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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엔 옥금 씨가 더 행복하다
박경분
지혜 2025.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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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사랑시인선

책소개

목차

시인의 말 5

1부

굴밤 묵 12
오래된 소파 14
닭 간 16
분꽃이 낮에는 입을 다무는 이유 18
아마도 20
안경을 닦을 시간 22
오촌 아줌마 24
위하여 26
냉이 28
양파 모종을 고르는 저녁 30
목공 이 씨 설날 32
잡초 33
밥 34
묵정밭에서 36
청마리에 가면은 38

2부


우채꽃 당신 42
2월 초하루 44
점 하나 46
적화 시기 48
토요일엔 옥금 씨가 더 행복하다 50
그대로 멈춰라 51
하다가도 하다가도 52
붕붕카 54
산에는 웃음꽃이 산다 56
엉터리 셈법 58
밤 뻐꾸기 60
있는데 없는 61
보끈 땅콩 2되 62
수족관 서점 64
아버지의 물꼬 66

3부

알고 있지 엄마는 - 뻐꾸기는 그냥 우는 거란다 친구야 68
옥수수 70
월동 준비 72
이제야 알았네 74
이 형사댁 75
일갈 76
이 남자 77
잡초라 불리는 것들 78
팔 수 없는 무게 80
엄마의 겨울 채비 82
한 치 걸러 두 치 83
사백 살의 느티나무 84
화장을 하다 86
핑계 87
낙숫물 소리 88

4부

고추 92
누군가 왔으면 94
다시 접시꽃이 피었다 96
행운 98
라면 팔기 99
言 100
라임라이트 102
분꽃 인사 103
아우들 104
오래 그리운 사람 106
쉼표 108
다녀오마 109
분홍 금낭화 110
마당 쓸기 112
녹차 우리기 113

해설 ┃ 황치복
부재의 존재에 대한 소통과 공감의 시학 - 박경분의 시세계 115


저자 소개 1

충청북도 옥천 동이면 청마리(가덕)에서 태어났다. 2019년 월간 [문학바탕]에 시로, 2019년 [에세이포레]에 수필로 등단하였다. 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재학 중이다. 시집 『괜찮다 나는,』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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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11월 08일
쪽수, 무게, 크기
144쪽 | 250g | 130*225*12mm
ISBN13
9791157285945

출판사 리뷰

박경분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이다. 이 시집을 읽고 있으면 시라는 것에 대한 통념을 반성하면서 다시 생각하게 된다. 절묘한 비유와 상징이 없어도, 현란한 수사와 기교가 없어도, 그리고 현학적인 철학과 사유가 없어도 공명과 공감을 자아낼 수 있다는 것, 그리하여 평범함과 담백함 속에서 감동이 우러날 수 있다는 것을 이 시집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한국시사에서 바보이자 성자의 반열에 드는 시인들의 계보, 즉 천상병으로부터 시작하여 이성선, 이상국, 신현정, 이영식 등으로 이어지는 평범하지만 위대한 시적 유산의 계승자를 만난 듯한 생각이 드는 시인의 탄생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보다 사무사思無邪, 생각함에 간사함이 없다는 것, 그리고 간사함이 없다는 것은 어린아이의 마음을 지니고 있다는 것, 어린아이의 마음이란 단순하고 담백하여 욕망의 그늘이 없거나 엷다는 것, 그리하여 맑은 거울이나 맑은 호수 같은 마음으로 거기에 비치는 대상이나 정경을 있는 그대로 반영해준다는 것 등을 지적할 수 있다. 욕망이 복잡하고 다기하지 않으니 시상이 담백하고, 기대와 소망이 높고 잡다하지 않으니 그 정서가 정갈하고 소박하다. 이러한 시의 정취가 또한 현란하거나 기발하지도 않는 시적 언어에 담기니 그 시적 공간 또한 담백하고 한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시적 미학은 페르소나, 혹은 시적 화자라든가 시적 주체를 설정할 필요도 없이 시인의 마음결이 고스란히 시적 맥락에 담겨 있기 마련이니 그 고적한 언어의 이랑에서 우리는 시인의 인격적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다.
- 황치복 문학평론가

