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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9
섭동 43 놀이 65 광기어린 야만의 세상에서 75 늙은 음유시인의 사랑 이야기 99 길 148 길을 벗어나면 벌레가 된다 154 틈입자 179 결핍 192 말에서 미끄러지기 218 밥 232 이끼 243 아토피 세상 262 비밀 작법 278 환원의 시간 기행 308 작가의 말 325 |
HAN,SEUNG-WON,韓勝源, 호 : 해산海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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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자기 몸의 크기나 부피나 무게만큼 사랑을 하고 선행을 해야 하는 건가요?”
“그렇다” 하고 늙은 백양나무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사랑하기이고 선행하기인가요?” “자기보다 더 몸이 약한 것과 가난하고 외로운 것들을 품어주고 돌보아주는 것, 그들을 위로해주고 그들과 더불어 화평하게 사는 것이 사랑하기이고 선행하기인 거야. 세상을 살아가는 것들은 다 그렇게 사랑과 선행을, 배고픈 것들이 밥을 먹어대는 것처럼 해야만 하는 거란다.” --- p.31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거나, 망상일지도 모르는 시상을 모아 시도 아니고 에세이도 아니고 소설도 아닌데 시이기도 하고 에세이이기도 하고 소설이기도 한, 자기만의 특이한 글쓰기를 하지 않으면 우주 운행이 멈추어버린 듯 갑갑하고 답답해진다. 이제는 짧은 호흡의 들숨과 날숨으로, 지나온 삶의 굽이굽이에 떨어져 있는 반짝거리는 보석들을 이삭 줍듯 주워 담는 글쓰기와 사유를 즐기고 있었다. 시인의 이삭줍기 사업은, 화엄華嚴 같은 삶의 장엄莊嚴이었다. 늙은 시인이 수집한 까치노을 같은 이삭은 누군가의 결핍으로 허기진 영혼을 구제해줄지도 모른다. --- p.53 천강에 비치는 달이란 무엇인가. 바다의 성게는 달이 백자 항아리처럼 둥그렇게 되어야 속에 알이 찬다. 달이 둥그렇게 뜨면 그것을 보는, 그 지역 어둠 속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몸엔 슬픔이나 기쁨이나 분노나 환희의 정서적인 충일이 일어난다. 고통이라는 검은 어둠을 내 입맛대로 비틀어 짜면 하얀빛이 방울방울 떨어지는데 그 빛은 새가 되어 창공으로 날아간다. 그것이 시詩이다. --- p.56 이야기는 모두 알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생각을 바꾸고, 그 생각은 습관을 바꾸고, 그 습관은 전 인생의 운명을 바꾸어준다. 특히 모든 삶에서 마지막에 하는 이야기는 한 인간이 죽어가는 순간에 남기는 유언처럼, 축구 경기의 막판에 터진 극장 골이나 농구 경기의 버저비터처럼 삶의 결과를 바꾸어준다. --- p.141 모든 들이나 산에는 사람의 발길이 닿기만 하면 반질반질 길이 나지만 바다에는 아무리 다녀도 길이 나지 않는다. 바닷길은 지도상에만 가시적으로 나타난다. 지금 돌아보면 나의 모든 길은 현실적인 낮의 길보다는 비현실적인 깜깜한 밤길이고, 달밤의 길보다는 별밤의 길이었다. 마음을 비우고 좋은 글을 쓰겠다는 생각마저도 버린 채 낚시질도 하고 천천히 모래밭과 해송 숲을, 저세상에 간 혼령을 부르기招魂 위해 피운 만수향을 찾아가는 바람처럼 걸어다녀보는 개멋을 부리기도 했는데, 따지고 보면 그 길이 나를 편하게 하는 길이었다. 사실에 있어서는, 이승에서의 내 모든 길은 아마도 저승(또는 천국)의 문턱에 있는 업경대 앞까지 닿아 있을 터이다. --- p.152~153 토굴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눈을 감았다. 나의 환원의 시간여행의 종착점을 생각했다. 아들딸에게 전할 유언을 생각했다. ‘나 죽으면 다비해라…… 화장은 인간 최종의 화장化粧이고 화장華藏이고 환원이다.’ --- p.3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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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내 삶의 몸부림, 내 시와 소설의 몸부림, 내 치열하게 살아낸 삶의 궁극”
