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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 시인의 말
1부 013 간월재 억새몰이 014 그녀가 놓은 작은 불 016 함안 고택 018 순진한 빠꼼이 020 해운대의 밤 021 복덕 씨, 이름이 뭐예요? 022 아부지 전상서 023 단풍의 구운몽 024 18세 코스모스 동창생 026 이순신 장군과 어머니 028 얼음 땡 029 신데렐라 두 번째 이야기 030 용서 모임 032 다 지나가 033 아버지의 딸로 살아간다는 것은 034 이진법으로 나를 채우는 시간 035 맴맴 036 나는야 하얀 기억에 물 주는 여자 038 신이시여 2부 041 어머니를 부르고 싶은 날 042 남도의 열락처 044 나의 시절 047 무병 048 한 그릇으로부터 050 난로를 사랑한 눈사람 052 난로를 사랑한 눈사람·2 053 오동도의 여수 054 밤의 영광 056 오후의 거리 058 첫 고백 059 맹숭맹숭한 마음엔 네가 딱 060 가을은 안단테 안단테 061 별이 총총 062 추어탕 365 064 서울나기 066 하늘 아래 바다 067 윤동주 유고 보존 정병욱 가옥을 다녀와서 068 이제 네 차례야 070 구룡사 3부 073 자백 074 살림살이 076 언니 감꽃이 떨어지고 있어요 079 스물은 080 어쩌다 어른 082 아가에게 084 갱년기 085 수평이 되기까지 086 내리사랑 087 삶의 현장 090 희망이란 놈 앞에서 091 보경 씨 092 어머니의 알 093 영감 편히 있지소 094 0과 1의 대화 095 시 쓰기 096 날마다 퇴근 098 통도사의 세 처녀 4부 101 봄은 102 배냇짓 103 통영행 104 영이와 숙이 105 영이와 숙이·2 106 길에서 만난 사람들 108 설상가상 109 한 철 동무 110 봄밤, 고독에 사무치는 일 112 봉구네 국수 113 오늘은 태산 114 단서를 찾아라 115 풀리지 않는 선물 116 남편과 애인 117 동안거 118 남해 설흘산 119 계절 따라 120 봄 121 미스 김 라일락 122 기도 123 시집 해설 ‘트랜스액션’으로 소환되는 체험의 서사체 차민기(문학평론가·문학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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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이제 나와 화해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기억의 위치를 바꾸어 단련의 고된 시간을 풀어주기로 했다 2023년 10월 서미경 시인 ‘트랜스액션’으로 소환되는 체험의 서사체 ― 차민기(문학평론가/문학박사) 1. 개별 체험들의 감성적 소환, ‘트랜스액션(Transaction)’ ‘감성’과 ‘이성’은 고대로부터 인류지성사의 양단에 공고하게 자리하던 개념이었다. 그리하여 감성에 치우친 시대에 낭만주의가 출현했고, 이성이 득세하던 시대에 사실주의가 등장하였다. 그러나 이 양단의 바탕에는 결국 ‘사람의 나날살이’라는 기본 생체험이 전제되어 있다. 결국 ‘예술’은 ‘인간의 삶을 어떻게 변주하고 또 어떻게 전망할 것인가’에 대한 개념어인 셈이다. 예술에 전제된 이 체험의 좌표점들을 개별적이고 객관적 사건으로 구분하지 않고, ‘감성’의 매개값으로 연결지어 그 과정에서 공시적, 통시적 의미를 추출하고자 한 이는 미국의 철학자 존 듀이였다. 존 듀이는 ‘감성’과 ‘이성’의 이분법적 세계관을 부정하면서, 인간의 인식과 교감은 세상에 존재하는 낱낱의 존재들과 상호작용함으로써 그것이 인식 대상(개별 대상 또는 사건)의 지속적이면서도 질적인 변화를 유도한다고 보았다. 이때 인간과 세계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작용하는 인식 과정을 ‘트랜스액션(transaction)’이라 규정하였다. 