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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왕릉 기행
고려 500년 역사를 사진으로 만나다
정창현
굿플러스북 2023.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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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책을 펴내며 : 분단의 굴레에 갇힌 고려왕릉

ㅤ1. 고려, 개성에 터를 잡다
 - 왕궁이 들어서고 고려의 역사가 시작되다
ㅤ2. 풍수지리 고려해 터 잡은 고려왕릉
 - 도성 밖 동서남북에 고루 배치
ㅤ3. 조선과 북녘에서 '특별대우' 받은 고려 태조 현릉(顯陵)
 - 고려 태조가 잠든 무덤 속에 들어가다
ㅤ4. 두 이복동생에게 밀려 단명한 고려 2대 혜종의 무덤 순릉(順陵)
 - 여러 차례 시도 끝에 마침내 혜종의 무덤을 찾다
ㅤ5. 서경(西京) 천도 시도하다 좌절한 정종의 무덤 안릉(安陵)
 - 조선 3대 정종과 행적은 닮은 꼴, 왕릉의 보존상태는 판이
ㅤ6. 왕권 강화에 성공한 광종이 묻힌 헌릉(憲陵)
 - 박연폭포만 찾고 헌릉은 존재조차 몰라
ㅤ7. 부자간 선위(禪位)를 못한 고려 경종의 영릉(榮陵)과 성종의 강릉(康陵)
 - 개성공단 옆 진봉산 자락에 묻힌 경종과 성종
ㅤ8. 신하에게 살해된 7대 목종(穆宗)의 의릉(義陵)
 - 사후 3년 만에 도성 동쪽으로 이장
ㅤ9. '사생아'로 태어나 왕위에 오른 현종의 선릉(宣陵)
 - '선릉(宣陵)'은 현종(고려 8대 왕)의 무덤일까?
10. 200여 년 만에 찾은 형제의 무덤 덕종의 숙릉(肅陵)과 정종의 주릉(周陵)
 - 부왕(父王)인 현종(顯宗)의 무덤과 근접
11. 고려의 찬란한 문화 황금기를 연 문종의 경릉(景陵)
 - 조선 시대에도 특별 관리됐지만 퇴락
12. 문종의 두 아들이 묻힌 순종의 성릉(成陵)과 선종의 인릉(仁陵)
 - 단명과 장수, 엇갈린 운명
13. 헌종의 은릉(隱陵)으로 추정되는 '경릉군제2릉'
 - 남쪽 학계가 주목하지 않았던 왕릉 새로 발굴
14. 부국강병을 꿈꾼 숙종의 영릉(英陵)
 - 발굴과 묘역 정비 후 국보유적으로 격상
15. 여진을 정벌하고 9성을 쌓은 예종의 유릉(裕陵)
 - 황폐화된 왕릉을 70년대에 새로 정비
16. 묘청의 난 겪은 인종 장릉(長陵)의 수수께끼젨ㅤ
- 시책과 많은 유물 출토됐지만 왕릉 위치는 미궁
17. 무신 집권기 개성에 조성된 희릉, 지릉, 양릉
 - 인종의 아들 3형제가 왕위에 올랐지만 모두 단명
18. 강화 천도 후 조성된 다섯 개의 왕릉ㅤ
 - 무덤의 주인공을 두고 여전히 논쟁 중
19. 몽골에 항복하러 갔다 온 원종의 소릉(韶陵)
 - 5개의 무덤(소릉떼) 중 원종(고려 24대 왕)은 어디에 묻혀 있나?
20. 최근 새로 발굴된 충렬왕의 경릉(慶陵)
 - 왕비릉 옆에 있었는데 그동안 왜 못 찾았는지…
21. 논란이 많은 충선왕의 덕릉(德陵)과 충목왕의 명릉(明陵)
 - 명릉군 3개 왕릉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22. 충숙왕의 의릉(毅陵)과 폐위된 충혜왕의 영릉(永陵)
 - 베일에 쌓인 칠릉군의 왕릉 주인공들
23. 15세에 독살당한 비운의 군주 충정왕의 총릉(聰陵)
 - 묘역은 협소하고 관대도 없어
24.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의 사랑이 깃든 현ㅇ정릉(玄ㅇ正陵)
 - 조선 시대 왕릉의 모본(模本)이 되다
25. 100명이 넘는 왕후릉은 어디에 있을까?
 - 왕후릉 관리에 소홀했던 고려
26. 고려왕릉과 개성지역 출토 유물을 감상할 수 있는 고려박물관ㅤ
 - 고려 성균관에 전시관 조성하고 고려유물 보존
맺으며 : 고려왕릉의 보존과 남북 교류젨ㅤ
ㅤ - 남북 공동으로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꿈꾸다
참고문헌
색인

