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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판을 출간하며 11
감사의 말 18 서론 21 1장 일상생활: 혁명의 시공간 41 2장 식민지 근대성의 유산: 혁명의 불씨 83 3장 세 가지 개혁: 혁명의 시작 123 4장 사회단체: 혁명의 실행 169 5장 자서전: 혁명의 내러티브 215 6장 혁명적 모성: 혁명의 젠더 265 7장 해방 공간: 혁명의 기억 307 결론 358 부록 373 미주 383 찾아보기 4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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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북조선의 역사를 사회주의적 근대성의 일부로 파악한다. 어떤 사람들은 “현실 사회주의”의 이 같은 변이를 진정 사회주의적인 것으로 볼 수 있는지 물을 수도 있다. 여기서 요점은 사회주의의 본질적 교의에 대한 이론적 논쟁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탈식민지 이후 북조선과 같이 거의 전적으로 농업 사회였던 곳에서 사회주의는 무엇을 의미했는지, 또한 대중 참여를 통해 사회주의라고 생각했던 것을 어떻게 실천했는지를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설명하는 것이다.
--- p.36 혁명과 관련되어 있는 폭력과 혼돈의 이미지는 오해의 소지가 있거나, 어느 한 단면만을 보여 주는 것이다. 비록 사람들은 혁명을 단두대와 정치적 숙청이라는 극단적인 이미지들과 관련된 파괴적인 것으로 기억하지만, 혁명은 일상생활을 전환시키는 보다 창조적인 것이다. 한나 아렌트는 실제로 혁명의 파괴적인 잠재성보다는 창조적인 측면에 대해 이야기한 몇 안 되는 정치 이론가 가운데 하나다. --- p.55 북조선의 경작지 186만 정보 가운데 절반 이상이 토지개혁으로 몰수되었다. 몰수 토지의 60퍼센트 이상이 중농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그들은 5정보 이하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지만 토지의 일부 혹은 전부를 소작을 주고 있었다. 몰수된 토지는 거의 모두 재분배되었다. 2퍼센트 미만의 토지만이 국가 소유로 남았다. 결국 전체 105만 정보가 몰수되었고, 25일 만에 98만 정보가 모두 71만 농민 가구에 무상으로 재분배되었다. 99퍼센트의 소작지가 보상 없이 몰수된 것이다. 북조선 전체 농민 가구의 70퍼센트 이상이 혜택을 받았다. 토지개혁은 지주의 권력을 무너뜨렸다. 지주들 가운데 다수는 일제 부역자로 비난을 받던 사람들이었다. 새로운 제도는 토지가 없는 다수의 농민과 빈농들로부터 지지를 받았다. 지주들은 쓴 약을 삼켜야만 했다. --- p.134 유권자를 교육하는 창의적인 방법 중 하나로 소위 “인민위원 선거 경기”라 불리는 게임이 있었다. 서로 경쟁하는 두 팀 가운데 어느 팀이 먼저 “투표”를 마치는지를 가리는 게임이었다. 각각 30명으로 이루어진 두 팀은 남녀 동수의 구성원을 다음과 같은 직업군, 즉 선거위원회 위원(운동복에 완장으로 선거위원 표시), 빈농, 부농, 노동자, 사무원, 승녀, 신부, 유림, 소시민 병자(노파), 장애 노인, 대학생, 자전거 혹은 이륜 짐차 유랑인 등으로 분장시켜 팀을 짠다. 게임은 적어도 50미터 길이의 큰 강당이나 공터에서 열린다. 기표소 두 곳에 각각 검은 투표함과 하얀 투표함이 놓이고, 기표소 앞에는 선거위원이 각각 한 사람씩 배치된다. 결과적으로 이 게임은 마을 사람들에게 투표하는 방법을 가르치기 위해 두 팀이 경쟁적으로 서로의 투표 과정을 모방하게 한다. --- p.149 김호철의 삶은 국제 사회주의 활동의 측면에서 주목할 만한 사례이기는 하지만, 이와 같은 초국가적 경험이 조선인들 사이에서 드문 일은 아니었다. 일제 식민 통치로 말미암아 수많은 사람들이 더 좋은 삶의 기회를 찾아 고향을 등지고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의 인사 서류철에도 만주 중국 일본 등지에서의 경험이 기록되어 있지만, 김호철의 서류철이 남다른 점은 자서전이 세 개나 들어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당시 한창 진행 중이던 북조선 혁명에 대한 내러티브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검토할 기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더욱 중요하게는 (자서전을 매개로 혁명을 서술하는 과정을 통해) 북조선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좀 더 광범위한 사회적 동학 속에서 어떻게 인식했는지, 그리고 가장 이상적인 경우에는, 혁명을 진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혁명가로 자신을 어떻게 인식했는지 살펴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제공한다. 