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소득공제 청년패스
청화 전기
위대한 스승 양장
김용출
한울 2023.11.10.
베스트
불교 top100 3주
가격
29,800
29,800
YES포인트?
0원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국내배송만 가능
  •  문화비소득공제 가능

이 상품의 태그

상세 이미지

책소개

목차

지도 청화주요 수행처와 창건·중건 사찰
추천사 대종사의 법향(法香) 되새길 길잡이_진우
 대종사의 사상과 행장 일목요연 정리_용타

서장“나 갈라네, 승가는 화합이네”(2003.11~현재)
2003년 11월 12일 열반 “대중과 화합 잘 하시게”|“큰스님, 생사거래의 진상 다시 일러주소서”|원통불교의 중흥과 염불선의 대중화|위대한 수행자…전도에 최선, 미국 포교도

제1장 고해의 바다, 탄생과 젊은 시절(1923~1946)
1923년 12월 13일 비범한 탄생|생명을 귀하게 여긴 모범생|간난신고의 일본 유학|갑작스러운 결혼과 강제징집|해방과 광주사범 편입

제2장출가와 스승 금타, 새로운 출발(1947~1949)
1947년 발심 출가|수행의 원형과 운문암 시절|위대한 스승 금타|철학적 우주론의 규명과 「보리방편문」 저술|수행의 위차 정립과 「수릉엄삼매도(결)」 저술|금타의 열반과 영향
제3장 현대사와 불교 정화의 격류 속에서(1950~1958)
한국전쟁의 발발|망운중학교의 설립|첫 불사 혜운사의 창건|불교 정화의 혼돈 속에서

제4장 치열한 구도와 만행(1959~1977)
1959년 겨울 두륜산 양도암으로|진불암 수행과 초의의 『선문사변만어』|광주 추강사 시절|지리산 백장암 및 벽송사 두지터 수행|곡성 태안사 주지|구례 사성암 수행과 오도 |남해 부소대 및 진주 두방사 수행|『금강심론』 원고 입수와 조방원과의 교류|이어지는 안거 수행과 번역 불사

제5장 사상의 정립과 하화중생 모색(1978~1984)
상견성암 삼년결사(1978~1981)와 『금강심론』·『정토삼부경』의 번역 출간|돈점 논쟁의 불씨와 『약사경』 번역|첫 언론 인터뷰 “정통 불법의 부흥을!”|첫 대중 법문, 백장암 만등불사 법문|베일 벗은 사상, 백장암 연속 법문(1984)|안성 칠장사의 포효와 『정통선의 향훈』

제6장 태안사 시대와 회상의 형성(1985~1992.9)
1985년 태안사 조실 부임|태안사 삼년결사(1985~1988)|금륜회의 조직과 정중당 건립|천도재 등 각종 재의 봉행|대중 법문의 러시와 서울 전도|『원통불법의 요체』 연속 법문(1992) |회상의 형성과 성륜사 시대 개막

제7장 붕정만리 성화미주(1992.10~1998.3)
1992년 10월 미주순회법회|한국 불교 미주 첫 동안거 결제|짧은 귀국과 이어지는 대중 법문|카멀 삼보사 시대|순선안심탁마법회와 『안심법문』(1995)|팜스프링스 금강선원 삼년결사(1995~1998)

제8장 마음을 깨치면 모두 부처(1998.4~2003.6)
귀국과 마지막 안거 수행|“「보리방편문」은 『육조단경』에서 유래”|실상사 조실 및 조계종 원로의원 피선|대중 법문의 러시와 서울 광륜사 개원|『육조단경』의 역주|2003년 6월 마지막 대중 법문 “계율을 지키세요!”

저자 소개 1

논픽션 작가 및 기자. 2003년 논픽션 『최옥란 평전』과 2006년 『독일 아리랑』을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독서경영』(공저, 2006), 『비선 권력』(공저, 2017), 『역사 논픽션 3·1 운동』(공저, 2019) 등을 집필했다. 1997년 입사한 이래 세계일보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다. 1969년 장흥 출생.

김용출의 다른 상품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11월 10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488쪽 | 127*187*10mm
ISBN13
9788946082816

