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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도입 성모 마리아가 도착하다1 - 무대 마련2 - ‘일어나라, 감각의 빛이여’3 - 왜 교향곡인가?간주곡 무대 뒤편: 알마와 그로피우스 _ 1910년 8월~9월4 - 하느님인가, 악마인가?5 - 표현할 수 없는 것에 다가가다: 말러의 〈교향곡 8번〉의 가사와 음악6 - 정체성에 관한 문제들7 - 그림자가 내리다8 - ‘당신을 위해 살고, 당신을 위해 죽으리’코다 1910년 9월 14일~1911년 5월 18일주감사의 말옮긴이의 말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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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여름, 박수갈채와 함께 말러의 삶은 송두리째 바뀌었다“말러의 교향곡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루 다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악상으로 넘쳐나는 작품이고, 가장 초자연적인 감정이 격렬하게 표현되는 작품입니다.”─ 안톤 베베른이 아르놀트 쇤베르크에게 타전한 〈교향곡 8번〉 초연 묘사이 책은 1910년 9월 6일, 알마 말러가 어머니 아나 몰과 함께 뮌헨의 호텔 콘티넨털에 도착한 순간으로 시작된다.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8번〉이 뮌헨에서 처음 대중에게 선보인 날은 그야말로 도시 전체의 거대한 축제나 다름없었다. 각종 지역신문과 음악 평론지는 리허설 풍경까지 전할 정도로 앞다투어 공연 소식을 보도했고, 4천 석에 가까운 객석은 마지막 한 자리까지 매진되었다. 〈교향곡 8번〉의 초연 현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는 공연장에 모인 관객 수뿐 아니라 청중의 면면에서도 알 수 있다. 당대 최고위 유력인사들이 대거 참석하는 한편, 문학계에서는 후고 폰 호프만스탈과 아르투어 슈니츨러, 슈테판 츠바이크, 토마스 만이 공연장에 있었다. 음악가로는 아르놀트 쇤베르크, 알반 베르크 대신 콘서트를 보러 온 안톤 베베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알렉산더 쳄린스키, 폴 뒤카, 카미유 생상스, 젊은 지휘자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의 모습도 보였다. 압도적인 선율이 이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고, 이 특별한 예술적 경험에서 받은 인상과 충격을 각자 글과 음악에 나름의 방식으로 부려놓았다. 작가 토마스 만은 너무나 전율을 느낀 나머지 그 유명한 《베네치아에서의 죽음》(1912)의 주인공인 구스타프 폰 아셴바흐에게 공공연히 말러의 이미지를 덧씌우기까지 했다. (훗날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은 동명의 영화(1971)에서 말러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를 인상적으로 활용한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2022)에도 등장했던 바로 그 음악이다.)어느 때보다 뜨거웠던 1910년의 여름, 이 사건으로부터 말러의 개인사뿐 아니라 당대 문화예술의 중심지이자, 음악가에게 제2의 고향이나 마찬가지였던 빈의 역사가 바뀌는 장대한 드라마가 펼쳐진다. ‘영원한 여성’을 잃은 1910년, 그리고 〈교향곡 8번〉의 탄생에 관하여이 책의 주인공은 말러가 남긴 〈교향곡 8번〉과 1910년의 빈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인 음악평론가 스티븐 존슨은 말러의 삶에서 일어난 주요 사건과 작곡 시점의 전후 관계를 종횡무진 누빈다. 따라서 이 책의 전개는 선적線的이지 않으며, 시간과 공간을 넘나든다. 저자가 〈교향곡 8번〉의 세계를 탐험하는 출발점으로 삼은 지점은 알마가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와 외도 중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1910년 여름이다. 