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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짹! 13 아나 14 당신 15 도곳대춤 16 선물 17 우우 18 문어짬뽕을 먹다가 19 깨끗한 어둠 20 풍경 21 그 족발집 22 겨울비 맞는 단풍나무를 보며 23 우린 아주 조금만 본다 24 사랑 25 한몸 26 공황장애 27 얼굴 28 안 좋은 집 29 대저 좋은 시(詩)란! 30 파랑 31 김제 32 예순일곱 살 33 쇠아치 34 빈 들판에서 35 천국 36 미스 고 37 하늘이 높은 것은 38 먼 곳을 볼 땐가 보다 39 적막하다 40 구절초 41 서설(瑞雪) 42 겨울, 깊다 43 백화점 44 백창우 45 강경식당의 힘 46 매생이탕 불이설법(不二說法) 47 목포 48 쌍놈 49 유언 아닌 유언 50 짹! -내 詩를 위해 51 2025 눈 오는 날 54 할아버지 55 지극한 사랑 56 밥그릇 57 연둣빛 58 심연(深淵) 59 소나무 60 안개 61 1994 오살댁 일기 1 64 오살댁 일기 2 65 오살댁 일기 3 66 오살댁 일기 4 67 오살댁 일기 5 68 발문 정윤천 (시인) 69 삶이, 견딘다는 말의 엄숙한 초대이었음을 깨달으러 가는 이의 더듬거림에 대하여. 詩作 노트 89 표사(表辭) 안도현 (시인) 91 표사(表辭) 안치환 (가수) 93 |
유종화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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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리에서 시집와
오살댁이라 불리는 민수네 엄니가 오늘은 입 다물었다 서울서 은행 다니는 아들 자랑에 해 가는 줄 모르고 콩밭 매며 한 이야기 피사리할 때 또 하고 어쩌다 일 없는 날에도 또 그 자랑하고 싶어 옆집 뒷집 기웃거리던 오살댁 오늘은 웃지 않는다 아들네 집에 살러 간다고 벙그러진 입만 동동 떠가더니 한 달 만에 밤차 타고 살며시 내려와 정지에 솥단지 다시 걸고 거미줄 걷어내고 마당에 눈치 없이 자란 잡초들 뽑아내는데 오늘따라 해는 오사게 길고 오살댁 오늘은 입 다물었다 --- 「오살댁 일기 1」 중에서 뒤울안 흙담 밑에 봉숭아꽃 오지게 피었습니다 오살댁 꽃잎 하나 지면 서울 쪽 한번 쳐다보고 꽃잎 하나 떨어지면 막내딸 떠올리다가 끝물 몇 잎 따서 마른 손에 동여매고 오살양반 헛기침하며 돌아앉아도 오살댁 뒷짐지고 마실 나갑니다. 정갈한 햇살 장꽝에서 뒹구는 날 고샅길 휘이 돌아 정읍아재 만나면 봉숭아빛 얼굴로 인사도 하면서 --- 「오살댁 일기 2」 중에서 닷새 동안 품앗이하다 몸살져 누운 오살댁 공판장에서 허리 다쳐 들어온 오살양반에게 아랫목 내주고 몸빼 줏어 입으며 일어납니다 보일러 놓을 돈 보내준 것으로 올 한 해 효도를 끝냈던 터라 어김없이 전화통은 울리지 않고 민수 서울 가던 날 오살댁 인자 고생 다 혔구만 오살양반은 고생 끝났당께 동네 사람들 부러워서 던지던 말 귓가에서 쟁쟁거립니다 오살댁 서울 쪽 한번 흘끔 쳐다보더니 오살양반 들릴락말락하게 한마디 합니다 …… 오살헐 놈 --- 「오살댁 일기 3」 중에서 사는 것이 어찌 한숨뿐이랴* 논고랑 돌아 밭고랑 돌아 벼포기 촉촉이 적시며 오사럴 오사럴 흘러가는 두월천처럼 오순도순 한세상 껴안고 흐르다 보면 찬바람만 몰래몰래 마당 가를 휩싸고 돌아도 텃밭의 호박 덩굴은 새순 내밀고 나락 모개 오지게 영글어가는 것을 --- 