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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시장은 바다의 심장이다
이소정
창연 2026.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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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연 기획 시선

책소개

목차

시인의 말 05

1부_새벽의 비늘, 어시장의 심장
갈치의 은빛 유서 12
장어 수조 앞에서 14
문어는 바닥에서 별을 움켜쥔다 16
홍가리비의 붉은 귀 18
해삼은 바다의 상처를 먹고 산다 20
고등어 눈동자에 남은 항로 22
조기 상자 위의 새벽 24
전어의 가을은 칼끝에서 열린다 26
아귀의 입속에 잠든 바다 28
멸치의 작은 장례 30
미더덕, 바다의 돌기 문자 32
가오리의 납작한 생 34
복어의 침묵 36
꼼장어 골목의 밤 38
얼음 위에 누운 물고기들 40

2부_합포만, 물의 기억을 걷다
합포만의 저녁 44
돝섬으로 가는 물길 46
등대는 밤마다 뼈를 세운다 48
마산항의 오래된 파도 50
방파제에 앉은 사람 52
물때표를 읽는 노인 54
구름 아래 정박한 배들 56
부두의 녹슨 쇠사슬 58
바다는 주소를 갖지 않는다 60
노을은 생선 비늘처럼 번진다 62
선창가의 빈 의자 64
파도는 돌아오지 않는 이름을 부른다 66
바람재 너머의 물빛 68
밤바다의 푸른 장부 70
합포만은 아직도 심장을 젓는다 72

3부_가고파 이후, 시의 도시에 남은 목소리
가고파 이후의 바다 76
이은상의 노래가 지나간 자리 78
임항선 시의 거리 80
철길 위에 남은 문장 82
시의 도시 18년 84
마산은 아직도 한 행을 걷는다 86
폐선로의 봄 88
시비 앞에서 90
오래된 역은 말을 줄인다 92
문학관으로 가는 오후 94
시는 바다보다 늦게 밀려온다 96
누군가의 낭송이 물결이 될 때 98
골목은 운율을 숨긴다 100
시인의 발자국은 녹슬지 않는다 102
마산이라는 첫 행 104

4부_무학산 아래, 사람의 바다
무학산은 바다를 내려다본다 108
어시장 아주머니의 손 110
칼을 가는 사람 112
좌판 위의 하루 114
플라스틱 대야의 철학 116
젖은 장화의 오후 118
나무 생선궤짝들 120
파인애플 상자 옆의 바다 122
흥정은 오래된 파도다 124
비린내는 삶의 다른 이름 126
폐장 무렵의 어시장 128
물청소가 끝난 거리 139
마지막 손님 132
무학산 그림자 아래 생선들이 눕는다 134
어시장은 바다의 심장이다 136

시집 해설 _ 임창연(시인·문학평론가) 139
바다는 끝내 자기 심장을 버리지 않는다
에필로그 _ 이소정(시인) 174

저자 소개 1

이소정 시인은 경남 창녕 출생으로, 2015년 《한비문학》을 통해 등단하였다. 시집 『깎다』, 『어시장은 바다의 심장이다』를 펴냈으며, 디카시집 『시간 위에 피는 빛』을 출간했다. 제12회 경남 올해의 젊은 작가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경남문인협회 이사, 경남시인협회 사무국장, 마산문인협회 부회장, 전우문학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마루문학》 사무국장, 《한비문학》 등단 심사위원, 《이방가르드》 편집장, 창연출판사 기획실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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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5월 26일
쪽수, 무게, 크기
176쪽 | 120*190*10mm
ISBN13
9791194987376

출판사 리뷰

시인의 말

오래 어시장 골목을 걸었습니다.
새벽의 비린 공기 속에서
얼음을 깨는 소리와
젖은 장화를 끄는 발자국들을 들었습니다.
누군가는 생선을 팔며 하루를 견디고 있었고,
누군가는 비늘을 긁어내며
외로움을 버티고 있었습니다.
왜 마산은 시의 도시가 되었는가.
아마 그것은
너무 오래 상처를 견뎌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는 죽은 물고기들의 눈빛 속에서도
아직 식지 못한 바다를 보았습니다.
마산은 시를 쓰는 도시가 아니라
이미 시처럼 살아내고 있던 도시였습니다.
이 책의 문장들은
그 젖은 심장 가까이에서 건져 올린 물비늘들입니다.

2026년 여름
이소정

이소정의 『어시장은 바다의 심장이다』를 끝까지 읽고 나면, 독자는 한 권의 시집을 읽었다기보다 오래 젖어 있던 도시의 심장 가까이를 천천히 걸어 나온 듯한 감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것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다. 이 시집은 독자의 감각 자체를 바꾸기 때문이다. 우리는 더 이상 어시장의 비린내를 단순한 냄새로 받아들일 수 없게 되고, 젖은 장화와 굽은 손등을 단순한 노동의 풍경으로만 바라볼 수 없게 된다. 이소정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의 본래 역할을 되살린다. 보이지 않던 것을 다시 보게 만들고, 지나쳐버렸던 존재들의 체온을 다시 느끼게 만드는 것. 그것이 이 시집의 가장 큰 힘이다.

무엇보다 『어시장은 바다의 심장이다』는 한국 현대시에서 점점 사라져가던 “체온의 언어”를 복원한다. 오늘날 많은 시들이 지나치게 관념화되거나 언어 자체의 실험으로 기울어가는 동안, 이소정의 시는 다시 인간의 몸 가까이로 내려간다. 얼음물을 견디는 손, 새벽 경매장의 고함, 폐장 무렵의 피로, 물청소가 끝난 바닥의 적막까지. 그의 문장들은 언제나 살아 있는 몸의 감각 속에서 움직인다. 그래서 이 시집의 시어들은 읽히기 이전에 먼저 피부에 닿는다.

바다는 끝내 자기 심장을 버리지 않는다
— 이소정의 『어시장은 바다의 심장이다』


임창연 (시인·문학평론가)

서론

― 비린내와 문장의 탄생

도시는 대개 자기 얼굴을 숨긴다.

관광지는 풍경을 내세우고, 산업도시는 속도를 말하며, 역사의 도시는 기념비를 세운다. 그러나 어떤 도시들은 끝내 자기 냄새를 감추지 못한다. 마산이 그런 도시다. 특히 마산합포구 어시장은 도시의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오래 자신의 체온을 드러내 온 장소였다. 비린내와 얼음물, 새벽의 고함과 젖은 장화의 발자국들. 이소정의 시집 『어시장은 바다의 심장이다』는 바로 그 냄새와 체온으로부터 출발한다.

