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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들은 우리를 눈송이라고 부른다
왜 예민하고 화내고 불평하면 안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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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서문

서론
제1장 눈송이의 기원
제2장 눈송이는 무엇을 원하는가?
문화전쟁의 박수 위기
오벌린대학 푸드코트의 사건 아닌 사건
미주리대학의 눈보라
예일대학의 대단히 인종주의적인 핼러윈
제3장 표현의 자유와 눈송이
제4장 ‘철회 문화’라는 말은 다시 듣고 싶지 않다
제5장 지난 세대의 ‘강인함’은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
제6장 농담은 계속해도 되나?
제7장 젠더 패닉
제8장 눈송이는 자본주의에 해롭다
결론

감사의 말
옮긴이 후기
참고문헌

저자 소개 2

해나 주얼

관심작가 알림신청
 

Hannah Jewell

『워싱턴 포스트』에서 주로 대중문화와 정치 분야를 다루는 비디오 저널리스트다. 전에는 『버즈피드 UK』에서 일했고, 당시 젠더에 관한 글과 영미 정치에 관한 풍자, 그리고 [버즈피드 생방송 2016 선거 나이트쇼]를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런던에서 태어났지만 어려서 부모님을 따라 캘리포니아로 이사한 덕분에 바닷가와 삼나무 숲을 뛰놀며 자라났다.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에서 중동학 학사학위를 받았으며, 재학 중에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일 년 동안 공부하고 일했다. 그 시간은 즐거웠지만, 불행하게도 이제는 레바논 방문이 금지됐다. 2013년에 영국으로 돌아가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워싱턴 포스트』에서 주로 대중문화와 정치 분야를 다루는 비디오 저널리스트다. 전에는 『버즈피드 UK』에서 일했고, 당시 젠더에 관한 글과 영미 정치에 관한 풍자, 그리고 [버즈피드 생방송 2016 선거 나이트쇼]를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런던에서 태어났지만 어려서 부모님을 따라 캘리포니아로 이사한 덕분에 바닷가와 삼나무 숲을 뛰놀며 자라났다.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에서 중동학 학사학위를 받았으며, 재학 중에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일 년 동안 공부하고 일했다. 그 시간은 즐거웠지만, 불행하게도 이제는 레바논 방문이 금지됐다. 2013년에 영국으로 돌아가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국제관계학과 정치학으로 석사학위(MPhil)를 받았다.
저서로 『역사상 가장 고약했던 여성 100인Nasty Women of History』(2017), 『판을 뒤엎은 여자들She Caused a Riot』(2018)이 있다.
hannahjewell.com
Instagram: @byhannahjewell
Twitter: @hcjewell
서울대학교 영어교육학과, 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한영번역학과를 졸업했다. 역서로 『파시즘』, 『유토피아니즘』, 『한 권으로 읽는 베블런』, 『인권』과 『자연의 권리』(근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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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2월 16일
쪽수, 무게, 크기
384쪽 | 578g | 153*224*20mm
ISBN13
9788964621967

책 속으로

근본적인 문제는 이렇다. 미국과 영국 등 세계 곳곳의 많은 평론가들, 즉 대부분 일정한 나이대에 속하고, 폭넓은 영향력이 있으며, 사실 그대로의 전달자라는 자기 브랜드를 형성하고 있는 이들은 TV와 라디오, 높은 고료를 받는 칼럼과 인기 높은 책의 지면을 통해 이런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그야말로 한심하다. 그들은 예전의 우리처럼 논증할 줄을 모른다. 그들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하다는 약간의 기미만 보여도 경악과 공포, 그야말로 패닉에 사로잡힌다. 그들은 끔찍하다, 눈송이처럼 지극히 나약하다, 그러면서도 여하튼 사회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 이렇게 말하는 인사들―이제부터 이들을 눈송이 비판자라 부르겠다―이 보기에 눈송이란, 아동기의 애정 과다로 손쓸 수 없게 망가진 데다, 보건·안전 규정에 가로막혀 단단해질 기회를 얻지 못한, 현실 세계를 감당하지 못하는 징징대는 응석받이에 자기도취적인 젊은이다.
--- p.27