「오살댁 일기 4」 중에서 민수네 집 뒤뜰 단감나무 감꽃 필 무렵부터 동네 아이들 다 모여 오살댁 심부름도 하고 민수 눈치 슬슬 살피던 우리 동네 단 하나뿐인 민수네 집 뒤뜰 단감나무 겨울비에 젖어 갑니다 아직 내 목젖에 남아 세상 온통 물들이는 단감 맛 --- 「오살댁 일기 5」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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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견딘다는 말의 엄숙한 초대이었음을 깨달으러 가는 이의 더듬거림에 대하여 -정윤천 (시인)
1 발문(跋文)이라는 명사가 있다. 시집이나 소설 등의 간행물 뒤에 붙이는 일종의 ‘박수’ 비슷한 말을 가리키는 어원이다. 해설이라 부르는 것도 있는데 그건 좀 문중이 다른 영역이다. 목차에 놓인 작품들을 고도의 감식안으로 일별하거나 오독(?)하는 행위의 일체 방법론이다. 약간 극단적인 발언으로 비칠 수도 있으려나. 이는 평론가라고 부르는 일종의 전문 집단이 달려들어 치르곤 하였는데, 그런 글들에 따르다 보면 골치가 아파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시집의 경우 거기에 놓인 시들의 편수보다 더 많은 서책의 이름들과 명문이며 명구들은 물론 철학적 사유이자 비유들이 마치 채소전의 나물들처럼 난형난제하곤 하였는데, 정작 앙꼬 없는 붕어빵식의 말잔치들이 차고 넘치는 경우가 허다하였다. 이럴 때면 시와 시인은 자취를 잃고 평론가와 평문만이 남아 그 자리를 차지하곤 하였던가. 어쩔 땐 시를 살피는 방해꾼 노릇들을 하였다. 각설하고, 현재 우리들이 생산하거나 소통하는 작금의 시들 대부분은 어딘지 본래의 견성(見性)들을 잃은 듯 보이는 혐의가 시간이 지날수록 뚜렷해 보인다. 이는 위에서 거론한 평론가들의 발호(跋扈)와 그 위세가 끼친 흠집이기도 했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시들은 쪼그라들었고, 주먹이 큰 평론가나 평론 앞에서 주눅이 든 시들은 그것들의 눈치를 살피는 참상에 이르지는 않았는지. 어쩌자고 학문적인 자세의 평론들이 자꾸만 시를 감정하고 계체하며 시의 동작들까지 일정한 방편으로 견인하는 추세에 이르렀을까. 물론 반성도 없다. 이대로 가면 한국의 모든 시들은 지금처럼 어딘지 지적 사유들에만 등을 기댄 ‘몸 없는’ 문구들만 만지작거리는 노역을 감당하다가 죽어 나가게 될지도 모를 일로 여겨지기까지 하였다. 한편에선 ‘로봇’ 시들까지 침략해 들어오는 환란(患亂)의 상태가 점쳐지는 분위기에 이르는 중이다. 그러나 시는 여전히 잘 쓰는 게 목적이 아니라, 잘 비춰주어야만 하는 특유의 종목이 아니었을까. 길을 잃은 밤중에서 발견한 산속 오두막의 작은 불빛 같은 치명적인 마주침 들을 찾아 나서는, 아, 이럴 때면 필자의 경우에는 도대체 어디서부터인지, 잘 그린 그림책 같은 시구 같은 게 떠올라 주었는데, “얘들아, 이제 불을 꺼야 할 시간이다”라고 하였던가. 안도현이 쓴 꽃게인가 꽃게장인가 하는 시에서 나오는 장면 같은 것 말이다. 꽃게 한 마리가 꽃게장이 되기 위하여 인간의 손길이었을 뜨거운 장에 잠길 때, 꽃게의 어미가 품에 품은 꽃게의 알들이나 새끼들을 향해 내오는 저토록 맹렬한 별사(別辭) 한 마디. 거기에 무슨 해설 같은 게 끼어들 여지가 남아 있으랴. 시는 다만 그렇게 그것만으로 시의 끝동을 마치면 되는 아름다운 방정식이 아니었던가. 사설이 너무 뚱뚱해지고 말았다.