건강검진 받아보면
여기저기 어느 정도 흠집 나 있는 남편처럼
함께 늙어 온 거실의 가죽 소파
새 소파의 반들거리던 윤기는
군데군데 버짐으로 피고
좀이 슬고
우리의 목주름과 바래가는 자신감처럼
가상사리가 너덜하다
요즘엔 또 어디가 탈이 나려는지
소파에 앉고 일어설 적마다
삐이걱
헐거워진 소리를 낸다

노사연의 만남 노래 가사마냥
아무리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라
외쳐대도
커 간 아이들의 그림자 길이만큼
늙어 온 것도 사실인 것을
아이들은
세대가 바뀌는 걸 인정하라는 듯
소파를 바꾸자고 보채지만
아직은 쓸만하다고
우리가 아직은 버려질 때가 아니라고
좀 더 둬 보자 미련을 두며
짙은 화장으로 얼굴 한쪽에 돋는 검버섯을 감추듯
덮개를 교체하고
삐걱거리는 무릎에 인공 관절을 박는 양
신문지 한 장 착착 접어 소파 다리 아래 괴어본다
- 「오래된 소파」 전문

오래된 소파가 낡았다는 것, 그래서 “반들거리는 윤기는/ 군데군데 버짐으로 피고/ 좀이 슬고”“가상사리가 너덜하다”는 것, 그리고 이제는 “삐이걱/ 헐거워진 소리를 낸다”는 것 등의 관찰 사실을 상세히 알려주고 있다. 시적 화자가 이처럼 “오래된 소파”에 대해 세밀한 사실을 알려주는 것은 그만큼 그것에 대해 애착을 느끼고 있으며, 그래서 안타까운 심정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오래된 소파에 대해 이처럼 애착을 느끼는 것은 “우리의 목주름과 바래가는 자신감처럼”이라든가 “우리가 아직은 버려질 때가 아니라고”라는 구절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시적 화자가 낡아가는 소파에 대해서 동병상련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낡아가는 것에 대한 시적 화자의 이러한 공감은 물론 “함께 늙어 온 거실의 가족 소파”와 같은 표현처럼 함께 세월을 같이 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함께 한 시간은 정이 들게 하고, 파괴적인 시간 앞에 서 있는 운명 공동체로서 결속과 유대를 형성하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검버섯을 감추듯/ 덮개를 교체하”거나 “삐걱거리는 무릎에 인공 관절을 박는 양/ 신문지 한 장 착착 접어 소파 다리 아래 괴어보”는 행위는 낡아가는 것들에 대한 시인의 헌사와 연민의 발산과 다르지 않다. 낡아가는 것에 대한 시인의 애착은 “세대가 바뀌는 걸 인정하라는” 아이들의 주장에 담겨 있는 엄연한 자연의 질서에 대한 유한한 인간으로서의 어쩔 수 없는 한탄이자 유정함이라고 할 만하다. 다음 작품 역시 그렇다.

해마다 운신이 다르다는 85세 엄마와 이모부 간병에 꼼짝하기 힘든 78세 서울 이모가 조카 결혼식장에서 오랜만에 만났다 원래는 보행 의자 밀고 다니는데 결혼식장에선 예의가 아니라며 지팡이 짚고 한 걸음 한 걸음 걷는 엄마

며느리와 손주들 앞에서
마음만은 애들처럼
얘,
언니,
둘이 애틋하다

로비에서 헤어지며 서울 이모가 아기 보듯 양손으로 엄마를 감싸고 눈 맞추며 언니, 더 늙지 말고 꼭 요대로 있다가 또 봐 하는데

내가 어쩔 것이냐
네가 어쩔 것이냐

밖으로 나오니 목련꽃 뚝뚝 지고 있는 걸
- 「그대로 멈춰라? 전문

85세의 엄마와 78세의 서울 이모가 조카 결혼식장에서 만났다는 것, 둘은 여든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세월을 거꾸로 흐르게 하여 어린아이로 돌아가 있다는 것, 그래서 “얘,/ 언니,” 하면서 애틋한 혈육의 정을 나누는 장면이 정감있게 묘사되고 있다. 하지만 더욱 시적인 장면은 서울 이모가 엄마의 얼굴을 감싸고 하는 말, “언니, 더 늙지 말고 꼭 이대로 있다가 또 봐”라는 대목이다. 파괴적인 시간의 힘 앞에 굴복할 수밖에 없음을 알면서도 이처럼 미래를 기약하고 싶은 것은 연약한 인간의 마음일 것이다. 부질없는 기대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처럼 불가능한 미래를 기약하고 싶은 혈육의 애틋한 마음에서 시적 서정이 흘러나온다.

