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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골차고 쫄깃하고 향기롭게
벌교 갯벌 여자들
권혜수
나남 2023.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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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작가의 말 5
들머리 11
참꼬막, 개꼬막 33
스물셋, 스물다섯 71
빨래 밟는 날 95
스물한 살, 그 바다 125
정자야, 내 딸 정자야! 149
집마다 구슬이 굴렀다 155
그 엄니 173
이 엄니 231
어깨를 걸고 263
나도 영롱허니 한 번은 살었네 299
구름은 소리를 부르고 307
해발이 323
꿈이로다 꿈이로다 335
날머리 341
작가 인터뷰:여성이여, 야성을 회복하라 346

저자 소개 1

경북 예천 출생. 1983년 《소설문학》에 단편이 당선되고, 1987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여왕선언》이 당선되었다. 연이어 중편 두 편이 KBS 문학상을 받고, 오랜 시간이 지난 2007년 SBS 특집드라마 공모에 당선되었다. 한때는 ‘프랑소와즈 사강’을 꿈꾸었다. ‘낙양의 지가’를 올리는 오진 꿈도 꾸었다. 그러나 인생이 그러하듯 문학도 지리멸렬, 작가라는 정체성이 궁색할 정도로. 요즘 새삼 생각한다. 나는 글을 쓰고 싶은 것인가. 작가가 되고 싶은 것인가. 어쨌든 죽을 때까지 쓰는 것으로 나 자신과 손가락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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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12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360쪽 | 520g | 153*225*18mm
ISBN13
9788930006842

책 속으로

순한 섬들 사이로 아득히 물이 빠져나갔다.
--- p.11

뭍은 쉬어도 바다는 한겨울에도 쉼이 없다. 차갑고 거친 파도에 단련된 물고기의 육질이 쫀득하고 맛이 좋듯, 꼬막도 뭍의 못다 한 생명력까지 떠맡은 엄동설한에 제 몸을 지켜낸 놈이 살이 옹골차고 쫄깃하며 향도 진하다.
--- p.17

가난한 집에 시집와서도 꼬막은 딴 세상일 정도로 지분기와 부잣집 딸 행티는 평생 강천댁을 따라다녔다. ‘살림 못 하는 건 용서해도 뻘배 못 타는 건 용서 못 한다’는 이 고장 말도 강천댁과는 상관이 없었다.
--- p.21

낙지호롱구이를 바라보는 월평댁 마음이 어쨌거나 흐뭇하다. 낙지 음식 중에서도 송 씨는 이 호롱구이를 제일 좋아했다. 낙지호롱구이는 그 비싼 값만큼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몸통 속의 내장을 꺼내고 머리의 먹물도 없애야 한다. 다리 흡반 속에 있는 진흙도 말끔히 씻어낸다. 그런 다음 낙지 머리부터 볏짚에 끼우고 다리를 가지런히 말아 내린다. 익힐 때 낙지가 풀리기도 해서 단단하게 잘 감아야 한다.
--- p.44

낚시 갈고리에 걸려서도 웃어야 하는 건 사람도 마찬가지다. 첫 남편과 아이를 바다에 잃고도 월평댁은 그 바다에서 나는 걸 먹고산다. 그 갈고리 앞에서 평생을 산다.
--- p.60

강천댁이 월평댁에게 아들 욕심을 품은 것은 월평댁 남편이 배를 타고 나가 죽은 지 반년도 안 되어서였다. 아니, 태풍이 그치고도 배가 흔적조차 보이지 않아 온 마을이 수군대는 그 순간에 벌써 강천댁은 자신의 욕심을 보아버렸다. 머릿속에 천둥처럼 스친 생각을 하늘이 알까 허겁지겁 털어버렸지만, 이미 월평댁 운명은 강천댁 속셈 안에 있었다.
--- p.74

탄실댁은 손찌검이 지나간 얼굴을 수건으로 싸매고 꼬막을 캐러 나갔고, 남편이 잡은 생선을 말려 벌교 장에 내다 팔았다. 생선은 여름에는 반나절이면 꾸덕꾸덕해지지만, 겨울에는 며칠을 뒤집어 가며 말려야 한다. 월평댁은 틈만 나면 탄실댁 생선 말리는 일을 거들어주었다.
--- p.121

짱뚱어가 뻘로 나오면 짱뚱어보다 멀리 바늘을 던져 바늘이 뻘 위를 스르르 미끄러져 오면서 순식간에 고기를 낚아챈다. … 그날은 송 씨도 수확이 좋았다. 회에 탕까지 한탕 끓일 수 있는 양이었다. 짱뚱어탕도 음식 솜씨와는 거리가 먼 강천댁보다 송 씨가 더 잘 끓였다.
--- p.135

“겨울이면 우리 마실에서는 구슬 굴르는 소리가 끊기덜 안 혔어.”
“집마둥 꼬막 씻는 소리가 구슬 구르는 소리 같당께.”
--- p.159

“엄마 네 시쯤 집에 들어갈 것 같네,” 하면 그때부터 월평댁 마음에는 햇살이 가득해진다. 무얼 먹일까, 갈 때는 무얼 싸 보낼까, 지금 어디쯤 오고 있겠구나, 터미널에 도착했겠다, 마음과 걸음이 냉장고로, 텃밭으로, 부엌으로 종종걸음을 친다.
--- p.174

어렸을 때도 꼬막 한 소쿠리를 삶아 놓으면 들며 나며 그 한 소쿠리를 혼자 다 먹을 정도였다. 지금 명이가 저리 여물게 사는 것은 그때 먹은 꼬막 힘이라고 월평댁은 생각한다.
--- p.194

낙지 팥죽 같은 음식은 기억의 음식이다. … 자금실만 해도 대부분의 나이 든 아낙들의 음식 솜씨는 어머니나 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기억의 음식이다. 눈이 기억하고 손이 기억하고 혀가 기억하고 말이 기억하는 음식이다. 지금 월평댁의 손맛을 가장 닮은 건 자식들 중에서도 제일 젊은 명이였다. 월평댁은 명이에게 자신의 손맛을 물려주고 싶다.
--- p.217

그런데 오늘은 봄볕이 이쁘고 정겹다. 그냥 두기에는 참말 아깝다. 겨울 난 솜이불 홑청 뜯어다 퍽퍽 치대 양잿물에 삶아 빨랫줄 가득 널었으면 좋겠다. 그 위에 환한 봄볕이 쏟아지는 걸 보았으면 좋겠다.