북조선 역시 인민을 역사의 주체로 규정해 변혁 운동에 동원하려 했다는 점에서 예외적이지 않았다. 소련의 경험이 선례로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지만, 이 같은 자서전들은 북조선 사람들이 자서전 작성 관행을 활용해 자신의 개인사를 북조선 혁명이라는 좀 더 넓은 맥락 속에 어떻게 통합시켰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 p.219-220 어떤 단체의 일원으로서 그 안에서 생활하려면, 누구나 이력서와 짧은 자서전이 포함된 지원서를 각 조직에 제출해야 했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이와 같은 제도적 관행은 ― 오늘날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근대성의 곤경이라고 비난하는 ― 푸코주의적 규율[훈육]의 한 형태로 이해되기 쉽지만, 이런 규율은 얄궂게도 근대적 주체를 생산하는 도구였으며, 물질적 결핍이나 식민지 잔재로부터 인간 해방을 위해 투쟁할 수 있도록 했다. 즉, ‘기계적 규율’과 ‘자각적 규율’ 사이의 차이는 근대적 주체성에 내재된 양면성을 잘 보여 주는데, 이는 생산물이자 생산자로서 이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 사람이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보여 주는 변증법을 나타내고 있다. 자율적인 근대적 주체라는 개념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Subject’[주체/신민]라는 개념은 역설적으로 두 가지 상반된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한편으로는 자신보다 더 큰 힘을 행사하는 권위체의 통제 아래 놓인 사람[신민]을 의미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결정적 행위자[주체]를 뜻하기도 한다. 이것은 마르크스주의적 주체에서 나타나는 변증법, 다시 말해 “즉자적 계급”과 “대자적 계급” 사이의 변증법과 동일하다. 대규모 산업 노동자계급과 같은 전형적인 “즉자적 계급”은 없었을지 모르지만, 북조선은 “대자적 계급”을 만드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 p.214 북조선 혁명이 진행되는 동안 사람들은 사회적 출신 성분을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재구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자서전은 그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매개체 역할을 했다. 하지만 후자의 사례에서 나타나듯 식민지 시기에 공직을 맡아 부역 행위를 했던 과오는 지우기 어려웠다. 이는 척결해야 할 반혁명 세력을 규정하는 선이 명확했음을 보여 주는 사례들로, 해방이라는 집단 내러티브 안에 일정한 한계가 있음을 나타낸다. 가족 구성원이 직접적으로 일제 식민 정부에 부역한 사람들은 해방이라는 집단 내러티브에 포함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민지 시대에 교사로 있었던 사람들에게는 자서전을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일정한 여지가 상대적으로 폭넓게 주어졌다. 그들의 자서전을 보면 지식인들이 자아비판을 통해 해방이라는 집단 내러티브에 편입되는 과정이 잘 나타난다. --- p.249 모리스 알박스는 역사적 기억을 다룰 때 유용한 출발점을 제공한다. 그는 기억은 오직 집단적 맥락 속에서만 작동할 수 있으며, 따라서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라고 강조함으로써 본질적으로 기억을 개인의 자산으로 보는 프로이트의 관점에 도전했다. 