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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부 숲의 연대기

숲에서 숲속으로 / 꽃을 흘리다 / 태양의 숲 / 말더듬이의 노래 / 랭보와 헤어지던 여름 / 그림자놀이 / 개구리밥 / 꽃물 / 단풍들의 결혼 / 낫을 갈 때가 아니다 / 고물상 / 양동이에 담긴 달빛 호수 / 무지개의 받침돌 / 따라간다 / 박새 / 벌써부터 그리운 / 늑대의 후예 / 개꿈이어도 좋다 / 숲이 나를 허락한다면 / 오랑우탄 / 호루라기 새 / 얼음폭포 / 굴절 / 구름책

2부 열매행성

꽃연 날리다 / 헛꽃 / 수박 / 참외 / 옥수수 / 옥수수 / 복숭아 / 그게 한 이슬의 밤이고 아침 / 삭사이와만 / 데린쿠유 / 올멕 두상 / 롱고롱고 시 / 되돌아가지 않은 발자국 / 과거의 망령이 나를 쳐다본다 / 공중보행자 / 꿩 먹고 알 먹으면 / 멸종의 역피라미드 / 탑을 무너뜨리다 / 소라게 / 돌연사박물관 / 녹슨 말 / 벌의 날 / 벌집 쑤시다 / 망치를 든 남자 / 구상번개 / 넝마와 들꽃 / 천상의 나비들 / 박주가리 시 / 빙판길 / 나무인간의 염불

3부 달마를 마중하다

달마를 마중하다 /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 / 몸이 들려주는 얘기들 / 내 몸의 조상들 / 할머니에게 젖을 물리다 / 흰 눈썹의 색은 눈보라 / 비듬 / 이런 하해와도 같은 / 유심唯心 / 턱 턱 턱 / 의자가 있는 풍경 / 태양의 연못 / 한글세대를 위한 불교 / 빗소리 / 시소 / 순례의 본산 / 일갈 / 신발 벗는 걸 깜빡했네 / 보리 / 화답 / 알몸으로 구름 덮다 / 여기 니 말고 또 누가 있디? / 그 미소에 길을 잃다

해설

오랑우탄-시인과 야생의 기억 / 우찬제 (문학비평가·서강대 교수)

저자 소개 1

1962년 춘천 출생. 강원대학교 자원공학과를 졸업하고 1986년 계간 『세계의 문학』에 작품을 발표하며 시단에 나왔다. 시집으로는 『검은지층』(1990.세계사), 『저녁의 첼로』(1993.민음사), 『동물시편』(2017.아이북), 『은둔자들(2021.강), 『열마리곰』(2021.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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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5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174쪽 | 220g | 124*210*20mm
ISBN13
9791190715065

책 속으로

최계선은 등단 초기부터 나무와 더불어 살기를 좋아했던 ‘자연의 순례자’였다. 가령 「나무에 기대다」에서 “나무가 꽃 피운 열매들, 떨어진 잎사귀들을/ 다시 제 몸으로 걷어들여 꽃 피운 향기들,/ 그러한 나무에 온갖 것들을 기대고 살고 싶은 나무 아닌 나”(『저녁의 첼로』, 민음사, 1993, p.12) 같은 부분에서 명확히 확인할 수 있거니와, 그런 성정은 이제 더욱 깊어진 것 같다. 그야말로 자연스러운 일이다.

「숲에서 숲속으로」에서 숲은 단순한 배경이나 주어진 환경이 아니다. ‘숲에서 숲속으로’라고 굳이 ‘숲속’을 강조한 것은 숲과 인간의 분리를 넘어서기 위함이다. 숲을 배경 삼아 멋진 사진을 찍어대던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멀찌감치 비켜나 있다. 숲속에서 인간은 숲의 한 분자가 되어 다른 무수한 분자들과 같이 호흡하고 스며든다. 이 자연의 순례자는 숲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숲과 나무들에 고해를 먼저 단행한다.

「숲이 나를 허락한다면」에서 시인은 무엇보다 “인간의 시선이 숲에 닿으면 그때부터 여지없이 들려온 도끼 소리”부터 반성한다. 인류의 도끼 문명이 성장할 때 “숲은 딸꾹 숨 감추고, 모든 생명이 무용(無用)이 되어서, 곁눈의 바람도 나뭇잎 뒤에 숨어서, 소리도 화석 틈으로 스며”들 수밖에 없었음에 유감을 표한다. 그러면서 아직 “숲이 숲이었을 때”의 야생의 기억을 풍경처럼 환기한다. …… 그러니까 도끼를 들지 않은 이 작은 자연의 순례자는 “숲의 무언가”가 되고 싶은 것이다. 숲을 대상화, 타자화하지 않고 숲과의 상호주체성을 획득하기를 소망한다. 아니 더욱 겸손하게 숲의 스승들을 섬길 준비가 되어 있다. 그래야 숲의 오케스트라에 동참할 수 있겠기 때문이다.