거의 온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괴로움에 몸부림치던 말러는 어떻게든 아내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평생 지키던 원칙을 깨고 〈교향곡 8번〉을 알마에게 바치기로 결심하기에 이른다. 〈교향곡 8번〉은 이렇듯 말러의 삶에서 최악의 시기에 쓰였을 뿐 아니라 말러가 최초로 다른 사람에게 헌정한 교향곡이라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를 가진다. 1910년 말러의 예술적·개인적 운명에 관한 이야기는 여러 면에서 무척 흥미롭다. 이미 1907년 빈 궁정 오페라 감독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고 심장에서 이상 증상을 발견했으며, 첫째 딸 마리아가 세상을 떠나는 아픔을 겪은 말러에게, 1910년은 가장 극단적인 해였음이 틀림없다. 〈교향곡 8번〉 초연에서 말러가 맛본 승리감은 그의 ‘영원한 여성’을 잃은 패배감을 생각하면 몹시 대조적인 것이었다. 지휘자로는 일찌감치 명성을 누렸지만 상대적으로 작곡가로는 고른 지지를 받지 못했던 말러는, ‘8번’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대중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다.〈교향곡 8번〉은 말러가 평소 열렬히 추종했던 괴테의 작품 중 《파우스트》에서 영감을 받아 번개처럼 써 내려간 곡이다. 여기서 바로 〈교향곡 8번〉에 등장하는 여러 요소가 논쟁의 중심에 놓인다. 그중에서도 〈교향곡 8번〉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영원한 여성’은 기독교의 성모 마리아인가, 말러가 우상시했던 알마 말러인가, 아니면 또 다른 초월적인 존재인가? 이 책은 이러한 의문들에서 파생된 여러 의혹에 답하는 퍼즐을 흥미진진하게 맞춰나간다. “교향곡은 세계와 같아야 하고 모든 걸 품어야 한다”〈교향곡 8번〉과 미완성작 〈교향곡 10번〉에 이르기까지〈대지의 노래〉와 미완성작 〈교향곡 10번〉을 포함하여 말러가 11곡의 교향곡을 남겼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말러는 작곡가 이전에 오랜 기간 오페라를 이끈 베테랑 지휘자였고 뛰어난 가곡도 많이 남긴 만큼, 그의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교향곡보다는 오페라가 더 적격이었으리라는 세간의 평이 지배적이다. 그럼에도 그는 왜 그토록 ‘교향곡’이라는 장르에 천착했을까? 이 책은 말러가 〈교향곡 8번〉이라는 전무후무한 작품뿐 아니라 그가 남긴 〈교향곡 1번〉부터 〈교향곡 10번〉까지 아우르며, 말러에게 ‘교향곡’이라는 장르는 과연 무엇이었는지를 밝힌다. 선배인 베토벤과 슈베르트에 의해 18세기 중후반 시민의식의 성장과 낭만주의의 세례를 받으며 본격적으로 꽃을 피운 교향곡이야말로 말러에게 언어나 사건이나 관념이 아닌, 음악으로만 순수한 ‘느낌’의 세계를 표현하는 최선의 수단이었다. 〈교향곡 8번〉은 ‘천인 교향곡’으로 더 잘 알려져 있을 정도로 동원되는 인원과 오케스트라 편성에서 가공할 만한 규모를 자랑하는 작품이다. 하지만 엄청난 스케일에 가려져 ‘구원’과 ‘초월’, ‘환희’를 노래하는 이 곡이 가진 진정한 의미와 가치, 매력에 관해 국내에 제대로 소개될 기회가 드물었다. 이 책은 〈교향곡 8번〉의 초연 현장에서 시작하여 작품을 면밀히 분석하고, 이를 말러의 삶과 작품 세계, 1910년 빈의 시대상까지로 확장해나간다. 지금까지 말러 관련 도서가 여럿 등장했지만, 작품 하나만을 입체적으로 다룬 책은 없었다는 점에서 귀한 시도인 셈이다.무엇보다 5장 ‘표현할 수 없는 것에 다가가다: 말러의 〈교향곡 8번〉의 가사와 음악’에서는 마치 곡 전체를 실제로 듣는 것처럼 〈교향곡 8번〉의 악보와 가사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감상의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준다. 특히 저자는 지금까지 〈교향곡 8번〉을 분석할 때 가사의 의미를 간과하는 경향이 아쉬웠다고 지적한 바 있는데, 이 장은 그 아쉬움을 말끔히 해소해준다. 또한 말러가 채 마무리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 서자 취급을 받던 〈교향곡 10번〉(데릭 쿡 작업)이 이전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대단히 훌륭하며 진정한 말러를 담고 있는 걸작임을 짚어낸다.