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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창작 강의 노트
나를 바꾸는 시 쓰기 개정판
유종화 편
새로운눈 2023.11.20.
베스트
비평/창작/이론 top100 14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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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부. 시의 기본, 시인의 기본

1. 시인을 만드는 9개의 비망록 / 정일근·15p
2. 시를 찾아가는 아홉 갈래 길 / 최영철·37p
3. 시와 시인에 대한 몇 가지 생각들 / 이정록·56p
4. 나의 시에 대한 생각과 문학적 발자취 / 안도현·63p
5. 마음을 열고 사랑을 찾아가는 길 / 최성수·73p

2부. 나를 바꾸는 시 쓰기

1. 처음 시 쓰는 사람들을 위하여 / 이응인·93p
2. 시 쓰기, 삶의 터전에서부터 출발하자 / 안상학·107p
3. 있었던 일을 시로 쓰기 / 오철수·125p
4. 시 창작 초기에 나타나는 고쳐야할 표현들 / 도종환·143p
5. 즐거운 시 쓰기 / 한국 글쓰기 연구회·161p

3부. 시의 길, 시인의 길

1. 하얀 까마귀 / 조재도·203p
2. 문학은 곧 삶이다 / 김수열·227p
3. 홀로 가는 기쁜 길 / 박영희·247p
(부록.1) 좋은 시를 쓰기 위한 낙서 / 오봉옥·269p
(부록.2) 시 창작 수업의 방법 / 교육문예창작회·284p

저자 소개 1

김제에서 나고 자랐다. 이리에서 배우고, 목포에서 가르쳤다. 1994년『민족극과 예술운동』봄호에 평론 ?노랫말 속에서의 ‘시인의 몫’ 찾기?를 발표하고, 1995년 『시인과 사회』봄호에 시 ?오살댁 일기? 연작으로 신인상을 받았다. 1994년 시노래 창작곡 음반 『노래로 듣는 시』를,?1996년?시노래 평설집 『시마을로 가는 징검다리』를 냈다. 1998년 광주에서 한보리 오영묵 등과 <시하나 노래하나>를, 1999년 서울에서 백창우 안도현 등과 <시노래모임나팔꽃>을 결성하여 ‘시노래’라는 장르를 개척하고, 시노래운동을 시작하였다 2024년 계간 『시의 시간들』 창간호(겨울호)에
김제에서 나고 자랐다. 이리에서 배우고, 목포에서 가르쳤다. 1994년『민족극과 예술운동』봄호에 평론 ?노랫말 속에서의 ‘시인의 몫’ 찾기?를 발표하고, 1995년 『시인과 사회』봄호에 시 ?오살댁 일기? 연작으로 신인상을 받았다. 1994년 시노래 창작곡 음반 『노래로 듣는 시』를,?1996년?시노래 평설집 『시마을로 가는 징검다리』를 냈다. 1998년 광주에서 한보리 오영묵 등과 <시하나 노래하나>를, 1999년 서울에서 백창우 안도현 등과 <시노래모임나팔꽃>을 결성하여 ‘시노래’라는 장르를 개척하고, 시노래운동을 시작하였다 2024년 계간 『시의 시간들』 창간호(겨울호)에 시 ?파랑? 외 4편을 발표하면서 다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정읍에서 살고 있다.

저서로 (-나를 바꾸는 시 읽기) 시마을로 가는 징검다리(새로운눈 발행) (-나를 바꾸는 시 읽기) 시 창작 강의 노트(새로운눈 발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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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11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294쪽 | 545g | 153*224*20mm
ISBN13
9788993779035

책 속으로

슬픔이 시인을 만든다

나를 시인으로 만든 것은 ‘슬픔’이었다. 그 슬픔에 힘입어 처음 ‘시인이 돼야겠다’는 꿈을 가진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그 전 해 4월, 벚꽃의 도시 진해에서 나는 ‘아비 없는 자식’이 되었다. 아버지가 없는 빈자리에 제일 먼저 슬픔이 찾아왔다.

아버지의 생몰 연대는 길 위에서 끝이 났다. 그 날 아버지는 당신의 오토바이에 어머니를 태워 마산에 있는 친척 댁에 다녀오시는 길이었는데, 길 위에서 택시가 아버지의 생을 덮치고 뺑소니쳐 버렸다.