물론, 기억은 매우 개인적인 것일 수도 있기 때문에, 알박스가 다소 과장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집단 기억에 대한 그의 분석은 왜 서로 다른 집단에 속한 사람들이 서로 다른 기억을 갖고 있는지, 과거의 재구성뿐만 아니라 현재의 사실을 두고도 왜 논쟁을 벌이는지 설명해 준다. 한반도의 역사 역시 논쟁으로 가득 차있다. 특히 남북이 정통성을 두고 계속해서 경쟁을 벌이고 있고, 해방에 대한 내러티브에서 젠더화된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사건에 대한 표준적 내러티브의 이면을 살펴보는 게 중요하다. --- p.316 해방에 대한 기억이 환멸인지, “집단적 흥분”인지에 상관없이 남성들은 자신의 인생사를 중요한 민족사의 한 부분으로 간주했다. 예를 들어, 함석헌, 오영진, 리영희의 회고록에는 “자서전” “증언” “역정”이라는 단어가 제목에 들어 있는데, 이는 의식적으로 민족사의 연대기에 자신의 삶을 집어넣기 위한 것이다. 가정생활에 관한 이야기는 이들의 인생 이야기에서 들어설 자리가 없었고,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데 가장 두드러지게 사용된 단어는 민족이었다. 민족의 역사는 무엇보다 중요했고, 그들의 인생 이야기는 민족사의 연장선상에 있는 범위만큼 중요했다. 이렇게 묘사된 민족의 역사는 결정적으로 남성적인 것이었다. 북조선에서 이상적인 시민 모델로 혁명적인 어머니를 내세운 것과 달리, 해방 후 남한에서는 남성이 정치적 주체성의 전형을 구현했다. 이런 역사에서 여성들은 해방을 정말 ‘해방 공간’으로 경험했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해줄 수 있는 그 어떤 여성 혁명가나 여성 단체도 없었다. 그 대답을 찾을 수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서는 여성들이 자신들의 인생사를 이야기하는 내러티브로 눈을 돌려야 한다. --- p.336 남성들이 민족사를 자기 자신의 이야기로 전유했다면, 여성들은 민족 해방과 여성해방을 동일시해 민족 해방 투쟁에 참여함으로써 자신의 인생사를 민족사 속에 삽입하려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시도는 여성이 참여할 수 있는 조직적 공간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은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남한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 결과 여성들은 전통적인 핵심 정체성 가운데 하나인 어머니를 전유해, 즉 혁명적 모성이라는 형태를 통해 여성이 정치 영역에 진입하는 것을 (북조선에서의 담론과 매우 유사하게) 정당화하고 유효화하려 했다. 그들의 직접적 경험담은 (모성이 단순히 수사적 장치에 머물렀던 것이 아니라) 여성들 스스로가 정치화된 새로운 정체성으로 모성을 경험했음을 보여 준다. --- p.348 이런 식으로 보게 되면 왜 여성의 내러티브가 양가성으로 가득 차있는지, 왜 여성들은 인터뷰를 꺼렸는지, 김원주의 회고록에는 왜 공백이 있는지, 허정숙은 왜 회고록에서 자신의 인생사를 쓰지 않았는지가 명확해진다. 이런 양가성은, 북조선에서 김일성의 개인적 경험이든 남한에서 더욱 일반적인 남성적 경험이든 간에, 특정한 경험(남성의 경험)을 (그것이 가진 특수성을 간과한 채) 포괄적인 민족사로 일반화한 데서 비롯된다. 이 장 맨 앞에 실린 사진으로 돌아가 보자. 우리는 그 사진을 보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즉, 저 여성은 누구이고 그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우리는 그 여성을 김원주로 상상해, 김원주의 이야기에서처럼 해방 소식에 환호하는 군중들 속에 있는 그녀를 상상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동안 그 여성의 이야기는 해방을 기억하고 역사화하는 데 관련 없는 것으로 간주되었기에 너무나도 자주 프레임에서 제외되곤 한다. --- p.356-357 이 책에서 나는 그 주변부로 다가가 북조선이 사회주의적 근대성을 건설했던 경험의 역사, 혁명적 변화를 겪은 마을의 역사, 새로운 형태의 일상적 실천을 통해 혁명가가 된 농민의 역사, 해방과 혁명의 실질적인 의미를 구성하는 여성의 역사 등 소외된 역사에 주목하려 했다. 