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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글축하의 글프롤로그유아기의 기억 조각들쇠똥구리의 추억아버지의 찐빵가로수가 울창했던 왕릉 길거머리에 물려 정신없이 달리던 길닭을 서울로 데려갈래!서울의 첫인상멀어져 가는 금촌을 바라보며어린 시절의 서촌이불 꾸러미에서 떨어진 ‘미루꾸’나의 소꿉친구, 주인집 딸이름도 얼굴도 잊었지만분꽃 향기가 가득한 집누상동 네 번째 집외할머니댁 가는 길국민학교 입학과 소중한 만남처음으로 절망을 느낀 날빈곤 속의 교육열이 나라 발전의 원동력이었나?인왕산을 베개 삼아 풀피리 불어주던 선생님우리 동네 서촌옥인동 우리 집내 방 창문으로 들어온 북악산누상동 작은이모네필운동 작은이모네누하동 목욕탕의 추억천지가 놀이터, 만물이 장난감만화방의 추억과 「라이파이」의 회고자하문 밖 자두 서리통인시장 가는 길전차 운전사가 되고 싶던 아이들나를 키워 준 서촌청와대 앞길에서군것질거리와 사과 중독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네나라를 뒤흔든 시위와 혁명 속에서아리랑 골목에서의 인생 연습서촌에서 태어났다 사라진 이들수성동 계곡과 함팔이의 추억각 삼등분으로 노벨상을 꿈꾸다49년 전, 1974년 7월 4일 그날육군 병사로 징집되다서촌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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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되살려낸 60년대 서촌 풍경잊히지 않고, 잊고 싶지 않은 기억들서촌은 동쪽으로 경복궁과 청와대를, 서쪽으로 인왕산을 끼고 있는 동네다. 자연과 역사, 문화와 정치적 배경에 둘러싸인 이 특별한 공간은 작가의 성장기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정광헌 작가는 네 살 때 서촌으로 이사 와서 유년기부터 학창 시절을 거쳐 청년기를 보냈다. 어느덧 노년에 접어든 작가는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회상기”라는 글을 발견하여 읽어보고 자신도 후세들에게 무언가를 남겨주고 싶어 기억에 남아있는 어린 시절 장면을 하나하나 그림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작가는 60년대 서촌의 풍경을 놀랍도록 세밀하게 되살려낸다. 장마다 활짝 열리는 대문처럼 독자를 맞이하는 그림 속에는 그의 기억이 고증하는 시대상이 정감 있게 표현되어 있다. 작가의 유년기 모습이 담긴 낡은 흑백 사진에는 흘러온 시간만큼이나 짙은 향수가 느껴지고, 글에서는 어느 기억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세세하게 그 시절의 모습을 담아낸다. 언뜻 조선 시대 풍속화의 분위기를 떠올리게도 한다.천지가 놀이터, 만물이 장난감인왕산부터 아리랑 골목까지 어린 날의 인생 연습정광헌 작가의 첫 기억은 두세 살 적 맞닥뜨린 쇠똥구리다. 언덕에서 넘어져 구르다 보았던 쇠똥구리가 엄청나게 큰 쇠똥을 굴리는 모습은 그의 기억에 생생히 새겨졌다. 서촌으로 이사 온 후 인왕산을 놀이터 삼아 자랐다. 인왕산의 넉넉한 품 안에서 사계절을 보내며 놀던 그의 기억은 더없이 소중한 보물이 되었다.어릴 적 작가의 어머니는 분꽃이 피는 것을 보고 저녁밥을 지을 시간이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오후 4시경에 꽃을 피우기 때문이다. 인간의 하루가 자연과 더불어 피고 지던 때였다. 장난감도, TV도 없던 시절, 골목길은 아이들에게 거실이자 놀이터였다. 더운 여름이면 인왕산 계곡물에 뛰어들어 하루를 보냈다. 가재도 잡고 참새도 잡고 으슬으슬 동굴 탐험도 했다. 전쟁 후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했던 척박한 환경은, 자라나는 아이들에겐 오히려 자연이 살아 있어 짜릿한 모험을 즐길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이기도 했다.그러나 한국 전쟁의 여파는 짙게 남아있었고 아이들은 그 분위기를 체감하며 자랐다. 막대기나 솥뚜껑, 솔방울 따위를 가지고 전쟁놀이를 하는가 하면, 동네 사이에 패싸움이 일어나기도 했다. 학교 주변에 있는 비밀스러운 ‘아리랑 골목’에서 결투가 벌어지기도 했다. 체벌이 훈육 수단이 되기도 하던 시절, 정광헌 작가를 비롯한 그 시절의 아이들은 시대가 요구하는 생존법을 자연스레 익히며 자랐다.넝마주이, 굴뚝 소제부, 똥퍼, 시내버스 안내양, 한밤중의 야경꾼서촌 풍경을 이루던 온갖 소리와 사람 냄새 작가의 가족은 서촌에서 셋집을 전전하며 터를 잡았다. 초가집과 기와집, 양철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던 서촌은 인구밀도가 높아 늘 복작거렸다. 