의식불명이 되어 안방으로 돌아오신 아버지는 고통스럽게 숨을 쉬고 계셨지만, 군의관이었던 아버지 친구는 단호하게 사망진단을 내렸다. 사인은 뇌진탕. 마산에서 진해로 출발하며 아버지는 자신의 헬멧을 어머니에게 씌워주셨다. 그 헬멧으로 아버지와 어머니의 운명은 바뀌었다. 두 분 다 허공으로 솟구쳤다 도로 위로 내동댕이쳐졌지만 아버지의 헬멧이 어머니를 구했다. 그것이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베푼 마지막 사랑이었다.

아버지의 부재만이 나를 슬프게 만든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떠난 자리에 가난도 찾아왔다. ‘빚 갚으러 오는 사람보다 빚 받으러 오는 사람이 많아’ 아버지의 재산은 소위 ‘빚잔치’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TV도 사라지고 집도 사라지고 할아버지의 논과 밭도 사라졌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니는 고모는 남루한 일곱 평 반 홉의 양철지붕 아래로 숨어들었고, 어머니는 연탄 부뚜막에 나와 여동생을 재우며 밤늦게까지 술을 팔았다. 친구들이 TV를 보는 시간 나는 술을 날랐다. 친구들이 고급 양장의 동화책을 읽던 시간 나는 안주를 날랐다. 우리 반 고 계집애가 피아노를 치던 시간 나는 손님들이 술자리에서 부르던 이미자, 배호, 나훈아의 슬픈 유행가나 군인들의 군가를 배웠다.

아버지가 없다는 슬픔이 나를 눈물 많은 아이로 만들었고, 그 눈물이 나를 세상에 대해 조숙하게 처신하게 만들었다. 그 시절 내가 친구들보다 뛰어난 것은 도박과 교과서에 나오는 시나 시조 외우기였다. 두 장의 화투 ‘끗발’로 승자로 가리는 도박으로 친구들의 돈을 따면 만화방에 하루종일 처박혀 있거나 중국집에서 자장면이나 군만두를 사먹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시나 시조를 잘 외운다는 이유 하나로 담임선생님에 의해 문예반으로 보내졌다. 문예반 지도 선생님은 나에게 시조를 가르쳤다.

뜻밖에도 경남도 대회에 참가할 진해시 대표를 뽑는 백일장에서 나는 장원을 했다. ‘산’이란 제목이었다. 고백하자면, 초등학교 5학년 때 나는 개근상 외에 처음 ‘상’이라는 것을 받은 것이다. 어려운 형편에 월부로 안데르센 동화전집까지 사주시며 기뻐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나는 시인이 되고 싶었다. 시인이 되어 서른 초반에 홀로 되어 남매를 키우는 슬픈 어머니의 삶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다.

나는 오랫동안 아버지를 미워했다. 아버지의 부재로 우리 가족이 해체됐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내 시 속에 등장하는 것을 금기했다. 아버지는 그때 내 손등에 났던 사마귀처럼 감추고 싶은 상처였다. 시인이 되어서도 그 상처가 시의 소재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도 아버지가 되고,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서 내 시가 아버지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미워한 것은 아버지가 아니라, 너무 일찍 길 위에서 끝나버린 아버지의 생이었다. 나는 시로써 아버지와 화해를 시도하며 “아버지의 달걀 속에서 내가 태어나고/내 달걀 속에서 아버지가 태어난다”고 썼다. 아버지란 큰 슬픔이 나를 시인으로 만들었다.

사랑도 시인을 만든다

그대, 4월의 진해를 기억하는가. 눈이 귀한 남쪽의 부동항 진해는 4월이면 눈이 내렸다. 그 작은 도시의 인구 수와 비슷한 벚나무들은 따뜻한 겨울을 보내고 4월이 오면 일시에 꽃을 피우고 바람이 불면 꽃잎을 눈처럼 뿌려주었다. 꽃이 피어서 질 때까지, 그 기간 동안 ‘군항제’란 잔치가 열렸다. 그랬다. 그것은 축제라는 현대성을 띤 이름보다 잔치였다. 내가 5학년 1학기까지 다녔던 도천초등학교 주변에 만들어 진 벚나무 숲. 어른들이 ‘사쿠라 마찌’라 부르던 그곳이 벚꽃 잔치의 장이었다.