여전히 한반도에는 분단이 지속되고 있으며, 이는 안보를 최우선 과제로 생각하게 강제함으로써 개방적인 논의를 가로막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해방 직후의 시기를 다시 이해한다는 것은, 상호 경쟁적인 시각들 사이에서 길을 잃지 않고 잘 헤쳐 나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시기에 대한 구술사 수집이 유독 어려운 상황은 냉전 이분법에 결박되어 있는 한반도의 과거를 넘어 대안적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는 시공간으로서의 “해방공간”의 의미를 회복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일깨워 준다. --- p.371-3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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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조선, 해방 전후사의 인식
이 책은 일본의 식민 통치에서 해방된 1945년부터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한 1950년까지 북조선에서 진행된 사회혁명의 시기를 살았던 농민과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당시 북조선은 식민지적 근대성과 자본주의적 근대성 모두와 대립하는, 사회주의적 근대성이라는 대안적 경로에 들어서고 있었다. 일제 식민 통치의 갑작스런 종언과 더불어 ‘집단적 흥분’을 자아낸 해방의 열기, 토지개혁, 한반도 역사상 최초로 치러진 선거, 문맹퇴치 운동 등을 통해 세상을 스스로 변화시키고 있다는 자신감에 차 있던 한반도 이북 지역의 사람들은 당시를 어떻게 경험했고 또 어떻게 기억하고 있었을까? 이 책은 바로 북조선 역사의 출발점으로 돌아가, 당시 한반도 이북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이 당시 전개된 사회혁명을 어떻게 바라보았고, 어떻게 경험했는지를 살피고 있다. 사실, 해방 이후 한반도가 남북으로 분할되어, 남쪽에는 미군, 북쪽에는 소련군이 진주하게 된 상황에는 매우 얄궂은 측면이 있다. 당시 한반도에서 조선공산당을 필두로 공산주의자들이 조직적으로 집중되어 있었던 지역은 당시 경성(서울)을 비롯한 한반도 이남 지역이었다. 반면, 평양이 동방의 예루살렘으로 불렸듯 기독교 성향의 반공주의적 민족주의 진영의 핵심은 이북 지역이었다. 이 같은 역설적 상황에서, 그간 해방 전후사에 대한 연구는 한반도 이남을 중심으로, 강고했던 좌익 사회주의 운동이 미군정하에서 어떤 투쟁을 벌였고, 미군정과 1948년 수립된 이승만 정부하에서 어떻게 진압되었는지를 중심으로 한다. 말하자면, 해방 전후사의 인식이라는 측면에서, 기존 연구들은 남한 지역의 ‘해방 공간’이 어떻게 자유민주주의를 핵심 이념으로 한 반공주의 우파 진영을 중심으로 닫히게 되었는지를 설명해 왔다. 반면, 한반도 이북에 대한 기존 연구들은 소련과 소련의 강력한 지원을 받았던 김일성을 중심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뒤이어 어떻게 동족상잔의 전쟁이 벌어졌는지, 나아가 전쟁 이후 기존의 정적과 주요 정치 세력들을 제거하고 김일성이 어떻게 최고 지도자가 되었는지를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다. 이 점에서 북조선에 대한 기존의 연구는 소련의 영향력하에서,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기괴한 국가의 형성 과정에 다름아니었다. 물론, 북조선의 정치사는 본질적으로 한 사람, 곧 김일성이 부상하는 과정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북조선의 역사를 김일성을 중심으로 단순화해 서술하는 것의 장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북조선은 우리가 지금까지 간과해 온 복잡한 역사 속에서 출현했으며, 이 책은 그런 복잡한 역사의 출발점에서 시작한다. 특히 북조선의 복잡한 역사적 기원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나아가 해방 직후 사회주의혁명과 더불어 북조선 인민들이 전망했던 자신들의 미래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북조선은 김일성 일가와 이들의 지배하에 있는 기괴한 국가기구와 같이 영원히 ‘타자’로 남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책에서 강조하듯, 북조선의 역사는 한 사람이나 특정 정당의 역사가 아니라 근대성이라는 역사의 중요한 부분이며, “시간이 멈춰진” 역사가 아니라 탈식민화라는 세계사적 과정의 일부분이다. 