해진 시기에 완수될 것이라는 신념을 장황하게 늘어놓으면서 말이다. --- p.5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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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는 인종, 연령, 종교, 민족성, 국적, 계급, 젠더, 직업을 불문하고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간단히 말해, 내 주변 사람들 대여섯 명 가운데 한 명은 장애인인 것이다. 우리가 장애인의 가족 구성원, 특히 손자나 조부모까지 포함시키고, 장애에 의해 밀접하게 영향을 받는 사람들까지 더하면, 장애와 관련된 사람들의 수는 더 늘어난다. 더욱이 전 세계적인 인구 고령화와 더불어 장애출현율 역시 증가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장애는 직접적으로 이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하나의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 본문 중에서
장애학은 역사학, 철학, 문학, 사회학 등의 영역에서 지난 수십 년 동안 왕성하게 발전해 왔지만, 전반적으로 보자면 정치이론과 정치학은 이를 따라잡지 못하고 뒤처져 있었다. 이 개척적인 저작집은 장애와 관련된 쟁점들을 정치이론의 접근법에서 본격적으로 다룬 최초의 책이라 할 수 있다. 『장애의 정치학을 위하여』는 홉스에서부터 로크, 칸트, 롤스, 아렌트에 이르기까지 정치사상과 정치이론에서 권위 있는 인물들의 주요 저작을 통해 장애를 역사적으로 분석할 뿐만 아니라, 장애가 자유, 권력, 정의와 같은 자유민주주의의 핵심 개념들을 정의하는 데 어떻게 활용되어 왔으며, 또한 이를 통해 근대적인 정치적 주체가 장애인들을 배제한 채 어떻게 비장애인 중심적으로 구성되었는지를 밝히고 있다. 『장애의 정치학을 위하여』는 장애학에 새로운 학문적 틀을 도입하는 동시에, 정치이론의 새로운 주제에 대한 광범위한 개론을 독자들에게 제공한다. 정치적인 것으로서의 장애 정치이론가들이 그들의 분석 작업에서 장애를 주요 관심사로 삼아야 할 실질적인 이유들이 존재한다. 자유주의 또는 민주주의 이론에 관여하고 있는 이들은 ‘시민권’이나 ‘인격’에 대한 자신들의 분석을 뒷받침하기 위해 대개 ‘이성’과 ‘능력’ 같은 개념들에 의존하고 있는데, 정의상 그런 개념들은 일정한 수의 장애인들을 해당 범주에서 배제하게 된다. - 본문 중에서 역사적으로 장애에 대한 정의는 시기에 따라, 또 지역에 따라 다양하게 내려졌으며, 또한 사회적·정치적 요구와 필요에 따라 달라졌다. 이런 측면에서, 이 책 1장에서 설명하고 있듯, 장애는 무엇보다 먼저 개인의 몸에서 나타나는 손상/결함(장애에 대한 의료적 모델)으로 정의되었다. 이 같은 관점에서 장애는 신의 징벌이거나, 개인적 불운(불행)의 차원으로 환원되었고, 장애인은 사회적·정치적 차원에서 비장애인과 동등한 위치에 있지 않은 열등한 존재로 간주되었다. 이후 1970년대 중반 이후로부터, 이 같은 의료적 모델에서 벗어나, 장애가 사회적·환경적 장벽의 문제에서 기인하는, 따라서 공공 정책을 통해 해소 가능한 문제로 인식되어 왔다. 장애에 대한 이 같은 사회적 모델은 장애가 그 자체로 사회적·정치적 차원의 문제라는 인식이 점점 더 늘어났음을 보여 준다. 이런 흐름은 장애에 대한 정의가 개인이 경험하는 신체적·정신적 문제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사회적·정치적 차원과 매우 밀접히 관련되어 있으며, 오늘날에는 장애에 대한 정의가 사회적 재화(가치)나 복지의 권위적 배분과 맞물려 있음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실제로, 한국에서 알코올의존증, 암 등은 장애로 정의되지 않는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2017년 이후 장애로 인정된다). 그렇다고, 장애를 사회적·정치적 차원으로 환원할 수는 없다. 외려 이 같은 환원은 치료나 재활, 특정 기술(말하자면, 장애가 있는 개인들이 더 넓은 사회에 잘 참여할 수 있도록 해주는)을 과도하게 특권화함으로써, 장애인을 더욱 주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장애를 사회적·정치적으로만 구성하는 것은 장애를 비실제적인 것으로 상정함으로써, 장애인들을 비실체화하고, 그들의 고유한 정체성을 부정하게 될 수도 있다. 『장애의 정치학을 위하여』는 장애를 바라보는 의료적 모델과 사회적 모델의 역사적 변화 과정을 살피고, 최근 등장하고 있는 신체와 환경의 상호작용적 관점에서 장애의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역설한다. 