그가 말하는 트랜스액션은 한 개인이 그를 둘러싼 모든 것들(혹은 상황)과의 교감을 가능케 하는 인식 작용으로서, 이 트랜스액션을 발현하게 하는 단초를 ‘경험’이라고 본 것이다. 2. ‘체험씨’들의 결실, 『복덕 씨, 이름이 뭐예요?』 이 시집은 모두 76편의 시편들이 1~4부에 고루 나누어져 있다. 여기에 실린 작품 하나하나는 ‘그때’(과거)와 ‘지금’, ‘여기’와 ‘거기’, 또는 ‘이것’과 ‘저것’ 들과 같은 모든 시. 공간적 대상(상황)들에서 촉발된 트랜스액션의 변환어라 할 만하다. 시인이 트랜스액션의 영역으로 낱낱의 개별 대상들을 끌어 오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들이 ‘기억’, 또는 ‘환기’이다. …… 낙엽을 모아 책갈피에 꽂아 두는 풋풋한 시절 첫 미팅 때 고개 한 번 못 들고 탁자에 줄 그어진 곳만 냅다 쳐다본 시절 …(줄임)… 미용실 언니가 너무 짧게 잘라버린 머리 말 못 하고 나와 집에서 보자기 쓰고 울었던 시절 운동장 조회하고 구멍 난 양말 들킬까 봐 제일 늦게 들어갔다가 벌서던 시절 …(줄임)… 사상터미널 내리자 딱 봐도 촌뜨기인 우리를 봉고차로 데려가 세계문학전집 강매당하게 하던 시절 …(이하 줄임)… -「순진한 빠꼼이」일부 모두 36행으로 이루어진 이 시는 온통 과거 사건들에 대한 ‘기억’이다. 성장기의 개별적 체험이면서도 어쩌면 사소할 수도 있는 이 낱낱의 사건들을 읽어 내리다 보면, 문득 읽는 이들의 기억 속에도 시행과 겹치는 구체적 사건들이 떠올라 올 것이다. 시인의 개별 체험이 그만의 개별적 사실에 그치는 게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낸 이들이면 누구나 겪어봤음직한 보편적 세계를 불러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감적 경험 서사들은 개인의 사건을 개별적 자리값에 고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트랜스액션이라는 매개 변수를 통해 연속성을 지닌 다른 사실들로 확장되며, 그 과정에서 우리는 ‘감성’을 공유하는 통합적 정서를 경험하게 된다. 천주산 옹골진 계속 줄기 따라 굽어진 곳에 아버지를 모셨다 일 년에 두 번 아버지 만나는 길에 어머니 항상 동행이시다 살아서 미운 정만 나누셔서 내려오시는 길 발뒤꿈치에 미련이 한 짐이다 등 뒤에서 울어주던 뻐꾹새 소리 예전에 울어주던 그 울음소리 맞냐며 아버지께 물어보시더니 올해는 기력이 쇠하여 그 울음소리 나 혼자만 듣고 내려온다 뻐꾹새야 다음 명절엔 절창으로 울어다오 소릿값은 내 섭섭지 않게 치를 테니 아버지 듣고 누웠을 뻐꾹소리 어머니 듣고 아버지 도포자락에 회환으로 한 번 놀아보시게 -「영감 편히 있지소」전문 생전에 그닥 살갑지 못했던 아버지를 땅에 묻은 뒤, 해마다 그 무덤에 동행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저만치 두고 보는 장면이다. 산 자와 죽은 자의 아득한 골짜기를 “뻐꾹새 소리”가 그득 메우고 있다. “올해는 기력이 쇠하여” 동행하지 못한 어머니를 위하여 화자는 “다음 명절”을 기약하며 “뻐꾹새”에 청을 넣는다. 쇠한 기력의 어머니가 그 ‘절창’을 듣고서 환한 “아버지 도포자락에 회한으로” 한바탕 놀아보시기를 기원하면서. 시인이 개별 체험들을 시적으로 환원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순진한 빠꼼이」, 「18세 코스모스 동창생」, 「첫 고백」, 「살림살이」들과 같은 시들은 모두 과거의 구체적 체험들을 불러오는 방식이다. 그에 비해 「맹숭맹숭한 마음엔 네가 딱」, 「하늘 아래 바다」, 「구룡사」, 「영감 편히 있지소」, 「0과 1의 대화」, 「시 쓰기」들은 시각, 청각, 후각 등의 다양한 감각적 환기를 통해 읽는 이들의 경험 서사를 이끌어 낸다. 이런 점에서 이 시들에 쓰이는 감각적 형상화는 개별 대상이나 상황들에 대한 전신(全身)의 교감 기호들이라 할 만하다. 