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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풀잎끼리도 사랑하니까 흔들린다서로 사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 · 14절망도 약이 된다 · 15사람으로 살아보니까 · 16풀잎끼리도 사랑하니까 흔들린다 · 17풀 앞에 서서 · 18서울이 캄캄하다 · 19오늘은 비 · 20만찬 · 21비에 젖은 새 · 22스마트폰에 노을을 담았다 · 23은행나무 아래 주차장 · 24신안 앞바다 · 25눈물을 흘렸다 · 26능소화, 이름을 묻다 · 28달력을 뜯어내며 · 30시간 속에서 사람이 걸어간다 · 31은행잎은 떨어져서도 길을 밝힌다 · 32은행잎이 흩날리는 시각 · 332. 낙원樂園을 찾아서길 위에서 · 36낙원樂園을 찾아서 · 37선종善終을 지켜보다 · 38아내와의 약속 · 39수목장樹木葬 · 40봄이여 무심하구나 · 41알람을 껐다 · 42허공 속에서 · 44자전거를 타고 간 사내 · 45까마귀와 함께 · 46외출 · 48따뜻한 지폐 · 50된장 시래기국 · 51한 마리의 새, 이민을 가다 · 52청와대가 달라졌다 · 54감사 기도 · 56따뜻한 서재 · 583. 서귀포를 가다서귀포를 가다 · 62Happy birthday · 63섬에서 최하림 시인을 만났다 · 64안부 전화 · 66가까운 곳에 새 여행지가 있었네 · 67블라디보스톡으로 가다 · 69덩굴장미꽃은 아름답다 · 715월 엽서 · 72아가에게 · 73할아버지는 행복하다 · 74그대 아름다운 신라의 여인이여 · 75살아있는 날의 사랑 · 77동백꽃을 보며 · 78벚꽃세상 · 79어머니, 저는 면목이 없습니다 · 80봄날, 나의 무덤 찾아가기 · 814. 그 강 건너지 마오무인도에 내리는 눈 · 84기상도 · 85지하철을 타고 가며 · 86노인의 시간 · 88그 강 건너지 마오 · 89서울 입성入城 · 91못 찾겠다, 꾀꼬리 · 92엄마라는 말, 특히 · 93초장동에서 감내골까지 · 94나이 팔십 산수傘壽가 되니 · 96인왕산을 바라보며 · 97가을은 길 밖에서도 길 안에서도 · 98나무연필로 시를 쓰다 · 99시詩를 버리다 · 101황무지 · 1035. 봄날을 그리며하얀 마스크 · 106하늘이여 · 107봄이 왔건만 봄 같지 않구나 · 108봄날을 그리며 · 110유채꽃밭을 갈아엎다 · 112아픔에 대하여 · 114화장火葬 · 115봄을 기다리며 · 116봄날 저녁 · 118저 혼자 핀 목련꽃 · 119꽃잎 떨어지다 · 120강변 산책 · 121복분자 술을 빚다 · 122┃해설┃방민호(문학평론가·서울대학교 국문과 교수)‘벼랑’을 짊어진 시인이 걸어온 길─김종해 시인의『서로 사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에 대하여 ·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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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을 짊어진 시인이 걸어온 길김종해 시인의 새 시집 『서로 사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는 죽음과 죽음의 임박과 죽은 이들에 대한 회상과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다. 일견 평이해 보이는 듯한 언술들로 구성된, 일상의 평범한 일들을 시에 끌어들이는 듯한, 무신경을 가장한 시들이, 전혀 일상적이지 않은 기운을 내장하고 있다. 이 시집에서는, 죽은 이들, 그것도 그냥 일가 사람들, 지인들은 아니고, 문학사 속에서 이름을 접할 수 있는 시인들의 이름들이 발견된다. 