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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 그리는 마음
그림으로 쓴 우리 동네 이야기 양장
정광헌
이유출판 2023.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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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에세이 top20 1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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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추천의 글
축하의 글
프롤로그

유아기의 기억 조각들

쇠똥구리의 추억
아버지의 찐빵
가로수가 울창했던 왕릉 길
거머리에 물려 정신없이 달리던 길
닭을 서울로 데려갈래!
서울의 첫인상
멀어져 가는 금촌을 바라보며

어린 시절의 서촌

이불 꾸러미에서 떨어진 ‘미루꾸’
나의 소꿉친구, 주인집 딸
이름도 얼굴도 잊었지만
분꽃 향기가 가득한 집
누상동 네 번째 집
외할머니댁 가는 길
국민학교 입학과 소중한 만남
처음으로 절망을 느낀 날
빈곤 속의 교육열이 나라 발전의 원동력이었나?
인왕산을 베개 삼아 풀피리 불어주던 선생님

우리 동네 서촌

옥인동 우리 집
내 방 창문으로 들어온 북악산
누상동 작은이모네
필운동 작은이모네
누하동 목욕탕의 추억
천지가 놀이터, 만물이 장난감
만화방의 추억과 「라이파이」의 회고
자하문 밖 자두 서리
통인시장 가는 길
전차 운전사가 되고 싶던 아이들

나를 키워 준 서촌

청와대 앞길에서
군것질거리와 사과 중독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네
나라를 뒤흔든 시위와 혁명 속에서
아리랑 골목에서의 인생 연습
서촌에서 태어났다 사라진 이들
수성동 계곡과 함팔이의 추억
각 삼등분으로 노벨상을 꿈꾸다
49년 전, 1974년 7월 4일 그날
육군 병사로 징집되다

서촌 지도

저자 소개 1

6.25 전쟁 중이던 1952년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났다. 경기도 금촌에서 유아기를 보내고 네 살 때 서울의 서촌으로 이사해 송강 정철의 집터였던 청운국민학교를 거쳐 겸재 정선의 집터에 자리 잡은 경복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서울대 사범대학에서 독일어를 전공했고, 육군에 입대하기 전까지 20년을 서촌에서 살았다. 1978년 대학을 졸업하고 대한민국 수출의 역군으로 국가 건설에 이바지한다는 포부로 삼성물산(주)에 입사했다. 독일 주재원으로 파견되는 등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해외시장 개척과 선진 기업들과의 국제 교역에 매진하였으며, 국내 상장회사의 CEO와 동부그룹 동부 LED 대표이
6.25 전쟁 중이던 1952년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났다. 경기도 금촌에서 유아기를 보내고 네 살 때 서울의 서촌으로 이사해 송강 정철의 집터였던 청운국민학교를 거쳐 겸재 정선의 집터에 자리 잡은 경복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서울대 사범대학에서 독일어를 전공했고, 육군에 입대하기 전까지 20년을 서촌에서 살았다. 1978년 대학을 졸업하고 대한민국 수출의 역군으로 국가 건설에 이바지한다는 포부로 삼성물산(주)에 입사했다. 독일 주재원으로 파견되는 등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해외시장 개척과 선진 기업들과의 국제 교역에 매진하였으며, 국내 상장회사의 CEO와 동부그룹 동부 LED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은퇴 후에도 국내 벤처기업들의 신사업 개발과 해외시장 진출을 돕는 개인사업을 운영하면서 KOTRA와 무역협회의 자문위원과 방위사업청 국제계약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했으며 현재 서울 청운초등학교 운영위원장으로 봉사하고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7월 31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336쪽 | 816g | 200*203*30mm
ISBN13
9791189534431