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서야 유종화 형의 시들을 가까스로 여기 와서 만난다. 그러니 이유 여하를 반납하고서 우선 반갑다. 그리고 대가리(?)만으로 지어낸 뻘소리들이 거세된, 한 사람의 유종화가 단 한 사람의 유종화로 살아낸 상처투성이의 몸뚱아리들이 현재해 있는, 그가 쓴 시 속에서는 시 밖에는 아무런 동작도 고개를 내밀려 들지 않는 맨사데기의 시편들이 고여 있어서 마음이 한참이나 더 고마워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므로 이따위(?) 시들에 대한 소감 같은 것일랑 제목도 “발문”이기에 발로 써도 되겠다는 안심부터 찾아드는 게 아닌가. 귀뚜라미 울음 딱 두 마디다 고요하다, 베란다의 육체는 문득 어느 무명의 재즈 기타리스트가 죽기 전 마지막 있는 힘을 다해 퉁겼다는 그 두 마디 재즈는 영가(靈歌)가 되고 고요, 숨쉰다 어느 날 나처럼 - 「적막하다」 베란다의 육체에 기대어 시인은 십중팔구 입에 담배를 품었을 것이다. 많이 물 때는 하루에 다섯 갑도 넘게 깨물었던 뜬구름파 인생이었다. 아는 사람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는 시인이 되기 전에 먼저 바닷가 마을(목포)의 골목 끝에 놓인 여학교의 담벼락 안에서 국어 선생님을 지냈다. 거기에서 마쳤으면 그의 인생도 한결 순탄했을지 모르는데, 기타를 만지작거리고 시인이 되면서부터 일생의 사연이 길어지고 탈이 붙었다. 이후로는 지금까지도 ‘시노래’라고 불리는 영역에 발목을 밀어 넣은 노래패의 작곡자가 되었던 셈이다. 김준태 시인의 ‘감꽃’, 정호승 선생의 ‘내가 사랑하는 사람’ 등의 시들을 가사로 삼아 거기에 콩나물 다리들을 붙이기 시작하였던, 아, 이 나라의 민중사에 불려 나간 ‘시노래 운동’의 거시기한 인물이 하나 태어났던 셈이다. 이를테면 그 방면의 한 전설과도 같은 “나팔꽃” 멤버의 축이 되었다. 그는 가끔 예의 나팔꽃 무대에 올라 오리 멱따는 소리로 노래도 불렀다. 필자보다는 박자를 잘 맞추는 그의 노래를 심지어는 좋아하기까지 하는 무모한 여성 팬들까지 생겨났다. 다시 시로 돌아가자. 가을인가 보다. 귀뚜라미 울음소리는 두 마디가 맞다. 귀뚤귀뚤. 세 마디 한다고 귀뚤귀뚤귀뚤 하는 새끼가 있으면 아마도 나처럼 생겨먹은 귀뚜라미일 것이다. 그리하여 이 아프면서 늙어가는 음악인(?)은 자연스럽게도 자신의 존재일지도 모르는 “무명 기타리스트”를 이마에 떠올린다. 날씨가 추워지면 귀뚜라미는 떠날 것이다. 그에게서도 나에게서도, 이 세상의 “적막” 속으로 적막을 남겨 두고서. 통증이 상반신을 돌아다니는 원인불명의 병을 일 년쯤 앓다가 견디다가 아-, 이 정도로는 죽지 않는구나 깨달았다 통증도 한몸이다 - 「한몸」 시의 내용 때문만이 아니라, 그는 꼭 죽지 않을 만큼 아픈 사람이다. 지금도 연속으로 아프는 중이다. 차를 몰고 가다가 ‘공황’이 나타날지 몰라서 원행을 못 나서는 쓸쓸한 작곡가 시인. 그를 만나려면 광주에서 백양사 휴게소를 거쳐서 정읍까지 가야 한다. 이래저래 불편한 인간인데, 아직도 그가 보고파서 정읍까지 발길을 나서는 무속인(시인 예술사 따위들)들이 남아 있다. 어쩌면 미증유의 사람이다. 사람의 허리가 굽는 것은 어쩌면 마음대로 석양을 바라보는 일이 얼마나 빛나는 행위였던가를 깨우쳐 주려고 한 섭리의 장난일 것도 같았다. 그러니 통증도 “한몸” 아니겠는가. 