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자연을 노래한다는 것은 이전과 전혀 다른 의미가 있다. 한때 시에서 자연은 인간의 상처를 위로하는 장소였으며, 아름다움과 영원성의 상징이었다. 꽃은 피고 새는 울었으며 강은 흘렀다. 계절은 순환했고, 인간은 그 순환 속에서 삶과 죽음의 질서를 배웠다. 그러나 기후 위기의 시대에 이러한 자연관은 더 이상 온전하게 지속되기 어렵다. 봄꽃은 제철을 잃고, 철새는 이동 경로를 잃고, 강은 흐름을 잃으며, 빙하는 자신의 몸을 녹여 바다로 흘러간다. 자연은 더 이상 인간을 위로하는 배경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자연이 인간에게 구조를 요청하는 역전이 일어난다.
이상익의 시집 『하얀 눈물』은 바로 이 역전에서 시작한다. 시인은 이번 시집을 내면서 자신이 본래 쓰고 싶었던 시가 따로 있었으나 “기후 위기의 심각함”이 자신을 다른 방향으로 이끌었다고 고백한다. 더 나아가 기후 위기의 원인을 인간의 “끝 간데없는 탐욕”에서 찾으며,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파헤치고 더 많은 돈을 소유하려는 욕망이 결국 지구 전체를 삼키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 고백은 『하얀 눈물』을 읽는 중요한 출발점이다. 이 시집에서 시인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관찰자가 아니라 자연이 보내오는 위기 신호를 받아 적는 기록자가 되고자 한다. 따라서 이 시집에 반복되는 ‘울음’, ‘눈물’, ‘죽음’, ‘부재’, ‘경고’, ‘청구서’ 같은 어휘는 우연하지 않다. 그것들은 기후 위기 시대에 자연이 인간에게 보내는 일종의 비상 신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