저자 소개 1

鄭昌鉉

1964년 충남 홍성 출생이다.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와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1994년 중앙일보 현대사연구소 (통일문화연구소)에 전문기자로 입사해 10년간 주로 남북 현대사, 남북관계 분야 기획 취재를 담당했다. 통일부·국가기록원 자문위원과 북한대학원대학교·국민대학교 겸임교수, 월간 『민족21』대표를 역임했다. 현재 평화경제연구소 소장, 민화협·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정책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KIM JONG IL OF NORTH KOREA』, 『남북현대사의 쟁점과 시각』, 『인물로 본 북한현대사』, 『평양의 일상』등이 있고, 공저로 『암살-왜곡된
1964년 충남 홍성 출생이다.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와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1994년 중앙일보 현대사연구소 (통일문화연구소)에 전문기자로 입사해 10년간 주로 남북 현대사, 남북관계 분야 기획 취재를 담당했다. 통일부·국가기록원 자문위원과 북한대학원대학교·국민대학교 겸임교수, 월간 『민족21』대표를 역임했다. 현재 평화경제연구소 소장, 민화협·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정책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KIM JONG IL OF NORTH KOREA』, 『남북현대사의 쟁점과 시각』, 『인물로 본 북한현대사』, 『평양의 일상』등이 있고, 공저로 『암살-왜곡된 현대사의 서막』, 『안중근家 사람들1』, 『새로 쓴 한국현대사』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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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11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384쪽 | 150*202*23mm
ISBN13
9791185818573

책 속으로

2004년 ‘고구려고분군’(高句麗古墳群), 2013년 개성역사유적지구를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면서 북한은 민족문화유산의 보존과 세계화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 p.19

2004년 ‘고구려고분군’(高句麗古墳群), 2013년 개성역사유적지구를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면서 북한은 민족문화유산의 보존과 세계화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 p.10

만월대는 1973~1974년에 걸쳐 발굴 조사됐고, 남북 공동발굴조사가 실시되고 있다. 발굴조사 결과 만월대는 크게 중심 건축군과 서부 건축군, 동부 건축군으로 갈라진다.
--- p.30

풍수지리로 보았을 때 개경은 힘찬 기상이 솟아나는 송악산을 진산(鎭山)으로, 자남산을 좌청룡(左靑龍)으로, 오공산(지네산)을 우백호(右白虎)로, 남쪽의 용수산을 사신사(四神砂)로 한 장풍국(藏風局, 주변을 둘러쌓은 산세)의 도읍지다. 개경은 송악산이 진산이기 때문에 송도(松都)라고도 불렸다.
--- p.37

고려의 궁궐이 있던 만월대를 출발해 북안동거리를 거쳐 남대문에 도착했다. 고려 때 주요 관청이 있던 황성의 동문인 광화문부터 내성의 남대문에 이르는 이 거리는 남대가(南大街)라고 불리는 개경의 번화가였다.
--- p.56

고려의 궁궐이 있던 만월대를 출발해 북안동거리를 거쳐 남대문에 도착했다. 고려 때 주요 관청이 있던 황성의 동문인 광화문부터 내성의 남대문에 이르는 이 거리는 남대가(南大街)라고 불리는 개경의 번화가였다.
--- p.63

