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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1부 깊이 읽기 그것은 예술이 아니어야 한다 너무 많이 아는 작가 지나치게 충족 정의롭고 도덕적인 쇼핑 그레이엄 그린과 순진한 미국인 죽음의 집의 기록 읽고 쓸 줄 아는 놈들은 모두 죽여라 예술가에 대한, 예술로서의 소설 이 집에 여자는 없습니다 어쩌면 시작될 필요가 없었던 실험 두려운 정열의 이야기 공정한 게임의 한계선 지미 호파 실종 사건 서명을 위조한 여자 상상의 자서전, 9.11, 그리고 오토픽션 중국 스파이 소설가의 고뇌 에세이에서 소설로 2부 책 바깥을 읽기 5000권과 한 권 각본을 책으로 낸다고? 번역과 정보 역자 후기는 없나요 왜 구글에 안 물어봤을까? 원고는 불타지 않는 법 위키피디아와 싸운 사람 인공지능이라는 스승 작가란 무엇인가 찾아보기의 운명 책 버리는 도서관 책을 버리고 계시나요 책의 진정한 가격 3부 빠르게 읽기 없애지 못하다 자기 심장을 뜯어 먹기 시작하면 어느 부치지 않은 편지에 대하여 균으로 만든 거대서사 바빌론에서 평양까지 어느 집안의 윤리적 선택 황제라는 기이한 배역 여객선에서 사라지다 엘리아스의 공백에서 간결한 메시지에 저항하라 왜 이민자 요리를 탐구하는가 영 안 풀리는 남자들 낸시의 줄자 생각이 사라지는 날 회계 장부와 일기 사이 대담한 자와 신중한 자 도둑질의 임계점 내가 이 일을 할 자격이 있을까 저작권이 폐기될 수 있는가 조선족은 역사의 패배자일까 문학에 귀순하기를 원치 않는다 중국의 애늙은이 세대 중산층은 늘어날까 당파성과 부족의 시대 6월인가 7월인가 세상을 바꾸고, 세상을 망치고 슈퍼 전파자, 오버스토리, 임계량 당신은 우리 미술관에서 해고야 배제된 자를 떠올리게 하다 4부 일상 읽기 9대 언어가 된 한국어 토르의 모험 두 번째 주제 가격이 알려주는 것 노코멘트 녹음기와 인터뷰 당신 정체가 뭐야 두 개의 스포일러 로봇 청소기 머리를 두고 온 사람 멀티태스킹 명필과 붓 무슨 말 하는지 다 안다 선물 재사용 스노비시 시네이드 오코너 사건 아이러니의 실패 아이콘과 예술가 오후 12시 우마렐 우연의 도움으로 유체이탈 정보 실패 초인종을 누르기 전에 초코파이를 주는 소년 커다란 장부 한 권 타인의 취향 TV 토론의 승자는 필기체 5부 미스터리 읽기 아무도 체포되지 않지만 용서도 없는 장르의 권장선을 초과하다 불가능한 추리소설 미국 소도시 유토피아의 곤경 이들 중 한 명은 사라진다 과학 대신 마술 아닌 척하는 유토피아 쇼와 시대 사회파 추리소설의 역설 죽은 딸이 걸어 들어왔다 리오, 당신은 미쳤습니다 속죄하는 탐정의 탄생 여기 어떤 부자가 놀고 있다 아메리칸드림과 죽음의 저항값 도덕에 미쳐 있는 철학자들 내면으로의 섬뜩한 여행 엘레나가 금지한 것 움베르토 에코에게 힌트를 주다 인종주의의 배를 가르면 40년 전으로 내려가다 추리소설의 난문에 관하여 추리소설에서 역사소설로 기념비적 전작 출간 마지막에 죽음의 배가 온다 추리소설, 뒤렌마트의 중간 기착지 미국 흑인의 하드보일드 본문에서 다룬 책 목록 발표 매체 및 시기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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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이를 소설이 아닌 에세이에 넣어 디테일을 보존한다. 에세이는 어떻게 그런 보존이 가능한가? 그 디테일의 보존이 에세이의 목적이며 이를 방해할 어떤 규칙도 없기 때문이다. 즉 에세이는 문학으로 취급되고 있는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경험의 문학화를 제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만일 운 좋게도 작가가 어떤 경험을 디테일 손상 없이 소설에 집어넣는 데 성공했다고 하자.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느 등장인물의 경험으로 묘사된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본래의 경험과는 다른 맥락을 갖게 된다.