눈송이 멸칭을 만들어낸 극우는 2015년까지 점점 더 넓은 범위의 청중을 상대로 눈송이에 대한 혐오를 공공연히 드러냈다. 하지만 ‘눈송이’라는 말이 극우의 후미진 인터넷 은신처를 벗어나 미국과 영국 모두에서 정치적 논쟁의 전면에 자리하게 된 것은, 영국이 국민투표로 유럽연합 탈퇴를 결정하고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2016년의 일이다. 그 해의 주요 인물 중 몇몇은 더 힘 있는 자리로 올라갔고 몇몇은 도태되었지만, 눈송이에 대한 혐오는 여전히 세차게 일렁이고 있으며, 그 기세가 가장 등등한 곳은 영국 언론이다.
--- p.60

문화전쟁의 진원지는 의심의 여지 없이 대학이다. 대학은 젊은이들이 한데 모여 있고 비판적인 언론의 주시를 받는 터라, 공장처럼 눈송이 패닉을 양산하고 있다. 이는 미국이든 영국이든 마찬가지 다. 미국에서는 2014년부터 신세대 인종정의 활동가들이 새롭고 대담한 저항운동을 시작했고, 영국에서는 정치적 올바름의 기색이라면 아무리 사소하고 가벼운 것이라 해도 언론을, 그리고 불행히도 그 독자들도 격앙시킨다. 언론이 호들갑을 떠는 목적은 관심과 아우성을 촉발해 매출을 끌어올리기 위해서고, 동시에 젊은이들이 제시하는 정치적 가능성들을 위축시키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로 인한 다른 영향도 있다. 그렇지 않았으면 동정적이었을 사람들, 젊은이들과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새롭고 흥미로운 관점에 호기심을 느꼈을 사람들에게 독약과도 같은 부정적인 인식을 서서히 주입해, 결국엔 대학생들을 사실상 혐오하게 만드는 것이다. 나는 다름에 대한 혐오를 조장함으로써 이익을 보는 자들의 유도가 아니었다면, 영국 국민들이 이토록 젊은 세대를 미워하게 되지 않았을 걸 안다.
--- p.75

『미국인의 애지중지되는 마음The Coddling of the American Mind』[한국어 번역서 제목은 『나쁜 교육』]은 눈송이 비판 문헌에서 대단히 중요한 저작물이다. 왜냐하면 대안 우파가 겨냥하는 대상과 그들이 만들어낸 표현이 더할 나위 없이 점잖은 집단들, 이를테면 진보 성향의 학자들이나 심지어 오바마 전 대통령 같은 인물들 사이에서 공유되고 강화되는 양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책은 오늘날 대학 학부생들이 과거의 학생 시위와는 영 딴판인 유달리 잘못된 종류의 시위에 경도되는 경향이 있다고 본다. 또 한때는 캠퍼스 안 모두가 훨씬 더 잘 어울려 지냈다고 가정하며, 오늘날의 젊은 운동가들이 불러올 미래를 두려워한다. 이 책은 젊은 학생과 활동가들에게 의심을 품고 있는 이들에게 입문용 마약과 같아서, 유난 떠는 눈송이들에 대한 전격적인 비판으로 이어진 내리막길을 저항 없이 미끄러져 내려가게 한다.
--- p.112~113

하지만 미국과 영국의 표현의 자유 옹호론과 관련해 내가 불편한 점은, 그 고고한 논변이 유독 학생들을 비난하는 데 사용된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표현의 자유 원칙을 파괴한다는 주장은 형평에 어긋나며 과도하다. 물론 19살 청년은 때로 말도 안 되게 힘 있고 심지어 천하무적인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학생 활동가들이 휘두른다는 검열권력이라는 것이, 군과 경찰을 보유하고 법을 만들고 원하는 이들을 처벌할 수 있는 정부에 비교할 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2017년 마일로 야노펄러스의 강연을 저지한 UC 버클리 시위를 혹독하게 비판하는 사람들은, 같은 시기 대학행정당국이 수차례 경찰 병력을 투입해 학생 시위자들을 폭력적으로 해산하고 진압함으로써 거듭 수정헌법 1조의 신성함을 위협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대체로 걱정하지 않는다. 또한 소란을 일으킨 학생들을 퇴학시키고자 새로이 도입되는 법령과 교칙에 대해서도 그다지 우려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주로 학생들이 너무 나약해서 트랜스인에 관한 야노펄러스의 발언들을 견디지 못하는 걸 우려한다.
--- p.150~151