책 속으로

하루 전날, 그는 자신을 찾아온 오랜 제자 태호 스님에게 이제 떠나겠다고, 마음의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나, 내일 갈라네. 다비 그런 것 하지 마소. 그냥 그냥 흐르는 강물에 훠이 훠이 뿌려버리소.”
마침내 그날 2003년 11월 12일 수요일 저녁 무렵, 그는 성륜사 조선당에서 원을 조용히 불렀다. 낮에만 해도 사시 공양을 먹고 차담을 나누는 등 특이한 모습을 보이지 않던 그였지만, 이때는 이미 자신의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나에게 의복을 좀 갖춰주소.”
중원은 그가 평소 만행 때마다 입고 다니던 승복을 가져와서 입혔다. 평소 쓰고 다니던 모자도 씌워줬다.
“나 혼자서 10분 정도 앉아 있을라네.”
중원은 그의 몸을 부축해 일으킨 뒤 바로 앉혀주었다. 그는 한동안 평소 수행하던 모습으로 앉아 있는 듯했다. 중원은 방에서 나오면서 생각했다. 큰스님이 평소처럼 앉아 계시는구나.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얼마 뒤, 그의 용태는 확연히 달려져 있었다. 깜짝 놀란 중원은 다급하게 제자 및 상좌들에게 알렸다. 천도재를 지내고 쉬고 있던 도일을 비롯해 상좌와 제자들이 조선당으로 달려왔다. 그가 마지막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있었다. 무릎을 꿇은 도일이 스승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큰스님, 가시렵니까.”
“나, 갈라네.”
“큰스님, 앉혀드릴까요.”
“알아서 하소.”
도일은 이때 낮에는 눕지 않는 장좌불와 수행을 오랫동안 이어온 스승을 한 번쯤 편히 모시고 싶다는 생각이 돌연 들었다.
“큰스님, 그냥 편안하게 가십시오.”
숨을 몰아쉬고 있던 그는 눈을 뜨지 않은 채 제자 및 상좌들을 향해서 힘겹게 마지막 말을 남겼다.
“대중과 화합 잘 하고 살아가시게. 승가란 화합이네.”
우리 시대의 큰 스승이자 한국 현대 불교의 큰스님 청화가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화합이었다. 대중과 화합 잘 하라고. 승가는 화합이라고. 그는 성륜사 조선당에서 도일을 비롯한 제자 및 상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눈을 감았다. 2003년 11월 12일 오후 10시 30분. 그의 나이 80세요, 법랍 56세였다.
--- p.28-29, 「서장」 중에서

청나라 황제 순치의 「순치황제 출가시」, 부설 거사의 「사부시」, 금타 선사의 〈수릉엄삼매도〉를 보면서, 그는 속세에 대한 미련과 출가의 두려움을 떨쳐내고 있었다. 결심을 서서히 굳혀갔다. 장정 500명이 빗장을 열어도 열기 어려운 대문 같은 출가를. 귀의하리라, 거룩한 부처님께. 위대한 가르침에. 훌륭한 스님들께?.
--- p.71, 「제2장, 출가와 스승 금타, 새로운 출발」 중에서

붓을 집어 들었다. 토굴의 벽에다 없을 무(無), 나 아(我)의 무아를 써 내려갔다. 한 번, 두 번, 세 번…. 빌 공(空) 자를 쓰기도 했다. 쓰고 또 썼다. 벽이 검어질 정도로, 미친 듯이. 제법공과 무아를 체득하기 위해 백장암 토굴의 사방 벽에다 무아와 공 글자를 수천 번 썼다고, 그는 나중에 동안거 용맹정진 연속 법문에서 회고했다.
“겨울에 혼자 토굴에 있는데, 이놈의 ‘나’라는 것이 분명히 있는데, 어째서 무아인가, 어떻게 해도 무아, 내가 없다는 것이 납득이 안 된다 말입니다. 머리를 제 아무리 찢어봐도 결국은 납득이 안 되거든요. 그때 사방 벽에다 무아, 공을 수천 번을 썼습니다. 이놈의 ‘나’가 하도 떨어지지 않으니까 말입니다.”
--- p.152, 「제4장 치열한 구도와 만행」 중에서

“해제를 하고 며칠이 지나니, 큰스님의 이가 그냥 쑥 빠졌습니다. 이를 쓰지 않고 영양 섭취가 안 돼 그냥 빠져버린 것입니다. 그때 큰스님의 모습은 마치 부처님 고행상 같았습니다. 저는 큰스님이 꼭 부처님처럼 보였습니다. 큰스님께서는 배가 등에 붙을 정도로 되자, 좌복을 배에 대고 끈으로 몸에 묶었습니다. 몸을 지탱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절대 벽에 기대지도 않고 눕지도 않으시니 그렇게라도 하신 것입니다.”
--- p.155, 「제4장 치열한 구도와 만행」 중에서

“우리는 비록 사람일망정 우리 마음의 본바탕, 본성은 역시 부처입니다. 지옥 같은 마음, 사람 같은 마음들이 단지 요소로만 거기에 조금씩 묻어 있을 뿐입니다. 그것도 역시 본바탕, 본 저변은 부처라는 말입니다. 겉에 뜬 초점에서만 지옥이고, 지옥 같은 인연 따라서 되니까 지옥 같은 마음이 생기는 것이고, 인연 따라 업에 따라서 사람 같은 모양으로 태어나서 사람 같은 마음을 쓰는 것이지, 이 마음도 역시 저변에는 모두가 부처뿐이라는 말입니다. 심즉시불(心卽是佛)이라, 이 마음 바로 부처입니다. 그러기에 회광반조(回光返照)라, 이 마음 돌이켜서 저변만 보면 그때는 우리가 부처가 되고 만단 말입니다.”
--- p.231-232, 「제5장 사상의 정립과 하화중생 모색」 중에서

