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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원초적 풍요사회
제2장 가족제 생산양식: 저생산의 구조 제3장 가족제 생산양식: 생산의 강화 제4장 선물의 영(靈) 제5장 원시교환의 사회학 제6장 교환가치와 원시교역의 외교수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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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이 음울한 과학(dismal science)이라면 수렵채집 경제에 관한 연구는 그중 가장 음울한 분야임이 틀림없다. 수렵채집민에 관한 책들은 구석기 시대의 삶이 고달팠다는 주장을 거의 보편적으로 받아들여 그들의 삶이 파멸에 임박해 있다는 관념을 전하기에 여념이 없다. 하지만 수렵채집민이 실제로 어떻게 삶을 꾸려나갔으며, 또 그들의 삶이 도대체 삶다운 삶이기나 했던가에 대해서는 의구심만 남겨두고 있다. 책의 지면을 통해 굶주림의 유령이 이들 사냥꾼을 은밀하게 뒤쫓고 있다. 그들은 기술적인 무능력으로 인해 일말의 휴식과 잉여도 제공받지 못한 채 단순한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노동해야 하고, 이 때문에 ‘문화를 창조하기 위한’ 최소한의 ‘여가’도 즐길 수가 없다.
--- p.49 현존하는 수렵채집민은 대체로 원래의 생활근거지로부터 추방당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고유한 생산양식에 적합하지 않은 열악한 환경에 내몰려 있는, 권리를 박탈당한 구석기인들이다. 그들은 문화발전의 주요 중심권에서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어서 문화진화를 향한 전 지구적 차원의 행진으로부터 약간의 유예를 허락받은 채 이 시대의 은신처에서 살고 있다. 그들은 좀 더 선진적인 경제체계의 이해관계와 반응범위에서 멀리 벗어나 너무나 빈곤하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 p.59 물건에 적용되는 것과 동일한 폐기처분(debarassment) 방침이 인간에게도 적용되는데, 이는 앞서 논의한 것과 유사한 용어로 기술할 수 있고 또 유사한 원인에 귀속시킬 수도 있다. 이들 다소 냉혈한적으로 들리는 용어에는 휴대성의 한계점에서 발생하는 수익 감소, 최소한의 필수도구, 복제의 배제 등이 있는데, 이는 바로 영아살해, 노인살해, 수유기 성적 금욕 등 대다수 수렵채집민 사이에서 잘 알려져 있는 관행의 다른 이름이다. 아마 더 많은 인구를 부양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그러한 장치를 고안해 냈을 것이라는 추정은 ‘부양’을 ‘먹여 살린다’는 의미가 아니라 ‘데리고 다닌다’는 의미로 이해한다면 사실일 것이다. --- p.92~93 원시 사회의 ‘경제’를 논하는 것 자체가 이미 비현실적이다. 원시 사회에는 구조적으로 분명하게 구분되는 ‘경제’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는 분명하게 구분되는 전문화된 조직이라기보다 일반적인 사회집단과 사회관계, 특히 친족집단과 친족관계가 수행하는 어떤 것이다. 통상 ‘비경제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온 집단이 경제적 과정의 뼈대를 제공해 주기 때문에 경제는 구조라기보다 사회의 한 기능이다. 특히 생산은 가내집단에 의해 제도화되고, 가내집단은 통상 이러저러한 종류의 가족으로 구성된다. 부족 경제의 가구는 중세 경제의 장원이나 현대 자본주의 경제의 법인회사에 해당된다. 이들 각각은 각 시대의 지배적인 생산제도이다. --- p.139~140 루이스 헨리 모건은 가내경제의 프로그램을 ‘살아 있는 공산주의’라 불렀다. 이는 매우 적절한 표현이다. 가구생활이 경제적 사교성의 가장 차원 높은 형태이기 때문이다. 가구생활은 “능력만큼 일하는 개인에서부터 필요한 만큼 가져가는 개인까지”, 즉 능력에 따른 노동분업을 통해 각각의 과업을 부여받는 성인들에서부터 자신의 기여와는 상관없이 필요한 것을 제공받는 노인은 물론이고 어린이와 무능력자들까지 아우른다. 사회학적으로 표현하면 가구는 외부인과 분리된 이해관계와 운명을 가지고 내부인의 정서와 자원에 대해 일차적인 청구권을 가지는 집단이다. --- p.162 결국 호혜성과 추장의 관대성이라는 이상은 사람들의 종속을 신비화하는 데 기여한다. 