누가 나에게 넌 ‘우우’를 잘하는 놈이야, 라고 말한다 이 사람 저 사람을 연결하여 한 판 만드는 일을 잘한다는 말인데 잘 되면 좋고 안 되면 조금 심란한 어찌 생각하면 무책임하다는 말일 수도 있는 그 말 붉은 꽃무릇 무더기 무더기인 ‘우우’의 말뜻은 말야 함께 가는 거기부터가 선물 같은 생의 길이라는 거야 - 「우우」 그렇구나. 그와 내가 한때 미련하게 어울려서 한 시절의 다사다난과 불우들을 건설하였거나 멸망시켰던, 선운사 아랫동네의 다정민박 시절. 객지에서 만나 위아래를 정했던 봉진 형네 도솔점방 앞자락의 꽃무릇들은 철이 되면 “우우” 피어났지. 대책도 없이 일말의 책임도 없이. 예민하다. 거기에서 데려왔구나. 처음엔 정체불명으로 여겨지던 저 “우우”라는 말소리를, 맞다. 지금은 아니라고 하여도 당신은 언제나 우리들을 향하여 “넌 우우를 잘하던 놈”이었지. 사람의 다리를 잇던 마음씨 좋은 촌장마냥. 공황장애로 갑자기 숨이 안 쉬어질 때는 급히 방문 틈으로 코를 내밀고 또 급히 아, 나는 살았다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부턴 손녀의 고 고 얼굴이 할아버진 나만 좋아해 하며 짱짱한 개망초꽃님으로 오시고 아, 나는 살아 있다 고통도 데리고 살 수 있는 얼굴이 오셨다 - 「얼굴」 어언 “손녀의 얼굴”이 시인을 살게 하는 절대적인 명제가 되었다. 고통이어도 살 수 있게 하는 새 얼굴이 오신 것이다. 돌아보면 우리들도 모두 우리를 살게 하였던 그 무슨 얼굴 비슷한 존재가 가난뱅이 같은 우리들 곁을 함께 해주었었던 건 아니었을까. 어쩌면 필자에겐들 방황과 유랑의 모난 얼굴 한쪽들이 각각으로 찾아와 내 마음의 허망한 밀밭 가를 건너오게 해주었으리라는 생각이 깊었다. 시인의 그 “얼굴”이 내게도 마침 고마운 마음으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당신 떠나고 이십 년 되었을 즈음 아빠, 이젠 우리 걱정 마시고 좋은 여자도 만나세요 했다 그날 하루 종일 새파란 하늘 그렁그렁했다 그렁그렁했다 그렁그렁- 가까이 아득하게 - 「파랑」 물결의 이름이기도 색깔의 명칭이기도 했다. 이 시에선 무엇으로 가져다 붙여도 유효할 것이다. 종화 형의 형수가 그의 곁을 떠난 지 벌써 이십 년을 훌쩍 넘긴 걸 시를 읽으며 알았다. 화살이 세월 같았고 세월이 화살 같다는 생각이 기어든다. 그때 그 학삐리들이 자라서 하나는 직장을 나서는 사회인이 되었고 또 하나는 결혼을 하여 몸이 쇠한 할아비의 품에 손녀를 안겨 주었다. 그게 그에겐 얼굴이자 약수가 솟아나오는 새암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시의 무대는 “이십 년”의 비절참절(悲絶慘絶)을 넘긴 무렵의 지난날의 회상에서 발화되었다. “아빠, 이젠 우리 걱정 마시고 좋은 여자도 만나세요, 했다” 그렁그렁 물결이 인다. 아니면 그렁그렁 가슴에 청색의 물감이 든다. 가까이서 혹은 아득한 저쪽으로부터. 다섯 편의 시들을 우선 차례를 따라서 살펴보았다. 여기 있는 다섯 편의 시에는 그와 나 사이에 약간의 여담이 담겨 있었다. 하루는 그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삼십 년이라던가 그러고도 몇 년 만에 다시 시를 썼으니, 필자가 관계하는 잡지 등속에 신인 시로 재등단을 시켜 달라는 주문이었다. 당시에 나는 『시와 사람』이라는 문예지의 편집을 맡고 있었고, 또다시 어영부영하는 틈에 『시의 시간들』이라는 문화잡지 창간호를 떠맡아 준비를 하는 중이었는데, 처음엔 엉뚱하거나 어림도 없는 주문같이 들리기도 하였다. 