이 시집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한 지역성이나 향토성이 아니다. 시인은 마산을 “배경”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마산이라는 도시의 물질성과 노동의 감각 자체를 언어의 내부로 끌어들인다. 다시 말해 이 시집은 바다를 묘사하는 시집이 아니라, 바다가 인간의 삶 속에서 어떻게 존재론적 감각으로 변형되는지를 보여주는 시집이다. 비린내는 여기서 단순한 후각의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노동의 냄새이며, 생존의 냄새이며, 끝내 포기되지 않은 인간의 체온이다.

Walter Benjamin(1892~1940)은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에서 “역사는 승리자의 기록이 아니라 패배한 자들의 파편 속에 남아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소정의 시는 바로 그 파편들을 향한다. 어시장 좌판 위의 죽은 물고기들, 녹슨 쇠사슬, 폐장 무렵의 바닥, 마지막 손님의 침묵. 이 시집은 화려한 영웅이나 거대한 서사를 다루지 않는다. 대신 하루를 겨우 견디는 사람들의 몸 가까이로 내려간다. 그 낮은 자리에서 시인은 도시의 심장을 발견한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시집의 시선이다. 대부분의 노동 시는 노동을 외부에서 관찰하거나 사회학적으로 진술하는 경향을 가진다. 그러나 이소정의 시는 노동을 해석하지 않는다. 오히려 노동의 내부로 들어가 그것이 만들어내는 감각의 떨림을 포착한다. 예컨대 「갈치의 은빛 유서」에서 갈치는 단순한 생선이 아니라 “죽은 번개처럼 몸을 접고” 있는 존재이며, 「장어 수조 앞에서」의 장어는 “빠져나갈 수 없는 기억을 / 제 몸으로 지우려는 사람처럼” 흔들린다. 이때 물고기는 은유의 재료가 아니다. 그것들은 이미 인간과 동일한 고독의 구조 안에 놓여 있다.

Gaston Bachelard(1884~1962)는 『물과 꿈』에서 물을 “인간의 가장 깊은 기억을 흔드는 물질”이라 말한다. 이소정의 시에서 바다는 정확히 그런 역할을 수행한다. 합포만의 물결은 단순한 자연풍경이 아니라, 도시의 기억기관이다. 시인은 파도를 통해 사라진 노동과 잊힌 사람들의 시간을 복원한다. 「밤바다의 푸른 장부」에서 바다는 “누가 돌아오지 못했는지 / 어느 새벽 누군가 끝내 울음을 삼켰는지”를 기록하는 장소가 된다. 이 장면은 단순한 서정이 아니라, 물 자체를 기억의 저장장치로 변형시키는 시적 사유다.

또한 이 시집은 “죽음”을 다루는 방식에서도 독특하다. 물고기들은 대부분 이미 죽은 상태로 등장한다. 그러나 그 죽음은 끝이 아니다. 오히려 죽은 물고기들의 눈빛 속에서 시인은 “아직 식지 못한 바다”를 본다. 죽음 이후에도 남아 있는 방향감각, 그것이 이 시집의 핵심 이미지다. 「고등어 눈동자에 남은 항로」는 그 대표적 사례다. 죽은 고등어조차 자기 바다의 냄새를 기억한다는 이 진술은, 인간 역시 끝내 자기 존재의 원형을 잊지 못한다는 철학적 은유로 확장된다.

여기서 우리는 이 시집이 단순한 어시장 시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작품들은 인간 존재 전체에 대한 우회적 질문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노동은 왜 인간의 몸을 먼저 늙게 만드는가. 왜 사람들은 끝내 돌아갈 수 없는 것들을 그리워하는가. 왜 도시는 상처를 품을 때 비로소 시가 되는가.

이 시집의 또 하나 중요한 축은 “마산”이라는 도시 자체다. 마산은 한국 현대문학에서 특별한 장소다. 이은상의 「가고파」 이후 마산은 이미 하나의 시적 원형을 획득한 도시였다. 그러나 이소정은 그 서정적 향수를 반복하지 않는다. 그는 가고파 이후의 마산을 쓴다. 즉 그리움의 도시가 아니라 노동의 도시, 비린내의 도시, 늙어가는 항구의 도시를 기록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전환이다. 시인은 마산을 이상화하지 않는다. 대신 녹슨 부두와 비늘 씻는 물소리, 폐장 무렵의 피로까지 도시의 본질로 받아들인다.

특히 「시의 도시 18년」 연작에서 드러나듯, 이소정은 “시의 도시”라는 개념조차 추상적 구호로 다루지 않는다. 시는 이 시집에서 문학관 안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시장 골목과 국밥집, 물청소가 끝난 바닥과 젖은 장화 가까이에서 태어난다. 이는 매우 중요한 미학적 태도다. 시를 삶의 외부가 아니라 삶의 가장 낮은 층위에서 발견하려는 태도.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시집은 한국 현대시의 오래된 관념적 서정과 결별한다.

김수영은 “시는 머리로 쓰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소정의 시는 바로 그 육체성을 회복한다. 이 시집에는 몸이 있다. 비늘을 긁는 손, 얼음물을 견딘 손등, 굽은 허리, 젖은 장화. 시인은 인간 존재를 관념이 아니라 노동하는 몸으로 이해한다. 그렇기에 그의 문장은 늘 축축하다. 바닷물과 핏물, 얼음물과 땀 냄새가 그 문장 속에서 끝내 마르지 않는다.

결국 『어시장은 바다의 심장이다』는 한 도시의 풍경을 기록한 시집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어떻게 끝내 자기 삶을 포기하지 않는가를 보여주는 시집이다. 파도는 반복해서 밀려왔다가 사라지지만, 바다는 끝내 자기 심장을 버리지 않는다. 이소정의 시 역시 그렇다. 그의 문장들은 화려한 수사보다 오래 견딘 삶의 체온을 붙들고 있으며, 그 체온은 독자의 몸 안으로 천천히 스며든다.

이 시집을 읽는다는 것은 결국 한 도시의 비린내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가장 낮고 깊은 심장 가까이로 걸어 들어가는 일이다.

1. 죽은 물고기들의 눈빛은 왜 아직 바다를 기억하는가

이소정의 『어시장은 바다의 심장이다』를 읽으며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것은 “눈빛”이다. 정확히 말하면 이미 죽은 존재들의 눈빛이다. 갈치, 장어, 고등어, 아귀, 멸치. 시집의 첫 장을 채우는 물고기들은 대부분 이미 죽어 있거나 죽음 가까이에 놓여 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들의 눈은 끝내 무언가를 잊지 못한다. 그것은 방향이며, 파도이며, 깊은 수심의 냄새이고, 자기 존재가 태어난 원형의 장소다.

이 시집의 첫 작품인 「갈치의 은빛 유서」는 매우 상징적인 방식으로 시작된다.