관대성은 추장이 공동체로부터 받았던 것을 단지 공동체에 되돌려 주는 것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그것을 호혜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마 추장은 자신이 받은 전부를 돌려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 순환은 한 꼬마가 아버지가 준 돈으로 산 선물을 아버지에게 주는 크리스마스의 호혜성과 같은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가족적 교환은 사회적으로 여전히 유용하고 추장의 재분배도 마찬가지이다. 게다가 사람들은 재분배되는 재화의 다양성과 시기를 고려해서 재분배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구체적인 이익에 대해 고마워한다. --- p.212~213 부족사회의 빅맨은 오랜 기간 동안 대량으로 보관하기에 쉽지 않다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는 음식, 돼지, 혹은 그와 유사한 종류의 재화로 구성되는 권력기금을 운용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러한 정치적 기금을 축적하기 위한 추출장치는 발달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꼭대기로부터의 분배를 위한 재화의 비축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고 기술적으로도 어려운 것이다. 이 딜레마는 바로 화폐의 운용을 통해 해결 가능하다. 즉, 부를 상징으로 전환함으로써, 그리고 대부와 교환에 화폐를 계산적으로 활용함으로써 가능하다. 그 결과 재화를 대규모로 요구하는 것이 가능해지고, 그렇게 축적된 엄청난 규모의 권력기금이 분배되어 지위로 전환될 수 있을 때가 오는 것이다. --- p.332 선물은 거부해서도 안 되고 보답하지 않아도 안 된다. 대부분의 선물주기는 주로 사회적 효과를 발휘하는 도구적인 것이다. 한 부시맨 남성의 주장에 따르면, 심지어 물건에 대한 요구도 사람들 사이에 ‘좋아하는 감정을 형성한다’. 이것은 ‘그가 여전히 나를 좋아하기 때문에 내게 뭔가를 요구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마셜은 “내 생각에 선물주기는 적어도 사람들 사이에 무엇인가를 형성한다”라고 간략하게 덧붙인다. ‘선물주기’는 호혜성의 형식과 사회적 섹터라는 두 가지 측면 모두에서 ‘교역’과 구별된다. --- p.3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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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풍요로움과 인간을 위한 경제란 무엇인가에 대한 지적 고찰
20세기 중후반에 사회과학적 인식에서 한 획을 그은 저작을 엄선한 한울모던클래식스 시리즈의 두 번째 책으로, 인류학계에 큰 족적을 남긴 세계적인 석학 마셜 살린스의 1972년 저작이다. 『석기시대 경제학』은 우리나라에서 2014년 출간된 바 있는데, 이번 신판은 최근 영국 루틀리지출판사에서 루틀리지 클래식스 에디션으로 저자 서문 및 비평가 서문을 추가하여 재출간한 판본을 한국어로 출간한 것이다. 마셜 살린스는 이 책을 통해 수렵채집 경제가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노동만 해야 하는 생계경제를 대표한다고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경제학의 전통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수렵채집 사회야말로 원초적으로 풍요로운 사회였음을 증명하고 본래의 모습을 복원하려 한다. 샬린스는 이 책에서 인간을 보조하는 수단이었던 도구가 되레 인간을 지배하게 된 오늘날의 현실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살린스에 따르면, 지금은 노동자의 노동이 기계의 공정을 보충하게 되었고, 인간의 도구에 지나지 않았던 화폐가 기괴한 자기 증식을 통해 상품으로 매매되고 있으며, 무에서 유를 창출하는 금융자본이 실물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전 지구적으로 확산시키고 있는 신고전파 경제학을 인류학적으로 비판하는 것이다. 이 책은 결핍에서 출발해 상실로 끝나는 소비가 실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비록 50여 년 전에 출간되었지만, 모든 명저가 그러하듯 이 책의 비판은 지금도 유효하다. 