도통 시를 쓰지 않아서 그렇지 등단 연도로만 따지면 중견을 넘어선 예비 원로 시인께서 신인 작품을 내겠다니, 일단은 코가 막히고 이마에서는 열불이 났다. 설왕설래 끝에 새 잡지에 정해져 있는 “신작 초대석”의 자리에 그의 시를 내보이기로 하였다. 첫 청탁자의 순서를 뒤로 미루는 실례를 무릅쓰고서, 보내온 다섯 편의 시를 왕창 그 자리에 들이부었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지난해에 저지른 여러 가지 못된 일 중에 가장 장했던 일에 속했던 것도 같았다. 그렇게 찾아왔던 모처럼의 그의 시들은, 시인에게로 다시금 마중물이 되어서는 이 시집의 근간을 이루는 후속작들이 태어나는 소중한 역할을 하였다는 후문이다. 과작(寡作)인 그에게 다른 면의 “얼굴”일 수도 있는 시집이 따라왔던 것이다. 2 남아 있는 시들을 더러는 시처럼, 더러는 이 글의 제목으로 삼아 본 “삶이, 견딘다는 말의 엄숙한 초대이었음을 깨달으러 가는 이의 더듬거림에 대하여”의 인상에 대한 방식으로 건너기로 하면서, 시인의 서사들에게로 저마다 말을 붙여 볼 수작이다. 위에서 한 차례 거론했던 것처럼 잘 쓴 시들보다는 어째서인지 무엇 때문인지 통째로 통쾌해지거나 서러워지기도 하는 그런 시들 몇 편은 살아있어 필자의 발길질(?)에 힘을 돋우어 주었으면 싶었다. 아버지도 쇠아치 나도 쇠아치 내 아들도 쇠아치 그래도 나는 선생 노릇 하느라 조금 나아졌지만 하늘도 쇠아치 저 산도 쇠아치 나도 여전히 쇠아치 차암- 저 꽃도 말 없다 - 「쇠아치」 *쇠아치 : 말수가 적은 사람. 김제 지역 방언 국어 선생 출신들이나 알고 있음직한 처음 대하는 낯선 말이다. “쇠아치” 그 말에 문득 삼대가 깃들어 계신다. 당신의 춘부장을 뵌 적이 없고, 아들 태영이는 여러 번 겪었는데, 쇠아치 중의 쇠아치는 맞다. 어느 날 “차암” 말 없는 꽃 보다가 위로는 아버지 생각나고 아래로는 아들 생각이 깃들었는가 보다. 필자도 울 아부지 옛사람답지 않은 장발 머리를 고집하셨고 나도 언제부턴가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지낸다. 그리하야 때로는 유전자라던가 그런 것들도 한 편의 시로 불려 왔다. 어느 날 어머니가 권태야 권태야 하고 불렀다 낯설었다 병명도 없이 앓고 있는 아들을 위해 받아온 이름 어머니는 그 이름을 부르면 병이 나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길이 없는 사람은 진위를 의심하지 않고 길을 믿는다 정말 깨끗한 믿음 권태야 권태야 아들이 싫어하는 기색을 알지만 어머니는 틈만 나면 주문처럼 외우시기도 했다 요즈음 가끔 권태야 권태야 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이명(耳鳴)이어도 좋다 어머니께 사랑받고 있나 보다 하며 하늘을 본다 - 「사랑」 어머니도 차암, 어쩌면 그에게로 그리도 오묘하고도 깜찍하게 어울리는 제목을 붙여 주려 하셨을까. 김제 골째기 어느 암자 노스님에게로 쌀 닷 말은 이고 가 바치셨을 터인데, “오사럴 놈”은 제 평생의 종화만을 고집하고 말았던가 보았다. 권태도 없이, 다음에 그를 만나면 나라도 여지없이 권태 형 권태 형 하고 “쇠아치”도 없이 불러 보아야지. “사랑”에 관계되는 시로는 더없이 속내 깊어 보이는 명작으로 읽힌다. 아파트로 들어가려는데 화단 쪽에 새가 한 마리 떨어져 있다 가까이 가 보니 죽었다 베란다 유리창에 부딪혔을까 묻어줄까 하다가 내일로 미뤘는데 밤잠 설치고 늦게 나가보니 주검이 없어졌다 둘레둘레 살펴보니 깃털이 바람에 날린다 길고양이가 다녀간 모양인데 고요하다 누군가 우스갯소리로 한 ‘참새도 죽을 때는 짹! 