---p.30 좋은 에세이라는 건 있을 것이며 이를 판별하는 기준은 그리 복잡하지 않을 것 같다. 디테일이 많을 것. 다른 것(문학적 수사, 주의 주장, 아포리즘 등)은 적을 것. 그럴 때 에세이를 높이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에세이는 자유로운 형식이므로, 바람직한 에세이의 모습을 너무 열심히 강조하지 않는 편이 좋을지 모른다. 부질없게 규칙을 만들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다. 우리가 몽테뉴의 의도와 지향점이라고 얘기해온, 디테일과 비문학화, 개인성과 회의주의 역시 규칙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결과적인 참조 사항, 추출된 정신적 태도 이상일 수는 없다. 그러나 딱히 이런 태도가 아니라면 굳이 에세이를 써야 할 이유가 있을까. ---pp.34-35 아도르노의 놀라운 점은 이 짐작을 실제로 금지한다는 것이다. 작가는 아는 권리를, 안다는 듯 쓰는 권리를 행사하지 말아야 한다. 그 모든 조작이 이미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어야 한다. 그럴 때 쓸 수 있는 소설은 어떤 모습일까. 나로서는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도스토옙스키나 토마스 만이 나서도 합격할 수 있을까. ---p.40 ‘다큐멘터리’는 객관적 진리가 존재한다는 입장이다. 내가 거기로 가야 한다. 아마 리얼리즘 창작물도 여기에 속할 것이다. 반대로 ‘픽션’은 내가 가진 것으로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그것이 나에게 온다. 예컨대 촬영 중 갑자기 내리는 눈처럼 말이다. 이것은 에세이의 태도와 가깝다. 실제로 그가 찍는 영화들은 갈수록 에세이 같은 느낌을 준다. ---p.44 그들의 정의 관념은 뒤로 갈수록 점점 더 요란하고 과격해진다. 그들은 도덕을 팔아넘긴 게 아니라, 새로운 버전의 도덕으로 무장한 것이다. 『노부인의 방문』이 가장 인상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바로 이런 자기기만과 집단 최면의 과정이다. 우리는 깨닫게 된다. 사람은 어떤 선택을 하든 스스로가 도덕적이라는 환상을 유지한다는 것을. ---p.58 해리는 악에만 물든 게 아니라 유치해졌다. 도덕적 추락과 지적인 추락은 같이 가는 것이다. ---p.60 점점 그의 착함은 유치함을 넘어 불길한 색조를 띤다. 미국인은 자신의 마음이 불편한 것과 윤리를 혼동하고 있다. 마음이 불편하지 않으면, 혹은 마음의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그는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자신이 일으킨 온갖 문제에 대하여 그토록 당당한 동기를 내세우는 사람을 나는 본 적이 없었다.” 현지 사정을 결코 이해하지 못하는 미국인의 신념은 이곳에서 재앙으로 귀결된다. ---p.64 아셴바흐는 데카당이라기보다는 고전주의적이다. 그랬기 때문에 이 소설의 주인공으로 선택되었을 것이다. 그는 인생에서뿐만 아니라 예술에서도 억압적인 규율을 내면화했다. 그런 사람이므로, 미와 욕망 앞에서 자신을 지키지 못하고 파괴되는 과정이 더 시간 걸리고, 더 자기기만적이고, 더 흥미로운 것이 된다. 그는 자신이 파괴되고 있다는 걸 인지하지만 인생과 예술 중 무엇을 지켜야 할지를 모른다. 무엇이 무너지고 있는지 모르고 있기 때문이며, 이미 예술을 인생의 규율 같은 것으로 만들어놓음으로써 본인도 둘을 구분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pp.90-91 광기는 피란델로의 가장 중요한 주제가 되었고, 그는 이를 도덕적, 인식론적 문제로 다루었다. 정확히 미쳤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을 판정하는 것은 누구인가? ---pp.101-102 이 문제는 차라리 우리가 외국과 그들의 문화를 평이한 시선으로 바라보기가 얼마나 힘든가에 대한 예증으로 보인다. 몇 개의 사소한 기억과 인상이 전체적인 시야를 끊임없이 뒤흔들기 때문이다. ---p.145 이 구절이 좀 놀라운 건, 책의 다른 특성-예를 들어 저속함-이 아니라 ‘많음’이 자신을 역겹게 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는 존재의 과잉 앞에서 느끼는 무기력과 역겨움을 묘사한 사르트르의 『구토』(1938)보다 2년 빠르다. 오웰이 책에 대해 가졌던 사랑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었다. 책 실물을 감촉하고 냄새 맡고 잡동사니에서 흥미로운 것을 찾아내는 육체적 모험에 가까웠다. 사물과의 이런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관계가 생업에서 유지될 방법이 있을까. 자신과의 관계 수립을 거부하는 5000권의 낯선 책 앞에서 그는 압도당하고 진저리가 난다. 