책 속으로

새벽 동이 트기도 전에 인왕산에서 들려오는 “야호!” 소리에 이어 아침 공기를 깨는 군인들의 점호 소리에 잠을 깼다. “일어나, 밥 먹고 학교 가야지!” 하며 아이들을 깨우는 옆집 아주머니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얼마 후에는 등교하는 어린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와 발걸음 소리가 동네 골목을 가득 채웠다. 해가 중천에 떠오르면 짐 실은 소달구지 지나가는 소리가 동네를 진동하고, 정오를 알리는 사이렌이 우렁차게 울렸다. 그리고 장사치들이 골목골목 외치는 소리와 흥정하는 여인들의 목소리로 이어졌다. 잠시 낮잠을 자도 될 만큼 적막감이 흐르다가, 어느새 학생들이 하교하는 발걸음 소리로 다시 소란스러워지면서 동네는 어린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어 활기를 되찾았다. 저녁 시간이 되면 집마다 엄마들이 대문을 열고 아이들을 찾는 목소리가 마치 합창이라도 하듯 온 동네에 울렸다. 저녁 시간이 지나 사방이 어두워지면 일을 마치고 퇴근하는 이들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고, 온 동네에 어둠이 깔리면 한잔 걸치고 비틀거리며 내뿜는 아저씨들의 유행가 자락이 어지럽게 들려왔다. “찹쌀떡 메밀묵”을 외치는 소리가 지나가고 밤이 깊어져 모두 잠들었을 시간이 되면 이 골목 저 골목에서 야경꾼의 딱딱이 소리가 울려왔다. 자정에 통행금지 사이렌이 울리면서 서촌은 다시 어둠과 적막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런 삶의 소음은 서촌에서 더는 들을 수 없고 다만 우리 기억 속에만 남아있을 뿐이다. 그 대신에 이제는 관광객의 발걸음 소리와 카메라 셔터 소리가 가득하다.
---「프롤로그」중에서

길거리 사방에 많은 이들이 차 밑에 누워있는 광경을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사람들이 자동차 밑에 누워있을까? 나중에 그 이유를 알게 되었는데, 당시에는 자동차가 고장이 잦아서 차를 길거리에 세워놓고 차 밑에 들어가 수리해야 했다고 한다. 저녁이 되어 어두워지면 전깃불을 켜서 사방을 대낮처럼 밝히는 것을 보고도 놀랐다. 금촌에서 남포 호롱불만 보았던 나는 전깃불이 정말 마술 같아서, 어머니에게 “집에 갈 때 천장에 달린 전등을 꼭 떼어 갖고 가자.”라고 조르기도 했다.
--- pp.44~46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며칠 남긴 1968년 1월 21일, 서의호와 강치홍이 우리 집에 놀러 와 저녁을 먹고 나서 내 방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무언가 폭발하는 것 같은 큰 소음에 놀라 그 창을 열고 내다보았다. 이미 해가 져서 어둑해진 가운데 세검정 가는 길의 과학수사연구소 부근에서 번쩍이는 불꽃이 보였고 폭음도 계속 들렸다. 그러더니 야광탄이 터지는지 북악산 전체가 대낮처럼 밝아졌다가 어두워지기를 반복하였다. 이것이 소위 김신조 등 북한의 무장 공비 일당 31명이 청와대 습격을 시도하여 벌어진 1. 21 사태였다.
--- p.139

어떤 날은 동네 아이들이 두 패로 나뉘어 전쟁 놀이를 했다.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인왕산에서 적당한 거리에 있는 두 개 바위를 각 패거리의 진지로 지정하고, 일정 시간 동안 솔방울 탄약을 비축한다. 그리고 합의된 시작 시각에 맞춰서 소위 진지 탈환전을 벌이는 것이다. 탈환전은 실전처럼 치열하다. 전방을 향하여 솔방울을 던지고, 집에서 들고 온 냄비 뚜껑을 방패 삼아 상대의 솔방울 세례를 피한다. 그러다 갑자기 바위 뒤에서 “와!” 하는 소리와 함께 솔방울이 날아오면 “야, 포위당했다. 도망가자!”라며 바위를 뛰어내려 다른 바위로 기어 올라갔다. 그렇게 놀던 것이 며칠 전의 일인 것처럼 기억에 생생하다.
--- p.171

“너희들 그 자두 어디서 따오는 거냐?”
“샀는데요!”
“어디 이리 가져와 봐! 내가 보면 우리 자두인지 아닌지 알 수 있지.”
우리는 갖고 있는 자두 봉투를 그 어른께 보여드렸다. 그분은 봉투에서 자두 하나를 꺼내 들어 차분히 살펴보더니, “야, 이놈들이 거짓말을 하네! 이것은 우리 자두가 틀림없는데 어디 거짓말을 하고 있냐!”라며 노발대발했다. 어머니께서 언젠가 내게 남의 집 과일을 서리하다가 주인에게 들키면 옷을 다 벗겨 나무에 묶어놓는다고 말씀하셨던 것이 떠올랐다. 우리는 순순히 “잘못했습니다.”를 반복하며 용서를 빌었다.
--- pp.191~192

