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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달빛 추억 속으로
달빛 차회(茶會)|어머니|법정의 마지막 소유(所有)|사색지원(思索之苑)|아라홍련(阿羅紅蓮)|민달팽이의 사랑|팝페라 테너 임형주|봄날은 간다|그대, 샤넬과 벤츠를 꿈꾸는가?|출판기념회 제2부 다시 동백은 피고 지는데 다시 동백은 피고 지는데|부모 교육에 대한 단상(斷想)|참 좋은 나라 한국|우리말(國語)의 실종|방선문 축제|부조(扶助), 음양의 두 얼굴|미셸의 삼무(三無)교육|새 철 드는 날|감성을 파는 사회|반딧불이의 경고 제3부 아버지로 산다는 것 아버지로 산다는 것Ⅰ|아버지로 산다는 것Ⅱ|석굴암을 오르며|아듀, 청마(靑馬)여!|사라지는 것들|12월의 장미|178년 만의 귀향, 세한도(歲寒圖)|가을 편지|교육과 삶, 40년|까치, 죽음을 예고하다 제4부 내 뜨락의 가을 내 뜨락의 가을|시월에|뉴노멀(new normal)이 왔다|후회 리스트|후(後) 문학, 문학인|별 헤는 밤|인연|청라언덕|새끼 사랑|페미니즘(feminism)의 도래 제5부 채움, 그리고 비움 채움, 그리고 비움|지금 이 순간|사회적 거리, 그리고 봉쇄(封鎖)|순응하는 삶|불신(不信), 일상이 되다|단상(斷想), 대중탕에서|단상(斷想), 새벽을 열며|죽음, 죽는다는 것|메타버스 세상이 오고 있다|연(緣), 그 짧은 만남과 이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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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만 앞세워 문학의 길로 접어든 지가 어언 30년이 지났다. 그동안 문학을 하면서 특히 아동문학에 대한 이론을 알면 알수록 창작에는 더 자신이 없었다. 주 독자가 미성숙한 어린이라 하더라도 짜임이 탄탄하지 않으면 재미를 담보할 수 없는 것이 동화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 맘을 울린 짜임새 있는 창작동화를 쓰진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여섯 권의 창작동화집을 발간하면서 동화작가 행세(?)를 하고 있으니 이 어쩌란 말인가? 어린이 독자는 물론이고 동심을 지닌 성인 독자들에게도 미안한 마음 한가득뿐이다. 변명하는 것 같지만 교직과 문학을 병행하며 좋은 동화를 창작해 내긴 힘들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교직을 열심히 수행하면서도 문학에 일가를 이룬 분들을 우린 손쉽게 찾아볼 수 있지 않은가? 그래서일까?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을 만회하기 위해 난 오늘도 고민하고 다짐하면서 동화 창작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내 생애에도 정채봉의 《오세암》 같은 동화가 창작되기를 소망하면서 말이다. 칼럼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건 그래서일지도 모르겠다는 의문을 가져보지만 그건 또 확실히 아니다. 내가 칼럼을 쓰기 시작한 건 불편한 사회 진실을 사회 곳곳에서 목도하기 시작한 2000년도 후반부터이기 때문이다. 학교의 최고 관리자가 되면서 사회를 폭넓게 바라보는 안목을 가질 수 있었으며 이때부터 사회적으로 불편한 진실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고 《제주일보》에 문화 칼럼을 쓰기 시작했다. 지금도 계속해서 필진으로 참여해 칼럼을 쓰고 있지만 이번 칼럼집에 다 상재할 수는 없었다는 것을 밝힌다. 고르고 골랐고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지만 미흡한 부분이 많다는 것도 인정한다. 미흡한 칼럼이라 할지라도 다 내가 낳은 자식이기에 부정할 수는 없다는 말씀을 드린다. 그 자식들을 통하여 사회의 불편한 진실들을 알리고 싶었고 그 사회 속에서 진정한 아버지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절절하게 외치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실은 표제를 놓고도 고민이 많았다. 어머니를 그리는 사모곡 ‘동백은 다시 피고 지는데’와 ‘아버지로 산다는 것’을 놓고 고민을 거듭하다가 어머니는 이제 놓아드리기로 했다. 