북조선에서 전개된 혁명의 역사는 혁명 지도자와 대중들이 사회혁명을 위해 영웅적으로 똘똘 뭉친 승리의 역사도 아니고, 혁명 지도자가 권력을 잡기 위해 대중을 배신한 비극의 역사도 아니다. 북조선 혁명을 김일성의 단독 프로젝트로 보는 하향식 혁명 모델이나 전적으로 자발적인 것으로 보는 상향식 혁명 모델 모두 정확하지 않다. 중앙이 아닌, 지방의 경험을 보라 이 책은 외부의 힘에 의해 선물처럼 주어진 해방, 이후 이어진 미국과 소련의 분할 점령, 사회주의 항일 무장투쟁과 국제 사회주의 운동의 경험, 항일 민족주의 운동의 전통 등이 빚어낸 ‘해방 공간’을 이북에서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흔히 이 시기에 이루어진 북조선의 국가 형성은 소련을 모방한 중앙집권적 과정으로 이야기된다. 그러다 보니 해방 직후 이북 지역에서 벌어졌던 모든 정책이나 정치적 과정들이 모두 소련이 뒤에서 조정했다거나 사실상 일방적으로 결정했다는 시각이 강했다. 당연히 이런 시각에서는 평양을 중심으로 한 중앙 정치가 부각된다. 하지만 이 책이 적절히 지적하듯, 지방 수준으로까지 소련의 정책이 일관되게 전달되지는 못했으며, 적어도 1948년 중앙정부 수립과 1950년 전쟁으로 치닫기 이전까지만 해도, 중앙으로부터 일정한 자율성을 갖고 지역이 처한 문제들을 해결해 나간 시기였다. 이 책은 바로 이 같은 시공간에 주목하며 미국국가기록관리청에 보관돼 있던 북조선 노획 문서들(편지, 일기, 인사 서류철, 다양한 조직의 회의록, 교육 자료, 신분, 잡지, 사진 등의 방대한 자료)을 활용함과 동시에, 특히 그 가운데서도 소련의 권력이 힘을 미치지 못했던 인제군을 중심으로 그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이 경험한 사회혁명에 대해 상세히 살펴보고 있다. 여기에 오늘날 당시 상황을 기억하는 이들의 구술사 자료, 저자의 구술 인터뷰 등을 포함해, 당시에 대한 ‘기억’이 어떻게 집단적으로 (재)생산되고 있는지 보완함으로써, 해방 직후 한반도 이북의 상황을 모자이크처럼 재현하고 있다. 국가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경험과 목소리에 주목하라 좀 더 구체적으로는, 1945년 해방 다음 날부터 1948년 한반도 남과 북 양측에 정부가 수립되고, 양 진영이 열전과 냉전으로 치닫기 직전까지 열려 있는 한반도 이북 지역의 ‘해방 공간’에서 펼쳐졌던 토지개혁, 인민위원회 선거, 문맹퇴치 운동을 중심으로 대안적 사회주의적 근대성을 향한 실험이 어떻게 준비되고, 또 어떻게 실행되었는지, 북조선 인민들은 이를 어떻게 경험했는지에 대한 생생한 미시사를 담고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의 백미는 5장, 6장, 7장의, 사회주의혁명을 경험한 개인들의 목소리에 대한 소개와 섬세한 분석일 것이다. 문맹퇴치 운동의 결실로 이제 막 한글을 깨우친 농민, 노동자들이 북조선에서 진행된 사회혁명을 겪으며 생생히 기록한 회의록, 수많은 개인들이 당과 사회단체에 가입하기 위해 제출한 이력서들과 자서전, 저자가 여러 차례 인터뷰한 남한의 출소 장기수 정치범들의 구술 기록, 여성 빨치산 전사들이 전한 기존의 구술 기록에 대한 섬세한 분석과 추가 인터뷰 등을 통해 이 책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북조선에서 전개된 사회혁명은 어떤 모습으로 비쳤고, 이들은 또한 사회주의혁명이라는 거대한 내러티브 속에서 자신의 인생사를 어떻게 재구성하고 혁명에 동참하려 했는지, 당시 이들이 품었던 꿈은 무엇이었는지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특히, 5장에서는 “노동자” “농민”과 같이 구체적인 정체성을 가진 이들과 “사무원”(사무직 노동자, 또는 점원)이라는 모호한 단어로 지칭되는 이들이 자서전 쓰기와 이력서 작성 등과 같은 실천을 통해 어떻게 혁명적인 주체로 구성되었는지 살펴본다. 이런 집단적인 자서전 쓰기를 통해, 이북에 살았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인생사를 사회혁명의 내러티브 속에 어떻게 끼워 넣으려 했는지뿐만 아니라, 과거 친일 부역 행위를 했던 이들이나 그런 집안 출신 사람들은 자신의 과거를 희석시키기 위해 어떤 담론 전략을 활용했는지, 또 이 같은 전략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 등을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다. 