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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동부
종북과 진보 사이, 잃어버린 우리들의 민주주의
임미리 저
이매진 2014.03.17.
베스트
사회비평/비판 top100 4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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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서론. 잃어버린 기억

1장. 뿌리 ― 광주대단지와 1971년 8·10 사건
1. 분리수거 도시 ― 서울 남쪽 동네 광주대단지
2. 아기 삶아먹는 사람들 ― 빈곤과 격리, 그리고 공포의 전유
3. 사건의 발단 ― 분양증 전매 금지와 일시불 상환 조치
4. 8·10 사건 ― 박정희 정권에서 처음 터진 봉기의 기억
광주대단지 사람들 | 주민 동요와 대책위 결성 | 8월 10일, 그리고 수습 과정
5. 차별과 배제 ― 8·10 사건이 성남에 남긴 상처들
6. 운동의 본거지, 성남 ― 사회운동의 출현과 성장

2장. 기억 ― 경기동부연합은 누가 주도하고 어떻게 형성됐나
1. 호출 ― 광주와 광주가 만나다
2. 승화 ― 차별과 배제의 기억을 운동의 잠재력으로
3. 계승 ― 1987년 6월 항쟁과 용성총련
4. 또 하나의 기억 ― 경기동부연합 결성과 자주민주통일운동
5. 변주 ― 민족, 민주, 민중 운동에서 시민사회운동으로
6. 전설 ― 두 개의 기억과 두 개의 죽음

3장. 성장 ― 뻐꾸기는 어떻게 지빠귀 둥지를 차지했나
1. 한 지붕 두 가족 ― 진보 정당의 부활과 평등파와 자주파의 동거
창당 | 정파 | 당내 민주주의
2. 패권주의에 갇히다 ― 원내 진출과 득세하는 자주파
10개의 금배지 | 자주파가 부상하고 정책은 보수화되고
3. 종북주의와 패권주의 ― 일심회 사건부터 분당까지
4. 이별과 재결합 ― 분당에서 다시 합당으로

4장. 고립 ― 비례대표 사태와 하위주체 의식
1. 비례대표 사태 ― 4·11 총선과 부정 선거 논란
2. 당권파 ― 부실을 변명하고 절멸을 방어하다
부정과 부실, 국민의 눈높이와 당원의 눈높이 | 절명의 공포와 극단의 진영 논리
3. 하위주체 ― 스스로 말할 수 없는 사람들
부정성과 당원의 눈높이 | 공적 폭력과 스스로 말할 수 없는 자 | 연대성 | 영토성
4. 세 번째 기억과 죽음 ― 진영 논리 앞에서 허물어진 진보 진영

5장. 연대 ― 범경기동부연합과 지지 세력
1. ‘범’경기동부연합 ― 차별받고 배제당한 사람들
1980~1990년대의 주사파 학생 운동 | 범경기동부 | 재생산 | 계급 특성과 지역 특성
2. 지지 단체 ― 반대와 규탄의 목소리
제명 거부 | 자격심사 반대와 국정원 정치 공작 규탄
3. 두 통일운동 세력이 만나다

결론. 경기동부연합은 어떻게 하위주체가 됐나
1. 5·18 광주 학살과 주체사상
2. 남한의 민주화와 북한의 경제 위기
3. 진영 논리와 기억의 고착

부록.
게재 논문 출처 | 구술 자료 | 참고 문헌 | 주 | 찾아보기

저자 소개

저자 : 임미리
서울여자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광화문에 있는 직장을 다니다 1987년 6월 항쟁을 목격했다. 1988년 고려대학교 사학과에 입학해 데모는 하지만 운동권이라 말하기에는 부족한 대학 시절을 보냈다. 지역 신문사에서 일하다 2000년에 한양대학교 지방자치대학원에서 지방행정 석사 학위를 받았다. (사)현대사기록연구원에서 일하며 구술사 연구에 관심을 느꼈고, 다시 공부를 시작해 2013년 여름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지난 25년 동안 삶에서 받은 자극으로 공부를 했다. 앞으로는 학문에서 받은 자극으로 삶을 살려고 한다.