숲의 안부
숲의 소식 그리고
숲의 스승들이 나누는 아주 일상적인 대화
그런 숲의 속삭임
나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숲이 나를 허락한다면
-「숲이 나를 허락한다면」 4연

『롱고롱고 숲』 Ⅰ부의 마지막 시편인 「구름책」은 숲속의 오랑우탄이 아니고는 불가능할 절창이다. 오랑우탄-시인의 극적인 경지를 선사한다.

나무의 무성한 잎 틈바구니로
하늘 올려다보면
나무의 수많은 가르침이 상형문자로 적힌
구름책
만날 수 있다

하늘 가장 앞자리에 자리 잡은 거미가
바람이 넘기는 책갈피 한 장
한 장
다리 뻗고 읽고 있다
-「구름책」 전문

이 오랑우탄의 구름책에 대해서는 군말이 필요 없다. 아니 군말이나 덧말은 이 시에 대한 모독이 될 수도 있겠다. 겸허하게 구름책 읽기에 거미처럼 동참하는 게 제일 좋다. 이 구름책은 오로지 숲에서만 감각할 수 있고, 읽을 수 있고, 읽으면서 탄력적으로 새로 쓰는 텍스트다.

이 시집 『롱고롱고 숲』을 닫는 끝 시 「그 미소에 길을 잃다」에서 시인은 대자연의 미소에 홀려 길을 잃었는데도 걱정이 없다고 했다. “걱정도 잃어버렸을까?” 그러면서 해탈의 경지에 가까이 가려는 것일까, 우리의 오랑우탄-시인은? 길을 잃음으로써 길을 얻은 것일까, 역설적으로? 여섯 번째 대멸종의 위기를 성찰하고자 오랑우탄-시인은 숲에서 숲속으로 더 깊이 들어갔다. 거기서 대자연의 순례자가 되어 구름책의 시창작교실에 동참했다. 그것은 야생의 풍경이 되는 것이기도 했고, 그러면서 오래된 야생의 기억을 환기하는 것이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공포와 불안과 걱정을 그로테스크하게 극화하면서 지구 살림을 위한 책임의 윤리를 제안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충분과 겸손의 미학으로 승화하기도 했다. 아니 어쩌면 극화니 승화니 하는 말도 필요 없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생각을 계속 비우면서, 나 중심이나 인간 중심에서 벗어나 오롯한 숲속 우주의 감각을 구름책의 도움을 받아 옮겨놓은 것이라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구름책을 따라 천상 나비들의 날갯짓을 공경하는 겸손한 시인, 한없이 자유롭지만 누구보다도 공존과 공생의 윤리에 충실한 오랑우탄-시인, 『롱고롱고 숲』을 읽으면서, 우리는 그런 생태시인의 초상을 그려볼 수 있겠다.

---「해설」중에서

출판사 리뷰

최계선 시인의 철학과, 시적 언어의 탁월한 표현 감각과, 유머러스한 역설과,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는, 시인의 깊은 시세계를 느낄 수 있는 시집.

이 시집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숲의 연대기〉에는 나무에 의지해 사는 인간들이 제 숲을 갈아치우는 도끼문명으로 인해 실존이 위협받는 현실에서 자연을 그리워하는 시인의 간절한 마음이 담긴 24편의 시가 담겨 있다. 2부 〈열매행성〉에서는 지구라는 행성은 물론이고 별들 또한 우주의 열매라는 인식에서 지구별에 널려 있는 과거 거석문화의 흔적들과 멸종을 향해 치닫고 있는 오늘날의 징후들을 보여주는 30편의 시를 담고 있다. 3부 〈달마를 마중하다〉에서는 그러한 파행들이 결국은 우리 마음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고 극화니 승화니 하는 말도 필요 없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생각을 비우면서, 나 중심에서 벗어나 오롯한 숲속 우주의 감각으로 공존과 공생의 시간을 함께 영위하자는 23편의 시를 싣고 있다.

작가의 말

주말은 농막에서 지낸다. 집에서 이십여 분 거리의 나지막한 산자락에 있는데, 거기서 빈둥대며 이삼일을 보낸다. 작물은 심어놓은 게 거의 없어서 텃밭이라기보다는 풀밭에 가깝다. 때 되면 돼지감자 꽃이 피는데, 몇 알 뿌려놓기만 해도 나중에는 없애기 힘들 정도로 알아서 잘 퍼진다고 했다. 먹을 만큼의 옥수수와 부추를 빼고 나면 나머지 땅은 다 풀꽃들의 작은 들판이다. 게으름 탓도 있지만 경작지를 줄이고 싶었다. 어디 건 단일 품종의 논밭뿐이어서 벌 나비들이 찾아갈 꽃밭이 없기 때문이다. 농막터는 몇 걸음 안 되는 땅뙈기지만 이거라도 들판으로 돌려주고 싶었다. 누구나 ‘자연스럽다’라는 말은 말 어디에서나 자연스럽게 쓴다. 억지로 꾸미지 아니하여 이상함이 없거나 순리에 어긋남 없이 당연할 때에 쓰는 말이다. 우리가 아무 때나 쓰고 흘려버리던 자연에 대하여 갈수록 생각이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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