나는 학생들이 새로운 생각과 마주하고 논쟁하고 자신의 생각을 바꾸는 데 나이든 사람들보다 대체로 더 능숙하다고 확신한다. 대학은 자유로운 발언들이 뒤섞여 들끓는 가마솥이지 그것들을 누그러뜨리는 약음기가 아니며, 이는 지금도 진실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인생에서 또 언제 우리에게 정중한 타협보다 논쟁을 선호할 책무가 주어지겠는가? 대학은 우리가 서로를 교육하고 심지어 서로에게 소리를 지를 수 있는 대단히 드문 기회를 준다. 그 말 많은 ‘현실 세계’로 들어가기 전에 각자가 가진 개탄스러운 편견과 가정들을 해결할 기회 말이다. 한 번도 진지하게 인종주의에 대해 고민해본 적 없는 백인 학생이, 평생 지속될 방어적인 태도가 고착화하기 전에, 그것에 대해 숙고해볼 기회다. 학생은 대학에서 모름지기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 앱 개발자나 의사가 되어야 할까, 아니면 무시무시한 정치 활동가가 되어야 할까, 아니면 둘 다일까? 지난 시대의 지혜를 흡수해야 할까, 아니면 그것에 도전해야 할까? 도서관에서 성실하게 공부를 해야 할까, 아니면 파티에서 진탕 마시고 떠들며 젊음과 약 기운이 흘러넘치는 자유분방함을 실컷 즐겨야 할까? 이것저것 다 하면 안 될까?
--- p.176~177

내가 모든 눈송이 비판자들 면전에 대고 외치고 싶은 말은, 과민하고 나약해서 깨지기 쉽다고 여겨지는 사람들, 즉 인종주의에 분개하는 유색인 학생들이야말로, 자신과 다른 의견을 대하는 데 있어 가장 탄력적이라는 것이다. 그런 논의를 위한 맷집과 탄력성을 길러야 할 사람들은, 평소 인종과 인종주의, 특권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특히 백인 진보주의자에게 인종주의적이라거나 문제적이라고 불리는 건 대단히 근원적인 공포다. 인종주의자라는 비판은, 백인은 객관적이고 무고하며 능력 중심적이고 자립적이고 개인주의적이라는 가정, 자신이 평생 배워야 할 건 이미 다 배웠다는 가정, 자신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가정을 뒤흔든다. 만약 누군가가 당신이 인종주의적이라 말한다면, 그건 당신이 철회되었다는 신호가 아니다. 그것은 때로, 당신을 바로잡아준 그 사람이 당신을 구제불능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신호일 수 있다.
--- p.219~220

트리거 반응은 어느 앙칼진 페미니스트가 진저브레드 ‘사람’이 아니라 진저브레드 ‘남자’라서 불쾌함을 느낄 때 일어나는 어떤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과거에 있었던 파멸적인 공격을 연상시키는, 일견 평범해 보이는 일상생활의 한 부분에 대한 의학·물리·신체적 반응이다. … 트리거 경고의 핵심은, 이미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에게는 지극히 평범한 것들도 트리거가 될 수 있다는 점이며, 다른 사람들에게 트리거 경고가 얼마나 빈번하게 느껴지는지는 중요한 게 아니다. 반 데어 콜크 박사에 따르면, 패닉은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이 “그 자신도 비논리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무언가에 의해 촉발될 수 있지만, 그때 느끼는 감각에 대한 공포는 몸 전체를 응급 상황으로 만든다”. 사소한 자극에 트리거 반응이 일어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어리석은 게 아니다. 트리거 반응이 일어난 사람은 나약한 사람이 아니다. 그들의 몸이 트라우마의 결과로 오작동하는 것이다.
--- p.234~235