한국문학의 거목, 한승원 문학 인생이 다다른 자리 ‘사람의 길’에 올라서기 위해서는 우리가 ‘사람’이 될 수 없게 하는 문제 상황을 인지하는 것이 먼저일 테다. 한승원은 사람의 본분을 흐트러뜨리는, “광기어린 야만의 세상”에 대한 신랄한 풍자로 그간 잃어버렸던 우리의 비판의식을 되살린다. 민생은 뒷전으로 한 채 향락을 즐기는 정치인과 오직 자신의 이익에만 몰두하는 전문직들에게 일갈하고 사람의 모습을 다시금 되찾기 위한 길을 웅변하는 그의 모습은 마치 퇴행의 길을 걸어가는 인류를 위해 새로운 유형의 사람 ‘위버멘쉬’를 창조했던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를 연상케 한다. 한승원에게 소졸한 사람은 영원한 삶에 대한 소망을 저버리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겨냥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만큼 가차없기에 진실성을 획득하는 그의 시선은 반면 따스한 온도를 갖추기도 한다. 『사람의 길』 속에는 “달을 새끼줄로 묶어놓겠다는” 의지로 새끼줄을 꼬며 “시詩를 살고 있”는 장애인과, 전체주의와 자본주의에 길든 세계에 “무지막지한 자유”로 반항하는 아나키스트, 존 스타인벡과 로맹 가리의 소설 속 사람을 구제하려고 고투하는 인물들, 자연에 오롯이 동화되어 삶을 살아가는 행위가 곧 다른 존재와의 화합으로 이어지는 동식물들, 사람 앞에서 손익을 따지며 마음을 거래하는 태도가 아니라 무조건적으로 자신을 선사하는 사랑을 실천하는 이들이 있다. 한승원은 그들이야말로 사람이라고 호명함으로써 사각지대로부터 끌어올려 빛을 비춘다. “모든 예술작품이 도달하려는 목적지는 구제救援이네. 예술작품의 도달점은 향기로운 아름다움과 철학이나 종교와는 다른 차원의 구원을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되네. 소설가는 도덕 교사도, 종교의 경전을 설하는 사제도 아니지만 인류의 모든 폭력으로부터 자유와 평화와 안식을 도출하려는 차원 높은 윤리 교사인 셈이네.”(274쪽) 아흔에 이른 대작가 한승원이 그간 탐구해온 한민족의 ‘한’은 우리의 근간으로서 “체념과 패배주의적인 정서가 아니고 흥과 신명을 통한 극복의 의지, 강인한 생명력”이었다. 그에게 한은 지금 여기의 야만적인 세상이 아닌 다른 구원의 세상으로 나아가려는 움직임으로, 환갑에 가까운 지난 문학 인생을 통해 구현해온 것이기도 하다. 문학 인생의 최종장에 들어선 한승원은 “고달픈 난관을 극복하고 평화와 행복으로 나아가는 구제와 구원을 제시”하는 예술의 책무를 등에 짊어지고 진정한 사람의 면모를 『사람의 길』로 선보인다. 바로 결핍을 채우기 위한 옹졸하고 편협한 사익의 추구가 아니라 “바다의 밀물과 썰물 같은 들숨과 날숨, 호혜적인 사랑 주고받기”인 ‘섭동’, “‘자기에게로의 회귀’로 인한 흔들림 없는 고요”의 ‘불가사의 해탈’, 그리고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들과 삶을 함께하는” ‘화엄’이 그러하다. 따라서 『사람의 길』에 끝까지 함께한 이의 마음속엔, 소설의 시작에서 ‘거무’가 찾아 떠났던 경지인 ‘향기로운 사람’으로의 길이 비로소 아름답고 고귀하게 펼쳐질 것이다. 길은 누군가가 만들어주는 절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사람 다니는 곳, 사람의 발길이 이어짐으로써 반들반들 닳아진 곳이 길입니다. 소리 나는 쪽으로 돌아보듯 나는 가장 쉽고 편리한 곳을 향해 길을 만들어갑니다. 이 소설이 내 최후의 길입니다. _‘작가의 말’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