한다’는 말이 떠올랐고 어디선가 맑은소리 짹! 했다 - 「짹! -내 詩를 위해」 시제는 짹이고 부재는 내 시를 위해라고 붙였다. 여지없는 자신의 시론이자 한 시인이 처음으로 시집을 엮는 만단정회(萬端情懷)의 심정을 그려 보였다. 교묘하고 겸손하기도 하였다. 그러니까 이번 시집은 빼도 박도 못하고 “짹!”이라고 한다. 유종화는 대개 그렇다. 새지곡백화점약국에 가니 파김치 냄새가 난다 환갑 넘은 딸이 노모가 드시고 싶어 한다는 김치를 담갔다고 했다 아나, 어릴 적 엄니가 내 입에 넣어주던 한 가닥 나도 먹고 싶다 아나 아- - 「아나」 “아나”는 그러니까 어른들이 아기씨을 향하여 입 벌리라는 신호다. 그러면 서로 따라서 입들을 벌렸다. 입술을 닫으면 입안에서는 대부분 목화꽃 같은 것들이 피어났다. 아-하고, 잠시 서 있고 싶어진다. 코앞이어도 못 간다 피란 온 어르신 돌아가시기 며칠 전 주먹밥 여섯 개를 부탁했다 오십 년 전 엄마가 싸 준 주먹밥 여섯 개, 그거 먹고 여기까지 왔어 여기까지 왔는데 철조망에 막혀 갈 수가 없다니, 바로 코앞인데도 옛 얘기인 줄 알았다 터널을 지날 때마다 지진 난 듯 아득해져서 약을 삼켜도 정신 줄 놓쳐 건널 수 없는 저쪽 이십 년 만에 코앞 건넜다 나, 서산 왔다 - 「공황장애」 “서산”은 시인에게 누구이고 무엇일까. 이십 년이라면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한 세월인데, 철조망도 없는데, 왜 아니 못 가보았을까. 일단은 궁금해서 좋다. 궁금해야 시도 되고 이야기도 되는 것 아니겠는가. 이것 또한 도대체 당신의 “더듬거림”의 슬픔이거나 쓸쓸함들이 아니겠는가. 봄이 오면 어디엔가 있을지도 모를 어느 “서산”에 필자인들 한번은 다녀와야지. 공연 끝나고 내 집으로 왔다 이불 내주니 그냥 잠들었다 아침, 나는 학교 출근하고 돌아오니 아직 자고 있다 다음날도 퇴근하고 오니 또 자고 있었다 나흘째 저녁 돌아오니 몸만 쏙 빠져 갔다 겨울잠이란 다 살아낸 끝과 약속되지 않은 시작이 붙어있는 정중동이려니 생각만 했는데 삼 일 드러누워 허리가 아파보니 겨울잠이란 죽음과 부활이다 공연 끝나고 죽을 수도 있었는데 부활한 것이다, 창우는 - 「백창우」 백창우 형도 무속인(자유인)이다. 고무신을 끌고 무대에 오르고, 아이들을 위하여 주옥같은 동요를 쉼 없이 짓고, 기타를 퉁기며 노래 부르고, 맑고 겸손하고 아름답고, 시인 덕분에 알게 된 그와 몇 번이나 어울려야 했던 일이 있었던 동안 내가 보았던 “창우”는 그런 사람으로 정해져 갔던 것 같았는데, 시인과는 한편으로 영혼의 쌍둥이 같은 점도 적지 않았다. 허기는 둘 다 “나팔꽃”들이었으니까. 친구네 이불에서 겨울잠을 퍼 자고 일어나서 다짜고짜 말도 없이 사라질 수 있는 이 고수들의 수준이 즐거웠다. 시와 노래와 사람과 유랑과 연민 그리고 천진무구의 순간들이며 그것들의 온통 같은 부활은 아니었을까. 당신들도 어디에 “종화”만 한 길동무와 “창우”만 한 마음 벗 하나씩은 두었는지, 오늘쯤은 이빨 닦고 나온 목욕실 문 앞에서, 만약에 없더라도 기억날 때까지는 뚤레거려 보아야 할 것 같았다. 그래야 그 옆자리에 기어들어 가서 언젠가 배급될지 모를 외롭고 춥고 배고픈 날의 겨울잠에 쏟아져 들어갔다가, 혹시 그 친구는 담배라도 태우려고 베란다에라도 묻혀 있던 동안에, 불쑥 부활하여 북쪽 섬의 흰곰처럼 밤새 내린 백설마냥 하얗게 새로워져 볼 수 있을 것이 아니었겠는가. 창우도 종화도 사흘 잠자고 나서 부활했던 것처럼. 