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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말
여는 말 서설: 무엇이 문제인가? 제1장 앎이란 무엇인가? 1.1 아인슈타인이 본 앎과 실재 1.2 앎에 대한 메타적 고찰 1.3 보편이론으로서의 동역학 1.4 동아시아 성리학이 본 예측적 앎 제2장 고전역학 2.1 예측적 앎으로의 고전역학 2.2 고전역학의 존재론 2.3 라그랑지안 정식화와 마당 변수 정식화 제3장 상대성이론 3.1 특수상대성이론의 출현 3.2 복소수 공간과 4차원 위치-시각 공간 3.3 4차원 운동량과 에너지의 정의 제4장 양자역학의 출현과 존재론적 기초 4.1 양자역학의 발단 4.2 양자역학의 존재론적 기초 제5장 양자역학의 정식화 5.1 기대치, 연산자, 불확정성원리 5.2 양자역학의 동역학 방정식 5.3 자유입자의 동역학 5.4 1차원 고리 모형과 스핀 제6장 양자역학이 말해주는 것들 6.1 양자역학이 풀어주는 전형적 문제들 6.2 양자역학이 설명해주는 실험 사례들 제7장 양자마당이론 7.1 양자마당이란 무엇인가? 7.2 양자마당이론과 그 사례들 제8장 양자역학을 둘러싼 논란들 8.1 양자역학 창시자들의 관점 8.2 양자역학을 둘러싼 실재론 논란 맺는 말 부록: δ-함수와 푸리에 변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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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은 감각경험들과 일상적 사고 안에 나타나는 초보적 개념 사이의 관계 또한 오직 직관적으로만 파악될 수 있을 뿐 과학적 논리의 틀 안에 이를 수용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이는 곧 과학이론이 과학이론만으로는 완결될 수 없고 반드시 감각경험들과의 이러한 관계를 별도로 설정해야만 과학으로의 기능을 하게 된다고 해석할 수 있다.
--- p.26 일단 이러한 존재론이 마련되고 나면 대상의 “상태”가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해나갈 것인가를 말해 주는 상태변화의 법칙을 서술하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이 바로 동역학의 정식화에 해당하는데, 이것을 통해 미래의 상태를 산출해서 일어날 사건들을 예측할 바탕이 마련된다. 어느 시점에서의 대상의 상태를 위에 제시한 방식에 따라 파악했을 경우, 우리가 만일 이 상태에 적용될 상태변화의 법칙을 알 수 있다면 우리는 이 대상의 미래 상태가 어떻게 될지를 산출해낼 수 있고, 이를 통해 이 대상이 미래에 어떤 사건을 일으킬지를 예측할 수 있게 된다. --- p.46 이제 “사과는 왜 떨어지나?” 하는 물음으로 되돌아 가보자. 이것은 사과가 충분히 익으면서 사과를 매어달고 있던 사과 꼭지가 끊어지게 되는 현상을 묻는 게 아니다. 오히려 꼭지가 이미 떨어져 허공에 놓인 것이 떨어지는 이유를 묻는다. 이것이 이른바 낙하 문제인데, 이것은 비단 사과만의 문제가 아니라 허공에 놓인 돌멩이나 바윗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외견상으로만 보자면 이들은 엄청나게 서로 다른 존재물들이다. 사과와 돌멩이는 크기가 비슷하지만 그 구성 물질이 크게 다르고 돌멩이와 바윗돌은 구성 물질이 비슷하지만 크기가 서로 다르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를 최소화하면서 그 공통점을 잘 드러내는 몇 가지 핵심 개념을 통해 적어도 낙하에 관련한 이들의 거동을 보편적 방식으로 서술할 수 있게 되는데, 이는 곧 앞서 언급한 보편이론으로서의 동역학 영역으로 들어섬을 의미한다. --- p.63 실제로 우리가 현실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모든 힘은 ‘전자기 상호작용’과 ‘중력 상호작용’에 기인한다. 특히 전자기 상호작용은 전하를 가진 입자들 사이에 작용함으로써 원자 규모의 물질과 이들로 이루어진 물질들을 구성하고 변화시키는 데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 용수철의 탄성력을 비롯해 물질을 매개로 하는 거의 모든 힘이 바로 이 상호작용의 결과이다. 그리고 우리가 ‘무게’라고 느끼는 중력 상호작용은 그 세기 자체는 매우 미약하지만 관여하는 물체들의 질량에 비례하여 커지는 성격을 가진 것이어서, 질량이 큰 물체들 특히 천체 규모의 물체들 사이에는 가장 큰 역할을 한다. 우리가 일상적 물체에 대해 무게를 느끼게 되는 것은 이것과 지구 사이의 상호작용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 p.72 고전역학에서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것으로 양자역학과 더불어 새롭게 발견된 매우 중요하면서도 흥미로운 물리량으로 스핀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의 기원을 정확히 밝히기는 어렵지만, ‘상태 교환 공간’이라 부를만한 일종의 내부 공간의 성격과 관련된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또한 양자역학에서는 고전역학에는 없었던 “동일입자”라는 독특한 개념을 상정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두 개의 전자는 그 특성에 있어서 아무런 차이가 없기에 이들을 구분해 확인할 어떤 방법도 찾을 수 없다. 