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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무엇이 느리게 읽기를 방해하는가
2장 느리게 읽기에 필요한 것들 3장 느리게 읽기의 규칙 귀스타브 플로베르『보바리 부인』| 찰스 디킨스『위대한 유산』| 오노레 드 발자크『고리오 영감』| 윌리엄 셰익스피어『헨리 4세 1부』『한여름 밤의 꿈』| 에드워드 기번『로마 제국 쇠망사』| 헨리 제임스「중년기」| 레이먼드 챈들러『빅 슬립』| 윌리엄 워즈워스「결의와 독립」| 엘리자베스 비숍「집어장에서」| 이디스 워턴『기쁨의 집』| 에드먼드 버크『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 니콜로 마키아벨리『군주론』| 호메로스『일리아스』『오디세이아』| 안톤 체호프「구스베리」| 앨프리드 테니슨「크라켄」|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위대한 개츠비』| 로버트 프로스트「설계」새뮤얼 메나시「다섯 길 바닷속」/ 셰익스피어『템페스트』| T. S. 엘리엇『황무지』/ 제프리 초서『캔터베리 이야기』 4장 단편 소설 읽기 유도라 웰티「외판원의 죽음」| 너새니얼 호손「웨이크필드」| D. H. 로런스「스테인드글라스 한 조각」|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비밀의 기적」| 앨리스 먼로「야생 백조들」| 스티븐 크레인「소형 보트」 5장 장편 소설 읽기 윌라 캐더『교수의 집』| 헨리 제임스『데이지 밀러』| 필립 로스『미국의 목가』| 허먼 멜빌『모비 딕』| 랠프 엘리슨『보이지 않는 인간』| 레프 톨스토이『안나 카레니나』 6장 시 읽기 에밀리 디킨슨「시 185」「시 156」| 톰 건「죽은 체육관 주인을 기리며」| 월트 휘트먼「독수리들의 희롱」|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퍼거스와 드루이드」「아름답고 고결한 것들」| 월리스 스티븐스「보잘것없는 나신이 봄의 항해를 떠난다」|「시편」114?131 7장 희곡 읽기 셰익스피어『리어 왕』『십이야, 혹은 당신 좋으실 대로』| 사뮈엘 베케트『고도를 기다리며』 헨리크 입센『대건축가 솔네스』『헤다 가블레르』| 안톤 체호프『세 자매』| 요한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죽음의 춤』 8장 에세이 읽기 미셸 드 몽테뉴「경험에 대하여」「후회에 대하여」| 윌리엄 해즐릿「여행 떠나기」「권투 시합」| 버지니아 울프「현대 에세이」| 찰스 램「옛날의 교사와 오늘날의 교사」「기혼자들의 행동에 대한 독신남의 불평」| 제임스 볼드윈「미국 아들의 메모」| 앙드레 아시망「이중 망명」 |
David Mik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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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술과 함께 성장한‘디지털 원주민’은 한 시간에 평균 27번 이런저런 디지털 기기로 옮겨 다닌다. 반면, 성인이 되어 모바일 기술을 사용하기 시작한‘디지털 이주민’은 한 시간에 17번 옮겨 다닌다.…… 두세 가지 일을 동시에 하면 주의를 계속해서 옮겨야 하는 스트레스 때문에 능률이 떨어진다. 이런 지속적 주의력 분산 상태는 어느 한 가지 일에 충분히 집중하는 것을 방해한다. 인터넷 시대에 우리는 언제든 무엇이나 보고 들을 수 있는 완벽한 자유를 얻었다는 느낌을 종종 받는다. 하지만 어떻게 우선순위를 정할지, 어떤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지 판단할 줄은 모른다. 길을 잃은 듯 무력해진다. 기분 전환을 하려면 즐길 거리가 너무 많아 탈이다. _27쪽