김광림(「외출」), 최하림(「섬에서 최하림 시인을 만났다」), 이어령(「봄이여 무심하구나─이어령 선생님을 그리며」, 「알람을 껐다」), 박목월(「따뜻한 지폐」), 조지훈, 박남수(「한 마리의 새, 이민을 가다」) 등이다. 이런 인연은 시인의 성장이나 성숙, 그리고 문제의식 벼리기에 더없이 중요한 것이다. 의미 있는 문학인을 직접 만나는 것, 인간을 느끼고 대화 나누는 것, 문학적 질문의 심층에 도달하는 것, 이런 것들을 체험적으로 터득한 것이다.김종해 시인은 이전의 작품에서 서울의 질병적 상태에 대한 화자의 ‘경악’에 가까운 환멸을 표현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정신적 충격을 딛고 구원에 다다르고자 하는 완강한 의지 또한 표현한 적 있다. 김종해 시인이 어둡고 추운 ‘서울’의 현실에서 길을 찾아 뜨겁게 살아가던 시대는 어떻게 되었을까? ‘서울의 봄날’은 아직도 ‘캄캄하다.’(「서울이 캄캄하다」) 하지만 객관적인 현실 그 자체란 없으며 그것은 언제나 그것을 대하는 사람에 의해 해석되고 이해된 어떤 것이지 않을 수 없다. 이 시집을 통해서 보는 김종해 시인의 현실은 이제 연행되는 지식인, 학생과 검열로 얼룩진 그런 것은 아니다. ‘서민 대중’의 삶은 그의 심중 깊은 곳에 아직도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겠지만, 그는 이제 그런 것을 고통스러워하며 대담과 논쟁과 질문의 주제로 올리는 대신 그런 어둠, 고통을 내장한 세계에 자신이 찾아왔고 이제는 그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응시하고자 한다.삶에 대한 원숙한 통찰, 따스하고 아름다운 서정의 함축미“서로 사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서로 사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는 깨달음, 이미 너무 멀리 와 버린 느낌, 삶의 일상에 어른거리는 죽음의 그림자, 간단없이 찾아오는 떠난 이들의 기억, 노쇠해 가면서 외롭게 되는 것, 피붙이들이 주는 작은 기쁨들, 이런 것들 속에서 김종해 시인은 삶이란 무엇인가를, ‘나’는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무엇을 생각하고 노래해야 하는가를, 편안해지고 순치된 것 같은 포즈 아래 여전히 예민함을 잃지 않는 감각, 느낌으로 묻고자 한다.나이 팔순을 지나가니까풀이 문득 보인다풀이 보이니까 바람마저 보인다풀 앞에 서면 나도 말을 버린다말을 잊고 사는 것은 풀만이 아니다한 마디 말도 하지 않고풀은 일생을 살아간다풀의 말을 해석하지 못하므로나는 외롭다말을 버린 풀처럼바람이 불어오는 쪽을 향해나는 필생畢生으로 온몸을 편다풀이 흔들린다─「풀 앞에 서서」 전문이 시를 쓰면서 그가 김수영 시인의 「풀」을 의식하지 않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시를 읽으면서 김수영의 「풀」을 생각하며, 시인이 이 「풀」과의 거리를 어떻게 의식하며 자신의 ‘풀’을 노래하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김수영의 ‘풀’은 민중적인, 서민적인 전통적인 의미를 내장하면서도 그보다는 훨씬 더 바람과 풀의 존재론적인 호응과 존재론적 삶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다. 김종해 시인의 ‘풀’이라고 할 「풀 앞에 서서」에서 화자는 자기 자신이, ‘나’ 자신이 ‘풀’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는다. ‘나’ 자신 또한 ‘풀’처럼 ‘바람이 불어오는 쪽을 향해’ ‘필생畢生으로 온몸을’ 펴는, ‘풀’과 같은 존재, 바로 그것이다. ‘필생’을 ‘서울’의, “현실”의 어둠에 맞서 거세게 헤쳐나오며, ‘항해’를 하며 살아온 그였건만, ‘나이 팔순’에 다다라 보니 이제 ‘풀’이 보이고 ‘풀’을 나부끼게 하는 ‘바람’이 보인다. ‘말’을 버린 ‘풀’의 ‘일생’이 보인다. 