출판사 신입 직원이 책 재고 더미의 철저한 무관심 앞에서 경험하는 충격도 이와 같다. 오웰은 결국 헌책방을 그만둔다. 근무한 지 14개월 만이었다. 없음이 아니라 과잉이 사랑을 죽였다고 말하는 이 이야기의 교훈은 뭘까. 무엇이든 오래가려면 희소성을 유지하라는 것일까. 오웰은 그런 답을 주지 않는다. 생업이란 무엇을 많이 만들거나 많이 파는 일이며, 적게 해도 된다면 그건 생업이 아니라는 뜻이다. ---pp.192-1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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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형식의 변화를 몸으로 기억하는 사람
편집자, 그것도 업력이 긴 베테랑 편집자가 생각상자를 열 때, 독자가 기대하는 것 중 하나는 책이라는 문화 형식에 대한 남다른 관찰이 만들어낸 어떤 지적 모멘텀일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기대를 한껏 충족시켜준다. 업계에 오래 몸담은 저자는 책의 형식이 조금씩 계속 바뀌는 것을 몸으로 기억한다. 밀란 쿤데라는 “책의 글자 크기가 점점 작아지고 있”는 데서 문학의 종말을 상상한 적이 있다. 김영준은 역자 후기가 사라지고 색인이 생략되는 데서 인문학 붕괴의 조짐을 읽는다. 그는 어느 날 서점에 갔다가 두툼한 평론집을 펼쳐봤는데, 거기엔 색인이 없었다. 다른 신간 평론집들도 살펴봤더니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이건 서점이나 출판사가 문을 닫았다는 소식 못지않게 좋지 않은 징조로 보였다.” 평론집에 굳이 색인을 넣어야겠냐고 반문할 사람도 있겠지만, 그는 평론집이 비평서와 동시대 문학 자료집의 성격 둘 다를 지니므로 필요성도 두 배라고 본다. 색인은 본문이 아니다. 따라서 이게 사라지는 현상을 눈치채거나 아쉬워하는 사람은 적을 것이다. 저자의 생각은 다르다. 편집 마지막 과정에서 색인 작업을 빠뜨리지 않았던 그에게는 이것이 “신비로운 성분 분석표”이자 출판사의 성의를 가늠하는 잣대가 된다. 역자 후기가 사라지는 현상 역시 예사롭지 않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역자 후기가 없는 책이 오히려 눈에 띄었지만, 이제는 들어간 책이 드물 정도다. 사실 번역가의 후기를 읽어보면 마지못해 쓴 티가 나며, 아무도 관심 갖지 않을 번역 중의 병치레 같은 것을 적어놓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솔직함이 역자 후기의 본질 아닐까”. 역자는 오랜 세월 저자의 그림자처럼 여겨져왔고, 그래서인지 저자의 글에 뒷말을 보태는 걸 겸연쩍게 생각해왔다. 하지만 후기의 생략이 본격화되는 듯한 현상을 접하며 김영준은 “인문적 세계의 영토가 점점 축소된다”고 느낀다. 사라질 역사의 마지막 페이지를 포착하는 것은 이처럼 오래된 편집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김영준의 글쓰기는 종종 제3자적 거리감과 온도감을 보여준다. 「책의 진정한 가격」에서 그는 인터넷 중고책방에 정가의 다섯 배쯤 높게 올려놓는 판매자들을 보면서 불만을 제기하지 않는다. 일반 소비자들은 정가와의 격차 때문에 울분을 터뜨리지만, 사태를 꿰뚫는 데는 감정의 개입보다 관점을 재고하는 게 더 현명한 방법일지 모른다. 살면서 새 책보다 헌책을 더 많이 샀던 그는 신흥 중고시장의 가격 메커니즘을 밝히는 데 집중한다. 그리고 절판되기 한참 전부터 책 정가의 두세 배 가격을 책정해두고 기다리는 판매자들을 규정하는 한마디 말을 한다. “이들은 시간과 싸우고 있지 않다. 시간은 이들의 편이다.” 인문학 책이 빠른 속도로 절판되는 것은 결국 빠른 속도로 줄어드는 독자 때문이고, 그러니 은폐돼 있던 진정한 가격의 시간이 도래하도록 부채질하는 것은 다름 아닌 독서 대중이라고 할 수 있다. 확신을 덜어내고, 유보하는 글쓰기 김영준의 글은 분명하게 자르거나 누군가를 전적으로 편드는 것을 꺼린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확실한 신념과 이념이 아니며 그것들 사이에 있는 틈이다. 그 틈이 바로 그의 메시지다. 그는 정답을 내리길 유보한다. 그 유보 속에서 나와 다른 타인들이 자리할 공간이 넓어진다. 그의 서평들은 함의를 끌어내고 저자를 옹호할 때조차 단정적이지 않다. ‘…일지도 모른다’는 그가 가장 자주 쓰는 종결형이다. 이처럼 불확정적인 애매성 속에서 사유하는 것은 지크프리트 크라카우어가 강조한 ‘인본의 방식’이라 할 수 있다. 