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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를 먹다 ... 초설
1부_춘(春) 012 따로국밥 014 수구레국밥 015 콩국 016 참게가리장국 018 홍합탕 020 논메기매운탕 021 동태맑은탕 023 나새이된장국 024 갱시기 026 묵밥 027 떡국 029 추어탕 031 부대찌개 033 미역국 035 깡통꽁치 036 비지찌개 037 무청시래깃국 2부_하(夏) 040 뭉티기 042 막창구이 044 복불고기 046 피조개 048 양미리구이 049 돈까스 051 북성로 불고기 우동 053 칼치 055 고추부각 056 이태리달걀찜 058 양푼이찜갈비 059 묵은김치찌짐 061 미나리찌짐 063 닭발 064 돼지갈비 066 간 3부_추(秋) 070 누른국수 072 야끼우동 073 납짝만두 075 국화빵 076 냉면 078 수제비 079 짜장면 082 절편 083 두부 084 잡채 085 월남쌈 087 식빵 088 라면 089 찜닭 091 콩나물잡채 092 바나나 4부_동(冬) 096 숙주나물 097 미꾸라지 099 김치 할매 101 잔술 103 김밥 105 멸치 107 배추뿌리 109 메주콩 111 깍두기 113 과메기 114 무침회 115 홍게 116 전복죽 117 충무김밥 119 박바가지밥 120 땡초 122 연잎밥 123 가시두릅 124 더덕 125 쑥 126 얼갈이배추 128 뚱딴지 130 옻순 · 환대의 기억과 슬픔의 시간을 먹다 ... 황정산 (시인, 문학평론가) 132 |
초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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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국밥 아니라 따로국밥
고개 갸웃할 수 있습니다 꼭 “따로국밥 주세요.” 크게 외쳐야 합니다 귀한 양반 점잖게 먹는 밥이 따로국밥이었다지요 양반 아닌 사람 있을까요 쌀밥에 갖은 반찬 곁들이는 따로국밥 목울대 꿀렁이면 실없이 헛기침해도 좋습니다 이래저래 부대끼며 훌훌 불어 후루룩 마시는 국밥 앞선 시간 반추하듯 입 안에 든 밥알 굴리며 음미하는 따로국밥 맛 다르지요 사는 모습 다른 것처럼 귀한 그대 만난 오늘은 따로국밥 먹고 싶습니다 ---「따로국밥」중에서 소 엉덩이 뭉텅뭉텅 막 썬 뭉티기 구이 수육보다 먹기 거북스럽지만 다진 마늘 고춧가루 참기름 양념장 찍어 눈 질끈 감고 먹으면 인절미 맛 공장일 몹시 힘겨울 때면 하루 품으로 먹는 뭉글뭉글 핏덩이처럼 검붉은 뭉티기 가을 잎 물들 듯 말라가는 나이 기왕이면 몸에 좋은 뭉티기 자주 먹으라던 젊은 한의사 말처럼 된밥에 뭉티기 한 점이면 힘 불끈 오직 몸으로 살아내야 하는 처지 혼자 다 먹을 수 있는 한 접시뿐이지만 내 살 한 점 떼어 주는 마음이면 세상살이 간격 좁혀질까 생각하는 목요일 ---「뭉티기」중에서 노란 소국 시들한 아침 허리 굽힌 엄마 키 높이 홍두깨로 밀가루 반죽 얇고 넓고 둥글게 펴는 걸 나무처럼 서서 바라보았습니다 “국수 공장에서 받으시지, 힘들게 밀고 계시네요. 엄마 생각나서 보기는 참 좋습니다.” “엄마 생각나지요. 엄마 생각하며 하는 일입니다. 장사라고 생각하면 힘들어요. 맞벌이 자식 대신 손녀 돌보며 해요.” 더 둥글둥글 넓게 펴지는 반죽 구수하게 뿌려지는 콩가루 야채국물에 애호박 달걀 고명 올린 엄마 정성이 쫄깃한 누른국수 그 시장 그 식당 앞 지날 때면 살아서 돌아온 듯 마음 풀어지고 혼잣말 안부 여쭙습니다 오래도록 누른국수 말아주세요 당신이 내 엄마입니다 ---「누른국수」중에서 녹두를 시루에서 싹 틔우면 야들하나 절개 없는 나물 삶아 짓이겨 만두소로 넣고 그냥 나물 무침 먹거나 고깃국에 많이 넣는데 마음마저 에이는 아침 어묵탕에 넣으면 속풀이 국물 우러나는 약 나물 파는 아줌마 사서 먹는 아저씨 누가 그를 생각할까 하늘 우러러 억울하다고 할 숙주 살아올 것도 아닌데 먹는 쓰임새 많고 맛이 좋으니 다행 어묵 무 숙주나물 넣고 한 사람 역사를 끓였네 ---「숙주나물」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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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대의 기억과 슬픔의 시간을 먹다