품목정보

발행일
2014년 03월 17일
쪽수, 무게, 크기
256쪽 | 335g | 148*223*20mm
ISBN13
9791155310380

책 속으로

1988년 대학 다닐 때 “배가 고파 산모가 아기를 삶아먹었다”는 전설 같은 소문을 들었다. 우물에 독을 풀어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다는 그곳은 성남이었다. 그때 머릿속에 떠올린 인상은 두건으로 얼굴을 가린 사람들이 몽둥이를 들고 우물가를 지키는 이미지였다. …… 한참이 지나고서야 그때 들은 소문이 1971년의 일이며 우물에 푼 독이 아니라 더러운 물 때문에 사람들이 병들어 죽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곳은 성남의 뿌리라 할 수 있는 광주대단지였다. 20여 년이 흐르고 2011년 성남에 있는 학교에서 공부를 다시 시작한 나는 그 일을 조사하기로 했다. ― 7쪽

성남이 광주 학살에 유독 민감하게 반응한 까닭은 광주대단지 때문이었다.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이 일어난 때 전국에서 가장 먼저 병력이 배치된 곳이 성남이었다. 광주대단지를 건설하려고 한 목적 중 하나가 서울의 도시 빈민을 살게 해 유사시 적의 은신처가 되는 사태를 막는 데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일이다. 더욱이 성남은 지금도 ‘제2의 호남’이라 할 정도로 호남 인구가 많다. …… “철거민 이주할 때는 전라도 사람이 본적을 많이 숨기는 일이 많았어요. 그렇지만 본적이 이적이 되지 않아서 호적등본에는 다 나타났는데, 실질적으로 그때 전라도 사람이 60프로 됐습니다. 철거민 중에는.” ― 67쪽

공고한 조직을 기반으로 1996년부터는 이른바 경기동부연합의 ‘전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북한에 수재가 나자 성남연합에서 가장 먼저 ‘북한 동포 돕기 운동’을 벌였다. 회원 50여 명이 북한에 ‘쌀 보내기 운동’을 시작해, 3개월 동안 무려 1만 5000가구를 방문해 5500가구한테서 220가마의 쌀을 모았다. 통일을 향한 의지를 경기동부연합만의 방식으로 표출한 것이다. 이듬해인 1997년에는 북녘동포돕기 범국민운동이 벌어졌는데, 이즈음 성남연합은 용인, 광주, 하남, 이천, 여주를 합쳐 경기동부연합으로 전환했다. …… IMF 위기가 터지자 1998년 실업자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쌀 모으기 운동 때처럼 집집마다 방문해 실태조사를 하고 운영비를 마련했다. 경기동부연합의 이런 노력은 나중에 선거에서 높은 득표를 하는 기반이 됐다. ― 82쪽

6~7명 정도의 핵심 간부들은 상근 활동을 했기 때문에 새벽에 신문 배달이나 우유 배달을 해 생계비와 활동비를 충당했습니다. 대충 하루 일과는 새벽 3시~4시 사이에 시작됐고 새벽 1시가 넘어서야 마무리될 수 있었습니다. 최소한 1년에 절반은 그렇게 생활했습니다. 하루에 네 시간 이상을 자는 것은 양심에 찔리는 일이었습니다. …… 상근 활동을 하니까 직장을 다닐 수 없잖아요, 회비를 받더라도 단체 운영하고 사업하기도 바쁘잖아요, 지금처럼 단체 상근한다고 해서 상근비, 활동비를 주고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거든요, ― 83쪽

비례대표 사태가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진 이유는 진보 진영에서 ‘부정 선거’가 자행됐고, 그 과정에서 폭력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13시간의 필리버스터가 벌어진 전국운영위원회의 비정상적인 회의 진행과 소음, 회의 단상을 점거해 공동대표를 끌어내려 회의 자체를 무산시킨 중앙위원회의 폭력 사태는 지상파와 인터넷으로 실시간 중계되면서 사람들을 경악하게 했다. 이 과정에서 경기동부연합과 그 조직의 리더로 추정된 이석기가 세상에 알려졌다. 경기동부연합은 곧바로 비례대표 부정 선거의 주범으로 몰리며 보수 진영뿐 아니라 진보 진영한테서도 집중 공격을 받았다. ― 125쪽

