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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서문들어가면서국사와 류큐사의 유사점가와카미(河上) 박사의 사론삼산(三山) 통일과 중앙집권류큐의 정치적 통일참근교대(參勤交代) 제도의 설정중앙집권의 단행슈리 왕부의 동화 정책순사(殉死)를 금한다류큐의 정신적 통일민족적 종교의 선도자로서의 여자신직의 계급야에야마 섬 정벌과 기미하에(君南風)의 종군노로의 세력민족적 종교와 두 섬조상을 중심으로 하는 공동생활씨족신을 모시는 시부민족적 종교의 사원 조직중국인이 본 류큐의 종교부인 승마의 풍습민족적 종교의 쇠퇴와 정교의 분리민족적 종교와 무격정치상으로 본 무격의 세력무격의 발호(跋扈)류큐 부인과 미신민간에서 유타의 세력신지의 둔산(遁散)과 민족의 쇠망류큐인의 해방정치적 인민결론-고대사가 주는 교훈부록해설지은이에 대해옮긴이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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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 Sung-kon,全成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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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후유의 오키나와(류큐) 연구이하 후유는 중학교 시절에 은사인 다지마 리사부로(田島利三郞)의 영향을 받아 ‘오모로’를 연구하기로 결심하고, 이후 일생을 오키나와학 연구에 바치게 된다. 그의 업적에 대해서는, 일본 제국주의에 동화되기를 강조한 입장에 대해 비판적인 평가를 내리는 쪽과 그와는 반대로 반골임을 주장하는 입장이 나뉘어 있다. 물론 순수하게 그의 연구 논고만을 중시하는 입장도 존재한다. 타협자와 반골의 얼굴은 이하 후유의 사상이 가진 양면적인 성격, 즉 일본과 동화하려는 논리와 오키나와의 독자성을 유지하려는 노력 사이의 모순에서 오는 해석인 것이다.오키나와와 일본, 갈등과 조화이하 후유는 일본 제국의 통합 과정을 오키나와학의 통합 논리의 모델로 삼고 있었다. 오키나와를 연구하는 것은 ‘오키나와 내부의 조화’와 ‘일본과 오키나와의 조화’라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해결하려는 것이었다. 이하 후유는 결과적으로 동조론으로 오키나와와 일본의 조화를 확보한 데다 오키나와의 개성을 주장하고 있었다. 즉 그는 오키나와인은 ‘류큐 민족’이라는 독자적인 민족이라고 부르짖고 있었던 것이다. 이하 후유의 오키나와 역사관은 일본과의 ‘동조’가 강조되는 한편, ‘류큐 민족’ 영광의 역사를 체현하는 방식이 반복되어 진화해 간 것이다.이는 오키나와인은 ‘일본인’이어도 ‘일본인’과는 다르다는 것, 즉 ‘동조’를 강조하면서도 ‘류큐 민족’의 독자성을 부르짖는 것이었다. ‘동조’라는 틀을 새삼스럽게 다시 한 번 만들어 일본과의 조화를 확보함에 따라, 처음으로 그 틀 안에서 류큐 내셔널리즘을 고무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여기서 ‘동조’는 오키나와의 개성을 보증하는 ‘아이콘’으로 기능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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