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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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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사람 장민성, 나는 그를 떠올리게 되었다.
1904년 12월 2일, 주권을 잃은 나라 한 귀퉁이에서 가장 빈한하게 태어났던 사람, 그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1977년 2월, 겨우내 휘몰아친 혹한 중에 뇌출혈로 삶을 마감한 그였다. 남기고 싶은 말이 있었는지,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간절함인지, 그는 내 심장에 서서히 온기를 가져다주었다. 그는 버겁고 망망한 고해(苦海)같은 인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그 격랑을 헤쳐 나간 사람이었다. 일제 강점기이던 그 시절, 대다수의 젊은이들에게 동양의 작은 나라 조선은 돌파구 없는 꽉 막힌 벽이었다. 그는 주저앉을 수 없는 절박감으로 고향을 떠나야 했었다.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고향을 떠나게 된 그에게 일본은 일말의 가능성을 기대하게 하는 마지막 보루였던 것이다. --- p.10 일본으로 건너 온지 6년이 되는 1928년 12월 16일, 그는 노방전도단의 전도를 받아 미까와지마 호리네스 교회로 인도되었다. 어머니와의 사별 이후, 혼란했던 시간이 과거로 넘어가고, 새로운 삶이 시작된 것이다. 의지할 곳이 없었던 그에게 복음은 신혼의 아내와 함께 신앙생활에 열심을 다하게 했다. 일본에 나라의 주권을 빼앗긴 조선의 한 청년이 가정을 이루었어도 여전히 방황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했었는데, 복음을 들은 것이다. 복음은 그를 붙잡았으며, 그로 하여금 점점 깊이 빠져들게 했다. 복음은 그의 삶의 방향을 바꿔놓기에 이르렀다. --- p.28 그가 67세일 때이다. 중부교회는 교인 전체의 찬성으로 교회통합이 결정되었다. 착잡해지는 심정은 가누기 어려웠다. 사명에 대한 중심이 흔들리는 것은 아니지만, 당장 생계에 대한 염려가 목전에 닥쳤다. 막막한 앞날에 대한 두려움이 나이의 무게만큼 더해져서 엄습해 왔다. 그러나 정작 그의 고뇌는 교회의 틀어진 정체성에 관한 염려였다. 변질되는 믿음에 대한 우려가 무겁게 다가온 것이다. ‘5년 6개월 20일. 이 목회에서 정식 사표를 제출, 봉사하기 위한 교회이지, 봉사할 수 있는 요소가 되지 않을 때는 떠나가라. 하나님의 아들답게 비굴하지 말자’라는 것이 그해 마지막 날의 메모였다. 장민성은 1972년 신년인사를 겸한 고별사를 교인들에게 남겼다. --- p.113 “다 됐습니다! 선생님! 다 마쳤습니다!” 이발사는 장민성의 어깨를 감싼 가운을 거둬내며 이발이 끝났음을 말했다. 반응이 없다. 기척이 없자 이발사는 장민성을 가만히 흔들었다. “선생님! 이발 다 마쳤습니다!” 이발사가 어깨를 재차 흔드는 찰나, 장민성의 몸이 옆으로 쏠리며 기울어졌다. 임종이다. 아주 말끔하게 이발을 마친 상태로 그는 다시는 눈을 뜨지 않았다. 그대로 움직일 수 없었던 것이다. --- p.1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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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12월 태어나 1977년 73세의 생으로 마감한 장민성 목사.
그는 버겁고 망망한 고해(苦海)같은 인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그 격량을 헤쳐 나간 사람이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간 그가 어느 날 노방전도단의 찬송가에 회심 하며 결국 신학교에 입학해 복음의 사역자로 일생을 다했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 지 복음의 사명을 굳건하게 지킨 장민성 목사의 생애는 현실과 타협하지 않은 옹골지게 살아낸 충성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의 나사렛교단의 설립을 주도하고, 광주, 군산, 목포, 제주에서 묵묵히 그 사명을 다한 장민성 목사의 이야기는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과 같은 잔잔한 감동을 전해준다. 현실 속에서 타협으로 무난하게 살아갈 수 있었던 일도 그는 목회자의 삶에 대해 정직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몸소 보여줬다. 내일에 대한 두려움도 굴하지 않고 터전을 떠날 수 있는 그의 결단은 누구나 실행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지만 교훈을 전해주기에는 충분하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50여 년이 가까운 지금에도 그의 이야기는 고난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살아야 하는 이유를 가르쳐주고 있다. 많은 이들이 기억하지 않지만 옹골지게 살아낸 장민성 목사의 이야기가 그의 사후 50여 년이 되어 세상에 책으로 나오는 하나의 이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