우리는 인터넷이 지배한 지난 몇 십 년 동안 게으르게 텍스트들을 검색해 왔다. 연구자들은 사람들이 블로그, 페이스북, 뉴스 기사 등의 온라인 텍스트를 F 패턴으로 읽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사람들은 글의 첫 줄 혹은 첫 몇 줄을 옆으로 쭉 읽는다(F의 맨 위쪽 가로획). 그런 다음 밑으로 내려가면서 나머지 줄들은 앞부분만 훑어보는 식으로 읽는다(F의 더 짧은 가로획). 그러다가 부제(?)나 중요 항목이 나오면 또 가로 읽기를 하는데, F 패턴에 맞추기 위해 그런 부제들은 주 제목보다 짧은 경향이 있다. 결국 글의 중간쯤 이르면 독자의 시선은 페이지의 왼쪽 가장자리를 따라 직선으로 내려가기 시작해서 F의 수직선 부분을 쭉 따라가, 글의 대부분을 실제로 읽지 않은 채 텍스트를‘끝내 버린다.’시간에 쫓기는 독자는 훨씬 더 빨리 글의 끝을 향해 시선을 뚝 떨어뜨린다. _31쪽 『오디세이아』내에서도 오디세우스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데, 그 평가의 중심에 있는 것은 그의 주된 특징인 영리함이다.…… 호메로스는 오디세우스의 대적 불가능한 영리함을 빈번히 강조하면서도, 그 영리함이 가끔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음을 은근히 암시함으로써 독자들에게 텍스트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말 것을 강요한다. 이런 식으로 그의 가장 흥미로운 주인공인 오디세우스와 여 타 인물들에 대해서도 논쟁의 불씨를 묻어 둔다.『오디세이아』의 도덕적 측면은 복잡 미묘하게 펼쳐지기 때문에 인물들을 흑백 논리로 쉽게 판단할 수 없다. 영리함과 마찬가지로 선함이나 악함 역시 호메로스의 작품에서는 복잡한 문제이다. _175쪽 유명 작가들 중에도 독서를 할 때 메모에 열중한 이들이 있었다.……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콜리지만큼 인상적으로 여백에 메모를 남긴 사람은 문학사에서 없을 것이다. 그의 메모 모음집이 출간될 정도였고 그 분량도 수천 쪽에 달한다.…… 콜리지의 절친한 친구였던 매혹적인 에세이 작가 찰스 램은“그대의 책을 빌려주십시오, 단 콜리지 같은 사람에게 빌려줘야 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엄청난 이자를 붙여서 책을 돌려주지요. 주석을 달아 책의 가치를 세 배로 불려 줄 겁니다”라고 말했다. _199~200쪽 『위대한 개츠비』의 전면적인 수정은 유명하고, 또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사례이다.…… 우선, 피츠제럴드의 초기 버전을 보자. “저기요, 닉.”그녀가 갑자기 말하기 시작했다.“내 아이가 태어났을 때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들었어요?” “아니, 데이지.” “아이가 태어난 지 한 시간도 안 됐는데 톰은 코빼기도 안 보이더군요. 나는 마취에서 깨어났을 때 완전히 버림받은 기분이었어요. 마치 들판에서 군인들한테 강간당한 뒤 버려져서 죽어 가는 것처럼요.” 피츠제럴드는 데이지의 말을 다음과 같이 수정했다. “아이가 태어난 지 한 시간도 안 됐는데 톰은 코빼기도 안 보이더군요. 나는 마취에서 깨어났을 때 완전히 버림받은 기분이었어요……. 그래서 난 이렇게 말했죠.‘우리 딸이 바보가 됐으면 좋겠어. 예쁜 바보로 사는 게 편한 세상이니까.’” 수정으로 소설이 더 나아졌다. 폭력적이고 목적 없는 비유(군인들에게 강간당하는 여자) 대신에 데이지는 딸이 자신처럼“예쁜 바보”로 자라기를 바란다며 가혹한 아이러니를 담은 희망을 중얼거리며, 버림받은 기분을 더 연약하고 더 애처롭게 전한다. 수정된 내용이 데이지의‘본모습’을 보여 준다. 첫 버전은 거칠고 투박하며 광적이어서, 환상에 젖어 사는 연약한 데이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_215~216쪽 수정은 독자의 마음속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작품을 읽을 때 우리는 작가가 택할 수도 있었을 다른 길들, 혹은 작가가 택했으면 하는 길을 상상한다. 가끔은 실망해서 작품 전체를 거부해 버리기도 한다. 독자가 작품에 동감하지 못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독자가 작품의 결말에 항의한 유명한 사례들이 있다. 예를 들어, 영국의 문학가이자 사전 편찬가인 새뮤얼 존슨은『리어 왕』에서 코딜리어가 극도로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는 결말에 불만을 품었다. 