모든 고정된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 혹은 대의나 철학적 사변에 대한 불신 같은 것으로서 말이다. 예를 들어 토마스 만, 카프카, 쿤데라, 아도르노가 보여준 ‘현대’의 개념을 짚으면서 그는 한발 더 나아가려 시도한다. 하지만 그게 무엇인지 독자로서 정확히 잡히지는 않는다. 그는 논객이 아니다. 그렇지만 많은 논쟁의 틈에 서서 다른 사람들이 말하지 않은 방식으로 무언가를 드러낸다. 그는, 비유하자면 소설적 태도로 사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에 참여적 메시지를 던지기보다 참여하지 않으려는 소설적 태도(쿤데라와 랑시에르는 소설이 세상에 참여적 메시지를 던지는 순간 타락의 길을 걷게 된다고 말했다). 『편집자의 책읽기』에서 다루는 책들은 그가 사고와 정서의 기초를 놓는 데 자원이 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 텍스트들은 그의 글을 통해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난다. 그의 문장은 재치 있다. 이를테면 순수한 문학성과 장사꾼의 언어를 결합시킨 “죽음은 에세이의 사업을 좌절시킨다” “문화 산업은 이런 식의 의심 없는 내러티브의 공장이다” “문학은 어떤 지식을 산출한다고 이야기되지만 그 양은 투입 비용 대비 무한히 작은 수준이다”와 같은 아포리즘적 문장은 독자에게 쾌감을 안겨준다. 수많은 외서를 기획하고 편집하면서도 퇴근 후 그가 주로 들른 곳은 헌책방이었다. ‘의도’와 ‘기획’으로 포화된 사무실에 종일 있다보면 사람은 직선적으로 되고 뻣뻣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일을 마친 그는 의도의 세계와는 정반대인, 우연한 발견과 즉흥적 결정의 세계 즉 헌책방으로 가곤 했다. 그런 성격이기에 어쩌면 책 뒤에 실리는 색인 작업을 하는 데에만 꼬박 일주일을 쓸 수 있었는지 모른다. 또는 절판된 책을 복간시키며 처음부터 다시 원서 대조 작업에 들어간다거나. 이런 모습은 그 꼼꼼함이 회계사나 경리의 치밀함과 언뜻 비슷해 보이면서도 실은 그와는 정반대에 위치해 있음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 김영준은 ‘왜일까’ ‘정말 그럴까’와 같은 의문형 문장을 종종 쓴다. 언뜻 이것은 평범해 보이지만, 상당한 분량의 글을 어떤 사람이나 사태의 전모를 밝히는 데 쓴 다음에 나오는 질문이기에 반전을 예고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이런 사고방식은 다루는 대상에 대해 추정과 추측의 여지를 남겨둔다. 사고의 문을 닫지 않는 것, 결론을 쉽게 내리지 않는 이런 습관은 그가 전문적으로 편집해온 ‘미스터리 읽기’를 통해 형성되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반대로 이런 태도가 그를 미스터리의 세계로 끌어들였을지도 모른다. 관습에서 벗어나 불가능한 탐험을 해보는 자세는 이 책을 관통하는 일관된 흐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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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 시대 한국의 편집인이 쓸 수 있는 가장 좋은 독서 안내서 중 하나다. 이 책을 읽으면 양서에 대한 정보와 독해의 길잡이를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잘 마른 빨래 같은 문체를 즐길 수 있다. -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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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김영준 편집자는 출판과 독서에 관한 어떤 주제에도 지혜로운 답을 구할 수 있는 백과사전이다. 가장 좋은 것은 그가 통달한 고전 작가들의 것처럼 단정하고 위트 있는 그의 글이다. 책을 읽고 만들고 파는 그 모든 세계의 이야기가 관록 있으면서도 충격적으로 신선한 관점으로 전개된다. 마치 나만 비밀리에 알던 보물함을 공개하는 듯한 심정으로, 나의 독서 친구들에게 동지애로 권한다. - 김명남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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