“어떻게 하면 부처가 될 수 있습니까?”
그는 다른 선방으로 공부하러 떠나는 제자 명원으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1991년 태안사에서 행자 생활을 했고 계를 받은 뒤, 100일 기도 및 진불암 49일 기도를 정성스럽게 올린 제자였다.
“자네하고 부처가 둘이 아니네. 일체가 다 부처뿐이네. 자네가 본래 부처네.”
거창한 말이 아닌, 간결한 말이었다. 명원은 스승의 말을 듣는 순간 “정말 시원하고 감동적이었다”고, 나중에 회고했다.
--- p.301, 「제6장 태안사 시대와 회상의 형성」 중에서

“하루는 미국인 노보살이 큰스님을 찾아왔습니다. 큰스님을 만난 노보살은 눈물을 철철 흘리며 감격해 했어요. 그냥 기뻐서 운 노보살에게 큰스님은 ‘말은 통하지 않더라도 마음은 하나여서 다 통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죠. 수행은 감춰져 있는 것만이 아닙니다. 수승한 수행자의 수행력은 위의로 이미 다 드러나는 것만 같습니다. 언어도 통하지 않는 동양의 수행자에게 드러낸 미국인의 감화와 귀의는 바로 큰스님의 수행력 때문이었죠. 감추어도 드러나는 수행의 아름다움이 그들에게 감동을 남긴 것입니다.”
--- p.339-340, 「제7장 붕정만리 성화미주」 중에서

그는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책상 앞에서 역주에 몰두했다. 심지어 하루 일종식마저 허술하게 먹을 정도였다. 어느 날 저녁, 시자 정륜이 쌀죽을 만들어 조심스럽게 밥상에 올렸다. 그는 죽을 맛있게 먹으며 말했다. “자네가 죽을 잘 쒔네.” 정륜은 신이 나서 이튿날 저녁에도 흰죽을 쒀서 올렸다. 그러자 그가 이번에는 정색을 하고서 말했다. “나는 일종식을 하지 않는가. 어제는 자네 성의를 봐서 죽을 먹은 것이네. 다음부터는 하지 마소.” 그는 더 이상 죽을 먹지 않았다. 정륜은 이후에도 스승의 건강이 염려돼 몇 번 더 죽을 쒀서 올렸지만, 그는 먹지 않았다.

--- p.415-416, 「8장 마음을 깨치면 모두 부처」 중에서

출판사 리뷰

청화 대종사, 대표적 선승으로 정통 불법의 부흥을 통한 원통불교 주창

청화 대종사는 한국의 대표적인 선승으로, 오랫동안 일종식과 장좌불와, 토굴 수행을 감행하면서 정통 불법의 부흥을 통해 인간론적 신앙관, 선오후수적 정혜쌍수, 화두선과 염불선의 회통, 다른 종교와의 대화를 모색하는 원통불교론을 주장했다.

계속되는 분열과 대립, 전쟁, 물질만능주의, 기후와 환경 위기 등 심각한 현대 사회의 위기 헤쳐 나아갈 이념과 사상이 필요한데, 원통불교야말로 원효와 의상, 대각 의천, 보조 지눌, 태고 보우, 나옹 혜근, 서산 휴정, 사명 유정 등 역대 고승 대덕들이 역설해 온 한국 불교의 대표적인 특성이자 세계 불교에 기여할 수 있는 한국 불교의 경쟁력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심지어 불교 내의 회통을 넘어서 기독교와 이슬람교 등 다른 세계종교와의 대화와 회통도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통종교를 강조하기도 했다. 우주만유가 진여불성뿐이라는 일원론적이고 범신론적 존재론과 진리관을 바탕으로 제반 종교 및 사상과의 회통을 시도했고, 특히 법신 화신 보신의 삼신자성불 사상과 기독교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삼위일체 간 회통을 적극 시도했다.

정통선을 바탕으로 다양한 수행법의 회통과 염불선의 대중화 시도

청화 대종사는 정통선을 바탕으로 다양한 수행법의 회통과 공존을 추구하는 한편, 이를 바탕으로 염불선의 대중화를 시도한 것으로도 큰 주목을 끌었다. 즉, 우주만유는 진여불성뿐이고 마음이 곧 부처라는 반야의 지혜를 여의지 않고 수행한다면 모든 수행법이 선이 될 수 있다며 간화선뿐만 아니라 염불선, 묵조선 등 다양한 수행법의 회통과 공존 가능성을 열었다.