1. 들어가며 시인 김종필의 이번 시집은 음식에 관한 시들만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 시에 등장하는 음식들은 특별한 음식들은 아니다. 우리 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음식들이 이 시집에 모두 등장한다. 어떤 음식들은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리고, 또 어떤 음식들은 바로 어제 저녁 밥상 위에 올려 있었던 것이기도 하다. 이 시집 시들을 읽다 보면 우리가 참 많은 것들을 먹고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200년 전 프랑스 법관이자 음식 평론가였던 샤바랭 J. A. Brillat-Savarin이라는 사람은 “당신이 무엇을 먹었는지 말해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한 사람이 먹은 음식이 바로 그의 정체성을 형성한다는 말이다. 음식은 한 사람의 기억을 지배하여 그 사람의 정서와 생각을 형성한다. 더 나아가 음식은 한 시대, 한 사회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정서를 공유하게 하고 연대감을 갖게 한다. 음식은 한 사회의 문화이고 역사이기도 하다. 김종필 시인의 이번 시집 시들은 바로 음식을 통해 살펴본 삶의 기억이고 기록이다. 2. 함께 나눔으로의 음식 이 시집 시들은 모두 음식이 중요한 소재이다. 하지만 그 음식만이 크게 부각되어 있지는 않다. 김종필 시인은 음식 맛과 향이라든가 그것을 만든 과정, 또는 그 음식에 얽힌 에피소드 같은 것을 세세하게 묘사하지 않는다. 시인에게는 그 음식 자체보다는 그 음식을 사이에 두고 식탁 너머에 있는 사람이 중요하다. 누구와 함께 그 음식을 먹었는가가 그의 시에서 핵심적인 정조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을씨년스러운 저녁 작년 오늘처럼 모여들어 이 겨울 석쇠에 처음 굽는 양미리 고이는 침 삼키며 그동안 잘 지냈느냐 묻고 교통사고로 병원에 있는 아이 시골에 홀로 지내시는 부모 베트남 처가 다녀온 살아내는 이야기 맛나게 구우며 머리부터 꼬리까지 고루 익은 알배기 양미리 한 입 베어 물고 더 따뜻한 말씨 양미리 알처럼 쏟아놓을 수 있으니 아직은 살만하다 ...「양미리구이」전문 양미리는 가장 값싸고 대중적인 생선이다. 시인은 이 흔한 양미리를 여러 사람들과 함께 먹은 추억을 떠올린다. 양미리는 서로 다른 사람, 서로 다른 처지와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한 자리로 불러 모으는 음식이다. 석쇠에다 구워 둘러앉아 먹어야 하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민어나 농어 같은 맛이 좋은 고급 생선도 아니고, 조기나 갈치 같은 중요한 식재료로 대접받는 생선은 아니지만, 양미리는 우리의 입맛을 돌게 한다. 생선 자체 맛보다도 석쇠에 올려놓고 둘러앉아 함께 구워 먹는 그 시간의 소중함이 우리 침샘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양미리를 올려놓은 석쇠 주변에는 “살아내는 이야기”가 있고 양미리를 굽는 것은 바로 이렇게 각자 안부를 굽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렇게 저렴한 음식이라도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것은 “아직 살만”한 행복이 남아 있다는 것임을 시인은 확인하고 있다. 그런데 함께한다는 것은 서로가 구별 없이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 따로, 그러나 서로가 존중하는 그런 사이가 되는 것이다. 다음 시는 음식을 통해 그것을 표현하고 있다. 귀한 양반 점잖게 먹는 밥이 따로국밥이었다지요 양반 아닌 사람 있을까요 쌀밥에 갖은 반찬 곁들이는 따로국밥 목울대 꿀렁이면 실없이 헛기침해도 좋습니다 이래저래 부대끼며 훌훌 불어 후루룩 마시는 국밥 앞선 시간 반추하듯 입 안에 든 밥알 굴리며 음미하는 따로국밥 맛 다르지요 사는 모습 다른 것처럼 귀한 그대 만난 오늘은 따로국밥 먹고 싶습니다 ...「따로국밥」부분 타인을 환대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따로국밥은 국밥이긴 하지만 국과 밥이 따로 제공되는 나름 품격을 갖춘 음식이다. 