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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또한 군자가 아닌가 · 최원식
편집자라는 존재 편집자라는 모순된 자리에서 편집자, 보이지 않는 권력 편집자와 편집증―편집자는 좋은 배우자인가 편집의 시간 활판과 함께 사라진 ‘돼지 꼬리 하나’ 판권, 책의 또 다른 표정 ‘읽을 수 없는 고전’에서 ‘읽을 수 있는 고전’으로 ―‘재미있다! 우리 고전 기획과 고전소설의 생명력 편집자의 눈 교과서 속 수필, 어떻게 선택되나 교과서다운 문장 형식, 문체를 이루었는가 ―교과서 편집자가 보는 좋은 국어 교과서의 요건 교과서 대화 편집방식 바꿔야 한다 문학성과 시장성의 경계에 흐르는 강박 ―청소년문학 시장의 빛과 그늘 우리말 클리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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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는 근본적으로 그 존재 자체가 모순이다. 웬 모순씩이나? 아마 대부분의 편집자들은 자신이 모순된 존재라는, 모순된 자리에 있다는 것을 별로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편집자들은 가능하지 않은 일을 한다. 가능하지 않은 일이란 것을 대부분 모르면서, 또는 가끔은 알면서 ‘그냥 그 일을 한다’. (…) 이처럼 편집자는 모순된 자리에 있다. 때로는 피할 수 있다 해도, 건축에 관한 책도 다루고 인공지능에 관한 책도 다루고 나긋나긋한 에세이도 다루어야 한다. 다룰 수 있는 것보다 다룰 수 없는 것을 다룰 때가 많다. ‘그래서’ 엉터리 책이 나오고, ‘그렇지만’ 좋은 책이 나온다. 이러한 모순된 존재로서 편집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첫째 ‘최초의 독자로서 생생하게 읽는’ 자신의 체험을 갖고 이를 반영하는 것, 둘째 자신을 믿지 말고 언제나 겸손함을 유지하는 것이다.
--- p.17,29, 「편집자라는 모순된 자리에서」 중에서 편집자는 일선에서 최초로 원고를 접한다. 투고 원고나 청탁 원고 외에 사장이나 편집장을 거쳐 들어오는 것들도 있다. 어쨌든 편집자는 출판사의 일선에서 그 원고를 최초로 읽게 될 가능성이 높다. 편집자가 ‘이건 아니다’ 할 경우 그 원고는 선택되기가 쉽지 않다. 물론 영역별로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 판단하는 시스템을 제대로 갖춘 출판사도 있다. 그렇다 해도 편집자가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원고가 선택되기는 쉽지 않다. (…) 편집자가 다루는 것은 원고(原稿)다. ‘원(原)’은 근원이요 시초를 뜻한다. 근원이 되는 글, 시초가 되는 글이 완성된 글로 책에 담겨 독자 손에 닿을 수 있도록 편집자는 여러 가지 역할을 한다. “이 원고는 도저히 안 되겠어!” “저 저자에게 이런 내용의 원고를 받아 꼭 책을 내겠어!” 이와 같이 원고의 사활을 결정하기도 하고, 같은 원고로도 편집자에 따라 아주 다른 책을 만들어낼 수 있다. --- p.38,40, 「편집자, 보이지 않는 권력」 중에서 편집자는 늘 완성으로 가는 길 위에 있다. 자신이 원하는 책을 담당했든, 위에서 떨어져 내려왔든 자기가 지금 그 책을 담당할 최상의 상태에 와 있지 않다. 심지어는 최악일 때조차 있다. 어쨌든 책을 맡았으면 그 순간부터 그 책을 제대로 편집하는 데 필요한 것들을 챙겨야 한다. 심리적으로도 맡은 책의 분야와 분위기, 정서에 적응해야 한다. 그러나 어떤 책이 됐든 필요한 소양과 적응력은 훨씬 전부터 준비하고 있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겉보기만 번지르르한 책을 만들 수밖에 없다. 오늘 보는 뉴스 한 줄, EBS 다큐멘터리 한 편, 광화문 광장의 촛불 시위에 나가 외친 경험, 몽골 초원에서 본 별빛, 서점 진열대에서 만난 책의 제목…… 그 모든 것이 편집자에게는 자산이다. 그것들을 흘려버리지 말고 맥을 짚고 마음으로 즐기고 뱃속으로 삼켜야 한다. 그런 습관, 집착증이야말로 편집자라면 걸려야 할 편집증(編輯症)이다. --- p.51-52, 「편집자와 편집증」 중에서 내가 출판사에 입사한 1980년대 중반에는 일반 단행본 출판은 거의 모두가 활판 인쇄였다. 