침묵 속에서 ‘흔들리는’ ‘풀’처럼 ‘나’ 또한 ‘말’을 잊고 하나의 존재로서의 자신의 삶을 생각하며 서 있을 수밖에 없다. 김종해 시인은 또 다른 곳에서 ‘풀’을 이렇게도 노래한다.풀잎끼리도 말을 한다풀잎끼리 서로 지껄이는 조그만 귀엣말내가 풀잎이 되어야겨우 알아듣게 되는 저 풀잎의 말서로 사랑하는 모든 존재는 흔들린다바람이 불지 않아도살아 있는 것은서로 사랑하니까 흔들린다풀잎의 옷을 비껴 입고제 몸의 가녀린 무게를 실은 뒤바람에 몸을 맡기는저 작은 생명의 귀엣말을나는 풀잎이 되어 엿듣는다─「풀잎끼리도 사랑하니까 흔들린다」 전문 이 시에서도 ‘나’는 이제 ‘풀잎’이 되어 있다. 여기서 ‘풀잎’은 하나하나의 생명적 존재를 가리키는 ‘대명사’ 또는 ‘집합명사’가 되어 있다. 이 존재들로 하여금 서로 호응하게 하고 의지하게 해주는 것, 그것의 동인動因은 바로 ‘사랑’이다. “내가 풀잎이 되어야 / 겨우 알아듣게 되는 저 풀잎의 말”, 그것은 “서로 사랑하는 모든 존재는 흔들린다”는 ‘진리’다. 모든 문학적 질문의 정답, 해답은 ‘사랑’에 있는 것을, 김종해 시인의 시적 화자는 ‘팔순’ 즈음에 다다라 이제 명료하게 인식한다. ‘서울’의 영원한 타향인으로 어둠 속 ‘현실’을 필사적인 항해의 거스름으로 헤쳐나온 그는 이제 죽음이 보이는 삶의 국면에 다다라 있음을 느끼며, ‘사랑’이라는 삶의 기적, 모든 문학적 질문의 정답, 해답을 찾아낸다. 이렇게 되면 이제 투쟁하는 아우성의 현장과는 다른 삶의 국면이라 해도 그 삶의 ‘일상’들은 단순한 ‘일상’이 아니다.아침에 잠을 깨니유리창에 빗방울이 가득 맺혀 있다밤사이 하늘이 써서 보낸 기별을나는 놓쳤다하늘은 아직 어둡고바람은 유리창에 제 모습을 적어 놓지 않았다사람 살아가는 일 다 그렇지단순하지비가 오니까오늘 아침 나는 우산을 들고집을 나설 것이다일상 속에서 일상의 바람에 부대끼며오늘 내린 빗방울에조금은 옷자락이 젖을 것이다젖는 일마저나는 편안하게 받아들일 것이다─「오늘은 비」 전문이 시에 등장하는 ‘비’는 단순한 비가 아니라 저 앞의 시들에서 ‘풀’로서, ‘풀잎’으로서 자신을 의식하는 ‘나’의 ‘옷자락’을 적시는 ‘비’인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이 ‘존재’의 ‘일상’의 의미를 새롭게 인식하게 하는 ‘비’, 바로 그것이다. 오랜 시간을 위태로울 만큼 뜨거운 내부를 끌어안고 ‘걸어온’ 시인은 죽음이 어른거리는 삶의 국면을 의식한다. 삶은 이제 죽음에 가까워졌고, 그 얇아진 경계만큼 삶의 ‘현실’은 이제 ‘사회’의 그것보다 ‘자연’으로서의 그것 자체가 된다. “절벽을 마주 서 본 사람의 결기”(「길 위에서」)를 접는다. “눈송이를 이고 하늘로 오”르는 ‘바람’을 ‘보며’ “각을 세운 세상”과는 다른 쪽으로 가던 「눈송이는 나의 각角을 지운다」(『눈송이는 나의 각을 지운다』, 문학세계사, 2013, 36쪽)의 ‘나’를 거쳐, 이제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가 된다. “오늘 내린 빗방울에” “조금은 옷자락이 젖을 것”이고, ‘나’는 바로 ‘풀’이고 ‘풀잎’이기 때문에 ‘젖는 일마저’ “편안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자연적 존재 바로 그것으로써 하루하루를 살고, 서귀포든, 신안이든, 블라디보스톡이든 떠나고, 아무도 없는 집에서 홀로, 차오르는 죽음의 기운을, 그리하여 오늘 살아 있는 삶의 의미를 받아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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