그래서 그 작품의 결말은 몇 년간 읽지 않았다. 존슨 시대의 연극계도 마찬가지로 원작의 결말을 외면했다. 코딜리어가 살아남아 에드거와 결혼하는 네이험 테이트의 개작이 100년 넘게 무대에 올려졌다. _222쪽 의견 차이를 좁히기 힘든 작가들 간의 다툼도 있다. 에머슨은 일기에 제인 오스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왜 사람들이 오스틴 양의 소설을 그렇게 높이 평가하는지 잘 모르겠다. 내가 보기에 어조는 저속하고, 창작력은 메말랐고, 영국 사회의 불쾌한 관습에 갇혀 있으며, 비상한 재주도, 재치도, 세상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다. 그토록 옹색하고 편협한 삶은 없었다.”…… 그가 보기에 오스틴은 자유 대신에 진정한 상상력과 정반대되는 가치들인 안락과 안정을 신봉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오스틴이 세계에 혼자 맞설 각오가 되어 있는 미국의 당찬 개인주의자와 정반대의 인물이라고 느꼈고, 그 느낌은 옳았다. 하지만 그녀가 품위 있고 부유한 삶이라는 확고한 경계에 집착한다고 해서 그녀의 비전이 좁고 둔감한 것만은 아니다. 오스틴은 그녀 나름의 방식으로 에머슨 못지않게 기민하며, 에머슨만큼이나 영혼의 가능성에 민감하다.…… 오스틴과 에머슨 간의 전쟁은 작가들 사이의 이견이 때로는 해소 불가능할 정도로 심하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독자들은 그들을 화해시킬 수 없을뿐더러 그래서도 안 된다. 각 작품이 저마다 지니고 있는 고유의 힘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 책들의 전쟁은 책들이 쓰이고 읽히는 한 계속될 것이다. 그런 전쟁이라면 언제든 환영이다! _230~232쪽 진정한 독자라면 버지니아 울프의「책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의 마지막 부분을 마치 독립 선언문처럼 암기해야 할 것이다. 이보다 더 고귀하고 지당한 독서 예찬은 이제껏 없었다. 그 자체로 좋고 즐거워서 하는 일이 있지 않을까? 그리고 독서도 그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나는 가끔 이런 꿈을 꾸었다. 최후의 심판일이 되어 위대한 정복자들과 법률가들, 정치가들이 보상(왕관, 월계관, 썩지 않는 대리석에 지워지지 않게 새겨지는 이름)을 받으려고 갈 때, 옆구리에 책을 끼고 가는 우리를 본 신이 베드로를 돌아보며 부러운 듯한 표정으로,“보아라, 이들에게는 상이 필요 없겠다. 그들에게는 줄 것이 없어. 그들은 독서를 좋아했으니”라고 말하는 꿈을 말이다. 울프는 가장 중요한 교훈을 전하고 있다. 독서에 죄책감을 느끼지 말라는 것이다.…… 신이 우리의 선하고 악한 행위를 장부에 기록해 둔다는 개념에 착안하여, 울프는 우리가 독서를 통해 그 장부를 스스로 기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밝게 빛나는 책의 페이지 위에 머물며 우리 자신을 좀 더 진실하고 색다르게 깨닫는 바로 그 순간 우리는 보상을 받게 된다.…… 느리게 읽기는 세속적인 것을 묻거나 약속하지 않지만, 열성적인 독자들은 그 어떤 대의의 투사나 위대한 정복자, 정치가보다 훨씬 더 깊숙이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 손에 책을 단단히 쥐고 있는 독자들의 눈에 그들은 인류의 골칫거리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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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우리는 책을 읽을 수 없게 되었나