이 책은 또한 1948년 남과 북에 각각 정부가 수립되고 양 진영이 전쟁으로 치닫게 되면서, 일상생활의 역동성과 창의성이 어떻게 축소되기 시작했는지를 살펴보며, 또 그 과정에서 혁명 당시 북조선 인민들이 표출하고 기대했던 희망이 어떻게 좌절되어 갔는지를 분석하고, 현재 북조선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고찰해 볼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서구 사회가 기괴한 정치 체계를 가진, 자신의 국민들을 굶겨 죽이면서도 핵 개발과 무장에만 열중하는 북조선이라는 ‘국가’만 바라보는 상황에서, 이 책은 국가 형성기에 북조선에 살았던 개인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함을 역설한다. 민족사로서의 남성들의 인생사 vs. 여전히 주변부에 남은 여성들의 인생사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내용 가운데 하나는, 해방 직후의 경험을 말하는 남성들의 내러티브와 여성들의 내러티브가 상당히 다르다는 점이다. 예컨대, 남성들은 대체로 자신의 인생사를 글로 쓰거나 이야기할 때 해방을 비롯한 민족사의 중요한 분기점을 자기 삶에서도 중요한 분기점으로 그리며, 민족사와 나란히 자신의 인생사를 기술하고 있다. 이 같은 특징은 이북 지역에서 쓰인 수많은 자서전들에서 찾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함석헌, 오영진, 리영희 등과 같이 이남 지역에서 출간된 회고록에서도 찾을 수 있는데, 이는 남성들의 경우 의식적으로 민족사의 연대기에 자신의 삶을 끼워 넣고 있음을 보여 준다. 반면, 여성들이 말하는 인생사는 민족사의 분기점들과 이어지면서도, 그 과정에서 특유의 양가적 감정을 자아낸다. 예컨대, 여성들의 기억은, 항일 무장 투쟁과 빨치산 운동에 동등하게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해방의 환희뿐만 아니라 좌절감이나 안타까움 같은 양가적 감정으로 채색돼 있었다. 사실, 남성들은 자신의 인생사를 이야기할 때 가족에 대해 거의 이야기하지 않는다. 반면, 여성들의 인생사에서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며, 주요 변곡점에서 중요한 굴레나 제약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 점에서 여성들은 자신들의 인생사를 민족사의 흐름들과 쉽게 동일시할 수 없었고, 주변화될 수밖에 없었으며, 해방 공간에서도 좌절감이나 불안감 등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이들은 해방 공간에서 자신들의 기억을 적극적으로 남기려 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했고, 해방 공간이 남성의 경험과 다른 방식으로 여성의 경험을 조형한 시기이기도 했다고 비판적으로 평가하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간단히 말해 두자면, 이는 이북 지역에서는 김일성의 개인적 경험을, 이남 지역에서는 남성들의 특정한 경험을 (그것이 가진 특수성을 간과한 채) 포괄적인 민족사로 일반화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시각에서 이 책은 북조선 인민들이 체험한 사회주의적 근대성의 생생한 모습을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모습이 어떻게 젠더화된 형태로 축소되고 집단적으로 기억되어 왔는지 보여 주며, 반식민주의 투쟁에서든 사회주의적 근대성을 향한 투쟁에서든 잘려 나가거나 잊힌 여성들의 목소리를 복원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강조한다. 장별 주요 내용 1장에서는 일상the everyday을 자연스러운 시간의 단위로 간주하는 대신, 산업자본주의 경험으로부터 출현한 근대적 개념으로 역사화하며, 일상이란 무엇인지 살펴본다. 나아가 사회주의적 일상이, 자본주의적 근대성 아래에서의 일상과 달리, 또한 그것과는 대립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행위 주체성들을 접합해 어떤 특정한 종류의 행위 주체성을 접합하는지 보여 주기 위해, 일상을 그와 같은 접합의 장소로 제시한다. 소련뿐만 아니라 추가적으로 중국의 사례를 살펴보면서, 이북 지역에서 발생한 혁명이 일상적인 사회주의적 근대성의 이 같은 흐름들 내에 위치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2장에서는 일제하의 식민지 시기를 되짚어 본다. 