나는 오늘날 트랜스인에 대한 수용과 지지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강박적으로 두려워하는 영국의 트랜스 혐오적인 페미니스트들이, 언젠가는 나와 같은 것을 느낄 수 있기 바란다. 증오를 멈추고 기만적인 주장을 거두기를 바란다. 내가 이해하는 것을 그들도 깨닫기 바란다. 여성으로서 나의 경험은, 이를테면 다른 문화권이나 국가의 빈곤층 또는 최부유층에 속한 여성에 비해, 영국이나 미국의 중산층 여성 언론인이면서 트랜스젠더인 이들과 훨씬 더 공통점이 많다는 사실 말이다. 아무리 내가 생리에 관해 불평하는 걸 좋아해도, 연대성은 질의 유무로 정의되지 않는다. 시스젠더 여성에게 실제적인 위협이 되는 것들은 트랜스 여성에게도 위협이 된다. 우파의 급진화된 젊은 남성들, 가정학대 포식자들, 일터에서 벌어지는 차별과 우리를 보호하는 데 관심이 없는 정치 지도자들 말이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트랜스인과 그들의 권리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가 아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트랜스인이 없는 미래다.
--- p.305

이렇게 생각해보자. 어쩌면 더 나은 기술과 혁신은, 노동시간을 늘릴 것이 아니라 단축해줬어야 하는 것 아닐까? 관리자들은 눈송이들이 매양 더 많은 걸 요구한다며 그들을 골칫거리로 여긴다. 더 많은 배려. 차이와 능력에 따른 조정. 자신을 위한 시간. 탄력적 근무. 업무 위계 유연화. 그렇지만 어쩌면 더한층 쥐어짜인 직원들의 불행과 우울이 아닌 이런 것들이, 진보의 표징 아닐까? 안타깝게도 우리의 치열한 기업가들은 노동력 증대와 기술 발전으로 얻어진 생산성 향상을 노동자를 더더욱 압박하고 그리하여 자신들의 이윤을 더더욱 불릴 수단으로만 바라본다. 그러나 새로운 세대의 노동자들이 이러한 체제에 반발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 p.332

가장 격렬한 눈송이 비판자들을 설득하는 것이, 그래서 온갖 사회악을 눈송이 탓으로 돌려 세상만사를 설명하는 세계관으로부터 그들을 멀어지게 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그 점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 왜냐하면 눈송이에 대해 걱정하거나, 그들을 향해 눈살을 찌푸리거나, 그들에 관해 들리는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는 걸 사람들 대부분이 이해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터이기 때문이다. 그럴 때 우리는 헛소리에 대한 사회의 집단면역을 키울 수 있다. 언론과 정계의 기만적인 행위자들이 우리의 일상적인 언설에 흘려 넣는 독약을 중화시킬 해독제를 확보할 수 있다.

--- p.343

출판사 리뷰

88만 원 세대, N포 세대, MZ 세대, 알파 세대…
우리 시대 청년을 부르는 다양한 명칭들
그런데 그들은 ‘눈송이’라 불리는 청년들과 너무도 닮아 있다!


제22대 총선이 코앞이다. 선거 시즌이 되면 부동층의 표심을 잡거나 지지층의 기반을 확고히 하기 위해 공약과 비전이 봇물 터지듯 터진다. 특히 기성세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동층 비율이 높은 청년층을 겨냥한 의제들이 전례 없이 쏟아지는 가운데 청년들은 입맛대로 소환된다. ‘노인 경로우대 무임승차 폐지’, ‘여성 신규 공무원 병역 의무화’ 같은 세대 간 · 세대 내 갈등을 부추기는 공약에서부터 “정치는 모르겠고, 나는 잘 살고 싶어”, “경제는 모르지만 돈은 많고 싶어” 같은 청년 비하 슬로건까지 그 스펙트럼도 매우 넓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이 눈에 띈다. 동일한 대상이 정반대의 성격을 지닌 세대로 규정되거나 주체에 따라 세대를 나누는 기준과 관점이 매우 상이하다는 점이다. 88만 원 세대, N포 세대, 2030세대, MZ 세대, 알파 세대, 더 나아가 이대남, 이대녀까지. 도대체 우리 시대의 청년은 어떤 이들인 걸까? 그들을 구분 짓고 규정하는 기준은 타당한 것일까?

