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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_ “그래, 그게 재즈야”1. 스윙하는 기쁨의 발견2. 재즈라는 언어로 말하기3. 만인의 음악, 블루스4. 네게 있는 것, 네가 느낀 것을 연주하라5. 위대한 통합6. 대가들이 주는 교훈7. 그것에는 이름이 없다후기 _ 윈턴 마설리스와 샌드라 데이 오코너 판사와의 대화역자 후기재즈 음악인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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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턴 마샬리스
Geoffrey C. W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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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트와 솔직함으로 전하는 재즈 이야기1997년 윈턴 마설리스는 재즈 음악인 최초로 음악 부문의 퓰리처상을 받았다. ‘최초’라는 수식어 자체로도 이미 화려하지만, 1943년 이 상이 음악 부문의 수상자를 선정하기 시작한 이래로, 재즈 장르에서는 마설리스와 오넷 콜먼(2007년 수상) 단 두 명의 수상자만 배출했다는 사실은 이 뮤지션의 위상을 더욱 끌어올린다. 뿐만 아니라 윈턴 마설리스를 필두로 본격적인 ‘정통’ 재즈를 추구하는 세대가 등장했으며, 이들은 컬럼비아, 블루노트, 버브 등 메이저 음반사들을 움직이며 재즈의 부활을 이끈 견인차 역할을 했다. 재즈 피아니스트 아버지를 둔 윈턴 마설리스는 어려서부터 재즈 음악인에 둘러싸여 지내며 자연스럽게 재즈의 길로 들어섰다. 그가 책에서 ‘아버지의 친구분들’이라 칭하는 이들은 모두 재즈 역사에서 한 획을 그은 인물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찍부터 트럼펫을 연주하며 두각을 나타낸 윈턴 마설리스는, 이십 대 초반 자신의 밴드를 결성하며 명성을 굳혔고, 예순을 바라보는 지금까지 재즈와 관련해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다른 모든 예술 장르처럼 재즈에도 사람들이 종종 갖는 선입견이 있다. 저자에 따르면 “그것은 감식가들만을 위한 음악이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음악이고, 이해할 수 없는 기본 요소와 소재 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사람들이 드문드문 앉아 있는 담배 연기 자욱한 클럽에서 연주했던 먼 옛날이 최고였고, 결과적으로 재즈는 장의사의 침대 위에 누워 이제 한 걸음만 더 가면 공동묘지에 묻힌다는 이야기 등이다.” 마설리스는 이러한 견해가 완전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지난 세월을 살아왔으며, 이 책을 통해 그것을 증명하겠노라 선언한다. 이렇듯 만연한 선입견을 인식한 때문인지, 그는 시종일관 친근하게 이야기를 건네듯 독자에게 다가오며, 흑인 음악가 특유의 분위기를 체에 거르지 않고 행간 사이에 오롯이 담는다. 우선 저자는 한 장(2장 「재즈라는 언어로 말하기」)을 할애해 재즈의 기본 개념을 알려준다. 솔로부터 시작해 콜 앤드 리스폰스, 스캣 싱잉, 샤우트 코러스, 헤드차트, 리듬섹션, 기타, 트레이딩, 잼 세션, 스윙, 화성과 형식 등 다양한 주제를 차례로 익혀가다 보면, 어딘지 모르게 무질서하게 느껴졌던 재즈 음악에도 일종의 질서와 형식이 있음을 발견한다. 또 다른 장(6장 「대가들이 주는 교훈」)에서는 루이 암스트롱부터 존 콜트레인, 마일스 데이비스, 듀크 엘링턴, 디지 길레스피, 찰리 파커, 빌리 홀리데이, 존 루이스 등 가히 전설적인 재즈 음악인들에 대해, 그들과 함께 연주했거나 그들의 음악을 들은 소감을 이야기하고, 그가 느끼기에 단점으로 여겨지는 특징마저 배제하지 않은 채 뮤지션 개개인에 대한 솔직한 평가를 전한다. 십 대 시절 일찍이 아트 블레이키의 밴드에 들어갔던 그는 ‘모든 것’이라는 말로 블레이키에 대한 사랑과 존경의 표현을 갈음한다. 추상주의의 우주 속에서 길을 잃은 ‘트레인’에 대해서는 안타까운 심정을 내비치며, 마일스는, 저자에 따르면 젊은이들이 연구해야 할 대상이다. 최고와 최악의 지위를 왔다 갔다 하며 우리가 고수해야 할 가치와 버려야 할 태도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각 인물에 대한 글 말미에는 마설리스가 추천하는 해당 뮤지션의 앨범이 소개되어 있다. ‘스윙’(1장 「스윙하는 기쁨의 발견」)과 ‘블루스’(3장 「만인의 음악, 블루스」)는 저자가 재즈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두 가지 개념이다. 어쩌면 이들 요소로 인해 대중이 재즈를 어려운 음악으로 인식할지도 모르지만, 혹은 역자의 말마따나 주류 음악의 시각에서 비평가들은 블루스와 스윙을 낡은 것으로 규정하고 폐기하려는 입장을 취하지만, 이 둘을 빼놓고는 재즈를 결코 정의할 수 없다. 재즈 음악인의 느낌과 감정은 미묘한 스윙 박자를 통해 즉흥연주로 흐르고, 그러한 박자를 타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된다. 