2013년 개성역사지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왕건왕릉도 여기에 포함됐다. 최근 입수된 사진을 보면 북한은 삼문 앞에 세계문화유산 표석을 세우고, 봉분 뒤쪽주변에 곡장(曲墻)을 새로 조성했으며, 묘역 왼쪽에 있는 나무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표지석을 새로 세워놓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p.64

북한은 고려를 ‘최초의 통일국가’로 규정해 높이 평가하고 있고, 왕건왕릉을 역사 교양의 거점으로 활용하고 있다.
--- p.71

헌릉에서 포장길을 따라 동북쪽으로 13km 정도 가면 송도삼절(松都三絶)의 하나인 박연폭포가 나오고, 박연폭포 남쪽에 광종 21년(970년)에 법인국사 탄문스님이 창건한 관음사가 자리잡고 있다.
--- p.96

1995년 북한은 영릉의 병풍석을 정비하고, 봉분을 다시 쌓았다. 1963년 첫 조사 당시 봉분의 높이는 1.38m, 지름은 5.19m였으나, 정비 후에는 봉분의 높이가 2.3m, 지름이 8.6m로 커졌다.
--- p.114

정종의 무덤으로 추정된 왕릉은 덕종의 무덤에서 북동쪽으로 250m 정도 떨어진 골짜기에 있다. 발굴 전 주릉은 봉분이 무너져 내리고, 석물이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등 숙릉보다 더 훼손된 상태였다. 발굴 초기 사진을 보면 ‘주릉’은 3단 구역으로 나눠져 있다.
--- p.158

정종의 무덤으로 추정된 왕릉은 덕종의 무덤에서 북동쪽으로 250m 정도 떨어진 골짜기에 있다. 발굴 전 주릉은 봉분이 무너져 내리고, 석물이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등 숙릉보다 더 훼손된 상태였다. 발굴 초기 사진을 보면 ‘주릉’은 3단 구역으로 나눠져 있다.
--- p.171

또한 북한은 2015년 문화유산보호법을 민족유산보호법으로 개정하면서 아예 비물질민족유산의 세부 구분을 유네스코 무형유산협약의 구분과 동일하게 개편했다.
--- p.372

특히 문화유산 관련 분야의 교류는 남북의 오랜 분단의 이질감을 극복하고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는데도 기여할 것이다. 남북의 다름을 이해하고 소통하는데 역사문화유산은 가장 좋은 분야인 동시에 의미 있는 성과를 도출할 수 있는 영역이기도 하다.

--- p.374

출판사 리뷰

남북 공동으로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꿈꾸다.


고려와 조선을 거치면서 무역 도시로 번성했던 개성은 분단 이후 군사도시로 변모되면서 도시 발전이 정체됐다.
개성 시내 외곽에는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서고, 기존 건물에 색깔을 입혔지만, 개성시는 여전히 낙후된 도시로 남아 있다.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개성은 개성공단으로 상징되는 남북경제협력의 거점이지만 남북 문화 협력, 관광 도시로서의 잠재력도 풍부하다.
고려와 조선 시대의 왕릉도 그중의 한 문화 자산이다. 고려왕릉 중에서 태조 왕건릉, 공민왕릉, 명릉군, 칠릉군 등 개성 도성의 서쪽에 있는 일부 왕릉들이 ‘개성역사유적지구’에 포함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후 과거보다 보존, 관리 상태가 확연히 개선됐다.

