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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로 꽃필 때
정부 내각정령 143호 기러기떼 날으네 석탄은 공업의 식량이다 둥근 달 밤, 동구길… 막장에서 기막힌 수다 검은금 유치원 무너진 갱 안의 사람들 안마 기술은 동무가 최고요 보위부 조사실 농태기가 참 좋재오 고난의 신혼살림 아이들의 군사놀이 시간 낙서, 자살, 유서… 배낭에 담긴 석탄밥 깊은 밤중에 체포영장 아오지 버럭 부부싸움 끝에 인민의 이름으로 처단한다 풍산개… 국군포로 부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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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 익!~ 치 익!~” 하며 열차가 완전히 멈추었고 화물차량 미닫이문이 스스르 열렸다. 낮이고 밤이고 어둔 차량 안에 갇혔던 그들이니 밝은 바깥세상에 눈을 부스스 비빈다.
“자! 모두 내렷!” 하는 인민군 병사다. 포로병들이 화물차량에서 내리며 좌우를 살핀다. 모두는 낯선 지역의 풍경에 의아한 눈빛이다. ‘아오지역’이라는 글귀, ‘영명하신 김일성 수상 만세!’ ‘영광스러운 조선로동당 만세!’라는 구호판도 보인다. 북한 땅이고 남쪽과 먼 곳이 틀림없다. 속았다. 아니 그것도 아니다. 정확히 열차가 출발하며 어디로 간다고 알려주지 않은 인민군 호송장교가 아닌가. 어디서 구경을 나왔는지 허름한 꼴의 아낙네와 아이들 위주로 민간인들의 모습이 보인다. 남녀노소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어디서 저렇게 새파란 군인청년들이 왔슴매?” “야아. 정말 기차재오? 인민군대는 아닌 것 같소야!”라고 말한다. 처음 보는 군복을 입은 낯선 군인들이니 무척 호기심이 드는 모양이다. 어쩌면 감방의 죄수 꼴이다. --- pp.50~51 아이는 키우는 맛이라더니… 그 말이 꼭 맞는 것 같다. 아들이 다 자라 재미가 없을 만해지니 손녀가 태어나서 그 공백을 계속해서 제공해주는 것이다. 그것도 분명히 과거 아들을 키운 것과 지금은 손녀딸을 키우는 보람이 다르게도 느껴진다. 안은별의 입이 쉴 새 없다. “할배! 인민군대와 괴뢰군이 뭐가 다름까?” “아니? 넌 별것 다 궁금하구나!” “아앙!~ 그러지 말고 어서 알려줘요.” “그건 서로가 다르게 부르는 거다. 북과 남이 자기 군대를 각각 ‘인민군’ ‘국군’으로, 상대방을 ‘괴뢰군’으로 부르는 거다.” “…” “은별아! 네가 지금은 어려서 그게 무슨 소린지 잘 모를 거다. 인민군대가 좋은지? 남조선 군대(국군)가 좋은지? 등 말이다. 허나 어른이 되면 자연스럽게 아는 것이니 걱정하지 말어라.” “…” “지금은 집에서 아빠, 엄마 말씀 잘 듣고… 유치원에 가서는 선생님 말씀 잘 듣고 무럭무럭 크는 것이 우선이란다. 알았지?” “야아!~ 할아버지!” --- p.116 “안 형! 우리 마음이 답답한들 뭐하겠소?” “…” “내놓고 말해 누가 못난 우리 국군포로를 사람으로 보는 데가 있소? 우리는 남조선에서도 버려졌고 여기 북조선에서도 버려졌으니 이곳 아오지 탄광에서 평생 버럭 인생을 산 것 아니오?” “…” “우리가 40년간 탄광에서 섞어지게 일하고 남은 게 과연 뭐가 있소? 병들고 허약한 몸뿐이오. 거기에 남조선 괴뢰군 출신 ‘143호’라는 주민등록 꼬리표까지. 그것 때문에 우리 자식들은 평생토록 발전을 못하는 거 아니오? 내 말이 틀리오?~ 형님!” “…” 안시현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100% 그 이상 맞는 말인데 무엇을 어떻게 변명하겠는가. 자기 같은 국군포로들은 분명히 마구 버려진 버럭이다. 여기저기 그 어디에도 아무 쓸모없는 버럭. 그 더러운 버럭은 대를 이어 자식들이 걸머쥐고 가야 하는 무거운 짐이다. 한 번 쓴 ‘143호’ 감투는 좋든 실든 종신토록 쓰고 있어야 한다. --- p.2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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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호의 비밀