--- p.327

출판사 리뷰

알큰 달큰하고 쌉싸름한 꼬막처럼 오묘한 인생의 맛

권혜수 장편소설『옹골차고 쫄깃하고 향기롭게』는 벌교 갯벌을 무대로 가부장제의 핏줄을 이어야만 한다는 봉건적 풍습의 잔재 아래에서 정실과 소실로 맺어진 두 ‘엄니’의 인연과 인생 이야기이다. 작가는 징글징글한 인생의 암울함을 얘기하기보다, 만나면 잔소리부터 하고 매일매일 티격태격하는 두 ‘엄니’가 마치 오래 산 부부처럼 서로를 보듬어 주는 인생의 ‘길동무’가 되어 가는 과정을 해학적으로 그린다.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앙숙 같은 두 할머니, 도저히 화해할 수 없을 것 같은 애증의 두 여성 사이에 예기치 않은 공감이 형성되는 과정이 벌교 갯벌마을 여자들의 공동체 속에 어우러지면서 전개된다.

잘근잘근한 남도 사투리로 빚어낸 갯벌 여인들의 삶

갯벌 여성들의 삶에 생동감을 더하는 것은 인물들이 구사하는 남도의 원초적 탯말이다. 남도 방언은 여러 드라마나 영화, 문학 등에서 구사되었지만, 이 소설만큼 잘근잘근한 생활 사투리를 통해 일상의 세계를 실감나게 빚어낸 작품도 드물다. 남도 사투리는 바닷가 여자들의 칼칼한 성격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굴곡진 인생을 살아낸 여인들의 삶의 원형과 질감, 남도의 원초적 태(胎)를 떠올리게 한다.

두 여인의 이야기가 감동적인 장편소설로 탄생하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권혜수 작가는 2003년 ‘큰어매’, ‘작은어매’로 불리며 평생 함께한 전남 고흥의 두 할머니의 구술에 매료되었다. 작가는 실제 주인공을 만나 인터뷰하고, 남도 방언을 채집하고 지난 20년 동안 수십 번의 퇴고를 거쳐 갯벌 여인들의 야성이 깃든 삶을 밀도 있게 그린 장편소설을 완성했다.

벌교 갯벌, 남도의 ‘엄니’들이 품은 문화와 정서

사철 나는 꼬막이지만 늦가을 찬바람 들고부터 춘삼월까지의 꼬막이라야 최상의 꼬막이다. 뭍은 쉬어도 바다는 한겨울에도 쉼이 없다. 차갑고 거친 파도에 단련된 물고기의 육질이 쫀득하고 맛이 좋듯, 꼬막도 뭍의 못다 한 생명력까지 떠맡은 엄동설한에 제 몸을 지켜낸 놈이 살이 옹골차고 쫄깃하며 향도 진하다. - 17쪽

『옹골차고 쫄깃하고 향기롭게』는 벌교를 무대로 한 작품답게 꼬막 맛 묘사가 돋보인다. 감각적인 제목도 꼬막 맛에서 따왔다. 한겨울에도 쉬지 않는 남도의 바다는 생명의 바다다. 널배를 밀며 꼬막을 캐서 가족을 먹이고, 자식을 길러낸 갯벌 여자의 모성애는 남도의 바다만큼 원초적이고 생명력이 강하다. 그래서 객지에서 고단했던 딸도 친정으로 ‘엄니’를 찾아와 그저 맘 편히 잠만 자고 나면 기운을 되찾는다.

명이가 “엄마 네 시쯤 집에 들어갈 것 같네,” 하면 그때부터 월평댁 마음에는 햇살이 가득해진다. 무얼 먹일까, 갈 때는 무얼 싸 보낼까, 지금 어디쯤 오고 있겠구나, 터미널에 도착했겠다, 마음과 걸음이 냉장고로, 텃밭으로, 부엌으로 종종걸음을 친다. - 174쪽

꼬막뿐만이 아니다. 한 자락 늘이면 쓸쓸한 인생도 한바탕 꿈길 같아지는 남도 소리는 구성지고, 어머니와 할머니에게 물려받은 손맛으로 요리한 낙지호롱구이, 낙지 팥죽, 짱뚱어탕, 홍어 애국 등 맛깔 나는 남도 음식도 풍성하다. 남도의 언어, 소리, 음식은 이 소설에 곁들인 양념이 아니라 서사의 본 재료로서 남도 특유의 문화와 정서를 그리는 진정한 ‘벌교문학’이 탄생했음을 알린다.

낙지 팥죽 같은 음식은 기억의 음식이다. … 자금실만 해도 대부분의 나이 든 아낙들의 음식 솜씨는 어머니나 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기억의 음식이다. 눈이 기억하고 손이 기억하고 혀가 기억하고 말이 기억하는 음식이다. 지금 월평댁의 손맛을 가장 닮은 건 자식들 중에서도 제일 젊은 명이였다. 월평댁은 명이에게 자신의 손맛을 물려주고 싶다. - 2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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