“얼음 위에 눕혀진 갈치들이 죽은 번개처럼 몸을 접고 있었다”

여기서 갈치는 단순한 식재료가 아니다. 시인은 갈치를 “죽은 번개”로 형상화한다. 번개란 순간적으로 빛나며 사라지는 존재다. 즉 갈치는 이미 죽어 있지만 여전히 빛의 잔상을 품고 있는 존재다. 중요한 것은 이 빛이 단순한 시각적 아름다움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살아 있었다는 흔적이며, 한때 깊은 바다를 통과했던 시간의 증거다.

Martin Heidegger(1889~1976)는 존재를 “자기 기원을 잊지 않으려는 운동”으로 이해했다. 이소정의 물고기들은 바로 그런 존재들이다. 그들은 죽음 이후에도 끝내 자기 바다를 기억한다. 「고등어 눈동자에 남은 항로」에서 고등어의 눈빛 속에는 “남해의 먼 물길”이 남아 있고, 「아귀의 입속에 잠든 바다」에서는 심해의 어둠이 아직 아귀의 몸 안에 남아 있다. 즉 죽음은 이 시집에서 단절이 아니다. 오히려 존재의 원형이 더욱 선명해지는 순간이다.

이러한 감각은 한국 현대시에서 흔치 않은 방식이다. 대부분의 시가 죽음을 소멸이나 부재로 다루는 데 비해, 이소정은 죽은 존재 속에서 오히려 더 깊은 생의 흔적을 발견한다. 죽은 물고기들은 단순히 소비될 대상이 아니라, 아직 자기 세계를 품고 있는 존재들이다. 그래서 이 시집의 어시장은 단순한 시장이 아니라 “죽은 존재들의 기억 저장소”처럼 기능한다.
특히 「장어 수조 앞에서」는 이 시집의 존재론적 감각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작품 가운데 하나다.

“살아 있다는 것은 저토록 미끄러운 일인가”

이 두 행은 단순히 장어의 움직임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다. 시인은 장어의 미끄러운 몸을 통해 인간 존재 자체의 불안정성을 말한다. 살아 있다는 것은 언제든 미끄러질 수 있는 상태, 끝내 완전히 붙잡을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이다. 장어는 여기서 하나의 생물학적 대상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은유적 구조가 된다.

질 들뢰즈는 존재를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흐르는 상태”로 이해했다. 이소정의 물고기들은 바로 그런 유동성을 보여준다. 그들은 잡혀 와 좌판 위에 놓였지만, 여전히 몸속에 바다의 흐름을 품고 있다. 특히 장어의 경우 “빠져 죽지 못한 바다가 꿈틀거리고 있었다”라는 표현은 매우 인상적이다. 여기서 바다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존재의 내부를 계속 흔드는 힘이다.

이 시집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미지는 “비늘”이다. 비늘은 단순한 생물학적 표면이 아니다. 그것은 시간의 층위이며 기억의 막이다. 「전어의 가을은 칼끝에서 열린다」에서 전어의 비늘은 계절의 기억을 품고 있고, 「멸치의 작은 장례」에서는 멸치 떼의 은빛 몸들이 “작고 오래된 별들의 공동묘지”로 형상화된다. 이때 비늘은 빛과 죽음이 동시에 새겨진 표면이다.

최승호의 시가 동물의 몸을 통해 인간 존재의 불안을 드러냈다면, 이소정은 물고기의 몸을 통해 도시와 노동의 기억까지 확장한다는 점에서 차별적이다. 그의 물고기들은 단순히 생명의 상징이 아니라, 마산이라는 도시의 시간을 함께 품고 있다.

특히 「멸치의 작은 장례」는 이 시집의 사회적 감각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작품이다.

“멸치는 늘 누군가의 국물이 되고
누군가의 허기를 견디게 만드는 생선”

이 장면에서 멸치는 단순한 식재료가 아니라 한국 근대 서민 사의 상징처럼 읽힌다. 작은 몸 하나로 가족의 식탁을 버티게 했던 존재. 시인은 멸치의 죽음을 통해 가난한 식탁의 기억까지 끌어올린다. 이때 어시장은 단순한 경제 공간이 아니라 집단적 생존의 역사 공간이 된다.

또한 이 시집은 물고기를 단순히 “희생당하는 존재”로만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시인은 그들의 몸 안에서 인간보다 더 오래된 시간을 읽어낸다. 「문어는 바닥에서 별을 움켜쥔다」에서 문어는 “심해의 시간이 동전처럼 박혀 있는” 존재이며, 「해삼은 바다의 상처를 먹고 산다」에서는 바다 밑바닥의 찌꺼기를 삼키며 깊이를 정화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이는 매우 중요한 전환이다. 물고기들은 인간에게 소비되는 대상이면서도 동시에 인간보다 더 깊은 세계를 품은 존재들이다.

이러한 감각은 결국 시인의 시선에서 비롯된다. 이소정은 물고기를 단순히 바라보지 않는다. 그는 그 몸 안에 들어 있는 시간과 침묵을 읽어낸다. 그렇기에 그의 시는 르포가 아니라 존재론이다. 생선 좌판 앞에서도 그는 철학적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 살아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죽음 이후에도 남는 것은 무엇인가. 왜 존재는 끝내 자기 원형의 장소를 잊지 못하는가.

흥미로운 것은 이 시집의 죽음이 결코 허무주의로 흐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죽음은 더 깊은 생의 흔적을 드러내는 방식이 된다. 물고기들은 죽어 있지만 끝내 방향을 잃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 역시 마찬가지라는 암시다. 사람도 결국 자기 바다를 잊지 못하는 존재다. 몸은 육지에 도착했어도, 마음은 여전히 어떤 물결 위를 떠돌고 있다.

그래서 『어시장은 바다의 심장이다』의 1부는 단순한 어시장 풍경의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죽음 이후에도 끝내 사라지지 않는 존재의 방향감각에 관한 시적 탐구다. 죽은 물고기들의 눈빛 속에서 시인은 아직 식지 못한 바다를 본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시집은 단순한 지역시를 넘어 인간 존재 전체를 향한 질문으로 확장된다.

2. 합포만은 왜 하나의 거대한 기억기관이 되는가

『어시장은 바다의 심장이다』의 2부는 시집 전체에서 가장 깊은 “물의 철학”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1부가 죽은 물고기들의 몸을 통해 존재의 흔적을 읽어냈다면, 2부는 그 존재들을 품고 있는 바다 자체를 탐색한다. 여기서 합포만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다. 그것은 기억의 저장소이며, 시간의 장부이고, 도시의 무의식이다.

이소정의 시에서 바다는 단 한 번도 배경으로 머무르지 않는다. 합포만은 끊임없이 인간의 삶을 받아들이고, 기억하고, 되돌려준다. 시인은 물을 단순한 자연물로 보지 않는다. 그는 바다를 “기억하는 존재”로 바라본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 시집은 한국 현대시의 일반적인 해양 서정과 뚜렷하게 구별된다.