조사 보고서를 부정하는 일은 부정 선거 자체를 부정하는 주장과, 부실은 있었지만 부정 선거는 아니라는 주장으로 나타났다. 부정 선거 자체를 부정하는 과정에서 김선동과 이정희의 발언이 주목을 끌었다. 김선동은 투표용지가 뜯어지지도 않은 채 개표된 사실에 관해 “절취선이 절묘하게 잘려서 계속 넣다보면 그 풀이 다시 살아나 다시 붙는 경우가 있다”고 해명했다. 또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 중복된 사례를 두고 이정희는 “우리나라 주민번호 체계상 동일한 지역에서 출생신고를 한 사람 20명만 모이면 그중 한 쌍 이상은 뒷번호 7개가 일치할 확률이 ‘대단히’ 높다”고 해 논란을 낳았다. ― 137쪽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광주대단지 키드의 눈높이 민주주의를 해부하다!
철거민 분리수거 도시에서 진보 운동의 본거지가 된 성남
광주 항쟁, 공동체 생활, 주체사상, 통일운동으로 성장한 광주대단지 키드
국가보안법에 맞서 싸워 분단 체제를 끝내려는 ‘진짜’ 진보주의자가
부정 선거와 ‘내란 음모’를 저지른 ‘종북 간첩’이 되기까지
진영 논리와 상상된 억압 속에 갇힌 하위주체 경기동부연합!

“종북이지, 너!” ― 종북의 굴레에 갇힌 우리들의 ‘눈높이 민주주의’


34년 만에 만들어진 ‘내란 음모’에 사법부는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의 ‘내란 음모’ 혐의를 뒷받침하는 증거는 2013년 8월 국가정보원이 공개한 아르오(RO) 모임 녹취록이 전부였다. 총기 제작, 전기 통신 시설과 유류 시설 파괴 같은 발언은 큰 충격을 줬지만, 뜬구름 잡는 소리일 뿐이다. 정부는 통합진보당 강령 중 ‘진보적 민주주의’와 ‘민중이 주인되는 사회’가 북한의 인민주권론하고 같다며 위헌정당해산심판도 청구했다. 분단 이후 모든 반체제 세력을 ‘빨갱이’, ‘간첩’, ‘종북’으로 매도한 보수 진영의 눈높이에 경기동부연합은 당연히 ‘자유민주적 질서’를 해치는 ‘종북’이다. ‘사상의 자유 시장’을 옹호하며 국가보안법을 철폐하자던 진보 진영까지 종북 몰이에 떠밀려 경기동부연합을 공격했다. 진보 언론은 경기동부연합을 비판하는 진보 논객의 글을 싣고, 진보 정당들은 공식 논평을 쏟아내야 했다. ‘가짜 진보’ 경기동부연합하고 구별 짓기를 하며, ‘종북 딱지’를 피해 민주주의의 눈높이를 위아래로 바쁘게 움직였다. 진짜 진보가 무엇인지 성찰하는 대신 ‘가짜 진보’를 부정해야만 살아남는 종북 프레임에 말려든 것이다. ‘당원의 눈높이’에 맞춘 민주주의를 주장하며 21세기판 매카시즘의 광풍을 불러온 경기동부연합은 지금 ‘우리들의 민주주의’란 무엇인지 날카롭게 되묻는 리트머스가 됐다.