이와 관련해, 특히 1장 「정치이론과 국제적 관행에서의 장애」의 논의들은, 장애에 대한 상호작용적 이해가 장애 인권 관련 국제기구와 문서에서 먼저 등장했던 반면, 정치이론은 이 같은 변화와 흐름에 뒤처져 있는 현실이고, 이에 따라 정치이론이 외려 장애를 만들어 내는 언어적 환경의 일부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 ― 부정적인 언어(결함 같은)의 사용과 장애에 대한 귀속적 원인(불운, 불행 같은)의 상정을 통해서 ― 은 아닌지 묻고 있다. 나아가,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정치이론이 평등과 자유라는 핵심 개념에 대한 재정의를 통해서, 시민권에 대한 그 자신의 이해 속으로 장애인을 완전히 포함하는 긴 여정을 시작할 수 있기를 촉구한다. 장애를 만들어 내는 언어적 환경의 일부로서 정치이론 만일 자연의 정상적인 경로에서 벗어나 발생한 결함을 지니게 되면, 어느 누구도 그처럼 성숙한 정도의 이성에는 도달할 수 없으며, 그런 이유로 그는 아마도 법을 알 수 없을 것이다. … 그는 결코 자유인일 수 없으며, 결코 자신의 의지대로 처신하도록 허용될 수 없다. … 그리고 그와 같은 정신이상자와 백치는 결코 부모의 통치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다. - 존 로크, 『통치론』 중에서 우리는 공정한 협력 시스템으로서의 사회라는 개념에서 시작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시민으로서의 인격체들은 정상적이고 충분히 협력적인 사회 구성원이 될 수 있는 모든 능력을 지닌다고 상정한다. … 우리의 목적을 위해 여기서 나는, 통상적인 의미에서 볼 때 정상적이고 충분히 협력적인 사회 구성원이 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영구적인 신체적 장애와 정신적 장애를 지닌 이들은 제쳐 둔다. - 존 롤스, 『정의론』 중에서 『장애의 정치학을 위하여』는 오늘날 자유민주주의적 가치의 근간을 설정한 중요한 정치사상의 고전들 역시 근대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비장애인 주체를 정의하기 위해, 장애인에 대한 정의를 활용해 왔으며, 이를 통해 비장애인들을 정치적 주체에서 배제해 왔음을 명쾌하게 보여 주고 있다. 이런 비장애중심적 정치이론에서 장애인은 사회적 분업과 협력을 불가능하게 하는 존재로 간주되어 사회적·정치적 주체에서 배제되었다. 말하자면, 3장 「롤스의 정의론에서 장애의 부인과 그의 비판가들」에서 지적하듯, 롤스의 경우, 일차적으로 도덕적 행위 주체의 ‘정상적인’ 지적 능력에 대한 한계를 설정하기 위해 장애를 소환한 후, 이차적으로 사회 성원권과 정의에 대한 요구권에서 장애인을 배제하는데, 이 같은 ‘이중적 부인’(도덕적 행위 주체에 대한 부인, 사회 성원에 대한 부인)을 통해 롤스는 의도적으로 근대적·합리적 주체의 범주에서 장애 정체성을 누락시키고 있다. 『장애의 정치학을 위하여』에서 첫 번째 부분에 해당하는 1장부터 4장까지의 내용은 모두, 근대 서구 정치이론 내에서 이루어진 장애에 대한 과거 및 현재의 정의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문제적임을 분명히 보여 준다. 나아가 이 같은 문제적 정의들이 장애인의 정치적 권리 및 성원권과 관련해 대단히 심각한 결과로 이어짐을 밝히고 있다. 『장애의 정치학을 위하여』는 비장애인 중심으로 설정되어 있는 정치이론의 핵심 가정들에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며, 이를 시급히 재정의해야 할 필요성을 제시하고 있다. 장애가 이 사회에 던지는 도전 우리는 이 책이 다른 학자들로 하여금 가능한 모든 관점에서 장애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도록 초청하는 하나의 초대장 역할을 해주길 희망한다. - 본문 중에서 장애는 근대 계몽주의 철학의 기반을 이루었던 합리적·이성적 개인의 탄생에 활용되어 왔지만, 반대로 그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중요한 비판의 지점이자, 남성과 여성을 비롯한 다양한 성과 젠더, 백인, 흑인을 비롯한 다양한 인종은 물론이고 이와 교차해서 인간의 다양성에 대해 비판적으로 다시 사고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이는 장애가 개인이나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아닌, 개인이 부조리한 사회에 대응하고,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출발점을 제시한다. 