「합포만의 저녁」은 이 시집의 바다 감각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합포만은 마치 자기 심장을 천천히 접어 넣는 짐승처럼 숨 쉬고 있었다”

이 장면은 매우 중요하다. 시인은 바다를 정적인 풍경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거대한 생명체처럼 호흡하는 존재로 바라본다. 즉 합포만은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살아 있는 유기체다.

파도는 그 호흡이며, 항구는 심장이고, 어시장은 혈관이다. 그렇기에 이 시집의 제목인 『어시장은 바다의 심장이다』는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그것은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존재론적 구조다.

Gaston Bachelard는 물을 “가장 깊은 기억의 물질”이라 말한다. 인간의 무의식은 언제나 물 가까이에서 흔들린다는 것이다. 이소정의 시 역시 정확히 그런 방식으로 움직인다. 합포만의 물결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인간의 상처와 기억을 되비추는 거대한 거울이다.

예컨대 「밤바다의 푸른 장부」에서 시인은 바다가 “누가 돌아오지 못했는지 / 어느 새벽 누군가 끝내 울음을 삼켰는지”를 기록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때 바다는 단순히 흐르는 물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시간과 슬픔을 저장하는 기억기관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기록이 언어나 문자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바다는 물결과 파도, 반복되는 흐름 자체로 기억한다.

Paul Virilio(1932~2018)는 항구를 “속도와 상실이 교차하는 장소”라고 설명한 바 있다. 배는 떠나고 돌아오며, 항구는 그 이동의 흔적을 축적한다. 이소정의 합포만 역시 그렇다. 이곳은 단순히 배가 정박하는 장소가 아니다. 수많은 귀환과 상실이 중첩되는 장소다. 「구름 아래 정박한 배들」에서 시인은 이렇게 쓴다.

“살아 있다는 것은 어딘가에 닻을 내리는 일이기도 하지만
끝내 다시 떠날 준비를 하는 일이기도 하다”

여기서 정박은 안정이 아니다. 오히려 떠남을 예비하는 잠시의 정지 상태다. 즉 인간 존재 자체가 본질적으로 유동적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배는 인간의 또 다른 몸이며, 항구는 인간 존재가 잠시 머무는 임시 거처에 가깝다.

이 시집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녹슨 사물들”에 대한 집요한 시선이다. 「부두의 녹슨 쇠사슬」은 그 대표적 사례다. 시인은 쇠사슬을 단순한 사물로 보지 않는다. 그것은 “끝내 끊어지지 못한 시간의 힘줄”이다. 녹은 단순한 부식의 흔적이 아니다. 그것은 노동과 바닷바람, 그리고 오래 견딘 시간의 물질적 흔적이다.

조르조 아감벤은 인간의 삶을 “사용되며 닳아가는 존재”라고 정의한 바 있다. 이소정의 시 속 쇠사슬과 부두 역시 그렇다. 그것들은 단순히 낡은 것이 아니라, 너무 오래 사용되어 존재 자체가 시간의 일부가 된 것들이다. 그래서 이 시집의 사물들은 모두 살아 있는 표정을 가진다. 녹슨 쇠사슬, 빈 의자, 폐선로, 형광등, 물청소가 끝난 바닥까지도 각각의 기억을 품고 있다.

특히 「등대는 밤마다 뼈를 세운다」는 매우 인상적인 작품이다. 여기서 등대는 단순한 항로 안내 장치가 아니다. 시인은 등대를 “밤마다 자기 몸을 비워 빛을 세우는 존재”로 형상화한다. 이 표현은 사실상 인간 존재에 대한 은유다.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자기 내부를 비워 누군가를 위한 불빛 하나를 유지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등대는 단순한 풍경 요소가 아니라 인간의 윤리적 존재 방식을 상징한다.

또한 이 시집의 바다는 결코 낭만적이지 않다. 그것은 아름답지만 동시에 차갑고 잔혹하다. 「물때표를 읽는 노인」에서 노인은 “바다에도 성질이 있다”라고 말한다. 어떤 날은 사람을 살리고, 어떤 날은 끝내 돌려보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문장은 매우 중요하다. 이소정의 바다는 인간 중심적 세계관에 종속되지 않는다. 바다는 인간보다 더 오래된 질서를 가진 존재이며, 인간은 그 앞에서 언제나 연약하다.

그러나 시인은 바다를 더 깊이 응시한다. 인간은 바다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끝내 바다를 떠나지도 못한다. 이것은 존재론적 역설이다. 인간은 자신보다 더 거대한 것 앞에서 두려워하면서도, 동시에 그곳으로 끊임없이 돌아간다. 합포만은 바로 그런 귀환 충동의 장소다.

이 시집의 또 다른 특징은 “반복”의 리듬이다. 파도는 계속 밀려왔다가 사라지고, 배는 떠났다가 돌아오며, 어시장은 매일 새벽 다시 시작된다. 이러한 반복은 단순한 일상이 아니다. 그것은 도시를 유지하는 심장박동이다. 그래서 시집 전체에는 독특한 순환 감각이 흐른다. 죽음이 있어도 삶은 다시 시작되고, 폐장이 끝나도 새벽 경매는 다시 열린다.

결국 2부에서 합포만은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가 된다. 그것은 도시의 상처를 기억하고, 사람들의 시간을 저장하며, 끝내 다시 하루를 밀어 올리는 심장 기관이다. 이소정은 이 바다를 단순히 바라보지 않는다. 그는 그 물결 속에서 인간 존재 전체의 리듬을 읽어낸다.

그래서 『어시장은 바다의 심장이다』의 바다는 단순한 지역의 바다가 아니다. 그것은 기억과 노동, 귀환과 상실, 반복과 생존이 끝없이 교차하는 존재론적 바다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합포만은 더 이상 하나의 항구가 아니라, 인간의 가장 깊은 심장을 닮은 장소로 변형된다.

3. 시의 도시 마산은 어떻게 한 줄의 문장이 되었는가

『어시장은 바다의 심장이다』의 3부는 이 시집의 중심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여기서 이소정은 단순히 “바다”를 쓰는 시인을 넘어, “도시 자체를 시로 읽는 시인”으로 변모하기 때문이다. 1부와 2부가 물고기와 바다의 존재론을 탐색했다면, 3부는 그 존재들이 어떻게 “도시의 언어”로 변형되는지를 보여준다. 다시 말해 이 부분에서 마산은 더 이상 배경이 아니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시적 유기체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마산은 한국 현대문학에서 매우 특별한 장소다. 무엇보다 이은상의 「가고파」가 남긴 영향은 절대적이다.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이 노래는 단순한 향토 서정을 넘어 한국인의 집단적 그리움의 원형이 되었다. 이후 마산은 오랫동안 “그리움의 도시”, “향수의 항구”로 기억되었다. 그러나 이소정은 그 서정적 유산을 단순히 반복하지 않는다. 그는 가고파 이후의 마산을 쓴다. 즉 향수의 바다 이후에 남겨진 노동과 상처, 늙은 부두와 젖은 골목의 시간을 시의 중심으로 끌어온다.