넝마주이, 굴뚝 소제부, 똥퍼 아저씨뿐 아니라 시내버스 안내양도 그 당시 우리 사회의 삶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마주쳤던 분들이다. 1980년대 초에 버스 요금수납 방식을 개선하고 개폐문이 자동화되면서 그 직업도 수명을 다하였다.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연약한 어린 소녀들이 콩나물시루 같은 만원 시내버스의 안내양으로 이미 포화 상태인 버스에 손님들을 더 태우고 버스 문에 매달린 채 “오라이!”를 외치며, 문가에 서 있는 손님들을 뱃심으로 밀쳐 버스 안으로 밀어 넣었다.
--- pp.241~242

일주일 후인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이 마침내 대통령직에서 하야하겠다는 발표를 하였고, 한 달 후인 5월 29일 하와이로 망명하게 되었다. 대한민국의 제1공화국이 문을 닫는 그 역사적 순간이 여덟 살 어린이였던 내 머릿속에는 다만 ‘파괴된 파출소 출입문’으로 남아있다. 얼마 후, 교실의 칠판 위 정중앙에 걸려 있던 이승만 대통령의 사진도 떼어졌다. 경무대는 청와대로 이름이 바뀌었다.
--- p.247

그래도 분이 안 풀리면 그 친구에게 “오늘 수업 끝나고 아리랑 골목에서 만나자.”라고 결투를 제안했다. 어떤 경우는 당사자들이 여전히 분을 못 참고 씩씩거리는 것을 보고, 주변의 친구들이 ‘아리랑 골목에서의 결투’를 주선하여 양측에 통보하기도 하였다. 이야기를 듣고도 정해진 시간에 안 나타나면 자동으로 결투를 포기한 패배자가 되었다. 결투 시간은 대부분 수업을 마친 직후의 시간으로 정해졌다.
--- p.259

서대문형무소에 도착하여 푸른 수의로 갈아입고, 플라스틱 밥그릇과 젓가락 한 짝을 받아 들고 간수를 따라갔다. 감방들이 늘어선 건물(4舍) 1층으로 들어갔다. 하루 이틀 사이에 방을 두 번 옮겼는데 두 번째 방에서 대학 친구인 이원희와 우연히 통방을 하게 되었다. 그는 나보다 먼저 들어와 있었다. 어느 날 저녁, 그가 「희망」이라는 시를 몇 개의 감방 벽을 넘어 낭송해 주었다. 시 낭송을 마치고는 “어때, 희망치고는 무척 암담한 희망이지?”라며 혼잣말처럼 이야기했다.

--- p.302

출판사 리뷰

그림으로 되살려낸 60년대 서촌 풍경
잊히지 않고, 잊고 싶지 않은 기억들


서촌은 동쪽으로 경복궁과 청와대를, 서쪽으로 인왕산을 끼고 있는 동네다. 자연과 역사, 문화와 정치적 배경에 둘러싸인 이 특별한 공간은 작가의 성장기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정광헌 작가는 네 살 때 서촌으로 이사 와서 유년기부터 학창 시절을 거쳐 청년기를 보냈다. 어느덧 노년에 접어든 작가는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회상기”라는 글을 발견하여 읽어보고 자신도 후세들에게 무언가를 남겨주고 싶어 기억에 남아있는 어린 시절 장면을 하나하나 그림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작가는 60년대 서촌의 풍경을 놀랍도록 세밀하게 되살려낸다. 장마다 활짝 열리는 대문처럼 독자를 맞이하는 그림 속에는 그의 기억이 고증하는 시대상이 정감 있게 표현되어 있다. 작가의 유년기 모습이 담긴 낡은 흑백 사진에는 흘러온 시간만큼이나 짙은 향수가 느껴지고, 글에서는 어느 기억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세세하게 그 시절의 모습을 담아낸다. 언뜻 조선 시대 풍속화의 분위기를 떠올리게도 한다.

천지가 놀이터, 만물이 장난감
인왕산부터 아리랑 골목까지 어린 날의 인생 연습


정광헌 작가의 첫 기억은 두세 살 적 맞닥뜨린 쇠똥구리다. 언덕에서 넘어져 구르다 보았던 쇠똥구리가 엄청나게 큰 쇠똥을 굴리는 모습은 그의 기억에 생생히 새겨졌다. 서촌으로 이사 온 후 인왕산을 놀이터 삼아 자랐다. 인왕산의 넉넉한 품 안에서 사계절을 보내며 놀던 그의 기억은 더없이 소중한 보물이 되었다.

