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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 주남의 숨결을 빌려 쓴 문장들 5
1부 물 위의 책장들 부레옥잠이라는 오래된 소설 12 갈대는 언제 책장을 넘기는가 14 수련의 표지는 물속에서 써진다 16 안개는 띄어쓰기 없이 출간된다 18 물비늘의 각주 20 흙탕물 제본소 22 창포꽃의 재인쇄 24 바람이 필사한 저녁 26 물수제비의 여백 28 해 질 녘의 탈색본 30 진달래, 절판된 산문집 32 쑥의 표지디자이너 34 버드나무 옆 인문학 서가 36 해오라기와 갈대의 공동 저작물 38 저수지 깊은 곳엔 장정되지 않은 말이 있다 40 2부 새들이 쓰는 책 기러기의 퇴고 44 두루미는 책을 들고 북쪽으로 떠난다 46 백로는 문장을 날개에 묻는다 48 흑두루미의 영문판 50 논병아리의 도서관 이용 기록 52 청둥오리의 독서모임 54 쇠오리의 음독 일지 56 철새등록부 제187-기러기 58 람사르 각서 8조 - 인간이 읽지 않는 문서 60 비둘기는 연체료를 내지 않는다 62 황새의 절판 선언 64 왜가리는 지도를 대출했다 66 물닭, 습지학 개론을 필사 중 68 새의 이동경로는 장르를 넘는다 70 해설자 없는 백과사전-철새 72 3부 주변 주민과 도서관 이용자들 농민의 민원서, 두루미의 탄원서 76 땅을 읽는 남자와 하늘을 읽는 새 78 대출 연체된 물길 80 철새보호구역 반납요청서 82 신방초등학교 아이의 탐조 일기 84 길 잃은 관광버스와 연체된 시간 86 어민의 그물은 북엔 없었다 88 철책과 도서관 사이 90 물고기와 인간의 공저 92 산책자들의 필사본 94 사진작가의 망원경은 책갈피다 96 습지를 가로막는 보도자료 98 철새 해설사의 브리핑 노트 100 유기견의 습지 독후감 102 겨울에는 어른도 그림책을 빌린다 104 4부 숨겨진 도서관, 다시 쓰는 서가 동판저수지에서 발견된 지도 108 창원 단감도서관 분관 사건 110 의창구 곤충목록 102종 112 왕잠자리와 물방개의 쪽글 교환 114 돌다리는 말하지 않는다 116 북면에서 유실된 생물도감 118 사라진 나비도서관 120 곡저의 고문서관 122 모기와 장구벌레의 대화록 124 청동오리, 끝내 반납되지 않은 책 126 공룡알 도감은 아직 반납되지 않았다 128 주남의 유령사서 기록 130 책 읽는 붕어의 전설 132 미나리밭에서 열린 낭독회 134 폐관 직전의 대출자 136 해설|이형권 자연책을 읽어주는 시인 혹은 사서의 시편들 1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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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백과사전에는
부록도 없고, 판권도 없다 해설자는 사라졌고 철새들 스스로가 발행자이며 저자이다 ---「해설자 없는 백과사전 - 철새」중에서 해 질 무렵 청둥오리들이 모여든다 물풀 사이, 잔잔한 둠벙 옆 그들만의 독서모임이 열린다 낮 동안 읽은 것들을 이야기한다 하늘의 구절, 수면의 비유 철새가 흘리고 간 낱말의 잔해들 수컷은 목을 흔들며 표현하고 암컷은 날개로 문장의 리듬을 짚는다 때로는 물장구로, 때로는 짧은 울음으로 비평 아닌 공감의 독서를 나눈다 ---「청둥오리의 독서모임」중에서 8조, 습지는 생명체의 서식처이며 어떠한 경우에도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 람사르 문서 속 그 문장은 한때 사람들의 책상 위를 지나갔다 그러나 지금 그 문장은 읽히지 않는다 개발의 이름으로 덮인 땅 도로 아래 파묻힌 물길 그 안에 실려 있던 다섯 개의 계절 철새는 돌아오지만 서명자는 돌아오지 않는다 펜 끝의 책임은 종이 위에만 남고 저수지의 침묵은 그 문장의 진심을 대신한다 ---「람사르 각서 8조 - 인간이 읽지 않는 문서」중에서 책의 마지막 공정은 언제나 제본이다 주남저수지 아래, 보이지 않는 곳에 흙탕물로 엮인 문장이 있다 모든 것이 섞이는 시간 갈대의 뿌리, 낙엽의 조각, 사라진 날갯짓 그리고 어제의 기억이 진흙 속에서 묶인다 그곳에서는 언어가 눌리고 색이 무너지고 침전된 침묵이 문장을 붙잡는다 가장 단단한 이야기들은 깨끗한 물에서 나오지 않는다 흙탕물 속에서, 수많은 갈등과 흔들림이 한 권의 책으로 엮인다 그 책을 펼칠 수 없지만 발밑에서 느낀다 물의 저항, 생의 압력 눈으로 읽을 수 없는 진흙의 문단들 제본된 이야기들은 저수지 아래 잠들어 있다 때로는 썩고, 때로는 발아하며 다음 장을 준비한다 ---「흙탕물 제본소」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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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남 도서관은 책이 한 권도 없는 도서관이다. 점토를 굽거나, 대나무를 엮거나, 숲을 베어서 만든 책이 한 권도 없다. 우리가 아는 도서관이 생명의 터 무늬를 지우고 세운 것이라면, 이 도서관은 뭇 생명들이 쓰는 몸짓 언어로 가득하다. 도서관을 나와야 들어갈 수 있는 도서관, 책을 덮어야 보이는 문장들이 도도하게 펼쳐진다. - 반칠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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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야 알았다. 주남저수지에 이토록 멋진 도서관과 사서가 있다는 사실을. 재밌는 것은 주남도서관에는 종이책이 한 권도 없다는 점이다. 그 흔한 논어, 맹자도 없고, 성경도 불경도 없다. 김수영의 시집도 없고, 한강의 소설책도 없다. 종이책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럴듯한 도서관 건물도 없다. 주남저수지에는 다양한 동식물들이 살아가고 있지만, 그들이 지향하는 것은 우주적 상상 혹은 인문적 사유이다. 작은 벌레 한 마리, 사소해 보이는 풀꽃 하나가 모두 드넓은 우주와 속 깊은 인문학적 깨달음의 세계로 안내한다. 주남도서관은 비록 종이책도 건물도 없지만, 인간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지혜를 간직하고 있다. - 이형권 (문학평론가, 충남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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