「가고파 이후의 바다」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사람들은 바다를 보며
그리움을 먼저 배우기 시작했고
떠난다는 것과 돌아온다는 것이
같은 방향의 슬픔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 장면은 매우 중요하다. 시인은 가고파의 감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감정의 깊이를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보다 현실적인 도시의 몸 안으로 끌어내린다. 그리움은 이제 단순한 낭만적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떠남과 귀환이 반복되는 노동의 역사 속에서 생성된 집단적 감각이다.

Roland Barthes(1915~1980)는 도시를 “읽혀지는 텍스트”라고 설명한 바 있다. 거리와 건물, 골목과 간판들까지도 하나의 언어 체계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이소정의 마산 역시 그렇다. 그는 도시를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문장”으로 읽는다. 「마산은 아직도 한 행을 걷는다」에서 시인은 다음과 같이 쓴다.

“얼음 깨는 소리
좌판 위 비늘의 반짝임
젖은 장화를 끌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그림자
그 모든 것이
누군가 오래 퇴고해 온 문장처럼 이어져 있었다”

여기서 마산은 실제 도시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시적 텍스트다. 얼음 깨는 소리조차 운율이 되고, 좌판의 비늘은 문장의 반짝임이 된다. 즉 시인은 도시의 물질적 현실을 언어의 내부로 번역한다.

특히 「임항선 시의 거리」는 이 시집의 장소성 미학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거리에서 시는 문학관 안에 갇혀 있지 않다. 벽면에 새겨진 시어들은 사람들의 퇴근길과 술기운, 늦은 외로움 속으로 스며든다.

“시는 원래 종이 위보다 거리에서 먼저 살아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문장은 이소정의 시 세계 전체를 설명하는 핵심 진술이다. 그의 시는 제도권 문학의 높은 자리보다 골목과 어시장 가까이에서 살아 움직인다. 그래서 그의 시에는 실제 체온이 있다. 그것은 관념적 언어가 아니라 삶 속에서 마모되고 젖어든 문장이다.

T. S. Eliot(1888~1965)은 위대한 시란 “개인의 감정을 넘어 도시 전체의 리듬을 담아내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소정의 마산 역시 그렇다. 그의 시에는 단지 개인의 정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도시 전체의 숨결이 흐른다. 어시장 골목, 합포만, 무학산, 폐선로, 낡은 역, 문학관까지 모든 장소가 서로 연결되며 하나의 거대한 리듬을 형성한다.

특히 「시의 도시 18년」은 매우 의미심장한 작품이다. 이 시는 “시의 도시”라는 행정적 슬로건을 단순히 기념하지 않는다. 오히려 시인은 질문한다. 왜 마산은 끝내 시를 포기하지 못하는가. 그 답은 분명하다. 이 도시는 너무 오래 상처를 견뎌왔기 때문이다.

“도시가 시를 가진다는 것은 결국 자기 상처를 끝내 버리지 않는 일이라고”

이 구절은 이 시집의 핵심 명제 가운데 하나다. 시는 화려한 장식이 아니라 상처를 견디는 방식이라는 것. 그렇기에 마산의 시성(詩性)은 낭만이 아니라 생존의 결과다.

흥미로운 것은 이소정이 도시를 지나치게 미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의 마산은 결코 이상적인 공간이 아니다. 녹슨 부두, 늙은 골목, 폐선로, 사라져가는 역. 이 시집의 도시에는 쇠락의 기운이 짙게 깔려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쇠락 속에서 시는 더욱 선명해진다.

Walter Benjamin은 폐허를 “역사가 가장 정직하게 드러나는 장소”라고 말한다. 이소정의 폐선로와 오래된 역 역시 그렇다. 그것들은 단순한 낡은 장소가 아니라, 한 시대의 기억이 압축된 공간이다. 「폐선로의 봄」에서 시인은 녹슨 선로 위에 내려앉는 벚꽃을 통해 “사라진다는 것은 다른 풍경 속으로 스며드는 일”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단순한 서정이 아니다. 존재와 시간에 대한 깊은 철학적 통찰이다.

또한 3부의 중요한 특징은 “시 자체를 다시 질문한다”라는 점이다. 이소정은 시를 단순한 장르로 보지 않는다. 그의 시에서 시는 인간을 무너지지 않게 붙들어주는 힘이다. 「누군가의 낭송이 물결이 될 때」에서 시인은 낭송을 “오래 숨겨온 상처가 / 입술을 지나 천천히 물결이 되는 순간”이라 표현한다. 여기서 시는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 내부의 고통이 외부로 흐르는 운동이다.

결국 3부는 단순한 도시 찬가가 아니다. 그것은 “도시는 어떻게 하나의 문장이 되는가”에 대한 탐구다. 이소정은 마산을 단순한 지역으로 쓰지 않는다. 그는 이 도시의 냄새와 리듬, 노동과 쇠락, 상처와 파도까지 모두 언어의 내부로 끌어들인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마산은 더 이상 하나의 지방 도시가 아니라, 한국 현대시가 다시 발견해야 할 살아 있는 장소성으로 변모한다.

그래서 『어시장은 바다의 심장이다』의 3부는 단순한 지역 문학의 범주를 넘어선다. 그것은 시와 도시가 어떻게 서로의 심장이 되는지를 보여주는 드문 성취다. 이소정의 마산은 단순히 “시의 도시”가 아니다. 그것은 끝내 무너지지 않기 위해 한 줄의 문장을 붙들고 살아온 도시다.

4. 어시장은 왜 도시의 심장이 되는가

『어시장은 바다의 심장이다』의 마지막 4부는 시집 전체의 정점이다. 앞선 세 개의 부가 물고기와 바다, 도시와 문장의 구조를 탐색했다면, 마지막 부는 그 모든 것의 중심에 놓인 “사람”에게 도달한다. 특히 여기서 이소정은 노동을 단순한 현실 묘사가 아니라 하나의 존재 윤리로 끌어올린다. 어시장은 단순히 생선이 거래되는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자기 생을 끝내 포기하지 않기 위해 몸을 움직이는 장소이며, 도시 전체의 혈액이 흐르는 심장 기관이다.

4부에서 맨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손”이다. 「어시장 아주머니의 손」은 이 시집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 가운데 하나다.