출판 편집자들은 자신들을 가리켜서 ‘교정쟁이’라고 자조적으로 부르기도 했는데, 왜냐하면 대부분의 시간을 교정지에 코를 박고 빨간 볼펜으로 교정을 보는 데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교정쟁이’의 유일한 무기이자 도구는 ‘빨간 볼펜’이었으니, 여름에는 흰 남방셔츠에 새빨간 ‘볼펜 똥’이 묻어 있기 일쑤였다. (…) 여러 가지 교정부호 중 이 ‘돼지 꼬리 둘’을 시원스럽게 휘날려 그려 넣을 때만큼은 기분이 상쾌하고, 스트레스까지 날아가는 것 같다. ‘돼지꼬리 하나’는 글자가 물구나무를 섰거나 옆으로 누워 있으면 똑바로 세워놓으라는 지시로 그려넣는다. 그런데 요즘 21세기의 편집자들은 이 ‘돼지 꼬리 하나’ 부호는 사용하지 않는다. 아마 1990년대 이후 출판사에 입사한 세대는 이런 교정 부호가 있다는 것조차 모를 수 있다. --- p.57-59, 「활판과 함께 사라진 ‘돼지 꼬리 하나’」 중에서 따옴표로 구별해주는 대화문을 또다시 한 자씩 더 들여넣어 지문과 구별해줄 필요는 없다. 새로 행을 잡아 쓸 때는 한 글자 간격(그 글에서 택한 간격)만큼 들여넣고 글자면 글자, 따옴표 등 부호면 부호로 시작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것이 가장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글쓰기이고 표기법이다. 만약 교과서 편찬 지침에 대화 표기·편집에 대한 규정이 있다면 교육부와 관련 인사들은 그 규정의 타당성을 열린 자세로 재검토하기 바란다. 잘못된 편집방식은 지켜야 할 전통이 아니다. 교과서가 먼저 바뀌면 교과서를 답습해온 출판사들도 바뀌게 된다. 이치에 맞지 않고 글의 원형을 손상할 위험이 있는 교과서의 대화 편집방식을 하루빨리 점검하여 합리적으로 바꿔야겠다. --- p.145, 「교과서 대화 편집방식 바꿔야 한다」 중에서 우리말을 바르게 잘 쓰자고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난의 제목이 왜 하필 ‘우리말 클리닉’일까?(…) 우리말 ‘바로 쓰기’나 ‘길라잡이’, ‘다듬기’, ‘가꾸기’ 같은 제목이라야 내용과 포장이 딱 들어맞는 것 아니겠는가. (…) 그렇지만 나는 누구나 쓸 법한 ‘우리말 가꾸기’ 같은 제목을 붙이지 않았다. ‘우리말’에 대한 자의식을 쏙 빼고, 그냥 저잣거리의 감각으로 생각해보면 어떨까. 오히려 우리말 ‘클리닉’이 먼저 떠오르지 않을까. (…) 우리말 사랑이 불꽃처럼 뜨거운 분들의 주장을 읽다 보면, 어떤 내용은 우리말 순수주의나 순결성에 너무 매여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말도, 삶도 순종(純種)은 없다. 우리 몸이 외부세계와 교섭하는 것이 바로 육체적 생존이듯이, 말도 그 본질은 다른 언어와 끊임없이 교섭하면서 생성되고 발전하는 것이다. (…) 소통이면 소통, 절규면 절규, 탐구면 탐구인 대로, 말함으로써 한층 자유로워져야지, 말을 잘 가꾸자는 노릇이 되레 말의 굴레를 쓰고 끙끙대게 만드는 구속이 되어서는 안 된다. --- p.168-170, 「우리말 클리닉」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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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편집자의 지극함
탁월한 우리시대의 창조적 지성과 창조적 재능들을 가까이에서 만나고 그분들과 함께 작업할 수 있었던 것을 큰 복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분들의 보석 같은 글과 마음이 독자에게 좀 더 정확하고 편안하게 전달되는 데 일조했다면 그것으로 저는 소임을 다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_2007 한국출판인회의 올해의 출판인상 수상 소감 소설가이자 문학평론가, 특히 꼽히는 아동문학평론가인 김이구이지만 그를 수식하는 주된 말은 ‘평생 편집자’이다. 실제로 1984년 창비 편집부에 들어간 후 2017년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기까지 30여년을 출판 현장을 벗어난 적이 없다. 이른바 ‘문인 편집자’이자 ’전문 편집자‘의 면모를 갖춘 정통 편집자로 굵직한 족적을 남긴 그이지만 일찍이 ‘올해의 출판인상’ 수상 소감에서, 그리고 이 책 곳곳에서 보여지는 것은 ‘겸손함’이다. 이는 단지 겸양의 미덕이 아니라 작가에 대한 존중과 글을 대하는 지극함이라 하겠다. 누구보다 창작의 고통을 아는 바고 원고를 귀히 여기는 만큼 단어 하나 문장 한 줄도 허투루 대할 수 없었을 터이고, 이를 편집자의 기본자세로 삼았음이다. 