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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간사 | 축사1 | 축사2 | 추모사 | 서문 | 일러두기
〈한시〉 001 용담정에서 龍潭亭 002 대신사의 태묘에서 大神師太墓 003 서천에서의 감회 西川有感 004 계림에서 鷄林 005 금척교 金尺橋 006 필운대 弼雲臺 007 부중에서 읊조리다 部中卽事 008 가을의 처량한 생각 秋思 009 『천도교월보』 창간 1주 기념 축하시 『天道敎月報』一周紀念祝賀詩 010 청린천 샘물을 마시며 飮靑麟泉泉 011 취운정에서 翠雲亭 012 성균관을 지나며 過成均館 013 8월에 북악에 올라 벗과 창화하다(1) 八月登北岳與芝友唱和(一) 014 8월에 북악에 올라 벗과 창화하다(2) 八月登北岳與芝友唱和(二) 015 8월에 북악에 올라 벗과 창화하다(3) 八月登北岳與芝友唱和(三) 016 북악에서 돌아오면서 삼청동에서 술을 사다 北岳歸路沽酒三淸洞 017 취운정에서 벗과 시를 주고받음 翠雲亭與芝友相酬 018 섣달그믐날 밤에 除夜 019 입춘 전날에 立春前日 020 봄날에(1) 春時節(一) 021 봄날에(2) 春時節(二) 022 태화루에서 멋스럽게 모이다 太和樓雅集 023 다장곡에서 多藏谷 024 삼청동에서(1) 三淸洞(一) 025 삼청동에서(2) 三淸洞(二) 026 삼청동에서(3) 三淸洞(三) 027 봉황각 원운 鳳凰閣原韻 028 두견정 원운 杜鵑亭原韻 029 봉황각의 여름밤에 읊음 鳳凰閣夏夜卽事 030 우연히 읊음 偶吟 031 삼청동 입구 바위에 석양에 앉아서 三淸洞口巖晩坐 032 봉황각에서 읊음(1) 鳳凰閣卽事(一) 033 봉황각에서 읊음(2) 鳳凰卽事(二) 034 북악에 올라 上北岳 035 저물녘 운정에 앉아(1) 雲亭晩坐(一) 036 저물녘 운정에 앉아(2) 雲亭晩坐(二) 037 중양절에 벗과 마주 앉아 술을 마시다 重陽對酌 038 재동에서 멋스럽게 모임 齋洞雅集 039 도성 서쪽에서 멋스럽게 모임 西城雅集 040 도원의 한담 道院散話 041 서쪽 이웃마을을 지나며 過西隣 042 우연히 읊음 偶吟 043 육언 六言 044 섣달그믐날 밤에 除夜 045 웃음을 머금고 含口餘? 046 우연히 읊조림 偶吟 047 저물녘 운정에 앉아 雲亭晩坐 048 우이동의 앵두꽃을 보며 牛耳洞觀櫻 049 위창과 함께 동쪽 성문을 나가다 伴葦滄出東城 050 갠 날에 매미소리를 들으며 聞晴蟬 051 가을비 秋雨 052 1월 초하룻날에(1) 一月元旦(一) 053 1월 초하룻날에(2) 一月元旦(二) 054 우이동 늦봄에(1) 牛耳洞暮春(一) 055 우이동 늦봄에(2) 牛耳洞暮春(二) 056 괴이한 돌 怪石 057 경암의 9월 9일을 읊은 시에 화운함 和敬庵九日韻 058 우연히 읊다 偶吟 059 동문을 나서며 出東門 060 화분의 국화 盆菊 061 신년 新年 062 재동에서 밤에 모이다 齋洞夜集 063 혜화문 밖에서 惠化門外 064 창동에서 우이동으로 향하며 自倉洞向牛耳 065 앵두꽃을 감상하며 償櫻 066 우이동에서 앵두꽃을 보며 느낀 것을 쓰다 牛耳洞償櫻紀行 067 김낭암 죽음에 대한 만사 輓金浪菴 068 삼청동에서 조용히 감상함 三淸洞幽賞 069 장원을 지나며 過張園 070 정암의 회갑 날 아침에 正庵甲朝 071 비에 갇혀서 도사의 방에서 운자로 신자(晨字)를 기다려 지음 滯雨道師室拈韻待晨字 072 벗의 죽음을 곡함 哭友人 073 흥인문 밖에서 興仁門外 074 늦가을에 경암과 함께 자지동에 나가서 晩秋與敬庵出紫芝洞 075 술을 마신 뒤 벗들과 함께 웃으며 酒後與友人相笑 076 안곡의 네 현인의 초상을 모신 집을 완공하면서 차운함(1) 次安谷四賢影閣落成韻(一) 077 안곡의 네 현인의 초상을 모신 집을 완공하면서 차운함(2) 次安谷四賢影閣落成韻(二) 078 이른 봄에 재동 집에 모임 早春會齋洞宅 079 장수를 축하하는 시 壽韻 080 이문순공의 ‘산 속의 승려가 달을 긷다’라는 시에 화운하다 和李文順公山僧汲月韻 081 늦가을 晩秋 082 산 속 샘에서 목욕하다 浴山泉 083 남암의 회갑 날 아침에 축하하다 祝楠菴壽朝 084 일가정 옛터에서 一可亭舊墟 085 가자곡에서 멋스럽게 모이다 加資谷雅集 086 중추에 봉황각에서(1) 仲秋鳳凰閣(一) 087 중추에 봉황각에서(2) 仲秋鳳凰閣(二) 088 중추에 봉황각에서(3) 仲秋鳳凰閣(三) 089 육언 절구 六絶 090 중원일 상춘원에서 中元日常春園 091 옥파의 61세 장수를 축하하는 시 詩沃坡六十一壽 092 섣달그믐날 밤에 除夜 〈산문〉 093 새해를 맞은 한 마디 말 新歲一語 094 청산 靑山 095 세밑에 年終 〈만사 및 동아일보 사설〉 096 헌사(獻詞) - 梁漢? 先生 遺芳을 追慕하며 097 만사 1(輓詞一) - 박동완(朴東完) 098 만사 2(輓詞二) - 나용환(羅龍煥) 099 만사 3(輓詞三) - 이종훈(李鍾勳) 100 만사 4(輓詞四) - 김완규(金完圭) 101 만사 5(輓詞五) - 권동진(權東鎭) 102 만사 6(輓詞六) - 이종린(李鍾麟) 103 死(사)와 永生(영생) - 東亞日報 社說 104 지강 유묵 芝江遺墨 |