그러면서도 국과 밥이 잘 어우러져 밥을 주식으로 하는 우리 입맛에 딱 맞는 음식이다. 그런 점에서 그것은 따로 하지만 조화를 이룬다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정신을 잘 보여 주는 음식이기도 하다. 시인은 바로 이러한 자세로 “귀한 그대”를 환대하고자 한다. 환대란 이렇게 서로 사는 모습이 다르지만, 그 다름을 인정하고 그 사람이 내 삶으로 들어왔을 때 받아들이고 대접하는 것이다. 그래서 원래는 “귀한 양반 점잖게” 먹는 음식이 따로국밥이었지만, 상대를 귀하게 여기는 환대의 정신을 가질 때 우리는 “양반 아닌 사람 있을까요”라는 말처럼 모두가 양반으로 대접받을 수 있는 평등한 세상이 될 수 있다고 시인은 생각하고 있다. 다음 시는 함께하는 정서를 좀 더 감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묵은 말랑하다 입에 들어가는 것 중 더 말랑한 것은 없다 익은 김치 잘게 썬 고명 검은 눈처럼 뿌려진 김가루 그냥 보기만 해도 아 입술 벌어진다 첫 키스가 이 맛이었을까 말랑하고 달다 ...「묵밥」전문 함께 하는 것 중 가장 강렬한 기억은 사랑하는 사람과 키스할 때 경험일 것이다. 시인은 담백한 묵 맛에서 이 짜릿한 시간을 감각적으로 느낀다. 그것은 묵에 여러 재료가 함께 했기 때문이다. 묵의 부드러운 식감과 김치의 매콤새콤한 맛, 그리고 “검은 눈처럼 뿌려진 김가루”의 시각적 느낌이 합쳐져 첫 키스 순간을 떠올리게 해준다. 사랑은 이렇게 나 아닌 것과 내가 시간과 상황을 뛰어넘어 감각적 일치를 이루는 것이다. 그것은 환대가 몸과 마음으로 가장 지극한 상태에 도달하는 순간의 경험이다. 묵밥을 먹은 기억을 이렇게 첫 키스 순간으로 연결하는 시인의 감각과 상상력이 놀라울 뿐이다. 3. 삶과 시간, 기록의 음식 사실 우리의 생활은 많은 부분이 음식으로 채워져 있다. 음식을 먹고 살아가고 또 음식을 위해 살아간다. 음식을 기억한다는 것은 그것과 함께한 삶과 그 삶의 시간을 기억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음식에는 우리가 살았던 삶이 버무려져 있다. 그런 점에서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그 기억을 반추하고 그 기억을 다시 내 몸 감각으로 받아들이고 재현하는 것이다. 공장일 몹시 힘겨울 때면 하루 품으로 먹는 뭉글뭉글 핏덩이처럼 검붉은 뭉티기 가을 잎 물들 듯 말라가는 나이 기왕이면 몸에 좋은 뭉티기 자주 먹으라던 젊은 한의사 말처럼 된밥에 뭉티기 한 점이면 힘 불끈 오직 몸으로 살아내야 하는 처지 혼자 다 먹을 수 있는 한 접시뿐이지만 내 살 한 점 떼어 주는 마음이면 세상살이 간격 좁혀질까 생각하는 목요일 ...「뭉티기」부분 소 엉덩이 살을 막 썰어낸 것을 ‘뭉티기’라고 한다. 시인은 비교적 싼 뭉티기로 공장 노동자의 힘겨움을 씻어내고 있다. 그 살코기 힘으로 “힘 불끈 / 오직 몸으로 살아내야 하는 처지”를 견뎌내며, 한 접시 내 살 같은 뭉티기 한 점씩 나누어 먹는 서로 돕고 평등한 대동 세상에 대한 소망을 가질 수 있었고, 지금도 시인은 뭉티기 한 점으로 그런 세상에 대한 꿈을 잃지 않는다. 다음 시 음식도 과거 시간을 환기하고 있다. 군복 입고 돌아오던 그 추웠던 날 밤 기차에서 졸다 대구역 광장 귀퉁이 포장마차 속 다닥다닥 붙어 서서 먹던 유부 찹쌀꽈배기 동동 뜨는 콩국 뾰족한 우울 방울방울 녹여 내렸지 그냥 우울할 때 설탕 조금 더 마냥 즐거울 때 소금 조금 더 늙고 작아지는 귀 시린 겨울이지만 귀 달린 작은 양은냄비에 담긴 노랗고 구수한 콩국 앞에 놓고 낯설지 않은 누군가 마주 앉길 바람 날 선 겨울 외롭지 않았으면 ...「콩국」전문 군대 시절은 고통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육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격리와 통제로 인한 자유의 억압이 그러한 고통을 가중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군대로 돌아간다는 것은 “서럽던 날”일 수밖에 없다. 