예컨대, 5장 「울스턴크래프트, 홉스, 그리고 여성들의 불안에 존재하는 합리성」에서 아일린 보팅은 특히 불안에 대한 현대 의료계의 이해가 여성들이 불안의 생산적 잠재력을 인식하는 것을 가로막으면서(그에 따라 모두를 ‘환자’로 취급하면서) 그녀들이 불안을 다루는 데 어떤 식으로 부정적 영향을 미쳤는지 고찰한다. 보팅은 의료계에 의해 전략적으로 사용되어 온 불안에 대한 부정적 정의들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지배적 내러티브(여성들 사이에서 급증하고 있는 불안이라는 ‘유행병’을 경고하는)를 무너뜨리며, 가부장제의 맥락 속에서 여성들의 불안이 전략적 의미를 지닌 정서적·정치적 역량으로, 그리고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들이 직면하는 도전들에 대한 합리적 반응으로 이해될 수 있음을 논한다. 불안이 합리적 측면과 감정적 측면 양자 모두를 지닌 것으로 올바르게 인식된다면, 불안은 타인에 대한 돌봄과 불확실성에 대처할 수 있게 하는 동시에 그런 불안이 생성되도록 조력하는 권력관계에 도전할 수 있도록 하는 도구로서 사람들에 의해 활용되고 존중될 수도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캐시 E. 퍼거슨은 6장 「난독증을 위한 선언」에서 난독증 사례를 활용해, 장애가 지닌 상호작용적 본질과 장애를 긍정적인 것으로 재고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유사한 시각을 제시한다. 난독증을 손상이 있는 학습자의 실패라기보다는 교육기관의 실패로 이해한다면, 그것은 장애라기보다는 신경다양성(neurodiversity)의 한 양상으로 재설정될 수 있다. 난독증이 이처럼 신경다양성, 다시 말해 인간 경험의 다양성 가운데 하나로 간주되고 나면, 그 해법도 바뀐다. 이런 논점들은, 장애를 손상과 한계만이 아니라 잠재적 이점으로서 주목해 온 장애학 학자들에게도 흥미로운 지점을 제기한다. 도널드슨과 킴리카 역시 7장 「비배제적 민주주의에서의 성원권과 참여를 다시 생각한다」에서, 시민권이 후견주의적 자선 모델을 넘어 장애인들이 자신들의 삶을 형성하고 지역사회에서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보호할 수 있는 정치적 권한을 갖는 모델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심각한 인지장애를 지닌 사람들의 선호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참여라는 것은 (참여를 가로막는) 장벽을 제거하고 각 개체들에게 적합한 방식으로 참여를 적극적으로 촉진하는 데 국가가 능동적으로 관여하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 책의 두 번째 부분을 이루는 5장부터 11장까지의 논의들은, 장애가 현대사회와 정치 문제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는 방법을 보여 주며 가능한 길을 제시한다. 조금 자만하는 듯 들릴 수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말하자면, 우리는 이 저작집에 실린 논문들이 시민권과 권력에 관한 기존의 정치이론들에 대해 미묘하고도 정교화된 비판을 제공한다고, 그리고 이는 다시 장애 정체성에 대해 좀 더 비배제적이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대안적인 정의들, 원칙들, 이론들을 제시한다고 믿는다. 아이러니하지만 이런 대안들은 그 자신이 비판했던 근대 정치이론의 언어 ― 권리, 시민권, 평등, 자유 ― 를 용도 변경해서 재사용한다. 대안들이 제시하는 논변들은 각기 다르고, 몇 가지 합의점과 더불어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지점도 존재하지만, 그 메시지는 간명하다. 근대 정치이론의 핵심 원칙들 ― 특히 합리적이고 원자적인 개인이라는 이상화된 관념 ― 은 장애를 배제하지 않는 정치이론에 길을 열어 주기 위해 폐기되어야 하지만, 만인에 대한 평등과 자유와 정의라는 원칙은 돌봄의 공동체 내에 뿌리내린 개인들이라는 이해 속에서 유지된다는 것이다. 공동체와 환경은 오랫동안 장애인에게 물리적·지적 장벽의 원천이 되어 왔지만, 이 책의 논문들은 장애인이 시민으로 포함될 수 있고, 공동체를 그들 자신의 삶에 대한 권능강화의 매개체로 용도 변경할 수 있다는 희망의 실현을 돕는다. -본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