우리의 일상을 둘러싸고 있는 인터넷 웹사이트와 SNS는 이제 정보 검색이나 업무에만 쓰이지 않고 여가나 친목 활동에도 깊이 스며들어,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 책을 읽으며 하루를 마감하던 익숙한 습관을 대체해 버렸다. 게다가 디지털 기술은 텍스트를 인지하고 읽고 기억하고 갈무리하는 패턴과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여러 기기와 플랫폼, 네트워크 서비스를 오가면서 쉴 새 없이 텍스트와 이미지를 접하면서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보고 듣고 읽을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고 생각하지만, 무엇이 정말 자신에게 필요한 것인지 선별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고 한 가지 문제를 곰곰이 깊이 생각하는 여유도 갖지 못하게 되었다. 과연 클릭과 터치만으로 펼쳐지는 수많은 텍스트는 책을 대신할 수 있을까? 미국 휴스턴 대학 영문학과 교수이자 최고 교수상을 수상한 바 있는 저자는 독서는 이러한 활동과 근본적으로 다르며, 오늘날의 독자는 위기에 처했다고 진단한다. ◈ 홀로 그리고 더불어 제대로 책을 읽는 방법,‘느리게 읽기’ 저자는 진지한 독자라면 제대로 된 독서로 돌아가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고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 책을 새로운 관점에서 읽을 수 있는 독서의 기술을 갖춰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읽기 방식이 바로‘느리게 읽기’이다. 느리게 읽기는 속도를 늦추고 작품의 리듬과 의미, 저자의 의도와 가치관을 섬세하게 파악하는 것은 물론이고, 때로 다시 읽고 소리 내어 읽고 암기하는 것까지도 포함하는 독서법이다. 책을 읽기 위해 우선 인터넷을 차단하고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열고 싶은 유혹을 물리치라는 저자의 당부에 세상과 격리된 채 홀로 책을 읽는 이미지를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한편으로 독서에는‘대화’, 즉 사회적 관계가 반드시 필요하다. 성급하게 자의적으로 텍스트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읽고 있는 작품, 저자, 또 다른 작품, 나아가 함께 책을 읽는 다른 이들과 끊임없이 대화를 하며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독서가 주는 즐거움이다. ◈ 느리게 읽기를 위한 열네 가지 규칙 저자는 느리게 읽기를 위해 아래의 14가지 규칙을 제시한다. 1 인내심을 가져라 2 핵심적인 질문을 던져라 3 목소리를 파악하라 4 문체를 감지하라 5 처음과 끝에 주목하라 6 이정표를 찾아라 7 사전을 적극 활용하라 8 핵심 단어를 추적하라 9 작가의 기본 사상을 발견하라 10 의심의 기술을 길러라 11 작품을 분해하라 12 메모하는 습관을 길러라 13 다른 길을 탐험하라 14 또 다른 책을 찾아라 이 규칙은 언뜻 평범해 보이기도 하고 규칙에 얽매여 책을 읽는다는 생각에 거부감이 들 수도 있지만, 주로 문학 작품을 예시로 들어 규칙을 설명하는 저자의 안내를 따라가다 보면 차마 펴지 못한 책, 읽다가 포기한 책을 다시 꺼내 읽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된다. 네 번째 규칙(문체를 감지하라)에 인용된『로마 제국 쇠망사』는 차분해 보이는 글 속에 묻어 있는 에드워드 기번의 풍자적이고 신랄한 논평을 알아채는 것이 중요하다. 그 부분의 문체는 내용(고대 로마의 초기 기독교와 이교 간의 긴장 관계)과 저자의 입장(이교 철학자에게 보다 기울어 있음)을 효과적으로 보여 준다(112~115쪽). 아홉 번째 규칙(작가의 기본 사상을 발견하라)은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작품 세계를 예시로 들어 설명된다. 그의 작품 세계는 사랑과 영웅주의의 두 축으로 이루어지는데, 예이츠와 모드 곤의 사랑은 이상주의의 외피를 쓴 미숙하고 순결한 자아에 머물러 더 높은 단계에 이르지 못함으로써 영웅주의가 더 큰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처럼 작가의 기본 사상을 이해하는 것은 그의 전 작품을 이해하는 열쇠가 되며, 이러한 이해는 한 작가의 작품을 여러 번 또는 여러 작품을 겹쳐 읽음으로써 가능해진다(170~171쪽). 