“그게 말이오야. 1956년 내각정령 143호에 따라 전쟁 때 이북으로 올라 온 남조선군대 출신 사람들에게 공민증을 부여한다는 것임매. 어버이 수령님과 노동당의 배려로…” “정부 내각정령은 143호인데 왜 43호임까?” “그냥 줄여서 ‘43호’라고 하는 검매.” 대표적 탈북작가(소설가)이자 ·통일교육 전문 강사 림일이 신작 장편소설 『막장 수다』를 세상에 내놓는다. 전작인 『탈북영웅 33인 특별인터뷰』와 『탈북여성 30인 특별대담』으로 대한민국에서 살면서 활발히 활동 중인 탈북민의 현실을 고스란히 그려낸 그의 노력은 영어로 번역 출간될 정도로 국내외의 관심을 받았다. 이제 작가의 시선은 본래 남한 사람이었으나 북으로 끌려가 돌아오지 못한 국군포로로 향한다. 어렵고 쉽지 않은 이야기지만 누구나 관심을 가져야 하는 중요한 사안이기에 흥미롭게 읽을 수 있도록 소설로 썼다. 그 냉엄한 사연은 우선 ‘43호의 비밀’부터 출발한다. 내각정령 143호에 의거한 안전부 주민등록 번호 중 두 자리로 불리는 이들은 기구한 삶을 이제부터 만나보자. 험지의 대명사 아오지 “어느 해인가 김일성 수령이 수행원들과 함께 함경북도를 현지 지도하던 중 관계부문 일꾼들에게 전기생산과 관련해 여러 탄광과 아오지 탄광에 대한 교시를 했고 그날은 6월 13일이다. 이후 아오지 탄광이 ‘6·13청년탄광’으로 개칭되어 불린다.” 우리에게 ‘6·13청년탄광’은 낯선 이름이다. 하지만 ‘아오지 탄광’은 누구나 안다. 심지어 한동안 개그 소재로 쓰일 정도로 친숙한 편이다. 북한에서도 오지 중에 오지이고 험지의 대명사인 이곳에 바로 국군포로들이 산다. 어쩌면 남한과 가장 먼 험지에 이들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 역설적으로 당연한지도 모른다. 그런데 일상이 힘겨울 수밖에 없는 탄광지역이기도 하지만 알게 모르게 받는 차별로 인해 국군포로들에게 여기는 지옥과 같은 곳이다. 그 와중에서 겪게 되는 다양한 사건과 눈물과 웃음, 그리고 지울 수 없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막장에서 기막힌 수다 “이 막장이 우리 인생 막장이재오?” “엉?~ 그게 무슨 소림까?” “갱도 끝 지점인 이 막장이나. 인생 끝 지점인 우리들의 신세나 똑같다는 소리임매. 아이 그렇소? 내 말이 틀리오야?” “하하! 그거 아주 신통한 비유임매.” “막장!~ 연극의 종장? 매우 비슷하오야.” 우리는 ‘막장’ 하면 ‘드라마’가 자동으로 연상된다. 한마디로 현실적이지 않다는 뜻이다. 그런데 차마 현실이라기에 너무 가혹한 상황이 계속되는 이곳에도 서로를 보듬는 수다와 삶의 나눔이 있다. 그러지 않아도 힘겨운 ‘고난의 행군’ 시기에 북한에서 가장 힘겨운 곳에서 제일 차별받는 존재들이 겪어낸 간난신고가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보다 더 리얼한 북한의 삶으로 인도할 것이다. 어쩌면 막장보다 더 기막힌 그들의 삶에서 남모를 애수를 느끼며 눈물을 훔칠지도 모른다. 잊힌 그 이름 국군포로 “안시현을 포함한 국군포로 출신들은 그동안 이곳 6·13청년탄광이나 사회(은덕군)에서 ‘국군포로’라는 말조차도 못하고 살았다. 공식적으로 ‘포로’라는 용어 자체가 공화국 정부의 ‘남조선군 포로는 없다!’는 정책에 위배가 되기에 그랬다. 그냥 뭇사람들로부터 ‘남조선 것들’ 혹은 ‘괴뢰군 출신’ 등으로 불린 자신들이었다.” 6·25전쟁의 마무리 중 가장 중요한 사건은 바로 ‘반공포로 석방’이었다. 다양한 해석과 의미 부여가 가능하지만 누가 뭐래도 당사자들에게는 광명의 빛줄기였다. 반대로 북한에 억류된 국군포로들은 잊힌 이름이 되었다. 망부석처럼 고향을 그리는 마음에 지쳐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가는 그들에는 유일한 희망을 고향을 다시 방문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소설의 말미에 나오는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에서조차 언급되지 못한 그들의 이름은 이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