그는 이 과정에서 간화선만을 유일한 수행법으로 여기던 조계종의 풍토 속에서 한때 외도로 치부돼 엄청난 비판과 핍박에 시달리기도 했다. 숱한 가시밭길 속에서도 그가 염불선을 포기하지 않은 것은 근기의 차별 없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어 더 많은 대중이 진리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종사가 입적하신 후 간화선만을 사실상 유일한 수행법으로 간주해 온 대한불교 조계종도 예비승과 행자들에게 염불의례 교육을 시행하도록 하고 염불의례에 대한 숙지도 승가고시에 적극 반영하며 다양한 수행법을 포용하는 등 변화해 나갈 수 있었다.

오랫동안 일종식과 토굴수행 감행한 위대한 수행자 … 미국 포교 나서기도

청화 대종사는 수십 년간 하루 한 끼의 일종식을 하고, 오랫동안 눕지 않는 장좌불와를 이어왔으며, 수십 차례 토굴수행을 감행한 위대한 수행자였다. 백양사에 주석했던 지선 스님은 “큰스님은 제가 보아온 수많은 수행자들 중에서 가장 치열하고 열심히 수행했던 스님이었다”며 “하루 한 끼 공양으로 법체를 유지하시며 장좌불와, 묵언으로 참선 정진하시어 전형적인 수행자의 모습을 보여주셨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특히 진리의 법을 전하기 위해서 일흔이 넘은 나이에 6년간 이역만리 미국으로 날아가서 세계인들을 향해 법문과 수행을 이어간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세계인들에게 한국 불교의 진면목을 보여주기 위해, 진리를 깨치게 하기 위해 현지에서 삼년결사까지 감행한 것은 한국 불교의 위대한 승리였다.

800여 개의 법문과 많은 자료, 인터뷰를 통해 탄생한 대종사 법향의 정수!

대종사의 음성과 영상, 녹취록 등 다양한 형태로 보존된 800여 개 법문, 『정통선의 향훈』·『원통불법의 요체』·『안심법문』 등 법문서와 『정토삼부경』·『육조단경』 등의 역주서, 큰스님의 은사이신 금타 선사의 유작 『금강심론』, 각종 저술 등 수많은 자료를 열람하고 주요 도반과 상좌와의 인터뷰 등을 통해서 청화 대종사의 삶과 사상을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구현하려 시도했다.

아울러 대종사께서 행하신 수많은 대중법문은 물론 각종 저술과 역주서들을 정확하면서도 쉽게 소개해 이 책만 읽더라도 대종사의 정통 불법 및 원통 불법의 핵심을 여실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수많은 참고문헌과 무려 800개가 넘는 실로 방대하고 꼼꼼한 주석, 찾기에 편리한 찾아보기 등을 통해 대종사의 행장과 사상 전모에 대해 진실성과 구체성을 담보하고 있다는 점도 부실한 주석이 범람하는 교단 내의 전기·평전류 저술 속에서 가히 모범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2003년 논픽션 『최옥란 평전』과 2006년 『독일 아리랑』을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저자는 논픽션그룹 ‘실록’ 멤버들과 함께 『역사 논픽션 3·1 운동』을 집필 중이던 2018년 두 권의 책을 통해 청화 대종사를 처음 만났다. 대종사의 행장뿐만 아니라 그의 원통불교 사상과 염불선 등에 매료된 저자는 실로 방대한 자료를 5년 동안 찬찬히 읽고 듣고 많은 관계자들을 인터뷰했다. 이를 통해 대종사의 탄생부터 출가, 치열한 구도와 만행, 사상의 형성과 대중 법문, 태안사 및 성륜사에서의 하화중생, 6년간 미국 전도, 생애 마지막 시기와 열반 모습 등 청화 대종사의 일대기를 과장이나 축소 없이 논픽션 작가 특유의 섬세한 필치로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

추천평

우리는 이제 더 이상 곡성 성륜사나 서울 광륜사에서 청화 대종사를 뵐 수 없습니다. 환한 미소와 하심으로 사부대중을 따뜻하게 제접해 주시던 대종사를 더 이상 만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대종사의 삶과 사상을 정확하게 담은 책 『청화 전기: 위대한 스승』을 통해서 대종사의 풍모를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 진우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정통 불법의 부흥을 통한 원통불교의 중흥 시도, 정통선을 바탕으로 다양한 수행법의 회통과 염불선의 대중화, 청정한 계율과 치열한 구도 정신, 6년간의 미국 성화. 청화 대종사께서는 가히 한국 불교와 세계 불교에 지워지지 않을 깊은 영감을 심어주셨습니다. - 용타 (벽산무주문도회 문장)

리뷰/한줄평0

리뷰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한줄평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

29,800
1 29,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