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들어가는 말
1부 작가 2부 업계인 3부 철학자 4부 스파이 감사의 말 출전 찾아보기 |
김영준의 다른 상품
|
내 입장에서 출발점은 ‘업계인’이다. 업계인은 작가와 철학자와 스파이를 제외한 모든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다. 내가 업계인이다. 이런 말을 쓰니 좀 이상한 기분이 들지만 아무튼 직업적으로, 사회적으로, 실체적으로 나는 분명히 업계인이다.
‘스파이’는 업계인에 완전히 포획되지 않은 내 존재의 나머지 부분을 말한다. 그것은 그 자체로는 보이지 않다가 업계인을 매개로 해서만 모습을 드러낸다. 예컨대 회사에서 내 줄 생각이 없는 책을 어떻게 은근슬쩍 끼워서 낼 수 없을까 궁리하는 것이 스파이다. 여기에서 스파이를 개인의 순진한 욕망처럼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꼭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스파이는 곧 교활해지고, 업계인이 순진함을 대신 담당하게 되는 역전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들어가는 말」중에서 우리는 안나가 사교계에서 겪는 온갖 모욕과 추방을 신이 주는 벌과 구별할 수 있을까? 다르다면 뭐가 달라야 할까? 신의 역사(役事)는 사실 어리석고 잔인한 인간들을 동원하는 식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이 제사의 본뜻은 ‘어떤 벌을 받는지 보라’가 될 것이고, 우리는 이야기의 압력이 미칠 듯이 상승한 것을 보게 된다. 왜냐하면 신의 개입이 선언된 이야기에서 필연적이지 않거나 무의미한 것은 하나도 없을 것이고, 모든 미세한 행위들은 동등한 중요성을 가지고 결말로 날아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고, 모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으로 불행하다.” 유명한 첫 구절인데, 핵심은 그 닮음의 실체가 뭔지 작가가 안다는 것이다. 행복한 가정들은 닮았다. 신의 은총이라는 단일한 공통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그게 없으면 제각각의 인간, 제각각의 불행만 남을 뿐이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신의 은총. 1000페이지가 넘는 책인데 첫 줄에 할 말을 다 써 놓고 시작했다!(문호는 이렇게 해도 되는 것이다.) ---「무수한 불행과 하나의 행복 사이에서」중에서 신참 때 어느 저자가 보내온 장황한 약력을 편집할 일이 있었다. ‘사실만 남길 것’이라는 지침을 받았지만 어려운 주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대표의 빨간 줄이 쳐져 되돌아왔다. “‘근간’ 같은 건 넣지 마라.” “한 달 뒤에 나올 책이라고 하셔서요.” 대표가 반문했다. “아직 안 나온 책이면 아직 사실이 아니지 않나?” 핵심은 책의 저역자 소개가 자기표현의 공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책 내용의 신뢰성을 보증하는 공간일 뿐이다. 백 퍼센트 보증된다고 하지는 않았다. 다만 저자가 자신을 공개할 마음이 없으면 신뢰성 보증은 출발도 할 수 없다. ‘그건 문제가 아니다, 나는 오직 책의 내용으로 승부한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저자가 있을지 모르겠다. 독자 입장에서는 저자 약력이 써 있는 방식을 보면 책 속에서 사실이 어떤 취급을 받을지 예감하게 되는 법이다. ---「저자 약력의 의미」중에서 우리는 허기진 사람처럼 물건을 사서 공간을 채우므로’ 따라서 ‘뭔가 반대되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고정관념이 생겼다. 진실은, 큰 시간 단위로 보면, 우리가 열심히 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공간이 좁아서, 또는 새 물건을 들이기 위해, 또는 심리적, 심미적 이유에서 많은 사물들과 작별한다. 일상이 된 이 버리는 삶은 삶의 허망함의 주된 원인으로 느껴질 정도이다. 허망함은 정직한 감정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물건과 의미 있는 연관을 만드는 데 실패했고, 물건의 가능성을 완전히 써 버리지도 않은 채 버리고 있음을 잘 알고 있으며, 우리가 인생을 다루는 방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이미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완전한 소모」중에서 2004년 에이전시로부터 연락이 왔다. 르카레 저작권사에서 한국 출판사를 찾고 있는데, 조건은 전작 열여덟 권(당시)을 모두 계약하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대표와 상의했다. 내가 르카레라는 작가에 대해 뭐라고 설명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놀랍게도 대표는 처음부터 호의적이었다. 르카레가 열여덟 권의 작가라는 것, 현역이라는 것, 거의 국내 미출간이라는 것, 이쪽에서 요청하기도 전에 그쪽에서 한 출판사에 몰아줄 방침이라는 것 등등이 대표의 마음에 들었다. 그런 작가는 찾기 힘들다. 에이전시와 계약에 합의가 되어 계약할 책의 순서를 정해야 했다. 좀처럼 드러내지 않던 단호함을 보이며 나는 세상없어도 두 권을 제일 먼저 계약해야 한다고 했다. 그게 뭐였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와 『팅커』는 2005년 출간되었다.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는 정식 계약본으로는 최초이고, 『팅커』는 국내 초역이다. 이제 소망이 이루어졌나? 업계인들이 알다시피 어떤 책이 출간되고 모두가 행복해지는 얘기 같은 건 없다. 진짜 민망함은 이제부터인데 『팅커』가 너무 안 팔린 것이다. …… 판매가 이 정도라면 저작권 계약 연장을 하지 않는 게 정상이다. 다른 일이 없었다면 책은 절판되었을 것이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에 대한 회상」중에서 |
|
소설의 재미가
미친 듯이 상승할 때 인생의 진짜 주제가 마침내 밝혀진다 세계문학을 기획하고 편집하는 일을 오래 해 온 김영준의 글을 따라가다 보면 소설이 문득 충격적으로 재미있어진다. 평범한 등장인물이 처음 보는 표정을 짓는다. 역사와 철학, 영화와 음악을, 업계의 안과 밖을 오가는 특유의 시선 때문이다. 어느 해의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프랑스 작가의 초대로 각국의 편집자들이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다. 참석자는 모두 프랑스 말을 잘하지만, 한국인인 ‘나’를 배려해 영어를 쓴다. 그런데 늦게 도착한 어느 유럽인이 이미 아는 사람들과 프랑스 말로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이제 테이블은 프랑스어 사용자 대 영어로 대화하려 애쓰는 사람들로 나뉘게 된다……. 이 도서전 일화에서 김영준은 ‘진짜 주제’를 찾아낸다. “어떤 상황에서든 우정을 참지 못하며, 이 세상을 친구가 모인 놀이터, 확장된 동문회장으로 보는 태도는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는 것.(「타자가 들어온 방에서」) 손님이 있는 자리에서 ‘나’에게만 친한 체를 하거나, 공적인 자리에서 ‘선배님’ ‘선생님’ 호칭을 쓰는 이러한 태도는 과연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보는 모습이다. 세속적인 일상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의미를 건져내는 김영준 특유의 글쓰기다. “우리는 소설을 통해서 지식을 얻는다. 그런데 그 지식은 약간 진기한 종류의 것으로 다른 데서는 찾을 수 없다. 그것은 작가가 이미 알고 있던 지식이 아니라 새로운 상황에서,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비로소 발견하게 된 지식이기 때문이다.”(「전지적 작가」) 김영준 또한 글을 쓰는 과정에서 발견하게 된 지식을 쓴다. 미리 정해진 결론으로 질주하기보다 “생각의 커브와 교체를 보존하고 있는 울퉁불퉁한 글”은 독자에게 잊을 수 없는 독서의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