학급당 학생 수는 100명이 넘었고 집마다 아이들 목소리가 담장을 넘었다. 아침에 인왕산에서 들려오는 “야호~!” 소리로 시작해 출근과 등교 인파, 소달구지의 둔중한 덜컹거림과 정오의 사이렌, 장사치들의 흥정 소리가 이어진다. 한낮의 적막함도 잠시, 오후엔 하교하는 학생들과 퇴근하는 사람들, 밤엔 취객들의 고성과 야경꾼의 딱딱이, 찹쌀떡과 메밀묵~ 자정의 통행금지 사이렌이 울리기까지 좁은 골목마다 온갖 소리가 난무했다. 사람 사는 소리가 바로 곁에서 들려오던 서촌은 쪽창으로 음식을 나누며 안부를 묻던 이웃들이 가난마저 공유하며 외로움을 달래던 곳이다.지금은 사라진 직업군의 모습도 볼 수 있다. 망태기를 매고 넝마를 줍고 다니던 넝마주이, 징을 울리며 “뚫어~!” 하고 외치던 굴뚝 소제부, 재래식 변소의 오물들을 치워주는 ‘똥퍼’, 늘 만원인 시내버스에서 승객들을 뱃심으로 밀어 넣던 안내양 등 서촌뿐 아니라 그 시절 도회지 사람들의 일상을 채워주던 이들이었다. 생사(生死)에 관련한 의례도 동네에서 이루어졌다. 베이비붐 시대였으니 항상 대문엔 금줄이 걸려 있었고, 누군가 세상을 뜨면 집안에서 장례를 치렀다. 서울 한복판에서 전쟁을 치른 동네, 서촌에는 삶과 죽음이 일상 속에서 함께 호흡하고 있음을 어린 날의 작가는 생생하게 기억해낸다.아이의 눈에 비친 현대사의 질곡들분단된 개발도상국의 희망작가가 회상하는 어린 시절 풍경에는 우리나라 현대사의 곡류가 함께 흐른다. 초등학교 교실 칠판 위에는 태극기와 함께 이승만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등하교 시간에는 어린이 합창단이 부른 「이승만 대통령 찬가」가 대형 스피커를 통해 동네에 울려 퍼졌다. 당시 유명한 코미디언 곽규석과 구봉서는 “미국에는? 원자탄!”, “소련은? 수소탄!”, “한국은? 구공탄!”이라는 자조적인 만담을 하기도 했다.국가 재건에 힘써야 하는 개발도상국으로서 교육은 지상과제였다. 초등학생 중 절반이 과외를 받던 교육열의 시기, 학부모들은 공부방에 저녁밥을 해 나르며 자식들을 공부시켰다. 작가는 저녁밥을 차려오다 넘어져 다치면서도 시간 맞춰 공부방에 갖다주시던 어머니를 회상한다. 1960년 4.19로 제1공화국이 막을 내렸다. 당시 초등학생이던 작가에겐 그 역사적 순간이 하굣길에 본 산산조각 난 파출소의 출입문 이미지로 각인된다. 1968년 1월 21일에는 집에 놀러 온 친구들과 이야기하던 도중 창밖으로 번쩍이는 불꽃을 본다. 폭음이 들리며 북악산 전체가 야광탄이 터진 듯 밝아졌다 어두워지기를 반복했다. 북한의 무장 공비들이 청와대 습격을 시도한 1. 21사태였다. 시대의 물살에 휩쓸려 서대문형무소로, 군대로그 시대를 살아낸 모두의 이야기1974년 7월 4일, 작가는 다니던 대학 안에서 형사에게 연행되어 중앙정보부의 조사를 받는다. 민청학련 관련 긴급 조치 위반 혐의로 끌려가 서대문형무소에 수감 된 그는 가족과도 연락이 두절 된 채 실종 상태가 되었다. 독방에서 지내며 살인강도 무기수, 반공법을 위반한 소설가, 함께 잡혀 온 동기 등 다른 죄수들과 통방(감옥 창살 사이로 소통하는 것)하며 불안과 외로움을 달랜다. 90여 일 만에 석방되어 나온 그는 곧장 군 징집 대상이 된다. 입대를 앞두고 불안한 마음에 지인을 만난 8월 15일에 육영수 여사가 피격되어 사망한다. 온 나라가 초상집이 된 가운데 한 달 뒤 그는 입대하며 서촌을 떠난다.시대의 물살에 휩쓸려 정든 고향을 떠나게 된 작가의 삶은 그 시대를 살아온 모두의 삶이기도 하다. 작가는 젊은 날 고초를 겪게 만든 시대를 원망하지 않고 이후 국가가 필요로 하는 산업의 역군으로 한평생 일해 왔다. 노년이 된 지금은 이따금 인왕산을 올라 수성동 계곡을 지나며 참방거리던 어린 시절 추억에 잠긴다. 그때 즐겨 보던 만화 「라이파이」의 비밀 요새가 그 바위 어디쯤이라고 여전히 믿으며 서촌 골목을 탐방하고 그 시절 자주 찾던 눈깔사탕 집터에 들어선 새 건물을 바라본다. 초가집, 기와집이 뒤섞여 있던 한옥들은 연립주택으로 변했고, 소달구지나 똥퍼, 야경꾼 지나다니는 소리도 더는 들리지 않는다. 그 시절 서촌의 모습은 그곳을 목격한 사람들의 기억 속에만 남게 되었다. 이 책은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찬가이며,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송가이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공유하는 오랜 친구들이 ‘추천의 글’과 ‘축하의 글’을 헌정한 것도 이런 의미에서다. 작가가 꼼꼼하고 익살스러운 그림으로 되살려낸 60여 년 전 서촌의 모습에서 우리가 현재 어떤 시간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는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를 새겨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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