만일 N개의 전자들을 서술 대상으로 삼는다면 이를 나타낼 상태 Ψ에는 개개의 전자에 해당하는 개별 변수를 도입해야 하지만, 이를 도입하기 위해 활용한 가상적 순위 이외에 더 이상 이들을 구분해 구체적 대상에 연결할 방법은 없다. --- p.184 우리가 아무리 가능한 상태들에 대해 계산을 잘 해 놓더라도 대상계가 그 가운데 어디 있을지 알 수 없는 한 그 계산은 한갓 무용지물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우리를 도와줄 구원 투수가 등장한다. 그것이 바로 통계역학이다. 이 통계역학을 활용함으로써 예컨대 수소 원자내의 전자가 실제로 어느 상태에 있는지에 대해 아주 높은 정확도를 가지고 추정할 수 있다. --- p.217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게으름 광자 쪽의 관측 장치의 앞부분을 길게 늘어트려 s에서 관측이 먼저 이루어지고 게으름 쪽 관측이 늦게 이루어져도 이러한 결과에는 차이가 없다는 점이다. 이것은 마치도 신호 광자의 행위가 아직 관측도 되지 않은 게으름 광자의 측정 결과를 미리 알고 이에 맞추어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를 해석할 때에 유의해야 할 점은 빛을 통해 대상을 관측하는 경우 관측 지점의 상황을 사건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지점’의 상황을 ‘사건’으로 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 p.232 우리가 만일 우리 책에서 제시한 방법으로 양자역학을 수용한다면, 적어도 스몰린이 말한 기준에 따라 반실재론자이어야 할 필요가 없다. 우선 첫 번째 물음 즉 양자역학에 따르면 대상의 상태는 우리의 지식이나 지각에 무관하게 존재하는가 하는 물음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대상의 상태를 대상에 대한 우리 지식이 아닌 대상 자체에 속하는 존재적 성격을 지닌 것으로 보았다. 물론 변별체와 조우함에 따라 일정한 상태 전환을 하게 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대상과 변별체 사이의 관계이지 이것에 대한 우리의 지각이나 지식이 어떤 관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대상의 상태는 우리에게 알려질 수 있는 연결점을 가지는 것이 사실이나 이것은 “앎의 대상”이 가져야 하는 필수적 성격이지 양자역학에서만 해당하는 사항이 아니다. --- p.2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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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 지성사의 놀라운 사건 양자역학
인류 지성사에 가장 놀라운 사건을 둘 고른다면 17세기 고전역학의 등장, 그리고 20세기의 상대성이론 및 양자역학의 등장이라 할 수 있다. 고전역학의 등장은 인류가 합법칙적으로 자연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뜻하고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등장으로 그 이해의 가장 본질적인 개념의 틀이 상상을 초월하는 방식으로 심화되고 수정될 수 있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한 세기에 걸친 수많은 양자역학 해석 논란들이 말해주 듯, 아직 그 심화와 수정의 방식을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단계에 이르지는 못했다. 이러한 이해가 어려운 이유는 이 문제가 이미 개별 학문의 테두리를 넘어서 학문 자체의 성립 여건에 대한 물음에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를 위해 인간의 앎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원초적 물음으로 되돌아가 그 앎의 성격부터 재규정하는 작업이 요구되는 것이다. □ 양자역학에 대한 존재론적 해석을 시도 양자역학은 우리의 직관에 맞는 방식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보이지 않는 원자세계를 너무도 잘 설명해준다. 그렇다면 우리의 직관에 무언가 잘못이 있는 것이 아닌가 반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고전역학에도 그 안에 암묵적으로 전제한 존재론적 가정이 숨어 있었지만 이를 직관적으로 이해 가능하다고 넘겨왔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우리의 직관이 바탕에 두고 있었던 원초적 존재론을 문제 삼게 된다. 이는 곧 고전역학이 숨기고 있던 존재론적 가정을 명시적으로 드러내고 그 대안적 존재론의 가능성을 검토하자는 것이다. 그리하여 양자역학을 수용하기에 적절한 대안적 존재론이 마련된다면, 이것이 바로 우리가 받아들일 새로운 직관에 해당하리라는 것이다. 인간의 사고는 근본적으로 관념의 틀 위에서 형성되는 것이기에 이러한 과도기를 넘어 언젠가는 새 관념의 틀을 형성해야 하며, 이것이 바로 새 존재론이 요구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