지엽적인 것으로, 간과되기 쉬운 것들에까지 미치는 그의 세심함은 때로 ‘느림’으로 폄하되기도 하지만 결국 작품의, 책의 완성도를 높이고, 중요한 문제제기를 낳기도 한다.(일례로 ‘교과서 대화 편집방식’ 등) 어디서든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성품도 그를 기리는 많은 이들이 뽑는 덕목이다. 이 책 ‘서문’에서 최원식 교수가 애통해하듯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은” “타고난 군자”였음인가. 이런 성품은 “편집자는 많은 경우 그림자처럼 존재합니다. 작가 뒤에 숨은 그림자처럼 두드러지지 않은 방식으로 활동하면서 실제로 문학생산의 질을 좌우하고 소비·독서 패턴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위력적인 존재가 바로 편집자입니다.”(〈매개 지식인으로서 편집자의 즐거움과 괴로움〉(《우리 소설의 세상 읽기》) 중에서)라는 자신의 언급처럼 편집자의 자세로 자연스럽게 체화된다. 소극적이거나 수동적인 자세가 아니라 편집의, 편집자의 본령을 강조하고 그 역할의 중요성을 인식함은 물론이다. 실제로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을 체험한 세대로 출판환경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꾸준히 자신의 역할을 찾아갔음은 다양한 형식의 책 기획과 책 너머 활동으로 드러난다. 한 편집자의 시간, 그 존재감 그의 오랜 편집자 경험을 바탕으로 풀어가는 “편집의 원리, 의미와 가치, 그리고 편집자의 삶의 철학”을 담고자 했던 전작 집필기획이 갑작스러운 타계(심장마비)로 중단되었던바, 이 책은 그 집필 원고 일부에 지난 편집 관련 글들 중 주요한 몇 편을 더해 ‘평생 편집자’ 김이구의 일면이나마 담아보고자 한 뒤늦은 시도다. 미완의 안타까움이 크지만 그가 쌓아온 시간과 그 존재감은 묵직한 무게로 계속 남을 듯하다. 1.편집자라는 존재 “편집자란 모순된 자리에 서서 ‘다룰 수 없는 것을 다루는’ 존재”이다. 저자가 초보 편집자로서 전문 영역의 원고를 만져야 했던 당혹감의 일성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유효한 말이다. 독자에게 전달되는 글의 상태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편집자의 손인바 그 권한과 책임을 피할 수 없으며 언제나 배우는 자세로 겸손함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글에서는 계간지 담당 편집자로 신인 작가 등단, 발굴에 기여한 자부심(권력)에서 사소한 교정 실수가 빚는 엄청난 결과까지(“편집자는 말을 있게도 하고 없애기도 하니 이 얼마나 무서운 권력인가.”) 소소한 예화들까지 곁들여 생생함을 더한다. 2.편집의 시간―지난 시절 편집 풍경 저자가 편집자로 일하기 시작한 1980년대는 활판 인쇄로 책을 만들던 때다. 당시 편집자들은 “자신들을 ‘교정쟁이’라고 자조적으로 부르기도 했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교정지에 코를 박고 빨간 볼펜으로 교정을 보는 데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빨간 볼펜을 무기 삼아 ‘돼지꼬리 둘’(삭제) ‘돼지꼬리 하나’(글자 바로 세우기) 교정부호를 그리던 정경, 일일이 손으로 이뤄지는 문선, 조판 과정 등 저자가 전하는 작업 풍경은 아련한 느낌이다. 21세기 편집자들에게는 생소한, 흥미로운 내용이다. ‘책의 또 다른 표정’으로 전하는 지난 시절의 판권(간기) 스케치도 사뭇 흥미롭다. 3.편집자의 눈 실제 교과서 개발에 관여한 실무 경험과 감식안으로 국어교과서 전 종을 검토한 글들은 지난 교과과정을 대상으로 한 것이지만 근본적인 문제제기로서 여전히 가치를 지닌다. 특히 교과서 대화문 편집방식에 대한 세심한 지적은 주목할 만하다. 또한 저자의 아동청소년문학에 대한 관심과 기여도는 공인된 바다. 상업적 성과를 거둔 ‘소설’에 편중된 청소년문학(상)에 대한 문제제기도 경청할 만하다. 4.우리말 클리닉 저자의 우리말에 대한 식견은 익히 알려진 바다. 편집자에게는 물론 글쓰기의 기본 요건으로 저자, 독자에게 모두 긴요한 내용이다. ‘클리닉’이라는 제목을 고수하며 실생활에서 흔히 접하는 잘못된 용례와 여러 예화를 끌어와 내리는 자상한 진단과 처방이 친근감을 더해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