『워싱턴 포스트』의 비디오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해나 주얼은 눈송이 세대(snowflake)라 불리는 영미권 청년들을 분석하면서 이런 세대론의 문제를 하나하나 풀어간다. 강인하고 참을성 많은 기성세대와 달리 나약하고 예민하고 불평 많은 철부지 세대로 규정되는 눈송이 세대는 때에 따라서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한국의 청년들과 너무도 닮아 있다. 특히 한국의 20~30대 청년을 한 세대로 묶고 그 명칭에 부정적인 의미를 담는 한국의 풍토는 눈송이를 멸칭으로 사용하는 서구 문화와 상당히 유사하다. 눈송이란 말의 어원을 찾고, 그 용어에 숨은 기득권의 문화와 정치 이데올로기를 폭로하는 해나 주얼의 시도는 우리의 가짜 세대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힘 있는 자들이 낙인찍는 주홍 글씨, 눈송이
대안 우파의 밀실에서 대중의 의식 속으로
대학, 표현의 자유, ‘철회 문화’, 젠더에 관한 날조된 공포


영국과 미국의 청년들은 어쩌다 눈송이로 불리게 된 걸까? 저자 해나 주얼은 눈송이라는 말의 기원을 찾는 것에서 논의를 시작한다. 하얗고 순수하고 아름다운 결정체인 눈송이가 쉬 바스러지고 뾰족뾰족 불평만 많은 한심한 존재로 전락하게 된 것은 백인우월주의와 반페미니즘을 표방하는 대안 우파 덕분이다. 이들은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고 영국의 브렉시트 탈퇴가 결정된 2016년 이후 인터넷 플랫폼, 언론, 대학 강연, 대중 담론 등을 삽시간 장악한다. 『콜린스 영어사전』이나 『옥스퍼드 영어사전』에도 등재된 눈송이란 단어는 ‘나약하고 예민하고 쉽게 불쾌해하고 자신이 특별한 대우나 배려를 받아 마땅하다고 여기는 사람’을 일컫게 되었는데, 구체적 현실에서는 표현의 자유와 ‘철회’를 외치는 대학생과 유색인, 여성, 그리고 젠더 구분에 혼란을 야기하는 성소수자 등을 지칭하는 것으로 자리매김했다. 극우의 인터넷 밀실에서 나온 혐오 표현이 암암리에 대중의 의식 속에 깊이 파고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눈송이란 말이 단지 극우 세력의 전유물만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해나 주얼은 눈송이란 멸칭이 대중화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세력으로 진보 엘리트주의자, 기업 관리자 및 경영인, 트랜스 배제적인 급진 페미니스트 또한 빼놓지 않는다. 꽤나 리버럴하고 진보적인 체하지만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명예에 위협이 되는 발언을 결코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 청년 노동자들이 주어진 노동 조건에 감사할 줄 모르고 불평만 한다고 비난하는 이들, 이분법적인 젠더 구분에 혼란을 주는 트랜스인과 논바이너리인을 혐오하는 이들 모두 너무도 쉽게 눈송이란 낙인을 찍어버린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갖고 있고 저마다 다른 위치에 있는 듯하지만, 이들은 부와 권력을 이용해 불편한 존재에게 눈송이란 주홍 글씨를 짊어지게 한다. 그렇다면 억울한 눈송이는 ‘나는 눈송이가 아니다’라고 외치면 되지 않을까? 아니면 상대에게 똑같이 눈송이란 낙인을 찍으면 되지 않을까? 그러나 해나 주얼은 이제 이런 진흙탕 싸움을 끝낼 때가 됐다고, 그래야만 한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차별, 혐오, 불평등, 억압으로 점철된 꼰대 문화와
이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정치 이데올로기
멸칭을 당당히 자기 이름으로 받아들이는 ‘빌어먹을 눈송이들’의 도전