이를 통해 북조선의 사회주의적 근대성이 어떤 점에서 식민지적 근대성과 자본주의적 근대성(이 둘은 모두 근대적 주체들에 대한 인정 없이 근대성의 형식을 한반도에 도입했다)에 대한 직접적인 대응이었는지를 살펴본다. 3장에서는 인제군을 중심으로 혁명 기간 동안 어떻게 일상생활이 변화했고, 이를 통해 새로운 근대적 주체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자세히 살펴본다. 인제군은 38도선을 따라 위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반도 이북 지역 가운데 가장 풍부한 기록 자료가 남아 있어 면밀한 연구가 가능했다. 특히 3장에서는 사회관계, 정치 참여 및 문화생활의 토대를 새롭게 마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세 가지 사건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여기서 말하는 세 가지 사건이란 사회관계를 재구성한 급진적 토지개혁, 인민위원회 선거, 교육의 기회를 가져다 준 문맹 퇴치 운동을 가리킨다. 4장에서는 혁명을 제도화하는 다양한 조직들에 초점을 맞춘다. 제아무리 획기적인 사건이라 해도, 기념비적 사건들은 그런 사건들의 핵심 교의들을 일상 안에 제도화하는 항구적인 조직과 꾸준한 실천을 통해 일관되게 유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매일매일의 습관을 구조화하는 수많은 회의와 학습 모임 같은 다양한 조직에 개인들이 참여하게 됨에 따라 출현한 단체 생활을 일상생활에서 나타난 중요한 변화 가운데 하나로 규정한다. 5장에서는 “노동자” “농민”과 같이 구체적인 정체성을 가진 이들과 “사무원”(사무직 노동자, 또는 점원)이라는 모호한 단어로 지칭되는 이들이 자서전 쓰기와 이력서 작성 등과 같은 실천을 통해 어떻게 혁명적 주체로 구성되었는지 살펴본다. 혁명이라는 커다란 역사적 흐름 속에서 개인은 특정 집단의 일부로 자신을 규정하기 위해 노력해 왔고, 노동자와 농민 같은 추상적인 범주들은 그 안에서 구체적인 의미를 갖게 되었다. 이 같은 내러티브 구축 과정을 보여 주기 위해, 김호철이라는 인물이 쓴 세 가지 다른 종류의 자서전을 심층적으로 비교 분석한다. 6장에서는 해방 후 북조선에서 발행된 유일한 여성 잡지인 『조선녀성』을 분석해 혁명 기간 동안 “여성 문제”가 어떻게 다뤄졌는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혁명적 주체성에 대한 젠더화된 담론을 검토한다. 공산주의 도상학圖像學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났던 남성 중심 혁명적 형제애의 이미지들과 달리, 혁명적 모성은 북조선 사회의 모델로 옛것과 새것을 융합하는 혁명적 주체성의 전형적 상징이 되었다. 7장은 “해방 공간”이라는 좀 더 넓은 틀 안에서 해방 직후의 기간을 살펴보며 혁명이 어떻게 기억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이어 주는 교량 역할을 한다. 남과 북 양쪽에서 나온 구술 자료와 회고록을 통합해, 이 장에서는 해방에 대한 남성의 내러티브와 여성의 내러티브의 차이를 지적하는데, 이는 해방 경험이 의미를 지니고 생생하게 기억될 수 있도록 뒷받침한 조직과 단체의 중요성을 나타낸다. 실제로 집단 기억은 개인이 가진 정체성의 강력한 원천이기도 하지만, 제도적 뒷받침 없이는 유지되기 어렵다. 이런 의미에서 7장은 여성과 같이 주변화된 집단에게 단체 생활이 얼마나 중요한지 재확인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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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선구적인 저작 …… 냉전의 여파 속에서 북조선의 역사를 어떻게 서술해야 하는지에 대한 신선하고 설득력 있는 답을 제시한다. - 『저널 오브 코리언 스터디』 Journal of Korean Stu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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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사회가 기괴한 정치 체계를 가진, 핵 개발에만 열중하는 북조선이라는 ‘국가’만 바라보는 상황에서, 이 책은 국가 형성기에 북조선에서 살았던 개인들에 관심을 기울여야 함을 역설한다. - 뤼디거 프랑크 (『북한: 전체주의 국가의 내부 관점』Nordkorea: Innenansichten eines totalen Staates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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