시적인 정서가 폭발하는 장면은 “내가 어쩔 것이냐/ 네가 어쩔 것이냐”라는 외침인데, 이러한 외침 속에는 흘러가는 시간과 낡아가는 존재자의 엄연한 현실에 대해 인정하지 않을 수도 없고, 인정할 수도 없는 유한성을 지닌 인간의 딜레마 상황이 담겨있다. “밖으로 나오니 목련꽃 뚝뚝 지고 있는” 광경을 보면서도 자연이 하는 것을 모두 인정하기 싫은 삶의 애착과 미련이 “그대로 멈춰라”라는 제목에 투영되어 있다. 엄연한 자연의 질서를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법칙의 울타리 밖으로 벗어나고 싶은 것이 우리 같은 어리석은 중생들의 삶이고 바람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다는 것이 반드시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일 수도 있음을 시인은 잘 알고 있다.

처음에 이 남자 주춤주춤 게걸음으로 다가와 내가 필요하다고 단지 필요하다고만 했어 필요하다는 건 서로 등을 기대는 일이거나 꽃으로 치자면 꽃과 꽃받침으로 남아도 된다는 것이니 남자 여자 사랑 따위는 해 지면 사라지는 그림자 같은 거라고 생각했지 그러니 서로의 필요에 의한 언약식인 줄 알았는데 서른 해 넘도록 이 남자 꽃받침으로 낮게 엎드려 내가 고개 돌리는 곳마다 햇볕을 물어 나르고 빗속을 첨벙대다 적셔온 신발을 말리며 자장자장 좋은 꿈꾸어요 재워 놓고 내가 깰 때까지 기다리곤 했지 속도 없이 세월 따위는 모른다고 아직도 내 발치에서 이울기를 기뻐하는 이 남자를 나는 이제야 사랑하기 시작했네
- 「이 남자」 전문

“이 남자”를 시적 화자가 사랑하게 된 것은 시간의 힘 때문이다. 처음에 이 남자와 시적 화자는 단지 필요했기 때문에 서로 관계를 맺었다. 하지만 이 남자가 꽃받침으로 낮게 엎드려 내가 고개 돌리는 곳마다 햇볕을 물어 나르”기도 하고, “빗속을 첨벙대다 적셔온 신발을 말리며 자장자장 좋은 꿈꾸어요 재워 놓고 내가 깰 때까지 기다리곤” 하는 모습을 보고 시적 화자는 사랑에 빠진다. 물론 이 남자가 시적 화자에게 보여주는 행위는 사랑의 행위이며, 진정성 있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배려와 보살핌이기에 감동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시적 화자가 진정으로 사랑에 빠지는 것은 “속도 없이 세월 따위는 모른다고 아직도 내 발치에서 이울기를 기뻐하는 이 남자”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남자가 시적 화자에게 보여준 사랑의 행위는 일회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행위의 누적이 곧 감동의 원천이 되었다는 것인데, 이울어가는 이 남자를 보면서 시적 화자는 유한한 인간으로서 동정과 연민의 감정도 느꼈을 것이다. 결국 사랑의 행위가 쌓이고 쌓여서 마음을 움직인 셈이며, 따라서 이러한 변화는 세월의 더께가 쌓이고 쌓여서 만들어낸 결과인 셈이다. 시간의 누적이 어느덧 형질 변화를 일으킨 것이며, 마음의 미세한 움직임을 일으킨 것이라는 점에서 시간의 흐름이 곧 시적 서정의 원천으로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다음 작품도 시간의 누적이 초래하는 서정적인 변화를 보여준다.