살린스의 비판을 현재의 맥락으로 호출하면, 이 책은 당대 금융자본주의 체제의 모순과 그 모순을 떠받치고 있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신화를 폭로할 수 있을 것이며 인간 중심적인 경제 철학과 대안적인 세계관을 모색하는 데 의미심장한 지적 토대가 될 것이다. 진보라는 관념 뒤에 드리운 신고전파 경제학의 부르주아 이데올로기 폭로 사람들은 흔히 수렵채집민의 삶이 고달팠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삶은 최소한의 여가도 없이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구석기시대의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수렵채집민의 삶은 정말로 그토록 음울했을까? 이 책의 저자 마셜 살린스에 따르면 그렇지 않았다. 수렵채집민은 현대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풍요로웠으며, 어떤 의미에서는 현대인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았다고 그는 주장한다. 사람은 더 많이 생산함으로써 풍요로워질 수도 있고, 덜 원함으로써 풍요로워질 수도 있다. 전자가 시장경제에서 이야기하는 풍요로움에 가깝다면, 후자는 수렵채집민의 삶에서 나타나는 풍요로움에 가깝다. 수렵채집민은 주변에 널려 있는 것만으로도 식량을 얻거나 도구를 만들 수 있었다. 따라서 잉여나 여분을 가지는 일은 귀찮은 행위였다. 이 책은 수렵채집 경제를 기아와 노동에 시달리는 구석기적 생산양식으로 분류하면서 신석기 혁명이라는 신화를 만들어낸 신고전파 주류 경제학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폭로한다. 살린스는 신고전파 경제학의 진화와 진보라는 관념이 원시 사회의 경제에 대해 엄청난 오해를 초래했고, 이것이 현대인의 경제적 상식으로 자리매김함으로써 현대 자본주의 체제와 성장주의적 경제관을 정당화하는 중대한 이데올로기로 작용해 왔다고 주장한다. 또한 생산과 소비의 기본 단위로 작동하는 가족제 생산양식과 수렵채집민들의 경제관계를 입체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주류 경제학의 형식론적 관점과 개념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원리가 그들의 생산양식에 내재했음을 보여준다. 도구가 인간을 지배하게 된 오늘날, 인간 중심의 경제 철학 모색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얻을 수 없는 사회, 만인이 만인에 대해 투쟁하는 사회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다. 그러나 기존의 주류 경제학이 ‘합리주의’, ‘진화’, ‘진보’라는 이름으로 드리운 장막은 여전히 우리의 눈을 가리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마셜 살린스는 주류 경제학에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한다. 원시사회의 경제는 정말로 불합리하고 비효율적이었을까? 그렇게 말하기에는 무분별한 경제개발이 초래하는 환경 파괴와 인간성 말살이라는 대가가 너무 크지 않은가? 오히려 단순사회의 경제야말로 진정한 합리성과 효율성을 지닌 것은 아닐까? 지금까지 주류 경제학은 전체적인 생산성을 어떻게 증대시킬 것인가, 필수품의 효율적인 배분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라는 19세기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해 왔다. 하지만 이제는 급증하는 생산성과 급감하는 노동수요라는 조건하에서 지구를 파괴하지 않으면서 삶의 수단에 대한 접근을 보장하는 방법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할 때라고 이 책은 제안한다. 이를 위해서는 과거를 되돌아보고 모든 것을 완전히 새롭게 상상해야 한다. 이 책은 이러한 도전과 과제에 매우 부합할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경제인류학이 아닌 인류학적 경제학이라고 일침을 가했던 살린스는 2021년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이 책은 현재 한국 사회를 넘어 전 세계적 이슈로 부상하고 있는 빈곤, 불평등, 폭력과 전쟁, 환경문제의 극복을 고민하는 광범위한 독자들에게 풍부한 실증적 자료와 중대한 지적 비전을 제공해 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