술 취한 돼지 계엄 끝나고 순댓국집 종일 틀어놓은 티브이를 닷새 개괄하신 주인아주머니의 말씀 “쌍놈” - 「쌍놈」 서정춘 선생의 “봄, 파르티잔” 이후에 한국에서 발표된 사회 시로는 우뚝 선 경지와 같다. 어쩌면 나태주 선생의 “풀꽃”처럼 국민 애송시로 발돋움할지도 모르겠다. 어떤 뜻있는 독지가의 성원에 힘입어 종화 형의 정읍에도 충청도의 풀꽃문학관 같은, 쌍놈문학관이라도 한 채 건립될 운명이 따 논 당상이었으면 좋으련만. 아버지 돌아가시고 시골집 팔아 김제 시내 아파트로 이사 가신 어머니 말씀 여기가 천국이다야 풀이 안 난다야 - 「천국」 이 시 또한 쌍놈문학관 벼람박에 액자에 담아 내걸어도 될 만한 수작 아닌가. “김제 시내 아파트로 이사 가셨을 때” 종화 형 엄마는 거기가 천국이라고 하셨단다. 전 미칠 광자 아무개랑 또 그 앞대가리 벗겨진 충청도 장 목사 나부랭이(이름이 잘 생각 안 남)들이 수입해 들어와서 지들 마음대로 팔아먹는 하나님을 알현해서가 아니라, 아, “풀”이 안 나서 펼쳐진 무풀천국이라니. 그러고 보니 종화 형도 시를 참 잘 쓰는 사람 같다. 시인 맞네. 사실은 맨 마지막으로 “미스 고”라는 시를 언급하여 투박하고 거친 졸고를 매듭지을까 하였는데. 행간에 “나훈아”란 인간의 덜떨어진 이름이 나와 그만 기분이 잡쳐서 관두기로 하였다. 그리고 이제 2부에 남아 있는 일련의 시들은 저 정처 없는 무속인 유종화를 시인으로 캐내어 준 등단작들, “오살댁 일기”가 자리 잡고 있었는데, 필자는 어쩐지 그 작품들 속으론 들어가지 말기로 하였다. 그만큼이나 오살댁 시리즈들은 이미 많은 평론가나 시인들이 짓밟고(?)들 갔을 만큼 문단의 어귀에서 거론이 되었던 작품들이었기 때문이다. 어디 교과서 한 귀퉁이에라도 실려 있을지도 모른다. 손녀의 얼굴과 함께 찾아온 시의 얼굴들이 또한 그의 죽지도 못하는 병고의 날들에 약수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끝동머리에 한 말씀 더 놓기로 하면, 당신이 국어 선생 출신이니만큼 원고 어디에 글러 먹은 오탈자나 문법 같은 게 있으면, 제대로 고쳐서 쓰실 것은 물론이고 길이가 넘 짧아 서운하면 더 잇대어 쓴 다음에 사용해도 암시랑토 않다는 말을 전하면서 난폭한 발짓의 발문을 그칠까 하오. 사랑하오. 형이 더 건강해졌으면 하는 마음을 함께하면서. 詩作 노트 어릴 적 우리 집 대문 옆에 두엄자리가 있었습니다. 닭똥, 소똥, 돼지똥, 지푸라기 썩은 것, 개밥 남은 것 등을 내다 버린 곳이었지요. 한마디로 말하자면 다 쓰고 남은,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것들을 모아두는 곳이었는데 무더기 위에는 늘 김이 서려 있었습니다. 그 못난 것들이 모여서 함께 섞여 썩어가면서 화를 내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주인에게 버림받은 분노의 표출이라고 생각했었지요. 그런데 그 김 서린 부근을 지나칠 때면 콧구멍에 확 끼쳐오는 냄새와 함께 어떤 훈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열을 내고 있었던 게지요. 세상에서의 마지막 몸부림이었어요. 그냥 이렇게는 사라질 수 없다는 그 몸부림. 그들은 높이가 올라갈수록, 잡것들이 더 많이 어우러질수록 진한 열기를 만들어냈습니다. 사람들은 그 진한 열기 속에 비닐로 싼 홍어를 밀어 넣기도 했어요. 삭히는 거죠. 그렇게 삭혀진 홍어는 집안에 큰일이 있을 때 귀한 음식으로 쓰였습니다. 버려짐 속에서, 그 끓던 분노조차 녹여버리는 발효였습니다. 