《경기동부 ― 종북과 진보 사이, 잃어버린 우리들의 민주주의》는 4·11 비례대표 경선 사태와 ‘내란 음모’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경기동부연합의 뿌리를 1971년 8월 10일 일어난 박정희 정권 시기 최초이자 최대의 도시 빈민 봉기에서 찾는다. 성남 광주대단지라는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한국의 대표 저항 세력이 도시의 특성과 변화에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떻게 정체성을 만들었는지 살핀다. 《경기동부》를 쓴 임미리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위원은 구술 자료, 언론 보도, 개인 기록 등을 검토하고, 비례대표 경선 사태 때 구성된 장례위원회와 씨앤피전략그룹, 사회동향연구소, 《민중의 소리》 등을 조사해 이때까지 주목받지 못한 광주대단지라는 새로운 해석 지점을 찾았다. 철거민 강제 이주, 8·10 사건, 5월 광주항쟁, 부당한 공권력에 항거한 분신, 금욕적 공동체 생활, 엄격한 군대식 규율 등 특유의 집단기억을 공유한 경기동부연합은 80년대를 거치고 90년대를 지나며 주체사상을 바탕으로 강력한 유대 관계를 맺은 저항 세력으로 성장한다. 《경기동부》는 경기동부연합이 폭력과 비정상적 방법만으로 자기를 드러내는 하위주체가 된 사회적 맥락과 인적 토대를 살피고, 종북과 진보 사이에서 길을 잃은 우리들의 민주주의를 고민한다.

두 개의 광주 사이에서 ‘뻐꾸기’ 날다 ― 국가와 근대의 밖에서 떠도는 하위주체 경기동부

서론 ‘잃어버린 기억’과 1장 ‘뿌리 ― 광주대단지와 1971년 8·10 사건’은 경기동부연합이 스스로 말할 수 없는 하위주체가 된 실마리를 성남 광주대단지에서 찾은 과정을 밝힌다. 1971년 8월 10일 주민 3만~6만 명이 광주대단지에서 6시간 동안 벌인 도시 봉기 ‘8·10 사건’을 주목한다. 서울 도심에서 살던 철거민이 강제 이주한 광주대단지의 실상은 ‘산모가 아기를 삶아 먹었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처참했다. 8·10 사건이 끝난 뒤 성남은 난동과 폭동의 도시로 낙인찍혀 더 심한 차별과 배제를 겪지만, 대학생과 종교 단체가 찾아들어 민주화운동, 노동운동, 빈민운동을 활발히 펼치면서 진보 운동의 본거지로 성장한다.
2장 ‘기억 ― 경기동부연합은 누가 주도하고 어떻게 형성됐나’는 광주대단지 사건에 ‘혁명의 전통’이라는 훈장을 붙인 ‘광주대단지 키드’가 지역 정치 세력인 경기동부연합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좇는다. 광주대단지 키드는 성남을 집단기억의 뿌리이자 집단기억이 실체가 되는 공간으로 본다. 그곳에서 8·10 사건 기념 자료집, 성남청년대학, 푸른학교 등으로 광주대단지 기억을 공유하고, 1996년 북한 동포 돕기 운동, 1997년 북녘 동포 돕기 범국민운동, 1998년 IMF 실업자대책위원회 활동, 재개발에 맞선 주거 생존권 운동 등으로 새로운 전설을 만들었다.
3장 ‘성장 ― 뻐꾸기는 어떻게 지빠귀 둥지를 차지했나’는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부터 2012년 비례대표 경선 사태까지, 정파 갈등 속에서 경기동부연합이 당권파가 된 과정을 살핀다. 2002년 지방 선거에서 거둔 44년 만의 진보 정당 원내 진출이라는 성과는 주소 이전, 선거 명부 조작, 당비 대납 등 내부의 부정을 덮었다. 광주전남연합하고 연대해 세력을 키우고 ‘세팅 선거’로 독식 체제를 구축해 당을 장악한 경기동부연합은 민주주의를 비롯한 진보적 가치를 무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역에 견제 세력이 미약한 상황에서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거나 잘못을 스스로 고칠 능력을 훈련하지 못했고, 당원 정보를 북한에 넘긴 일심회 사건이 터지자 사건 관련자들을 비호했다.
4장 ‘고립 ― 비례대표 사태와 하위주체 의식’은 역사학자 라나지트 구하(Ranajit Guha)가 말한 하위주체 개념으로 경기동부연합을 설명한다. 행정상의 오류, 투표 프로그램과 데이터 무단 수정, 동일 아이피의 집단 투표, 대리 투표, 마감 시간 이후 현장 투표 등 비례대표 경선 때 일어난 부정과 그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경기동부연합이 보여준 13시간의 필리버스터, 단상 점거, 분신 등 비정상적이고 폭력적인 행동은 하위주체의 특징인 부정성, 연대성, 영토성, 폭력적 양상을 그대로 드러낸다. 또한 ‘당원의 눈높이’를 주장하며 우리가 아닌 ‘나머지 전부’를 적으로 여기는 극단적 진영 논리와 자기 보존 의식도 살펴본다.
5장 ‘연대 ― 범경기동부연합과 지지 세력’에서는 경기동부연합이 당권파로 등장한 2006년부터 2012년까지 경기동부연합을 포함해 당권파 전체의 인맥을 살펴보고 형성 과정을 파악한다. 또한 경기동부연합이 대학 총학생회와 노동운동 진영의 일반노조에서 새로운 구성원을 끌어들이는 과정을 살펴보면서 범경기동부연합의 계급적 특성과 지역적 특성을 알아본다.
결론 ‘경기동부연합은 어떻게 하위주체가 됐나’는 1980년대 급진적 변혁 운동이 나타난 배경과 특징, 지배 이데올로기인 주체사상이 저항 이데올로기로 유입되고 확산된 과정을 살펴본다. 또한 남한 민중과 북한 정부를 통일의 양쪽 주체로 상정한 뒤 통일 국가를 수립하려던 주사파가 남한 정부는 정상화되고 북한 체제는 위기에 빠지면서 눈앞의 현실을 애써 외면한 채 과거의 기억과 상상된 억압 속에 갇혀버린 존재, 곧 국가와 근대 밖에 존재하는 하위주체가 되는 과정을 정리한다.