즉, 스윙이 재즈이고, 재즈가 스윙이다. 여기에 인간의 온갖 희로애락이 녹아 있는 블루스는 마찬가지로 우리 내면의 기쁨과 슬픔 혹은 사랑이나 고통의 감정을 표현하는 재즈 음악과 자연스레 연결된다. 마설리스는 책에서 피아니스트 존 루이스의 정의를 빌려온다. “재즈는 스윙하거나 스윙하는 것처럼 느껴져야 한다. 이 음악은 경이驚異의 요소를 포함해야 한다. 아울러 블루스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를 내포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재즈와 블루스는 흑인들의 음악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저자는 5장에서 ‘위대한 통합’을 이야기한다. 재즈는 미국 흑인 노예들의 후손에 의해 탄생했지만, 그러한 배경의 한계 때문에 미국의 음악으로 온전히 인정받지 못한 채 숱한 공격을 받아왔다. 미국인에게 재즈를 가르치려면 그 이면의 역사(인종분리정책, 노예제도)도 함께 들여다봐야 하는데, 이는 자신들의 부끄러운 민낯을 들추어내는 일이기 때문에, 저자에 따르면 재즈 음악에 대한 제대로 된 교육은 아직까지도 행해지지 않고 있다. 심지어 저자 자신도 여전히 인종주의 영향을 받는다고 고백한다. 그렇지만 재즈 음악에 있어 흑인이어서 더 연주를 잘하고, 백인이기 때문에 실력이 모자라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이는 또 다른 인종주의에 다름 아니다. 더욱이 진정한 재즈맨들은 이러한 문제를 두고 결코 앙심을 품지 않았다. 그들은 혹독하게 갚아주겠다는 말 대신 이렇게 이야기했다. “이건 완전 개똥이야. 그러니 다시는 이런 것을 만들지 말자구.” 흑인이건 백인이건 재즈맨들은 그들 모두를 하나로 만들어주는 음악을 연주하기를 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우리에게 한 가지 개념을 더 제시한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더 나아가 우리가 ‘민주주의’라 부르는 것은 바로 재즈를 닮아야 한다는 것. 언뜻 ‘재즈’와 ‘민주주의’는 서로 연관이 없는 단어처럼 보인다. 하지만 밴드에서 연주자들이 상호 교감하며 연주를 이어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면 이는 꽤나 납득이 가는 주장이다. 우선 연주자 개개인은 그 누구의 지배도 받지 않는 독립적인 사운드를 만들어내고 자유롭게 표현하며, 이는 밴드 내에서 다른 연주자들과의 협업(때로는 견제)을 통해 하나의 완성된 모습을 이룬다. 자기표현과 공동의 선善을 위한 희생 사이에서 독특한 균형을 유지하는 재즈의 중심 가치는 집단적 의사 결정의 힘으로 더 좋은 방식을 추구하고자 하는 우리네 민주주의와 닮은 구석이 있다. 상대방이 자유로울 때 나도 자유로워진다는 철학 역시 이 둘의 공통점이다. 나이 또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칠십 대의 해리 스위츠 에디슨은 이십 대의 윈턴 마설리스와 ‘동료’로서 함께 연주했다. 이러한 개념은 책 말미에 실린 후기(윈턴 마설리스와 샌드라 데이 오코너 판사와의 대화)를 통해 더욱 분명해진다.가르침과 영감으로 가득한 음악과 삶의 교본대체로 ‘창조성’은 예술가들만의 영역인 듯 이야기된다. 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우리 모두는 그것을 갖고 태어난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얼마나 그것을 집요하게 일구느냐에 따라 누군가는 예술가가 되고, 누군가는 잠재적인 예술가인 채로 머문다. 따라서 재즈 역시 특정한 누군가만의 음악도 아니요, 우리가 이해 못 할 무언가도 아니다. 더군다나 재즈의 철학은 꾸미지 않은 소박한 사람들의 고양과 풍요에 뿌리를 둔다고 저자는 말한다. 재즈 음악을 만들어내는 위대한 재즈맨들이 바로 편견을 떠나 혹은 그들 스스로가 편견을 극복하고 사람 자체를 믿는 소박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이러한 속성을 지닌 재즈는 필연적으로 우리의 삶과 이어진다. “개인의 창의성과 인간관계에서부터 사업을 이끌고 가장 현대적인 맥락에서 전 지구적 시민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이해하기에 이르기까지” 재즈는 우리 삶의 모든 면을 풍요롭게 해주고, 더 높은 차원으로 우리를 데려간다고 저자는 믿는다. 윈턴 마설리스는 젊은 시절 많은 재즈인들처럼 재즈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재즈의 가치를 재정립하고, 재즈에 대한 존경심을 회복시킨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런 그가 재즈 음악을 매개로 우리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안내서를 선물했다. 이제 그 가치를 알아보는 일은 온전히 독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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