그 고통을 잊고 달래기 위해 시인은 “유부 찹쌀꽈배기 동동 뜨는 콩국”을 찾곤 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할 때 거기에 설탕과 소금은 우울을 달래고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군대라는 고통의 시간을 함께한 음식이 있다는 것은 그 고통의 기억을 잊지 않는다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극복할 힘을 잃지 않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시인은 콩국이라는 음식을 대할 때마다 이 고통의 시간을 다시 환기하고 그 시절을 기억해 낼 것이다. 하지만 또한, 이 기억이 있어 세상에 편재하는 고통과 슬픔을 이해하고 그것을 넘어서고자 하는 꿈과 희망과 힘을 잃지 않을 것이다. 이 흔한 ‘콩국’ 속에 이런 힘이 있음을 시인은 우리에게 구수한 언어의 힘으로 바꾸어 보여 주고 있다. 다음 시 음식은 가난했던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손발 꽁꽁 얼어붙을 때 따뜻한 구들 아랫목 두꺼운 이불 뒤집어쓰고 뜨거운 갱시기 후후 불며 먹던 기억난다고 중얼거렸더니 또래 공장 일꾼들도 가난한 시절이었지만 식구들 오들오들 떨며 먹던 날 그립다고 멸치 끓여 낸 국물에 먹다 남은 김치 더 잘게 썰고 밥 한 주걱 쌀떡 한 줌 콩나물 달걀 풀고 김가루 뿌려 간 본 후 참기름 한 방울 똑 한 숟갈 먹으니 더 맛있는 거 못 먹여 애타던 엄마 한 숟갈 먹으니 이미 늙었던 아버지 한 숟갈 먹으니 내 밥그릇 넘보던 형들 궁상스럽던 그 겨울 저녁 그리워 숟가락 들고 멍하니 입 열고 있으니 아내가 툭 툭 ...「갱시기」전문 ‘갱시기’는 경상도에서 많이 먹는 김치로 만든 죽이다. 그것은 식재료 구하기 힘든 겨울에 가장 손쉽게 만들 수 있는 음식이다. 그러면서도 한국 사람 입맛에 잘 어울리는 음식이어서 가난한 옛날을 추억할 때 자주 등장하는 음식이기도 하다. 시인 역시 이 궁상스러운 음식 맛을 그리워하면서 가난했던 옛날을 추억하고 있다. 그곳에는 늙은 아버지와 서로 먹을 것을 경쟁하던 형제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 시절에 “오들오들 떨며 먹던” 그 음식으로 그 가난한 시간을 견디고 지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이 흔한 음식에는 그 시간의 고통과 슬픔의 기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지금도 “그 겨울 저녁 그리워” 그 음식을 찾는 것은 그 음식에 배어 있는 시간의 맛을 시인은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다른 어떤 비싼 음식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맛이다. 이 음식을 기억하고 아직도 그 맛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시인 자신이 그 기억의 시간을 거쳐 왔고, 이 음식이 자신의 삶과 자신 몸 일부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갱시기’는 그냥 음식이 아니라 시인 자신의 정체성 일부이다. 다음 시 음식도 과거 가난한 시절을 떠올린다. 먹을 게 귀하던 시절 욕심 부려 이웃집 배추뿌리도 캤는데 어른 되고 사철 먹거리 넘치니 언젠가 선술집 배추뿌리가 비싼 인삼 대접이라 어이없는 웃음이 터졌다 추억만 남겨 준 아버지 먼 길 떠나시고 한 뼘 언 땅 없는 나는 김장이라는 말만 들어도 아삭아삭 그리웠네 ...「배추뿌리」부분 가난했던 어린 시절 먹을 게 없어 먹던 ‘배추뿌리’가 귀한 음식으로 대접받고 있는 현실에 어이없어 웃으면서 시인은 그 시절 먹던 그 배추뿌리 맛을 잊지 못한다. 가난했기에 아버지는 “추억만 남겨” 주고 “먼 길 떠나시고” 안 계신다. 그래도 그 추억을 남겨 주신 아버지 존재를 시인은 배추뿌리 맛과 함께 그리워한다. 그 시간이 지금 자신을 만들고, 그 시간을 잊지 않는 자신이 있어 배추뿌리 맛은 아직 살아 있다. 비록 그것이 가난의 흔적을 지우고 비싸고 귀한 음식 대접을 받고 있지만, 그 맛에 배어 있는 기억은 뚜렷이 시인 혀를 통해 자신의 몸에 각인되어 있다. 그래서 음식은 과거뿐 아니라 미래의 시간까지 떠올리게 해 준다. 얼었다 녹았다 고소함 흘러내리는 꽁치과메기 첫눈 내려야 맛있다는데 저녁 와도 아침 와도 얼었다 녹았다 기다림에 애타는 마음 비릿하네 첫눈 내려야 맛있다는데 ...