“손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가난을 오래 만진 손
자식을 먹여 살린 손
끝내 하루를 포기하지 않은 손은
몸보다 먼저 늙어간다”

이 장면에서 손은 단순한 신체 부위가 아니다. 그것은 노동의 역사이며, 생존의 연대기다. 시인은 얼굴보다 손을 먼저 본다. 왜냐하면 삶의 진실은 대개 얼굴이 아니라 손에 남기 때문이다. 굵게 튼 손등, 비늘과 칼자국이 남은 피부, 소금기에 갈라진 마디들. 그것들은 모두 시간이 몸에 새긴 문장들이다.

John Berger(1926~2017)는 노동하는 손에 대해 “인간의 존엄은 가장 낮은 노동의 몸짓 속에서 드러난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소정의 시 역시 정확히 그 지점을 응시한다. 그는 노동을 영웅화하지 않는다. 대신 노동의 몸이 어떻게 인간의 시간을 견디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렇기에 이 시집의 노동은 구호가 아니라 체온이다.

특히 「칼을 가는 사람」은 매우 상징적인 작품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계속 자기 심장을 갈아내는 일인지도 모른다”

이 문장은 단순한 은유가 아니다. 시인은 숫돌 위의 칼을 통해 인간 존재 자체를 바라본다. 칼은 매일 무뎌지고, 사람 역시 매일 조금씩 닳아간다. 그렇기에 삶은 끊임없이 자기 내부를 갈아내는 과정이 된다. 중요한 것은 이 시의 태도다. 이소정은 비극을 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조용히, 오래 견딘 사람의 침묵 속에서 인간 존재의 깊이를 끌어낸다.

Simone Weil(1909~1943)는 노동을 “영혼이 가장 깊게 현실과 접촉하는 순간”이라 설명했다. 이소정의 시에서 노동은 단순한 경제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세계와 연결되는 방식이다. 얼음을 깨고, 비늘을 긁고, 젖은 장화를 끌며 하루를 버텨내는 행위 속에서 인간은 비로소 자기 존재를 증명한다.

또한 4부에서 매우 인상적인 것은 “낮은 사물들”에 대한 시선이다. 플라스틱 대야, 생선 궤짝, 젖은 장화, 물청소가 끝난 바닥. 이 시집은 거대한 사건보다 이런 하찮은 사물들 가까이에서 인간의 진실을 발견한다.

예컨대 「플라스틱 대야의 철학」에서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도시는 오히려 이런 하찮은 것들 위에서 버텨진다”

이 문장은 사실상 이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선언처럼 읽힌다. 도시를 유지하는 것은 화려한 기념비나 높은 빌딩이 아니다. 비린 물을 담아내는 대야, 무거운 생선을 버텨낸 궤짝, 매일 젖은 바닥을 견디는 장화 같은 것들이다. 즉 문명은 가장 낮은 것들의 희생 위에 세워진다.

이소정의 중요한 미덕은 바로 이 낮은 것들에 대한 존엄의 시선이다. 그는 결코 대상들을 연민의 시선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낮음 속에서 인간 존재의 본질을 발견한다. 그렇기에 그의 시에는 일종의 윤리적 무게가 있다.

고은의 초기 노동 시들이 집단적 역사성과 민중성을 강조했다면, 이소정의 시는 보다 미세한 생활의 감각 안으로 들어간다. 그는 거대한 구호 대신, 물비늘과 비린내, 굽은 허리와 침묵의 체온을 통해 인간 존재를 보여준다.

특히 「비린내는 삶의 다른 이름」은 이 시집 전체의 핵심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비린내란 단순히 생선의 냄새가 아니라
누군가의 하루와 생계가 썩지 않으려 버티는 냄새”

이 문장은 놀랍다. 왜냐하면 시인은 혐오의 대상이 되기 쉬운 “비린내”를 존재의 냄새로 전환하기 때문이다. 비린내는 더 이상 불쾌한 냄새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 몸에서 흘려보낸 시간의 냄새다. 다시 말해 비린내는 노동의 향이며 생존의 체취다.

이 시집의 마지막 작품 「어시장은 바다의 심장이다」는 결국 모든 흐름이 모여드는 장소다. 물고기와 바다, 도시와 노동, 비린내와 문장이 하나의 이미지로 수렴된다.

“어시장은 지금도 마산이라는 도시의 가장 깊은 물속에서
천천히 살아 있는 심장처럼 뛰고 있었다”

이 마지막 구절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그것은 시집 전체가 도달한 존재론적 결론이다. 심장은 가장 깊은 곳에서 끊임없이 움직인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그것이 멈추면 모든 것이 끝난다. 이소정의 어시장 역시 그렇다. 이곳은 도시의 가장 낮은 자리이지만, 동시에 도시를 살아 있게 만드는 중심이다.

흥미로운 것은 시집 전체가 “낮은 곳”을 향해 움직인다는 점이다. 물고기들은 바다 밑에서 올라오고, 노동은 바닥 가까이에서 이루어지며, 비린내는 늘 골목의 낮은 공기 속에 머문다. 그러나 바로 그 낮은 자리에서 시인은 인간의 가장 깊은 존엄을 발견한다. 이것이 이 시집의 가장 큰 성취다.

결국 『어시장은 바다의 심장이다』는 단순한 지역 시집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존재를 가장 낮은 자리에서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시집이다. 비린내 속에서도 끝내 하루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 젖은 장화를 끌며 새벽을 밀어 올리는 손들, 물청소가 끝난 뒤에도 마르지 않는 노동의 체온들. 이소정은 바로 그 자리에서 인간의 마지막 심장을 발견한다.

그리고 아마 그것이야말로 이 시집이 오래 남는 이유일 것이다. 시인은 바다를 쓴 것이 아니라, 끝내 자기 삶을 포기하지 않는 인간의 심장을 써냈기 때문이다.

5. 파도 이후에도 남는 문장들

좋은 시집은 단순히 몇 편의 뛰어난 작품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의 세계를 만들고, 독자가 그 세계 안에서 오래 숨 쉬게 만든다. 이소정의 『어시장은 바다의 심장이다』는 바로 그런 시집이다. 이 작품은 어시장이라는 구체적 장소에서 출발하지만, 결국 인간 존재와 도시, 노동과 기억의 근원까지 도달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국 현대시가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어떤 감각을 다시 회복한다.

무엇보다 이 시집의 가장 큰 성취는 “노동의 체온”을 되찾았다는 점이다. 한국 현대시에서 노동은 오랫동안 중요한 주제였지만, 때로는 지나치게 이념화되거나 상징화되면서 실제 인간의 체취를 잃어버리곤 했다. 그러나 이소정의 시는 다르다. 그의 시 속 노동은 거대한 구호가 아니라 젖은 장화와 굽은 손등, 비린내와 얼음물의 감각으로 살아 있다.