안톤 체호프의 단편 소설「구스베리」의 구조를 분해(규칙 11 작품을 분해하라, 186~197쪽)함으로써 이 소설의 구조와 모티프, 인물의 대조를 통해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의도(지식인의 자기기만적인 사회 인식)를 파악하고, 이는 체호프의 전기적 사실로도 뒷받침된다. 무엇보다 독자에게 규칙을 실행할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부분은 앨프리드 테니슨의 시「크라켄」에 대한 분석이다(203~209쪽). 저자는 열두 번째 규칙(메모하는 습관을 길러라)을 설명하기 위해 이 시에 두 차례에 걸쳐 메모를 덧붙였다. 시에 대한 첫 인상을 간략하게 쓴 첫 번째 메모와 이를 보다 상세하게 발전시킨 두 번째 메모는 문학 전공자가 아닌 독자라 하더라도, 또한 다른 분야의 글에도 충분히 시도해 볼 만한 내용이다. 이처럼 저자가 제안하는 느리게 읽기의 규칙은 기계적 적용이나 얄팍한 요령이 아니라 책을 사랑하고 독서를 진지한 취미로 생각하는 독자라면 체득해야 할 기본적인 규칙이다. ◈ 고대 그리스부터 현대까지, 다양한 장르의 문학 작품으로 살펴보는 느리게 읽기 이 책의 미덕은 난해하고 현란한 (문학) 이론을 동원하지 않고도 다양한 장르의 문학 작품을 읽는 방법을 보여 준다는 점이다. 대개 이야기를 지닌 문학 작품은 다른 종류의 책보다 읽기가 쉽다. 그러나 그간 우리는 문학 작품을 이해하는 여러 이론이나 철학의 무게에 짓눌려서 작품이 주는 즐거움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권위자의 해석에 기대어 작품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이 책은 그러한 즐거움을 맛본 적이 없거나 잊고 있는 독자에게 친절하고 쉽게 작품을 설명한다. 현대 부조리극/전위극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사뮈엘 베케트의『고도를 기다리며』는 실존주의의 영향이나 전후 유럽의 상황 등 작품 외적 요소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느리게 읽기의 기본 규칙(규칙 1?3?9 외)을 통해서 일차적으로 그 의미와 가치를 파악할 수 있다(357~365쪽). 나아가 베케트의 전기적 요소나 작품의 역사적 맥락, 철학적 영향 관계, 희곡사의 전통에서 차지하는 위상(규칙 14 또 다른 책을 찾아라) 등을 통해 이 난해한 작품을 풍성하게 읽는 방법을 보여 준다. 이 책은 고전이나 성서, 그 외 익히 알려진 작품은 물론이고 전공자가 아니라면 쉽게 접하지 못했던 낯선 작품이나 최근의 작품까지 다루고 있어 읽는 즐거움을 준다. 성서와 호메로스의 서사시, 그리스 비극부터 셰익스피어, 톨스토이, 헨리 제임스 등을 거쳐 베케트, 앨리스 먼로, 필립 로스까지 이 책은 방대한 시공간을 아우르는 작품들을 인용하고 분석한다. 저자의 분석은 매우 친절하고 설득력이 있어서 읽지 않은 작품이라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고 작품을 찾아서 읽고 싶은 욕구를 느끼게 한다. 흔히 고전이라고 일컫는 유명 작품뿐만 아니라 새뮤얼 메나시, 유도라 웰티, 제임스 볼드윈, 앙드레 아시망 등 아직 우리에게 소개되지 않았거나 생소한 작가의 작품도 다수 제시되어 있다. 또한 문학 작품 외에도 사회 과학이나 역사 분야의 책, 에세이도 몇몇 소개되어 다양한 분야의 글을 읽는 재미를 준다. 느리게 읽기는 책과 멀어진 독자에게는 책 읽는 즐거움을 다시 찾게 해 주고, 책을 가까이 하고 싶지만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모르는 미래의 독자에게는 독서의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며, 이를 통해 삶의 속도와 방법을 성찰하게 해 주는 소중한 일깨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