그러나 여전히 대다수 고려왕릉을 비롯한 고려의 문화유산은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고 있다. 남북 공동 발굴 조사가 중단된 만월대터에는 아무런 제한 없이 관광객들이 찾고 있어 훼손이 우려된다.
과거 개성을 다녀온 역사학자들은 “아직은 괜찮지만, 현재 매우 위태로운 상황”이라고 진단하고, “현재 개성 주민의 삶을 이롭게 하면서 역사 도시로 가꾸어가는 장기 구상과 설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장기적으로 개성을 통일경제특구의 한 축으로 삼더라도 남과 북의 공동의 문화유산인 고려와 조선 시대의 역사유적을 보존하면서 도시재생사업을 진행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우선 고려왕릉 답삿길을 남과 북이 공동으로 개발해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고려왕릉 답삿길은 현재 개성지역에 남아 있는 56기의 고려왕릉을 둘러보는 길을 구간별 관광코스로 기획해 개발하는 구상이다.
답삿길을 개발해 북측에 제시하는 것은 1차적으로는 북한이 아직까지 이러한 답삿길 개념이나 문화자원 활용 개념이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남측의 자료 축적과 교류 의지를 보여줌으로써 북한이 남북 문화 교류, 도시 교류에 나올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작업이다.
답삿길을 개발해 북측에 제시하는 것은 1차적으로는 북한이 아직까지 이러한 답삿길 개념이나 문화자원 활용 개념이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남측의 자료 축적과 교류 의지를 보여줌으로써 북한이 남북 문화 교류, 도시 교류에 나올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작업이다.

이러한 법제 정비와 기구 신설은 북한이 유네스코가 2003년 채택한 무형유산보호협약에 가입한 후 본격적으로 무형유산 제도 정비에 나선 것을 의미하며, 세계의 문화유산 정책 흐름을 수용한 조치로 평가할 수 있다. 실제로 북한은 문화유산보호법 제정을 전후해 아리랑의 인류무형유산 등재도 신청했다.
또한 북한은 2015년 문화유산보호법을 민족유산보호법으로 개정하면서 아예 비물질민족유산의 세부 구분을 유네스코 무형유산협약의 구분과 동일하게 개편했다.
그러나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가 지속되고 한반도 비핵화를 논의하는 국제 회담이 중단된 조건에서 북한의 남북, 해외 문화유산 교류는 제한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다만 문화유산 교류는 비정치적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비핵화 문제와 남북 교류가 분리돼 두 갈래로 추진될 경우 활성화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남북 교류가 막혀 있던 2011년에도 현존하는 북한의 59개 사찰과 6개 폐사지에 대한 상세한 사진 자료가 남쪽에서 출간되고, 개성 만월대 발굴 사업이 이어지고 있는 사례처럼 남북 문화유산 교류와 공동 조사, 공동 발굴을 위한 준비 작업은 정세와 관계없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정책적으로도 문화유적을 매개로 이뤄진 남북 교류는 앞으로도 더욱 확대해 나갈 필요성이 있다. 문화유적 보존, 공동 발굴, 상호 교환 전시, 공동 학술 대회 등 남과 북 사이에는 교류의 폭을 넓혀갈 수 있는 사업들이 많다.

과거 북한과 경기도는 개성의 300여 채 전통한옥마을(민속거리보존구역)을 보존하고, 이를 통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합의한 바 있다.
최근 북한은 개성시 해선리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국청사(國淸寺) 발굴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사업들을 남과 북이 함께 협력해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세계문화유산 등재의 상호 협조 및 문화재의 해외 유출 방지, 해외소재 문화재의 환수, 일본의 교과서 왜곡 및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공동 대응 등 대외적인 문제에서도 남과 북은 머리를 맞대고 협력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다.

특히 문화유산 관련 분야의 교류는 남북의 오랜 분단의 이질감을 극복하고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는데도 기여할 것이다. 남북의 다름을 이해하고 소통하는데 역사문화유산은 가장 좋은 분야인 동시에 의미 있는 성과를 도출할 수 있는 영역이기도 하다.
남북이 함께 고려왕릉을 보존하고, 개경도성 답삿길을 공동 개발하는 일을 적극 추진하며, 더 나아가 개성을 ‘역사도시’이자 ‘평화도시’로 상징화할 수 있는 날이 하루속히 다가오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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