시인은 노동을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노동하는 몸 가까이로 들어간다. 그래서 그의 문장은 늘 축축하다. 바닷물과 핏물, 얼음물과 땀 냄새가 문장 안에서 쉽게 마르지 않는다. 이 “젖은 문장”의 감각이야말로 이 시집의 가장 독창적인 미학이다.

또한 『어시장은 바다의 심장이다』는 “지역시”라는 범주를 근본적으로 갱신한다. 한국 문단에서 지역 문학은 종종 중앙 문단 바깥의 주변적 장르처럼 취급됐다. 그러나 이소정의 시는 지역을 단순한 배경이나 향토적 소재로 소비하지 않는다. 그는 마산이라는 장소의 냄새와 물질성, 노동과 시간의 층위를 언어의 내부로 끌어들인다.

합포만의 검은 물결
무학산의 그림자
임항선 시의 거리
어시장 골목의 비린 새벽들

이 모든 것은 단순한 지역적 풍경이 아니다. 그것들은 한국 현대사의 노동과 가난, 귀환과 상실이 압축된 집단적 기억의 표면이다. 그렇기에 이소정의 마산은 특정 지역을 넘어선다. 그것은 한국 현대 도시의 또 다른 원형이 된다.

Walter Benjamin은 “도시는 인간의 기억이 가장 깊게 퇴적되는 장소”라고 말한 바 있다. 이소정의 마산 역시 그렇다. 이 시집의 골목과 항구, 폐선로와 오래된 역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다. 그것들은 시간의 지층이며, 인간의 감정이 퇴적된 장소다. 특히 시인은 쇠락한 장소들을 매우 독창적으로 바라본다. 녹슨 부두와 비어가는 좌판, 폐장 무렵의 골목은 단순한 몰락의 풍경이 아니라, 끝내 사라지지 않는 인간의 체온을 품은 장소들이다.

이 시집이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시의 존재 이유”를 다시 질문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시는 점점 독자에게서 멀어지고 있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러나 이소정은 시를 다시 거리로, 시장으로, 노동의 현장으로 데려온다. 「임항선 시의 거리」에서 시인은 “시는 원래 종이 위보다 거리에서 먼저 살아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라고 쓴다. 이것은 단순한 선언이 아니다. 실제로 그의 시는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숨 쉬는 언어를 지향한다.

그래서 이 시집은 관념적이지 않다. 철학적 사유가 깊지만 결코 공중에 떠 있지 않다. 존재론은 언제나 구체적인 물질성과 연결된다. 갈치의 비늘, 장어의 몸짓, 플라스틱 대야, 물청소가 끝난 바닥. 시인은 가장 낮은 사물들을 통해 가장 깊은 인간의 질문에 도달한다.

John Berger는 예술의 역할에 대해 “보이지 않던 것을 다시 보이게 만드는 일”이라 말한 바 있다. 이소정의 시 역시 그렇다. 우리는 평소 어시장의 비린내를 피하려 하고, 노동의 피로를 지나쳐버리며, 늙은 골목의 침묵을 듣지 못한다. 그러나 이 시집은 그런 것들을 다시 보게 만든다. 그리고 그 순간 독자는 깨닫게 된다. 도시를 살아 있게 만드는 것은 화려한 빌딩이 아니라, 가장 낮은 곳에서 하루를 견디는 사람들의 체온이라는 사실을.

흥미로운 것은 이 시집이 끝내 절망으로 무너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여기에는 쇠락과 피로, 죽음의 이미지가 짙게 깔려 있다. 그러나 그 어둠 속에서도 시인은 계속 “심장”을 발견한다. 파도는 반복해서 사라지지만, 바다는 끝내 자기 심장을 버리지 않는다. 어시장 역시 마찬가지다. 폐장이 끝나도 새벽은 다시 오고, 얼음은 다시 깨지며, 사람들은 다시 좌판 불을 켠다.
바로 이 반복의 리듬 속에서 시인은 인간 존재의 존엄을 발견한다. 그것은 거창한 영웅주의가 아니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다시 하루를 시작하는 작은 힘. 이소정의 시는 바로 그 미세한 생의 운동을 끝까지 놓치지 않는다.

결국 『어시장은 바다의 심장이다』는 단순한 어시장 시집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 현대시가 다시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징후다. 시는 더 이상 추상적 언어놀이 속에 머물 수 없다. 다시 인간의 체온 가까이로 돌아와야 한다. 노동의 냄새와 골목의 어둠, 비린 바다와 젖은 손등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소정은 바로 그 자리에서 시를 다시 시작한다.
그리고 아마 오래 남는 시란 결국 그런 것일 것이다.
화려한 수사보다
끝내 지워지지 않는 체온을 품고 있는 문장.
합포만의 파도는 오늘도 밀려왔다가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어떤 문장들은 끝내
젖은 심장 속에서 오래 마르지 않는다.

결론

― 파도 이후에도 끝내 남는 인간의 체온

이소정의 『어시장은 바다의 심장이다』를 끝까지 읽고 나면, 독자는 한 권의 시집을 읽었다기보다 오래 젖어 있던 도시의 심장 가까이 천천히 걸어 나온 듯한 감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것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다. 이 시집은 독자의 감각 자체를 바꾸기 때문이다. 우리는 더 이상 어시장의 비린내를 단순한 냄새로 받아들일 수 없게 되고, 젖은 장화와 굽은 손등을 단순한 노동의 풍경으로만 바라볼 수 없게 된다. 이소정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의 본래 역할을 되살린다. 보이지 않던 것을 다시 보게 만들고, 지나쳐버렸던 존재들의 체온을 다시 느끼게 만드는 것. 그것이 이 시집의 가장 큰 힘이다.

무엇보다 『어시장은 바다의 심장이다』는 한국 현대시에서 점점 사라져가던 “체온의 언어”를 복원한다. 오늘날 많은 시가 지나치게 관념화되거나 언어 자체의 실험으로 기울어가는 동안, 이소정의 시는 다시 인간의 몸 가까이로 내려간다. 얼음물을 견디는 손, 새벽 경매장의 고함, 폐장 무렵의 피로, 물청소가 끝난 바닥의 적막까지. 그의 문장들은 언제나 살아 있는 몸의 감각 속에서 움직인다. 그래서 이 시집의 시어들은 읽히기 이전에 먼저 피부에 닿는다.

John Berger가 말했듯, 예술은 보이지 않는 존재들을 다시 인간의 중심으로 데려오는 행위다. 이소정 역시 바로 그런 방식으로 시를 사용한다. 그의 시선은 언제나 낮은 곳을 향한다. 비린 골목과 늙은 부두, 마지막 손님과 갈라진 손등.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시인이 그들을 단순한 연민의 대상으로 소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는 그 낮은 자리에서 인간 존재의 가장 깊은 존엄을 발견한다. 이것이 이 시집을 단순한 노동 시나 지역 시의 범주를 넘어서는 작품으로 만든다.