따라서 시인에게 과거와 현재의 체험 서사들은, 시집 『복덕 씨, 이름이 뭐예요?』를 일구어 내는 가장 근원적인 ‘체험씨’라 부를 만하다. …… 어서 오세요 하면 뒤따라 오는 무릎 아픈 할머니 급히 재촉하며 어서오라 안 하나 어여 온나 맛있게 드세요 하기 전에 맛있게 무까? 선수 치며 물어보는 할아버지 나보다 띠동갑 아래인 거 같은데 만날 오빠 속 풀러 왔어 궁물 많이 줘 기분 좋게 버릇없어 그냥 웃고 밥값 천원 덜 낸 거 같다고 한여름 헐레벌떡 뛰어오신 할머니 내가 더 미안해 추어탕 한 그릇 싸 드리고 …… 점심때는 애인 저녁때는 부인 하루 두 번이나 오신다고 아는 체 했다가 눈치 없다고 구박 받고 추어탕으로 한 끼 때우신 손님들 속이 그득해져 나가는 뒷모습은 세상 부러움 없다 산다는 거 배부르고 등 따시면 그만이지 -「추어탕 365」일부 ‘음식’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공간을 매개하는 대표적인 기호 가운데 하나이다. 특히 이 시의 이야기 토막이 된 ‘추어탕’은, ‘할머니-할아버지’, ‘띠동갑 아래’, ‘애인’, ‘부인’ 등의 다양한 세대층과 구성원들을 모두 “추어탕 365” 안에 자리 앉히는 보편적 체험씨로 기능하고 있다. 그리고 그 체험씨는 단순히 시를 형성하는 소재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들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읽는 이에게로까지 확장된다. 그래서 시어 하나하나, 시행 하나하나를 읽어가는 동안 코끝엔 ‘제피가루’의 알싸함이 맡아지기도 하고, 혀끝엔 갈아 넣은 미꾸라지의 까끌거림이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이처럼 서미경 시인의 시들은 활자로 고정된 채 관념 속에서만 맴돌지 않는다. 그것들은 기억을 비집고 나와, 다양한 감각으로 변환되어 읽는 이의 체험들과 엮인다. 그리고 그 체험의 무더기들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시집 전체를 역동적으로 이끌어가는 힘으로 작용한다. “한데 바람이 허리춤을 끌어안으면”, “간월산은 일어나 허물었던 벽들과 기둥을 세우고 / 낮은 자세로 나부낀다”(「간월재 억새몰이」 일부), “지문처럼 닳아빠진 가마솥뚜껑 만지작거리며 / 아궁이 앞에 앉았다 / 마음보다 따뜻했을 자궁의 온도 / 스멀스멀 올라왔다 / 고가의 젖줄인 우물 / 두레박도 철벅철벅 소리를 내줬다…./ 할머니의 우주였던 고가는 살아있었다 / 우물도 살아있고 / 나도 살아있고”(「함안 고택」 일부)와 같은 시들에서처럼 대자연의 풍경이나 소소한 일상의 사물들이나 그 살아 움직이는 몸짓들은 뚜렷하다. 그리고 그 몸짓들은 은근하다. 그 은근함 속에 “스멀스멀” 읽는 이들의 체험 서사들이 스며드는 것이다. 그리하여 시적 대상이나 상황이 읽는 이의 체험과 완전한 교감을 이루어 시는 온전히 ‘나의 것’으로 읽히게 되는 것이다. 3. 여성성의 ‘장소’ 헤집어 읽기 인문지리학의 창시자라 불리는 ‘이 푸 투안(Yi-Fu Tuan)’은 ‘공간’과 ‘장소’의 경계를 ‘체험’으로 설정해 두 개념의 차이를 설명해 낸다. 그에 따르면 공간은 물리적이고 유형화된 구조물이라면 장소는 그 공간 안에서 이루어진 무형의 서사에 대한 인식이며 그를 바탕으로 역사를 내재하는 곳이다(공간과 장소』,태림문화사,1995). 문학적 공간과 장소에 대한 상상력은 박태일의 글(한국 근대시의 공간과 장소』,소명출판사,1999)에서 한층 분명해졌다. 그는 시 짓기를 집 짓는 일에 빗대면서 “문학공간이란 글쓴이가 구축적 경험을 빌려 이루어놓은 구체적인 체험 현실이기 때문에 텍스트 읽기란 그러한 현실을 되겪는 일이다”라고 쓰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시에서의 모든 공간은 단순한 공간의 의미를 넘어 장소로서의 의미체인 셈이다. 서미경의 시집 『복덕 씨, 이름이 뭐예요?』에 유난히 구체적 공간들이 눈길을 끄는 것은 이런 이유이다. 