광주대단지 키드의 생애 ― ‘진짜 진보주의자’가 묻는 진짜 진보와 민주주의의 미래

《경기동부》는 경기동부연합의 기원을 1980년대 군사 정권에 맞서 싸운 주사파 학생 운동에서 1970년대 철거민과 도시 빈민의 생존권 투쟁으로 확대한다. 또한 특정 대학 출신만이 공유하는 ‘마이너 의식’이 아니라 광주대단지 키드의 차별과 배제의 기억에 초점을 맞춘다. 경기동부연합은 유신과 도시 개발, 군사 정권과 5월 광주항쟁, 주체사상과 통일운동, 민주화와 신자유주의까지 한국 사회가 40여 년 동안 거쳐온 역사의 산물이다. 1970년대 광주대단지라는 기억에 갇힌 경기동부연합은 당권파가 되고 국회의원을 배출한 상태에서도 여전히 자기를 광주대단지 철거민, 국가보안법 피해자, 차별받고 배제된 민중으로 여긴다. 보수 진영은 물론 진보 진영까지 포함해 뜻이 다른 ‘나머지 전부’는 국가보안법이라는 무기를 휘두르는 군사 정권하고 다를 게 없는 적이다. 화형당한 마녀나 나치의 핍박을 받은 유대인에 자기를 비유하며 부정 선거, 폭력 사태, ‘내란 음모’를 저지른 경기동부연합은 지금 여기에서 함께 살아가는 하위주체다. 그런 의식의 바탕에는 광주대단지라는 지역의 집단기억과 1971년 8·10 사건이 자리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에 맞서 민족해방과 자주통일을 일구려는 ‘진짜 진보주의자’ 경기동부연합은 도리어 종북 몰이에 가려진 한국 사회의 진짜 진보와 민주주의란 무엇인지 묻는 또 다른 우리다.