또한 이 시집은 “마산”이라는 장소를 새롭게 다시 쓴다. 한국문학에서 마산은 오랫동안 이은상의 「가고파」 이후 향수와 그리움의 도시로 기억됐다. 그러나 이소정은 그 서정의 계보를 이어받으면서도 전혀 다른 방향으로 확장한다. 그의 마산은 더 이상 낭만적 항구가 아니다. 녹슨 쇠사슬과 비어가는 좌판, 늦은 형광등과 비린 새벽 속에서 살아남는 도시다. 다시 말해 그는 “가고파의 마산” 이후에 남겨진 노동과 쇠락, 그리고 끝내 사라지지 않는 인간의 체온을 기록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어시장은 바다의 심장이다』는 매우 현대적인 시집이 된다. 이 작품은 단순히 바다를 아름답게 노래하지 않는다. 오히려 쇠락한 도시와 반복되는 노동, 사라져가는 골목과 늙어가는 인간의 몸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것들을 묻는다. 왜 인간은 끝내 자기 바다를 잊지 못하는가. 왜 어떤 장소들은 사라지면서 더 깊은 기억이 되는가. 왜 삶은 무너질 듯하면서도 다시 새벽의 불을 켜는가.

Gaston Bachelard는 물을 “인간 존재의 가장 느린 슬픔을 기억하는 물질”이라 말했다. 임창연의 합포만 역시 그렇다. 그 검은 물결 속에는 수많은 노동의 시간과 돌아오지 못한 생들, 늦은 귀환과 오래된 가난이 저장되어 있다. 그래서 이 시집의 바다는 단순한 풍경이 아니다. 그것은 도시의 기억기관이며, 인간 존재의 무의식이다. 그리고 시인은 그 물결 속에서 아직 식지 못한 인간의 체온을 끝내 건져 올린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시집이 끝내 절망으로 무너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물론 여기에는 쇠락과 죽음, 피로와 상실의 이미지들이 짙게 깔려 있다. 그러나 그 어둠 속에서도 이소정은 계속 “심장”을 발견한다. 폐장이 끝나도 새벽은 다시 오고, 물청소가 끝난 골목에도 또 하루의 비린 공기가 차오른다. 그것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다. 삶이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는 신호다.
그래서 『어시장은 바다의 심장이다』는 결국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신뢰의 시집이다. 비록 늙고 지쳐가더라도, 사람은 끝내 다시 하루를 시작한다. 시인은 바로 그 미세한 움직임 속에서 인간의 존엄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이 시집이 오래 남는 이유일 것이다.

파도는 밀려왔다가 사라진다. 비늘은 마르고, 좌판은 비워지며, 늙은 항구는 조금씩 침묵 속으로 가라앉는다.

그러나 어떤 문장들은 끝내 사라지지 않는다.

젖은 형광등 아래에서 비린 손으로 하루를 버텨낸 사람들의 체온이 그 문장 속에 오래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마 시란 결국 그런 것일 것이다.

완전히 괜찮아진 뒤에 쓰는 언어가 아니라, 무너지지 않기 위해 겨우 붙들고 있는 인간의 심장 가까이에서 끝내 늦게까지 살아남는 마지막 체온 같은 것이다.

|에필로그|

시는 끝내 사람의 체온 쪽으로 흐른다.
『어시장은 바다의 심장이다』를 쓰는 동안
나는 한 도시를 기록하려 한 것이 아니라
한 도시의 체온을 만지려 했는지도 모른다.
마산합포구 어시장은 단순한 시장이 아니었다.
그곳은 새벽마다 인간의 노동과 가난과 희망이
다시 경매되는 장소였고,
비린내 속에서도 끝내 삶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의 심장이었다.

나는 오래
죽은 물고기들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 속에는
아직 돌아가지 못한 바다의 방향이 남아 있었다.
어쩌면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몸은 육지에 도착했어도
마음은 끝내 어떤 물결 위를 떠돌고 있는 존재.
이 시집의 문장들은
그 떠도는 마음들을 붙잡기 위해 쓰였다.
가고파의 도시,
시의 도시 18년의 시간,
임항선 시의 거리,
합포만의 저녁과 무학산의 그림자까지.
마산은 내게 단순한 지역이 아니라
한국 현대시가 아직 버리지 못한
오래된 숨결처럼 느껴졌다.
나는 믿는다.
시는 거대한 문학관 속에서만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젖은 장화와 얼음물과 좌판의 비린 공기 속에서도
끝내 인간을 인간답게 붙들어주는
마지막 체온으로 남는다는 것을.

합포만의 파도는 오늘도 밀려왔다가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어떤 문장들은 끝내 젖은 심장 속에서 오래 마르지 않을 것이다.


마산 어시장에서
- 이소정 시인

추천평

도시는 대개 자기 얼굴을 숨긴다.

관광지는 풍경을 내세우고, 산업도시는 속도를 말하며, 역사의 도시는 기념비를 세운다. 그러나 어떤 도시들은 끝내 자기 냄새를 감추지 못한다. 마산이 그런 도시다. 특히 마산합포구 어시장은 도시의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오래 자신의 체온을 드러내 온 장소였다. 비린내와 얼음물, 새벽의 고함과 젖은 장화의 발자국들. 이소정의 시집 『어시장은 바다의 심장이다』는 바로 그 냄새와 체온으로부터 출발한다.

이 시집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한 지역성이나 향토성이 아니다. 시인은 마산을 “배경”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마산이라는 도시의 물질성과 노동의 감각 자체를 언어의 내부로 끌어들인다. 다시 말해 이 시집은 바다를 묘사하는 시집이 아니라, 바다가 인간의 삶 속에서 어떻게 존재론적 감각으로 변형되는지를 보여주는 시집이다. 비린내는 여기서 단순한 후각의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노동의 냄새이며, 생존의 냄새이며, 끝내 포기되지 않은 인간의 체온이다.

Walter Benjamin(1892~1940)은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에서 “역사는 승리자의 기록이 아니라 패배한 자들의 파편 속에 남아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소정의 시는 바로 그 파편들을 향한다. 어시장 좌판 위의 죽은 물고기들, 녹슨 쇠사슬, 폐장 무렵의 바닥, 마지막 손님의 침묵. 이 시집은 화려한 영웅이나 거대한 서사를 다루지 않는다. 대신 하루를 겨우 견디는 사람들의 몸 가까이로 내려간다. 그 낮은 자리에서 시인은 도시의 심장을 발견한다. - 임창연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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