겨울 문학기행 함안 어느 조 씨의 고가를 들렀다 백 년이 흐른 세월의 무게를 기와에 올리고 위풍을 과시하고 있지만 고고하게 애처로웠다 학식 높은 할아버지 사랑은 신식여성과 하시고 노모를 봉양하러 맞이한 신부는 고택과 같이 늙어갔다 …(줄임)… -「함안 고택」 일부 문학기행 답사지로서의 ‘함안 고택’은 1연에서 단순한 공간으로 제시되었다. “백 년이 흐른 세월의 무게를 기와에 올”린 품새는 “위풍을 과시하”는 여느 기와집과 다르지 않다. 그러다 2연에서는 그 안에 이루어진 서사의 한 장면이 환기된다. 집 주인이었을 “학식 높은 할아버지”와 “신식여성” 간의 사랑, 그리고 ‘노모 봉양’이라는 현실 문제를 앞세운 혼인은 그 신식여성과의 사랑을 이 고택 밖으로 밀어내었다. 그래서 이 고택의 서사는 학식 높은 할아버지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늙은 시어머니 봉양으로 청춘을 받친 한 여성의 이야기로 살아난다. 3연에 이르러 화자가 고택 안 낱낱의 세간들을 어루만지는 행위는 그 여성에 대한 공감이며 위로일 것이다. 그리고 그 공감과 위안은 다시 ‘나’에게로 환원되어 ‘고택’ 전체가 ‘나’에게 의미 있는 장소로 변환된다. 그리하여 ‘나’는 “할머니의 우주였던 고가”와 더불어 “나도 살아있다”는 자각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구체적 공간에서의 교감과 자각은 1부에서 4부에 이르는 76편의 작품들에 고르게 녹아들어 있다. 감꽃이 바람의 간섭도 없이 투두둑 담장을 따라 떨어질 때 내 발 디딘 곳마저 내주며 깔깔웃음으로 그것들을 꿰어 목걸이를 만들었었지 떨어진 감꽃을 줄줄이 세우고 있을 때 자야 언닌 부엌에서 행주로 부뚜막을 훔치다 눈꺼풀을 가볍게 하고 보퉁이를 마련했었지 동네에서 기와를 얹은 집이 하나 위채는 일본식 건물을 본떠 각진 집이 보기 좋았고 아래채는 머슴살이하는 골방 두 개가 있는 마당에는 가지 많은 감나무와 우물도 있었다 언니와 난 그 집에서 밥물을 퍼다 날랐고 해가 기울면 등목도 하고 수박도 띄워 놓았다 아래채 골방에서 식모살이하는 자야 언니는 어려서 부모가 입에 풀칠하기도 어렵다 하여 그 집으로 팔려왔다고 한다 …(줄임)… -「언니 감꽃이 떨어지고 있어요」 일부 화자의 유년기 기억 속에 환기된 “일본식 건물” 한 채는 “식모살이하는 자야 언니”와 집주인 “할머니”와의 서사가 겹치는 공간이다. 집주인이면서 가해자로 그려지는 ‘할머니’, 식모이면서 피해자로 그려지는 ‘자야 언니’의 관계는 “깨지는 밥그릇 수”가 늘어나는 것에서 확인된다. “30년이 지나고 고향이라고 찾아온 자야 언니”의 “눈두덩이에 짙은 멍자국”은 이 집을 나간 이후로도 ‘자야 언니’의 삶이 별반 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이 팍팍한 삶을 ‘운명’ 탓으로 돌리며 그저 “부엌에서 행주로 눈물을 훔치고” 마는 자야 언니의 모습에서처럼 ‘부엌’은 여성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지된 공간으로 설정된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부엌’은 남성들에게는 단순한 공간으로 인식되는 반면 여성에게는 유·무형의 폭력으로 점철된 비극적 삶의 애환이 녹아든 공간이다. 우리 동네 복개천에 포장마차 하나 있었던 거라 구청에 이혼 서류 넣고 내 마음통 넣을 곳 없어 들리 포장마차 삼천 원 정구지찌짐에 소주 한 병 시키고 포장마차 홍수 나도록 울었던 거라 콧물 풍선 따라 포장마다 천막 같이 펄럭이고 맘 놓고 울어라 자리 피해 준 아주머니 내 설움 다 받아줘서 고마워요 이제는 행복해졌어요 다시 찾고 싶지만 아주머니 호박마차 타고 이제 보이지 않아 -「신데렐라 두 번째 이야기」전문 ‘포장마차’는 온갖 세상살이의 애환들이 홍합탕 국물 한 그릇으로 우려지는 공간이다. 