梁鉉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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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사뿐만 아니라 문학사에서 저항시인으로서의 위상
간략하게 한문·한글문학을 아울러서 국권침탈기의 배일(排日) 저항시 문학을 정리하여보면, 경술국치 직후 매천 황현(梅泉黃玹)의 〈절명시(絶命詩), 1910년〉, 만해 한용운(萬海韓龍雲)의 〈님의 침묵, 1926년〉, 이육사(李陸史)의 〈절정(絶頂), 1940년〉과 〈광야(曠野), 1945년〉, 윤동주(尹東柱)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41년〉 등 네 명의 시인을 들고 있습니다. 여기에 1910년대를 대표하는 저항시로 황현 선생을 이어 8년여(1911~1919년) 동안 지속적으로 『천도교월보』를 통해 발표한 지강 선생의 한시작품들이 한국문학 시문학사에서 저항시로서 큰 맥을 올연 이어감으로, 독립운동사뿐만 아니라 문학사적 측면에서도 걸출한 저항시인으로서 시초를 조성하였습니다. ---「서문」중에서 꿈도 못 꾸게 하던 시대에 꿈을 노래하다 일제의 감시가 서릿발 같아서 살얼음을 밟는 심정으로 시의 제목부터 내용까지 모두[多] 감추고[藏], 일월도 그림도 다 못 그리니 숨기고[藏] 또 감추고[藏], 특정 지명을 의미하는 것처럼 ‘곡(谷)’자(字)를 붙여 발표한 것으로 사료됩니다. 일월도 앞 용상에 태산처럼 앉아서 만조백관을 불러 정사를 의논하던 나랏님은 어디로 숨었습니까[藏], 누가 감추었습니까[藏], 백성들은 볼 수 없으니 나랏님을 마음속에 간직한 채[藏], 북악산 골짜기[谷]에서 울부짖고 있사옵니다. ---「다장곡(多藏谷) 해설」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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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집(漢詩集) 제목을 ‘청산(靑山)’이라 하였습니다.
‘청산(靑山)’은 지강 선생의 한시에서 가장 많이 쓰인(12회) 시어(詩語)이고, 수필 형식의 산문에도 「청산(靑山)」이라는 제목이 있습니다. 아울러 시 속에는 ‘청(靑)’과 유사어인 碧(푸를 벽), 蒼(푸를 창), 淸(맑을 청), 綠(초록빛 록), 翠(비취색 취), 晴(갤 청) 등이 48수 이상에서 사용됐음을 볼 수 있습니다. 곧 청산은 지강 선생이 찾았던 대한독립이고 이상향이며 무한 에너지 원(源)인 고향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역해하는 과정에서도 ‘푸른 산’으로 하지 않고 한자음 ‘청산’을 그대로 사용한 것은 우리의 민요를 비롯 전통 시가 문학에서도 자주 쓰이듯이 시적인 의미를 더 깊고 넓게 함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의 격랑(激浪) 속에 수장된 보석 같은 한시 발굴 국권침탈기의 배일 저항시 문학을 정리하여보면 경술국치 직후 매천 황현(梅泉黃玹)의 〈절명시(絶命詩), 1910년〉, 만해 한용운(萬海韓龍雲)의 〈님의 침묵, 1926년〉 이육사(李陸史)의 〈절정(絶頂), 1940년〉과 〈광야(曠野), 1945년〉, 윤동주(尹東柱)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41년〉 등 네 명의 시인을 들 수 있습니다. 필자는 여기에 1910년대를 대표하는 저항시로 황현 선생을 이은 8년여(1911~1919년) 동안 지속적으로 발표한 지강 선생의 한시작품들이 1920년대 만해의 〈님의 침묵〉이 발간되기 이전까지 저항시 문학사의 공백기(?)를 메워주고 있으므로, 독립운동사뿐만 아니라 문학사적 측면에서도 시인으로서 평가받는 시초를 조성하기 위한 의도가 있음을 밝힙니다. 지강 선생도 자신의 시를 발표함에 있어 일제의 혹독한 언론검열과 감시, 탄압을 피하기 위하여 문학적 수사(修辭)를 택할 수밖에 없어 중의(重義), 압축(壓縮), 비유(譬喩), 생략(省略), 난해한 전고(典故 ; 典禮와 故事) 사용, 암시(暗示) 등의 표현수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을 해설을 통해 밝혀냄으로써 ‘대부분의 한시(漢詩)들이란 음풍농월(吟風弄月)한 것’이라는 선입견과 오해를 배제하기 위해 해설문을 더해야겠다는 용기를 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