봄빛이 찬란한 어느 날 동백이 지듯이 그렇게 가신 지가 이제 십수 년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이제 아버지로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도 어머니를 따를 날이 머지않았다는 것을 잘 알기에 좀 더 겸손해져야 한다는 결의를 다지며 ‘아버지로 산다는 것’을 표제로 정했음을 밝혀둔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고 있는 독자들에게 간곡히 당부한다. 이 책 속에 담긴 칼럼들은 내 생각이다. 하지만 내 생각이 겉으로 드러나 있지는 않다. 필자가 어떤 사유를 하며 살아가고 있고 또 어떻게 사회가 변하기를 바라는지를 은유적(隱喩的)으로 칼럼 속에 녹여 넣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꼭 공감하면서 읽어보시라 강요하고 싶진 않아도 필자가 바라보는 사회 진실이 무엇인가만 파악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싱그러운 진초록의 계절이다. 온 세상이 싱그러운 초록빛으로 당당한 이 계절처럼 우리 사회도 그렇게 싱그러운 빛으로 물들었으면 좋겠다. ---「머리말」중에서 지금 법정 스님은 어디쯤 가고 계실까? 소행성 어느 작은 별에서 벌써 어린 왕자를 만났을까? 평생에 즐겨 읽던 동화책마저 아침마다 신문을 배달해주던 그 꼬마에게 주고 싶다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떠나간 법정 스님. 평생 무소유를 실천하면서 마지막까지도 모두 버리고 떠나간 스님은 새털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먼 길을 가고 계실 것이다.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이 시대의 중생들은 눈에 보이는 더 많은 것들에 집착하느라고 정신이 없다. 아, 어쩌랴?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을 찾아 살아가려는 아이들이 많은 세상이 법정과 어린 왕자가 바라는 세상이 아닐까? --- p.34 제주의 수눌음 정신이 무엇인가? 어려울 때 서로서로 돕는 정신, 바쁜 농사철에 이웃끼리 서로 도와가며 일하는 제주의 전통문화가 아닌가? 비가 내리는 새벽에 상을 당해 경황이 없는 사돈댁으로 팥죽 허벅을 지고 날랐던 우리 어머니와 할머니의 부조가 정말 부조이다. 현물로 부조하지 못하는 어려운 형편이면 물 부조를 하기도 했다. 팥죽 허벅을 지고 물허벅을 지고 날랐던 그 시절의 상부상조 정신은 상실된 지 오래다. 이젠 상주에게 돈 봉투를 내밀고 대신 상품권을 받는 물물교환만 있을 뿐이다. --- p.97 시골 마을 느티나무 같은 크나큰 이름이지만 돌아가신 후에야 그 존재를 실감하게 된다는 아버지, 평생 무게를 견디다가 구부러진 못이 되어버린 아버지, 힘들고 슬픈 일을 참아내느라 속울음이 땀이 되어버린 아버지는 과연 누구일까? 이 시대 아버지들이 가족들에게 각인되고 있는 모습을 생각하면 아버지라는 이름이 안타깝고 측은하기 그지없다. --- p.122 이어폰을 낀 채 스마트폰에 몰입해 있는 아이들. 여럿이 뭉쳐 있어도 다 각자 놀고 있을 뿐 아이들이 함께하는 놀이는 없다. 또래 놀이나 또래문화가 실종되었다. 그래서 더욱 뉴노멀이 두려워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래와 어울릴 만한 문화를 장려하여야 한다고 하지만 뉴노멀 시대에 어떤 구체적인 대안도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코로나19로 제 세상에 갇혀있는 저들의 마음을 조금만이라도 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p.185 그렇다. 이젠 P처럼 모두 정점에서 내려와야 한다. 채움이 있었으니 비움도 있어야 다시 채울 수 있는 게 아닌가? 은퇴자들은 별들을 빛나게 하는 까만 하늘처럼 누군가의 배경이 되며 살아갈 때 아름다울 수 있다. 주인공이 아닌 나머지가 되고 누구의 배경만 되면서 살아간다는 것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일까만 집착만 내려놓을 수 있다면 가능한 일이 아닐까? 여름의 끝자락에서 다시 한번 내 삶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 p.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