낯모르는 이들이 소주잔을 나누며 천막을 함께 들썩이는 공간이기도 하고, 이 시에서처럼 울 자리를 피해 온 누군가를 위해 자리를 비켜 주는 것으로 오히려 위안을 건네는 공간이다. “이혼 서류 넣고 / 내 마음통 넣을 곳 없”던 화자가 그 좁은 공간 안에서 받아 든 주인아주머니의 배려는 힘든 시간을 견뎌낸 후 다시 ‘행복’의 시간으로 복귀했을 때 “다시 찾고 싶”은 장소로 환기된다. 이렇듯 시적 공간은 그 안을 살아내는 주체들의 삶에 따라 물리적 공간으로 구현되기도 하고 정서적 장소로 변용되기도 한다. 이러한 장소성에 대한 의미 찾기는 서미경의 시들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열쇠가 되는 셈이다. 4. 과거의 상처들과 화해하기 “가난도 상처가 되었구나. 내 안의 상처를 돌보지 않았구나. 스스로 위안하는 시간을 가졌고 저에게 치유의 시를 선물하면서 많이 울었습니다.” -시인의 〈당선 소감〉 중에서 당선 소감을 찾아 읽으니 시인의 과거가 온통 ‘상처투성이’였음을 알겠다. 그래서 이 시집에 실린 76편의 시들은 그 상처들에 대한 기록이며 그 상처들을 스스로 어루만지는 과정에서 피어난 “예쁜 꽃들”임을 알겠다. 시인이 소감 후반에 “시란 자기 안의 비명을 풀어내는 일”이라고 ‘실비아 플라스’의 말을 덧붙인 것도 이런 까닭이리라. 시뿐 아니라 예술은 오래도록 인류의 삶을 대신 말하거나 그려내는 것으로 제 역할을 해왔다. 저마다 먹고 사는 일에 치여 살다가도 예술적 경험을 통해 한바탕 통곡하듯 속내를 털어내는 일은 타인의 삶을 통한 내 상처의 위무이고, 그것은 다시 힘든 나날살이를 살아낼 수 있는 힘의 바탕이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일상은 그 자체로서 충분히 예술의 씨앗이라 할 만하다. 그래서 서미경의 시들을 읽어가는 것은 사소해 보일지 모르는 일상의 것들에서 촉발되는 트랜스액션들을 경험하는 것이며, 그 낱낱의 일상, 혹은 사물들에게 말을 건네는 행위가 될 것이다. 이제 나와 화해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기억의 위치를 바꾸어 단련의 고된 시간을 풀어주기로 했다 -「시인의 말」 시집의 첫머리에 올린 ‘시인의 말’이다. 이 짧은 문장들 속에서 ‘고된 시간’을 옹골차게 엮어 온 시인의 지난 삶이 알싸하게 씹힌다. 이 시집을 읽는 이들이여! 시인의 언어로 자신의 ‘과거들’과 화해하시라. 그리하여 이 가을에 저마다의 일상들에 예쁜 꽃송이 하나씩을 매달아 보시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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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미경 시인의 시들은 활자로 고정된 채 관념 속에서만 맴돌지 않는다. 그것들은 기억을 비집고 나와, 다양한 감각으로 변환되어 읽는 이의 체험들과 엮인다. 그리고 그 체험의 무더기들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시집 전체를 역동적으로 이끌어가는 힘으로 작용한다. 대자연의 풍경이나 소소한 일상의 사물들이나 그 살아 움직이는 몸짓들은 뚜렷하다. 그리고 그 몸짓들은 은근하다. 그 은근함 속에 “스멀스멀” 읽는 이들의 체험 서사들이 스며드는 것이다. 그리하여 시적 대상이나 상황이 읽는 이의 체험과 완전한 교감을 이루어 시는 온전히 ‘나의 것’으로 읽히게 되는 것이다. 서미경의 시들을 읽어가는 것은 사소해 보일지 모르는 일상의 것들에서 촉발되는 트랜스액션들을 경험하는 것이며, 그 낱낱의 일상, 혹은 사물들에게 말을 건네는 행위가 될 것이다. 이 시집을 읽는 이들이여! 시인의 언어로 자신의 ‘과거들’과 화해하시라. 그리하여 이 가을에 저마다의 일상들에 예쁜 꽃송이 하나씩을 매달아 보시라. - 차민기 (문학평론가·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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