사실 이 책에는 한국어 ‘꼰대’에 정확히 부합하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나이든 사람을 지칭하는 ‘boomer’나 ‘dickhead’, ‘arsehole’처럼 재수 없고 되먹지 못한 인간을 이르는 비속어가 눈송이 혐오자들을 이를 때 사용되는데, 이를 꼰대로 옮겼다. 요즘 젊은것들을 조롱하고, “나 때는 말이야”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강인함을 들어내는 꼰대는 이제 특정 연령층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았다. 불편한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는 것을 나약하고 예민하고 유별난 행동으로 치부하는 꼰대 문화 속에는 젊은이들의 기세와 연대를 꺾고, 그들의 급진적인 발상을 짓밟기 위한 정치 이데올로기가 도사리고 있다. ‘세상 물정을 몰라서, 경험이 부족해서, 고생을 안 해봐서’라는 말 속에는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고, 문제의 책임을 묻기 위해 연대하는 일련의 변혁을 위한 행동을 가로막는 힘이 작동하고 있다.

해나 주얼은 이렇게 말한다. “‘하! 거 봐라, 당신이 얼마나 예민한지!’라고 지적한다면 이렇게 답할 수 있다. 그래,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종주의자, 등신, 편견 덩어리, 동성애 혐오자, 옅어지는 제 존재감을 되돌려 보려고 헛되이 발버둥치는 옹졸하고 복수심에 불타는 잔인한 사람이기보다는, 차라리 지나치게 예민한 사람이고 싶다고.” 멸칭을 당당히 자기 이름으로 받아들이는 눈송이들의 도전은 퀴어를 퀴어로 당당히 받아들인 LGBTQ+운동을 연상시킨다. 꼰대 문화와 이를 교묘히 이용하는 정치 세력에 맞선 눈송이의 도전은 실로 아주 단순한 질문에서 시작할 수 있다. “도대체 왜 예민하고 화내고 불평하면 안 되는가?”

입맛대로 청년을 미화하고 악마화하는 가짜 세대론
쪼개고 갈라치는 청년 정치 담론은 이제 멈춰야 한다!


눈송이로 폄하되는 서구의 청년들과 달리 한국의 청년층은 무조건 악마로 규정되지는 않는다. 2030세대를 일컫는 MZ라는 용어에 부정적인 의미가 점점 짙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눈송이와 완전히 등치할 수 있는 용어는 아직 없다. 오히려 청년을 때론 미화하고 때론 악마화하는 가짜 세대론의 문제가 세대 간 갈등과 세대 내 갈등 모두를 심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2023년 12월 국가보훈처 산하 재단법인 대한국인이 실시한 설문조사(엠브레인퍼블릭에 위탁, 성인 남녀 1천 명 대상)에 따르면, ‘사회 갈등이 심각해질 것이다’라는 인식이 2020년 대비 2023년에 크게 증가했고, 가장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회 갈등에서 세대 갈등이 차지한 순위 역시 2020년 5위에서 2023년 2위로 훌쩍 상승했다. 또 지난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성인 3952명(청년층 107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면조사에서는 다른 연령층에 비해 청년층에서 세대 내 갈등을, 특히 젠더 갈등을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몇 해 전 있었던 트랜스젠더 부사관에 대한 육군의 강제 전역 조치나 트랜스젠더 여성의 여대 입학을 거부한 일부 페미니스트 집단의 시위는 젠더를 둘러싼 갈등이 이제 패닉과 혐오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을 똑똑히 보여준다. 우리 사회에 고질적인 빈부, 이념, 지역, 종교를 둘러싼 갈등이 얼마 지나지 않아 세대 갈등에 제 자리를 내어줄지도 모를 일이다.

중장년층이나 노년층과 대조되는 청년, 남성과 여성으로 양분되는 청년은 쪼개고 갈라치는 분열 정치의 산물이다. 우리 시대의 청년은 어떤 이들이고, 그런 세대 구분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를 묻지 않는 세대론은 이데올로기에 복무하는 거짓에 불과하다. 어쩌면 해나 주얼의 이 책은 가짜 세대론의 문제를 냉철하게 직시하지 않으면 맞게 될 우리 시대 청년들의 암울한 미래를 보여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멸칭으로 불릴 것인가, 아님 우리의 이름을 되찾을 것인가. 도발적이면서도 유쾌한 눈송이들의 도전을 통해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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