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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 04
터치Touch / 08 곰 발가락 / 32 명랑한 밤입니다 / 76 의병 / 126 원유회 / 161 빨간 버스 / 196 부음訃音 / 241 빛의 기억 / 279 챔피언 / 302 ─해설 / 인생극장이라는 은퇴 후의 삶과 허허로운 위안, 그리고 희망(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 / 전상기 / 3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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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실은 끝내 북촌을 떠나 북행길에 올랐다. 덕실 누님은 운명이라고 했다. 경실이 인민군 소대장을 따라나선 것도, 남편이 북으로 간 것도 다 운명이라고 했다. 어지럽고 오금이 저려 대문 밖 배웅도 못 하고 쪼그려 앉아 울다 보니까 희붐하게 동이 텄다고 했다. 새벽에야 이태 만에 만났던 남편과 영영 생이별한 것을 알았다고 했다. 덕실 누님은 그 새벽을 평생 잊지 못할 거라고 했다. 그리고 말했다.
─ 정호야. 니 매형도, 경실 누나도 빨갱이 아니란다. 그냥 거역 못 할 운명에 따른 것뿐이지. 네가 이 집에 양자로 들어온 거처럼 말이야. ---「곰 발가락」중에서 내 생의 아름다운 시절은 북촌에서 산 십 년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양부와 양모, 덕실 누님, 두수 아저씨, 혜산댁. 얼굴을 기억하는 이들은 물론 한 번 본적 없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인민군 장교 따라 이북으로 갔다는, 눈빛이 샛별처럼 초롱초롱했다는 경실 누님도 보고 싶다. 막내 처제와 함께 월북했다는 큰매형, 그리고 잘생긴 얼굴에 사람됨이 더할 나위 없었다는 인민군 장교도 만나보고 싶다. 왜 말더듬이에 정신도 온전치 않았다는 경실 누님은 만난 지 며칠 만에 인민군 장교를 따라갔을까? 큰매형은? 그들은 살아있을까? 어떻게 살아왔을까? 죽었다면 어디에 묻혔을까? 빨갱이가 아니라 거역 못 할 운명을 따른 거라면 북촌댁 양자였던 나는 적어도 그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더 들어줘야 하지 않을까. 연좌제는 정말 없어진 걸까. 그 모질고 질긴 적대와 증오가 사라질 수 있을까. ---「곰 발가락」중에서 김재우, 합수부에 연행까지 됐었는데 살아난 거 이상하지 않아? 그런 말들이 여기저기서 스멀스멀 기어다니는 것 같았다. 너, 프락치였어? 그러나 아무도 암말 하지 않았다. 부장도, 차장도 한마디 없었다. 하다못해 고생했다는 위로의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하지만 그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대하는 동료들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대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달리 대할 방법을 찾을 수도 없었다. 그저 침묵할 뿐. 기자란 묻는 직업이다. 그런데 그는 물을 수 없었다. ---「부음訃音」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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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꽤 오래 걸어왔다. 걸어갈 길이 얼마나 더 남았는지는 모르지만 걸어온 길이 남은 길의 몇 곱절은 될 것이다. 1976년 기자가 되었다가 1980년 강제 해직되었다가 1988년 다시 기자가 되었다가 2007년 퇴직했다. 세 번의 ‘되었다가’가 내가 걸어온 길의 주요 이정표이다. (중략) 모든 옛이야기, 지난날의 가치는 거의 진부한 것으로 치부되고, 디지털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능력주의 세상에서 원자화된 개인들이 각자도생으로 분투하고 있는 사회. 그 속에서 소설은 무엇을 얘기해야 하는가. ‘무엇을 얘기하느냐’보다 ‘어떻게 쓰느냐’가 문학의 주류가 된 듯싶은 풍토에서 나는 과연 무슨 소설을 쓸 수 있는가. 내일의 전망을 담보하지 못하는 무력함은 어찌할 텐가. 해서 돌아서서 걸어보기로 한다. 기억이 꿈이 되지는 못할지언정 지난 길을 돌아서서 걸어보고자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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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집에는 사람으로 산다는 것의 어려움과 겸손한 이치를 보여주는 것은 물론이요, 사람으로서의 품격을 지키고 높이기 위한 기쁨과 긴장의 하염없는 과정이 인생임을 오래된 지혜와 꼰대다운 살가운 사랑으로 일깨우고픈 작가의 뚝심과 일갈이 면면히 보인다. 소설이 특정 편향으로 물들고 감성적인 세밀함과 심리의 파노라마에 치중하고 있는 소설판에 이 소설집이 보내는 포효에 독자 대중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 전상기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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