손 귀한 집 큰 며느리로 들어와 암짝에도 소용없다는 딸 셋 내리 낳고 해 보고도 빌어 달 보고도 빌어 천금보다 귀하게 얻은 우리 엄마 옥금씨의 아들이 장가를 가 아이를 낳고 차로 삼십여 분 거리로 분가해 살면서 아버지 돌아가신 후로는 일곱 날 중 하루 토요일엔 어지간하면 안 빠지고 엄마한테 들러 잠을 자고 가는데 철 따라 엄마 입맛 다실 것 빼놓는 법 없다고 지금은 겨울이라 붕어빵을 사 오는데 식지 말라고 옷 속에 품어 오고 뜨끈한 순대도 국물까지 얻어 가지고 와서는 엄마가 끓여주는 동탯국에 마른 콩을 갈아 넣은 잡곡밥을 고봉으로 퍼줘도 땀까지 철철 흘려가며 잘 먹는다고 잘 먹어 잘 먹어 내가 해주는 건 뭐든 맛있다고 아주 잘 먹어 말하고 있는

북태평양 물살을 가르는 명태의 힘찬 지느러미질처럼 푸른 물이 뚝뚝 돋는 옥금씨의 싱싱한 전화 목소리
- 「토요일엔 옥금씨가 더 행복하다」 전문

토요일에 옥금씨가 행복한 것을 물론 사랑스러운 아들이 방문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 말고도 살아 있는 게 또 있으니/ 참 좋다고” 하는 엄마이니 살아있는 것 중에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이 찾아와서 하룻밤을 자고 가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것이다. 더구나 어렵게 얻은 그 아들은 효심이 가득해서 “철 따라 엄마 입맛 다실 것 빼놓는 법 없다고 지금은 겨울이라 붕어빵을 사 오는데 식지 말라고 옷 속에 품어 오고 뜨끈한 순대도 국물까지 얻어” 오니 그 지극정성이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정작 엄마가 좋아하는 것은 그 사랑스러운 아들이 “엄마가 끓여주는 동탯국에 마른 콩을 갈아 넣은 잡곡밥을 고봉으로 퍼줘도 땀까지 철철 흘려가며 잘 먹”기 때문이다. 아들이 엄마를 봉양해서 좋은 것이 아니라 엄마가 아들에게 밥을 해줄 수 있는 기회를 주어서 행복하고, 자신이 해주는 밥을 너무 잘 먹기 때문에 그것을 보는 엄마가 행복한 것이다. “잘 먹어 잘 먹어 내가 해주는 건 뭐든 맛있다고 아주 잘 먹어”라고 되뇌는 말 속에는 엄마의 마음속 풍족함과 감사함이 배어 있다. 엄마는 아들을 먹이고, 아들의 먹는 모습에서 생의 활력을 느끼는데, “북태평양 물살을 가르는 명태의 힘찬 지느러미질처럼 푸른 물이 뚝뚝 돋는 옥금씨의 싱싱한 전화 목소리” 속에 그 생의 환희와 기운이 담겨 있다. 아들이 잘 먹는 모습에서 행복을 느끼고 그것을 바라보면서 삶의 자양분을 발견하는 엄마의 삶이란 곧 타자의 행복에서 자신의 행복을 발견하는 성자의 그것이라 할 만하다. 시인은 부재의 존재감을 통해서 타자와 소통하고 공감하는 시적 지향을 추구해왔는데, 이러한 시의식은 바로 엄마의 삶을 보면서 배양된 것이라 여겨진다.

지금까지 박경분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의 시세계를 살펴보았다. 무엇보다 간결하고 담백한 시상 속에 시적인 것을 포착하여 감동적인 울림을 자아낼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시인이 이번 시집에서 번잡하거나 까다롭지도 않은 소박하고 수수한 시상의 전개를 통해서 깊은 울림을 자아낼 수 있었던 것은 꾸밈과 거짓이 없는 진실한 마음으로 시작에 임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이러한 작시술의 근원은 모든 낡아가는 것들에 대한 연민, 그리고 부재의 존재에 대한 형언할 수 없는 안타까움과 위로의 마음이라고 할 수 있을 터인데, 이러한 시심은 어머니의 삶에 대한 관찰과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시심이 더욱 깊어지고 넓어져서 서두에서 말한 바보이면서 성자의 반열에 오른 시인들의 계보를 잇는 시인으로 더욱 그윽해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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