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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5
1부 가방 속 보르헤스 12 외딴집의 내력 13 운명교향곡 14 에로틱하고 모호한 ― 클림트의 유디트 16 엽서 ―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17 백일홍의 시간 18 목련길을 걷다 19 바흐를 만나다 20 모네의 풍경 22 내 무덤 위에, 花 24 곡우穀雨 25 경칩 26 춘천에서 두브로브니크까지 28 2부 콘티누오의 저녁 32 문득 34 부엉이와 보름달 ― 딸에게 35 가을, 은행나무 36 클림트, 키스 37 이순耳順 2 38 샌디의 샛길 40 불면증 41 붉나무의 계절 42 감자를 캐며 44 목백합 아래서 46 또, 목련 47 봄은 소란으로 가득했지만 48 글자로 그린 풍경 50 다시, 봄 51 벚나무 이어진 강둑을 지나 52 3부 청량리에서 춘천까지 56 모두 한순간에 일어났어 58 소나기 60 쥐의 똥구멍을 꿰맨 여공 61 진눈깨비 내리다 62 강가를 걸으며 64 운수골 65 이순耳順 1 ― 겨울 백두산에서 66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 68 퇴고 70 존재의 미로 71 클림트, 생명의 나무 72 목련을 훔치다 73 자작나무 숲에서 74 늙은 호박 76 모스크바 일지 ― 여성의 날에 78 모스크바, 눈 80 4부 내몽골 초원에서 82 엽서 ― 오스트리아 할슈타트에서 83 엽서 ― 인도 암베르성에서 84 엽서 ―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에서 86 타지마할에서 87 일몰 88 아버지의 복도 89 구름의 문턱에서 90 독서 92 엽서 ―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에서 94 여행자가 되어 96 엽서 ― 부다페스트에서 98 엽서 ― 슬로베니아 블레드성에서 99 엽서 ― 서몽골 음산산맥에서 100 에타 제임스의 블루스 102 해설┃안현심 보르헤스의 미로 찾기 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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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방 속에는
보르헤스 미로로 가득하다 둥글둥글 낯선 미로, 우물우물 복잡한 미로, 흥미로운 소문에 갇혀버린 미로, 시간의 무한한 갈라짐으로 속수무책인 미로, 앞뒤가 맞지 않는 초고가 뒤죽박죽 엉켜 있는 가방 속, 보르헤스의 미로는 백 년 내내 어둡고 익숙하지 않은 문장처럼 고요하다 ---「가방 속 보르헤스」 중에서 담으로 이어진 주택을 지나 행성 프록시마b까지 가는 길 댕그랑댕그랑 종소리 은밀하게 손 내밀면 무수한 은유가 춤을 춘다 목련 하얀 치맛자락이 나를 툭 건드리면 순간, 환하게 불이 켜지고 나는 탱고 춤 속으로 휩쓸려 들어간다 태양과 이어져 있는 길 바람난 생명으로 가득하다 ---「목련 길을 걷다」 중에서 봄이 오면 일어나서 걸어 나갈 수 있을 거야 밭에 감자도 심고 고추도 심어야지 감자가 여물어 가는데 그는 없다 석양과 도시의 변두리를 좋아하더니 그곳에서 노을 하나 소유했을까 너무 아름다워 서러운 노을 하나 소유했을까 그곳은 알 수 없는 블랙홀 한 번 들어가면 다시는 나올 수 없다 이 세상 저물녘, 그는 어둡고 악몽 같은 복도였고 현기증 일으키는 깊숙한 층계였으므로 해줄 수 있는 일은 감자를 캐서 그의 복도와 층계를 채우는 것 어두운 복도에 등불을 단다 그는 나로부터 자유로이 날아 봄이고 여름이다 ---「아버지의 복도」 중에서 흩어진 단어들을 양동이에 긁어 담는 일, 처음에는 수월해 단어들이 저절로 굴러들어 올 때까지는 양동이가 묵직해지면 손수레에 실어 책상으로 나르지 문을 열고 떡갈나무 속으로 던져 넣는 거야 부채꼴로 흩어지며 고르게 스며들어야 하거든 바늘 끝에 매달린 숨결처럼 계기판의 압력이 떨어지면 다시 불 속으로 던져 물론 그 안은 뜨겁지 아궁이 안에서 돌처럼 단단해진 문장, 글을 쓰고 골목으로 나서면 한낮의 태양마저 시원하게 느껴지지 ---「글자로 그린 풍경」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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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미의 첫 시집 『가방 속 보르헤스』는 익숙한 세계를 낯선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집이다. 시인은 평범한 골목에서 우주로 향하는 길을 발견하고, 산맥에서 한 권의 책을 읽으며, 흩어진 단어들을 단단한 문장으로 빚어낸다.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대상들을 자유롭게 연결하는 상상력은 그의 시를 예측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이끈다.
그의 시에서 현실과 환상의 경계는 느슨하다. 자연과 사물, 기억과 언어가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며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낸다. 때로는 아름답고, 때로는 낯설며, 때로는 날카로운 문장들이 하나의 미로처럼 이어진다. 그 미로를 걷다 보면 시인이 무엇을 찾고 있는지 조금씩 알게 된다. 어쩌면 그것은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자신의 마음과 세계일 것이다. 길을 잃는 순간 오히려 새로운 문이 열리는 시, 홍정미의 첫 시집에서 그 낯선 입구를 함께 만나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