잔치의 하객은 후줄근한 양복에 중절모를 쓴 남자들과 한복과 고무신을 신은 여자들. 그들은 장구와 꽹과리로도 최신 유행가의 가락을 맞추고 잔치의 끝은 언제나 술과 노래였다. 그리고 잔치가 끝나면 그 파장 위로 자주 봄비가 내렸다. 세상은 빠르게 변했다. 새로운 봄이 찾아올 때마다 도시의 증가하는 인구처럼 늘어나는 벚나무들은 더욱 화사한 설국을 만들고 잔치는 축제로 변했다. 분수탑 로터리에서 해군 군악대 연주와 의장대의 시범이 열리고 그 모습에 넋을 놓고 있는 사이 축제의 밤이 찾아와 도심의 벚나무에 걸린 축등에 불이 켜지고, 밤하늘에는 현란한 폭죽이 터졌다.

흑백TV도 귀했던 시절, 4월이면 밤하늘에 상영되는 총천연색의 불꽃놀이를 보면서 유년을 보냈다는 것은 축복이었다.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생의 축복. 그 4월에 나는 첫사랑을 했다.

---「정일근, 시인을 만드는 9개의 비망록」중에서

출판사 리뷰

정리본을 내며

이 책은 시 쓰기에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한 시 창작의 실제 문제 해설서로, 전국의 유명한 시인들의 시 창작 강의 노트를 읽기 편하게 주제별로 묶어 3부로 엮은 책이다.

1부는 시가 무엇이고 시인의 기본자세는 어때야 하는가에 관한 글들이다. 실제 창작 방법보다 이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기본이 없으면 아무리 많은 시를 쓴다한들 가슴을 파고드는 글 한 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2부는 시 쓰기의 방법론이다. 막막해하는 시인 지망생들에게 들려주는 선배들의 이야기를 묶었다. 특별한 방법이 있나 하고 잔뜩 기대하지 않길 바란다. 조금은 도움이 되겠지만 이것이 시 쓰는 지름길을 제시해주지는 않는다.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을 가져야 하고, 또 좋은 시를 찾아 읽으면서 본인 스스로 깨우쳐가야 한다.

3부는 시인이 되어 가는 과정을 다룬 글들이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다.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고, 또 아무나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다. 나머지 시를 쓰고 가르치는 데 참고가 될 만한 글을 부록으로 붙였다. 시인이 되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급해한다. 무슨 빠른 길이 따로 없나 하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느라 바쁘다. 이런 사람들에게 한마디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세상의 어떤 일도 10년은 해야 길이 보인다.

10년을 고민하고 노력하는 동안 삶이 변하고 세상이 다르게 보이고, 또 그 과정 속에서 바뀐 ‘나’의 눈을 통해서 새롭게 해석되는 것들이 생겨날 것이다. 그것을 받아 적는 것이 창작이다.

이 책은 거기에 이르는 데까지 조언을 해 줄 뿐이다. 그 다음은 각자 자신의 몫이다. 시인이 되는 길은 기존의 ‘나’를 철저하게 깨뜨리는 작업이다. 자신이 변해야 새로운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말한다.
―10년이다.

시 창작에 고민하는 친구들을 위하여

지난 여름방학 때의 일이다. 안부차 서울에 사는 친구 백창우에게 전화를 했다. 그는 별일 없다는 말과 함께 뜻하지 않은 질문을 해왔다. “요즘 왜 시를 안 쓰니?” 난데없는 질문에 나는 마땅한 대답거리를 생각하고 있는데 그 친구는 계속해서 얘기를 했다. “내가 시를 쓰는 거하고, 니가 시를 쓰는 것은 달라.” “나는 노래를 만들고나서 여력으로 시를 쓰지만, 너는 시를 쓰고나서 여력으로 노래를 만들어야 하는 거야.” “그러니까 너의 본류는 시인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라”고 했다. 그리고 방학 동안에 시간도 많을 테니 그럴 때 시를 써 두는 게 좋을 거라고 덧붙였다.

전화를 끊은 후 나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사람처럼 멍해졌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시를 안 쓰고 지낸지가 10여 년이나 되었다. 그렇다고 그동안 아무런 일도 안 하고 지낸 것은 아니다. 시와 노래에 대한 글을 써서 책을 냈고, 거기에 따른 시노래(Poemsong)도 만들어 세상에 선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니 그 친구 말이 맞았다. 나는 본래 시를 쓰는 사람이고, 시를 쓰다가 부수적으로 작곡을 하였다. 그러던 것이 주종이 바뀌어 엉뚱한 길을 걸어왔고 내 본업을 잊고 살았던 것이다.