책속으로 추가

비례대표 사태에서 경기동부연합은 유독 ‘당원’을 강조했다. 중요한 것은 ‘당원들의 명예’였고, 그 명예를 훼손하는 일은 물리적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막아야 했으며, 막는 데 실패해 당원들의 명예가 훼손됐을 때는 불명예를 벗으려고 분신할 수도 있었다. 당원들의 명예가 훼손된 것은 정략적 판단으로 국민들의 눈높이를 앞세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원의 눈높이는 국민의 눈높이에 우선하는 것이다. …… 경기동부연합이 강조하는 ‘당원’은 ‘우리’하고 같은 말이었다. 평등파도 참여계도 아닌, 울산연합도 인천연합도 아닌, 부정 선거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비례대표 사퇴는 절대 안 된다고 하는 사람들만이 당원에 포함됐다. ‘당원들의 명예’, ‘당원의 눈높이’, ‘당원 총투표’에서 당원은 통합진보당 전체의 당원이 아니라 경기동부연합만의 당원이었다. ― 146~147쪽

당게(당원게시판)에 글을 쓸 때, 말을 할 때, 생각할 때, ‘나는 당권파는 아니지만’, ‘나는 종북이 아니지만’, ‘나는 평범한 당원이지만’ 이렇게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다. MB정부에서 사람들은 자기 검열을 시작했다. 나의 말이 때로는 나를 옥죄는 사슬이 된다는 것. 나의 말로 나는 어떤 공권력의 피해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것. 그 불이익이 두려워 말을 안 하고 말을 가려서 하고 생각을 한정짓는다. …… ‘국민주의’의 가치 체계와 국보법이 자신들에게 ‘종북’의 꼬리표를 붙이면서 ‘자기 검열’로 자신들을 압박하고 침묵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말할 수 없는 자들은 국보법과 종북몰이 때문에 국가에서 배제된 사람들이었다. 이명박이 직접 나서 종북 세력 척결을 외치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진영 안쪽의 사람들도 다른 가치 체계로 자신들을 배제하려 하고 있었다. 다른 가치 체계는 국가주의였고, 그것은 또한 국보법과 종북몰이의 다른 이름이었다. ― 153~154쪽

1984년 김영환이 대학 3학년 때 남한이 수재를 당하자 북한에서 쌀을 보내왔다. …… 가짜라고 배운 김일성이 독립운동을 한 진짜 김일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사람들이 굶어죽는다던 그곳이 남한보다 살기 좋은 곳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중 한 사람인 김영환은 모스크바와 베이징에서 출력되는 조선어 방송을 몰래 듣기 시작했다. 상대방을 서로 비방하는 소련과 중국보다 북한이 공산주의자의 기본인 국제적 연대성을 더 잘 지킨다고 생각하게 됐다. 김영환은 북한식 사회주의의 운영 원칙인 주체사상의 실체가 궁금했다. …… 김영환의 손으로 정리한 주체사상은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 171~172쪽

민주화 이후에도 정부는 운동권을 계속 탄압했다. 주사파 운동권은 여전히 미국은 적으로, 북한은 대안적 국가 모델로 간주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북한을 더는 대안으로 여길 수 없는 상황이 도래했고, 주사파의 존립 기반이라 할 수 있는 남한 정부와 민중 사이의 적대적 전선에도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북한에 경제 위기가 닥치면서 실상이 공개되기 시작했고, 1998년에는 최초의 여야 정권 교체로 남한에 드디어 민주적 근대국가가 성립한 것이다. ― 224쪽

경기동부연합이 마녀와 유대인 등을 자처까지 하면서도 자기 자신을 말하지 못하는 것은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보법뿐 아니라 존재의 이중적 성격 때문이다. 경기동부연합은 저항 운동 세력이면서 동시에 정치 조직이다. 국보법에 따라 수배되고 투옥된 경력은 한편으로는 저항 운동의 역사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반국가 집단의 ‘내란 음모’의 역사였다. …… 경기동부연합은 안팎의 자세가 동일하지 못하고 이중적이다. 안으로는 반미와 반제, 자주를 외치며 수배와 투옥의 경력을 훈장 삼아 당직을 얻고 당권을 장악해갔다. 그러나 밖으로는 침묵한다. 운동 세력이 아니라 정치인과 정당이라는 위치 때문이다. ― 232~2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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