「과메기」전문 과메기는 때가 되어야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추운 겨울에 해풍을 맞으며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는 건조 과정을 거쳐야 만들어지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그 과메기를 먹을 수 있을 시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시인은 “얼었다 녹았다”를 두 행이나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다. 한 음식이 만들어지는 시간, 그리고 그것을 먹고 즐기기 위한 시간은 쉽게 오는 것이 아님을 확인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어떤 음식이든 그 음식에는 시간과 그 시간의 기억들이 스며있다. 그것에는 삶의 기쁨과 고통이 새겨져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과메기는 그 자체로 그것을 몸소 보여 준다. 시인은 이 모든 시간을 지나 과메기 맛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다가오기를 소망하고 있다. 이 애타는 기다림의 시간이 바로 과메기 맛을 완성한다. 개인의 행복도, 더 나은 세상도, 이 기다림의 시간이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 과메기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다. 시인은 이 과메기의 말을 우리에게 전언해 주고 있다. 4. 맺으며 김종필 시인의 언어는 이 시집 속에 등장하는 음식들만큼이나 소박하다. 하지만 이 소박한 언어는 읽을수록 그 안에 배어 있는 말의 맛이 살아난다. 꾸밈없고 담백한 언어로 표현된 시를 읽을수록 시에 등장하는 음식 감칠맛이 살아나 그 음식과 그 음식이 환기하는 과거 시간으로 우리를 빠져들게 만든다. 그 음식에는 가난했던 과거 시간이 기록되어 있고, 그 시간 속에서 겪었을 고통과 슬픔이 배어 있어 이 음식 기억들은 아련한 추억 속으로 우리를 몰고 가면서도 그것들을 다시 이겨낼 수 있는 어떤 힘을 소생시킬 에너지원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거기에는 그 음식과 함께했던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환대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늘도 이 시집에 실려 있는 음식을 먹지만, 사실 우리가 먹는 것은 바로 이 사랑의 기억이 아닐까 한다. _황정산 (시인, 문학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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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설 김종필 시인은 대구의 공장 노동자다. 그는 새벽 4시에 전을 펴는 달성토성장에 나가 국밥 한 그릇에 막걸리 한잔 걸치는 것을 좋아한다. 그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춘하추동 사계절로 나누어 차려놓으니 어느새 푸짐한 서민의 잔칫상에 군침이 넘어간다. 그러나 '갱시기, 뭉티기, 납짝만두, 옻순'이 반드시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맞춰 먹는 계절 음식은 아니다. 대구의 서민들이 사시사철 즐겨 먹는 음식이라는 것을 이곳 사람들은 잘 안다. 시인이 차려준 갖가지 음식을 맛보고 나니 그는 단순히 음식만을 읊조리는 것이 아니라 음식에 얽힌 세상살이의 오묘한 맛을 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가령 시인은 라면은 반 쪼개는 게 좋고, 계란은 휘저어 풀어야 한다는 자기만의 조리법을 소개한다. 왜냐하면 라면은 외로울 때 끓여 먹는 음식이니까.
라면을 끓여 먹을 때는 / 반 쪼개는 게 좋다 / 외로움도 짧을 거니까 외로움 끓이고 있다면 / 노란 핵 그리움 / 미련 없이 휘저어 풀길 - 정지창 (문학평론가, 前 영남대학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