시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먹고 오랜만에 책상 앞에 앉아 뭔가를 쓰려고 했는데 될 듯 될 듯 하면서도 중간에서 더 이상 전개시키지 못하고 번번이 펜을 놓았다. 너무 오랜만이어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처음부터 시를 다시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책장을 뒤져 시작법에 관한 책을 읽었다. 그러나 하나같이 어렵기만 하고, 정작 시를 쓰는 데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상징이니 알레고리니, 또는 메타포와 파라독스 같은 것을 설명해놓았는데 도대체 그것들이 시를 쓰는데 무슨 도움이 되는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나는 그런 류 책들을 멀리 치워놓고 평론집과 문학지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간간이 시 창작에 관한 글들이 실려있었는데, 실제 창작 중에 부딪쳤던 문제들을 써놓은 시인들의 글들은 나의 갈증을 조금씩 해소시켜주었다.

이러한 글들은 시 창작의 실제문제들을 다루고 있어서 시 쓰기에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분명 도움이 되는 것들이었다. 나는 몇 번이고 반복해서 그 글들을 읽으면서 속으로 흥겨워지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초파리」라는 시를 쓰기 위해 며칠을 하얗게 지샜다는 정영숙 씨와, 좋은 시만 쓸 수 있다면 무슨 일이라도 하겠다는 안오일 씨, 그리고 시를 배우기 위해 서울에 있는 평론가에게 시를 보내어 평을 받아 수정을 거듭하는 김선숙 씨 등, 시에 대해서 고민하는 사람들이 생각났던 것이다.

그들에게 이런 글을 보여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처음에는 꽁꽁 숨겨놓고 나만 보고 싶었던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내 마음이 너무 착했다(?). 그래서 나는 그 글들을 몇 부 복사해서 내 주위에서 시 쓰기에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나눠주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 그게 아니었다. 그런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어디 내 주위에만 있으랴. 전국의 어느 곳에나 그런 사람들이 수없이 많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이쯤에 이르자 나는 욕심이 생겼다. 그들에게 다 볼 수 있도록 해주어야겠다는 욕심 말이다. 기왕에 만드는 김에 내용도 더 보충해서 탄탄한 책으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마음먹고 전국의 내로라하는 시인들에게 전화를 했다. 시 창작에 대한 강의노트가 있으면 보내달라고.남쪽 끝 작은 항구의 별 볼 일 없는 사람의 부탁이었는데 뜻밖에도 그들은 시 창작에서 부딪쳤던 실제의 문제들을 다룬 강의 노트를 선뜻 내주었다. 불과 일주일 만에 원고들이 다 들어왔고 나는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마웠다.

이제 그 원고들을 세상에 내놓는다. 창작에 고민하는 습작기의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시인의 근본을 얘기한 정일근의 「시인을 만드는 9개의 비망록」부터 실제 창작 과정을 다룬 「즐거운 시 쓰기」를 읽고 자신의 시를 다듬어 간다면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책이 나오면 자기가 강의하는 대학의 교재로 쓰겠다면서 언제 나오냐고 재차 물어오는 오봉옥 시인이 고맙고, 얼굴 한번 보지 못했는데도 선뜻 청탁에 응해주면서 원고료는 노래 만드는 작업비에 보태쓰라고 하던 최영철·조재도 시인 또한 고맙다. 또 친분관계가 있다는 죄(?)로 귀중한 원고를 보내준 도종환·오철수·정일근·이정록·최성수·안도현·이응인·안상학·박영희·김수열 시인들께 고맙다는 인사를 드린다. 한국글쓰기연구회와 교육문예창작회에도 감사드린다. 재수록을 허락해 주었기에 이만한 책을 만들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마치면서 나의 본류가 시인임을 다시 일깨워준 백창우에게 조용히 대답한다.

“창우야, 시 열심히 쓸게. 그래서 10년쯤 후에는 신경림 선생님만큼이나 좋은 시를 쓰는 시인이 되도록 노력하마.”

꽁꽁 감춰두고 싶었던 원고들을 세상에 내놓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시 창작에 고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참고 자료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무튼 나는 너무 착해서 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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