그들은 또 한 번 자신들의 살아있음을 증명해 주었어요. 그렇게 속이 다 타들어 간 뒤에는 호박밭으로, 배추밭으로, 혹은 뒤뜰에 있는 감나무 아래로 이사 갔어요. 거기서 호박 모종과 어우러져 실한 호박덩이가 되기도 하고, 김치가 되어 식탁에 오르기도 하고, 또 감나무 뿌리에 스며들어 알 굵은 홍시가 되어서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갔던 것들. 바쁜 생활 속에서 큰 것만 좇다가 자칫 흘리고 가버린 것들. 이런 것들을 두엄자리처럼 한곳에 모아 썩히려고 합니다. 그게 삶이고 시니까요. 시인의 말 신경림 시집 『농무』를 읽었다 김민기 노래 「친구」를 들었다 그 후로 시와 노래에 관심을 두고 살았다 그것뿐이다 2025년 3월 유종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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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화 형하고 나는 절친이다. 작당 40년이 넘었다. 그이는 일찍이 시인이었으나 시집을 낸 적이 없어 시인이 아니었고, 선생이었으나 일찍이 사표를 던져 선생이 아니었고, 작곡가였으나 히트곡이 없어 작곡가가 아니었고, 술꾼이었으나 병을 얻어 술꾼이 아니었고, 아들 귀한 집 외동이었으나 주머니를 자주 열어 재산을 모으지 못했다. 실패가 재산인 사람, 혹은 “깨끗한 어둠” 같은 사람. 그이가 평생 처음 내는 이 시집의 시들을 읽다가 보면 “가까이/ 아득하게” 아프다. 자신을 과하게 드러내지 않으면서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려고 하는 여여(如如)함 때문이다. 이쪽과 저쪽의 경계와 구별이 불필요하다는 통찰을 제시하는 「당신」, 들판이라는 공간을 지금이라는 시간으로 전환해 시적인 여백을 만드는 「구절초」, 눈을 번쩍 뜨게 하는 개안의 순간을 노래하는 「서설(瑞雪)」, 사소한 기쁨을 존재론적인 발견으로 상승시키는 「천국」이 나는 좋다. 이렇게 말과 마음이 텅텅 비어 있는 시들을 근래 만나보지 못했던 터라 더욱 귀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니 이제 “기어이 가득하지 못했을까”라는 자탄은 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통증도 한몸이다”라는 깨달음을 얻었으니 아파서 답답한 통(痛)은 곧 사통팔달 통하는 통(通)이 될 것이다. - 안도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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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돌아보니 형이랑 함께 보낸 세월이 까마득합니다. 30년, 반평생을 같이 했습니다.
제 노래의 가사가 막히거나 알쏭달쏭할 때 짬짬이 멋진 도움 준 거 고맙고 잊지 않을 겁니다. 형이나 나나 음악을 배우진 않았지만, 몸과 마음이 동하여 글을 쓰고 노래를 만들고 있으니 참 행복한 일입니다. 그렇지요? 종화 형의 시집을 대하니 반갑고 축하드리고, 또 부럽습니다. 아참, 여러분께 살짝! 제가 아는 종화 형은 다른 이들에겐 어떤지 모르겠지만 제게는 더 이상 ‘쇠아치’는 아니더군요. - 안치환 (가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