말러, ‘자신의 시대가 남긴 흔적을열린 상처처럼 떠안고 사는 창조적 유형’말러는 무척이나 복잡한 정체성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는 유대인이었고, 보헤미아인이기도 했으며, 독일인이자 오스트리아인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이방인이었다. 특히 그는 유대인이었기에 당대에 만연했던 반反유대주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빈Wien 사람 유대인 말러에게 기독교적 세계관은 모태 신앙인 유대교와 끊임없이 충돌을 일으켰고, 괴테와 니체, 바그너를 무척 존경한 말러가 평생을 추구한 ‘신성한 독일 예술’이라는 이상理想은 그가 독일 민족주의자였다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되는 빌미를 제공했다. 외부 세계의 차원에서 보자면 말러는 자신이 속한 시대와 장소의 산물이었다. 1910년경의 빈은 마치 아르누보풍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당대의 건축물처럼 휘황했다. 음악에서는 말러와 동시대 작곡가였던 슈트라우스, 쇤베르크, 베르크, 쳄린스키, 미술에서는 구스타프 클림트, 오스카르 코코슈카, 에곤 실레, 건축에서는 오토 바그너, 아돌프 로스, 발터 그로피우스 등 걸출한 천재들이 활약했고, 심리학 분야에서도 말러를 상담했던 지크문트 프로이트와 카를 융 같은 선구자들이 새로운 학문을 이끌었다(쳄린스키, 그로피우스, 코코슈카 모두 알마의 연인이었다). 하지만 당시 빈은 전 세계를 소용돌이 속에 빠트린 양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 빛만큼이나 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뿐 아니라 ‘세계 음악의 수도’라는 명성 뒤에 무겁고 진지한 예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빈 특유의 경박한 분위기와 퇴폐적이고 불온한 에로티시즘이 어른거리고 있었다.이처럼 말러의 내밀한 개인사와 속내에 관해서는 아직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부분이 많다. 다만 우리는 그의 작품을 통해서 사실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말러는 프리드리히 니체가 규정한, “자신의 시대가 남긴 흔적을 그대로 받아내 열린 상처처럼 떠안고 사는 창조적 유형의 전형”이었기 때문이다. 말러 서거 112주년,우리는 말러 〈교향곡 8번〉에서무엇을 들어 내야 하는가음악평론가 마크 스웨드는 〈교향곡 8번〉의 가치를 다음과 같이 썼다. “〈교향곡 8번〉은 좌뇌와 우뇌를 모두 동원해야 하는 궁극의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위법, 화성, 선율의 전개는 우리로 하여금 비판적 사고 능력을 가동케 하고, 동시에 풍성한 색채, 감정, 그리고 순수한 창조적 상상력은 비판적 사고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킨다.”(〈로스앤젤레스 타임스〉)저자는 이 책 전체에서 방대한 자료와 치밀한 분석, 역사·철학·문학에 걸친 풍부한 인문학 연구를 바탕으로 말러의 작품 세계를 소개한다. 그럼에도 그는 작곡가의 삶과 음악을 지나치게 깊이 연관시키려 했던 그간의 말러 비평 경향과 분명히 거리를 둔다. 이러한 태도는 ‘음악은 오로지 음악으로만 말해야 한다’는, 말러가 견지한 입장에 대한 존중이기도 할 것이다.대중이 말러에게 바쳐온 찬사의 맞은편에는 오해 역시 그만큼이나 산재해 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구스타프 말러가 그 누구보다 예술가라는 직분에 충실한 작곡가였으며, 그렇기에 이 모든 개인적·역사적 맥락 위에 음악이라는 자신만의 ‘교향곡’을 써 내려갔다는 것이다. 말러 서거 112주년(1911년 5월 18일, 50세)을 맞아 우리 모두가 말러의 진면목을 발견하는 여정에 동참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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