어릴 적 작가의 어머니는 분꽃이 피는 것을 보고 저녁밥을 지을 시간이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오후 4시경에 꽃을 피우기 때문이다. 인간의 하루가 자연과 더불어 피고 지던 때였다. 장난감도, TV도 없던 시절, 골목길은 아이들에게 거실이자 놀이터였다. 더운 여름이면 인왕산 계곡물에 뛰어들어 하루를 보냈다. 가재도 잡고 참새도 잡고 으슬으슬 동굴 탐험도 했다. 전쟁 후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했던 척박한 환경은, 자라나는 아이들에겐 오히려 자연이 살아 있어 짜릿한 모험을 즐길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이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 전쟁의 여파는 짙게 남아있었고 아이들은 그 분위기를 체감하며 자랐다. 막대기나 솥뚜껑, 솔방울 따위를 가지고 전쟁놀이를 하는가 하면, 동네 사이에 패싸움이 일어나기도 했다. 학교 주변에 있는 비밀스러운 ‘아리랑 골목’에서 결투가 벌어지기도 했다. 체벌이 훈육 수단이 되기도 하던 시절, 정광헌 작가를 비롯한 그 시절의 아이들은 시대가 요구하는 생존법을 자연스레 익히며 자랐다.

넝마주이, 굴뚝 소제부, 똥퍼, 시내버스 안내양, 한밤중의 야경꾼
서촌 풍경을 이루던 온갖 소리와 사람 냄새


작가의 가족은 서촌에서 셋집을 전전하며 터를 잡았다. 초가집과 기와집, 양철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던 서촌은 인구밀도가 높아 늘 복작거렸다. 학급당 학생 수는 100명이 넘었고 집마다 아이들 목소리가 담장을 넘었다. 아침에 인왕산에서 들려오는 “야호~!” 소리로 시작해 출근과 등교 인파, 소달구지의 둔중한 덜컹거림과 정오의 사이렌, 장사치들의 흥정 소리가 이어진다. 한낮의 적막함도 잠시, 오후엔 하교하는 학생들과 퇴근하는 사람들, 밤엔 취객들의 고성과 야경꾼의 딱딱이, 찹쌀떡과 메밀묵~ 자정의 통행금지 사이렌이 울리기까지 좁은 골목마다 온갖 소리가 난무했다. 사람 사는 소리가 바로 곁에서 들려오던 서촌은 쪽창으로 음식을 나누며 안부를 묻던 이웃들이 가난마저 공유하며 외로움을 달래던 곳이다.

지금은 사라진 직업군의 모습도 볼 수 있다. 망태기를 매고 넝마를 줍고 다니던 넝마주이, 징을 울리며 “뚫어~!” 하고 외치던 굴뚝 소제부, 재래식 변소의 오물들을 치워주는 ‘똥퍼’, 늘 만원인 시내버스에서 승객들을 뱃심으로 밀어 넣던 안내양 등 서촌뿐 아니라 그 시절 도회지 사람들의 일상을 채워주던 이들이었다. 생사(生死)에 관련한 의례도 동네에서 이루어졌다. 베이비붐 시대였으니 항상 대문엔 금줄이 걸려 있었고, 누군가 세상을 뜨면 집안에서 장례를 치렀다. 서울 한복판에서 전쟁을 치른 동네, 서촌에는 삶과 죽음이 일상 속에서 함께 호흡하고 있음을 어린 날의 작가는 생생하게 기억해낸다.

아이의 눈에 비친 현대사의 질곡들
분단된 개발도상국의 희망


작가가 회상하는 어린 시절 풍경에는 우리나라 현대사의 곡류가 함께 흐른다. 초등학교 교실 칠판 위에는 태극기와 함께 이승만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등하교 시간에는 어린이 합창단이 부른 「이승만 대통령 찬가」가 대형 스피커를 통해 동네에 울려 퍼졌다. 당시 유명한 코미디언 곽규석과 구봉서는 “미국에는? 원자탄!”, “소련은? 수소탄!”, “한국은? 구공탄!”이라는 자조적인 만담을 하기도 했다.

국가 재건에 힘써야 하는 개발도상국으로서 교육은 지상과제였다. 초등학생 중 절반이 과외를 받던 교육열의 시기, 학부모들은 공부방에 저녁밥을 해 나르며 자식들을 공부시켰다. 작가는 저녁밥을 차려오다 넘어져 다치면서도 시간 맞춰 공부방에 갖다주시던 어머니를 회상한다. 1960년 4.19로 제1공화국이 막을 내렸다. 당시 초등학생이던 작가에겐 그 역사적 순간이 하굣길에 본 산산조각 난 파출소의 출입문 이미지로 각인된다. 1968년 1월 21일에는 집에 놀러 온 친구들과 이야기하던 도중 창밖으로 번쩍이는 불꽃을 본다. 폭음이 들리며 북악산 전체가 야광탄이 터진 듯 밝아졌다 어두워지기를 반복했다. 북한의 무장 공비들이 청와대 습격을 시도한 1. 21사태였다.

시대의 물살에 휩쓸려 서대문형무소로, 군대로
그 시대를 살아낸 모두의 이야기


1974년 7월 4일, 작가는 다니던 대학 안에서 형사에게 연행되어 중앙정보부의 조사를 받는다. 민청학련 관련 긴급 조치 위반 혐의로 끌려가 서대문형무소에 수감 된 그는 가족과도 연락이 두절 된 채 실종 상태가 되었다. 독방에서 지내며 살인강도 무기수, 반공법을 위반한 소설가, 함께 잡혀 온 동기 등 다른 죄수들과 통방(감옥 창살 사이로 소통하는 것)하며 불안과 외로움을 달랜다. 90여 일 만에 석방되어 나온 그는 곧장 군 징집 대상이 된다. 입대를 앞두고 불안한 마음에 지인을 만난 8월 15일에 육영수 여사가 피격되어 사망한다. 온 나라가 초상집이 된 가운데 한 달 뒤 그는 입대하며 서촌을 떠난다.

시대의 물살에 휩쓸려 정든 고향을 떠나게 된 작가의 삶은 그 시대를 살아온 모두의 삶이기도 하다. 작가는 젊은 날 고초를 겪게 만든 시대를 원망하지 않고 이후 국가가 필요로 하는 산업의 역군으로 한평생 일해 왔다. 노년이 된 지금은 이따금 인왕산을 올라 수성동 계곡을 지나며 참방거리던 어린 시절 추억에 잠긴다. 그때 즐겨 보던 만화 「라이파이」의 비밀 요새가 그 바위 어디쯤이라고 여전히 믿으며 서촌 골목을 탐방하고 그 시절 자주 찾던 눈깔사탕 집터에 들어선 새 건물을 바라본다. 초가집, 기와집이 뒤섞여 있던 한옥들은 연립주택으로 변했고, 소달구지나 똥퍼, 야경꾼 지나다니는 소리도 더는 들리지 않는다. 그 시절 서촌의 모습은 그곳을 목격한 사람들의 기억 속에만 남게 되었다.

이 책은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찬가이며,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송가이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공유하는 오랜 친구들이 ‘추천의 글’과 ‘축하의 글’을 헌정한 것도 이런 의미에서다. 작가가 꼼꼼하고 익살스러운 그림으로 되살려낸 60여 년 전 서촌의 모습에서 우리가 현재 어떤 시간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는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를 새겨볼 수 있을 것이다.

추천평

『서촌 그리는 마음』에서 지은이는 아름다운 기억을 소상히 그린다. 지은이가 ‘마음으로 서촌을 그리는 것’은 어딘가로 떠났다가도 다시 돌아와 머물며 살아 온 장소의 소중함을 느껴서다. 그러나 그것은 길이 있고, 골목이 남았고, 우물이 있던 자취가 있었기에 가능한 기억이다. 건축은 사람이 생활하는 본거지를 구축하는 것인데, 이 생활의 본거지가 바로 ‘장소’다. 내가 건축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정광헌의 글과 그림이 책으로 나오기를 바란 것은, 바로 그 중심에 집이 있고 집이 놓인 장소와 그곳에 얽힌 사람들이 있다는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을 소상하고 따뜻하게 그렸기 때문이다. 이 책을 쓰고 그린 이는 정광헌인데, 그것은 내 이야기였다. - 김광현 (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
언제나 그렇듯 오랜 친구를 만나는 건 항상 반갑고 즐겁다. 지난번 네가 보여준 일기장을 보다가 우연히 ‘1965. 7. 29(목) 비 후에 개임’이라고 적힌 날짜에 눈길이 갔다. 내가 친구 윤택이와 비가 마구 내리던 날 너의 집을 찾아가서 언짢았던 마음을 풀었던 대목이 나오더라. 까마득히 먼 과거를 소환해 우리의 우정을 다시 돌아보게 해준, 얼마나 리얼하고 소중한 기록이던지! 60여 년 전 인왕산에 올라 파란 하늘의 구름을 함께 보면서, 우리 가슴을 가득 채우는 무언가를 느끼며 꿈에 부풀었던 그 시절을 다시 느끼게 해준 친구. 너의 첫 책 출간을 축하한다! - 이수만 (뮤직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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