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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말 - 신호철 주교
출간에 즈음하여 열두 소예언서 입문 / 10 제1과 아모스서 1(아모 1-3장) / 18 제2과 아모스서 2(아모 4-9장) / 28 제3과 호세아서 1(호세 1-5장) / 40 제4과 호세아서 2(호세 6-14장) / 52 제5과 미카서(미카 1-7장) / 62 제6과 나훔서(나훔 1-3장) / 74 제7과 하바쿡서(하바 1-3장) / 84 제8과 스바니야서(스바 1-3장) / 94 제9과 요엘서(요엘 1-4장) / 104 제10과 오바드야서(오바 1장) / 116 제11과 하까이서(하까 1-2장) / 126 제12과 즈카르야서(즈카 1-14장) / 136 제13과 말라키서(말라 1-3장) / 1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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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소예언서는 유배 이전부터 유배 이후까지의 시기를 배경으로 삼습니다. 활동 시기가 중요한 이유는, 왕국의 멸망 이전에 활동한 예언자들과 멸망 이후 활동한 예언자들의 선포 내용이 조금은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전반적으로 멸망 이전의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심판을 선포합니다. 선포의 중심에는 ‘회개하여 주님께 돌아오지 않으면 멸망한다.’라는 경고성 메시지가 있습니다. 반면에 유배 이후의 선포는 주로 무너진 공동체를 재건하기 위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모든 것이 무너진 이후, 하느님께서 다시 새로운 일을 시작하실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가 선포되는 것이지요. 물론 이러한 도식이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다만 바빌론에 의한 침략과 유배는 왕국의 멸망을 알려 주는 역사적 사건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심판이었다는 신학적 인식을 바탕으로 합니다. 그러므로 시대적 배경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열두 소예언서가 선포하는 다양한 가르침을 이해하기 위해 매우 중요합니다.
--- 「열두 소예언서 입문」 중에서 그렇다면 아모스는 무엇을 보았을까요? 아모스는 사회의 불의한 상황과 법 제도의 그릇된 운영을 비판합니다. 아울러 그는 제의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제의와 일상이 분리되었음도 지적하면서 이스라엘의 잘못을 공정과 정의의 기준에 맞추어 비판합니다. 아모스는 하느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나라가 멸망할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부흥하던 시기에, 나라가 멸망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이스라엘 백성의 반응은 어떠하였을까요? ‘아, 우리는 망하겠구나!’ 하면서 마음을 돌려 하느님께 다시 돌아오려고 하였을까요? 아닙니다.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집니다. --- 「제1과 아모스서 1」 중에서 심판, 멸망과 파괴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유다인이나 그리스도인이나, 혹은 종교가 없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역사라는 구체적인 공간에서 이끌어 오신 바를 살펴보면 멸망과 파괴로 모든 것을 끝내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멸망시키고, 기존의 것을 파괴하시는 가운데 오히려 역사를 새롭게 시작하셨습니다. 멸망과 파괴는 당연히 공포와 두려움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모스 예언자는 멸망, 파괴, 그리고 심판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느님과 그분의 뜻을 향해 나아갈 것을 요구합니다. 현재, 지금에만 머물고자 하는 우리 시선을 하느님께로 돌리고, 이를 위해 바로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 「제1과 아모스서 2」 중에서 호세아 예언자는 독특한 이력을 지니고 있는데, 그는 ‘고메르’라는 창녀와 혼인하였고, 하느님께서는 그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에게 구원과 반대되는 의미의 ‘이즈르엘, ‘로 루하마(가엾이 여김을 받지 못하는 여자)’, ‘로 암미(나의 백성이 아니다)’라는 이름을 지어 주십니다. 이처럼 창녀와의 혼인과 자녀들의 이름에 담긴 심판과 부정적 의미는 호세아서가 전하는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암시해 줍니다. 곧 호세아와 부정한 여인과의 혼인은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보여 주고, 고메르를 향한 호세아의 충실한 모습은 이방 신들을 섬김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느님의 큰 사랑을 보여 줍니다. 이는 ‘야훼께서 구원하신다’라는 의미를 지닌 호세아라는 이름처럼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느님 마음을 읽을 수 있도록 이끌어 줍니다. --- 「제3과 호세아서 1」 중에서 호세아서에서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호세아와 고메르의 관계처럼 부부 관계로 언급되기도 하지만, 부모 자식 간의 사랑의 관계로 언급되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아이였을 때부터 사랑하셨고, 그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시고 팔로 안아 사랑의 줄로 끌어 주셨습니다(호세 11,1.3-4 참조). 하지만 그들은 하느님의 사랑에 응답하기보다 하느님이 아닌 바알 신 같은 우상을 하느님과 함께 섬겼습니다(호세 11,2). 이처럼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한없는 사랑을 쏟아 주셨지만, 이스라엘은 하느님을 배신하였습니다. 하느님과 이스라엘이 일반적 관계였다면, 이 둘의 관계는 쉽게 깨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일방적 배신에도 그 관계를 깨뜨리지 않으셨습니다. 이에 대해 하느님께서 직접 말씀하십니다. “나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이다. 나는 네 가운데에 있는 ‘거룩한 이’ 분노를 터뜨리며 너에게 다가가지 않으리라.”(호세 11,9). 이게 하느님의 사랑의 이유입니다. 사람처럼 생각하지도, 행동하지도 않으시는 하느님이십니다. 그 사랑에는 끝이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이같이 한없는 사랑을 베푸시는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하여 하느님께 돌아왔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은 변화되지 않았지만, 하느님께서는 한결같은 사랑으로 그들을 대하시기 때문입니다. --- 「제4과 호세아서 2」 중에서 미카서가 전해 주는 가장 익숙한 구절은 미카서 6장 3-8절일 것입니다. 미카서 6장 3-5절은 우리가 성금요일에 부르는 ‘비탄의 노래’와 매우 유사합니다. “내 백성아,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하였느냐? 내가 무엇으로 너희를 성가시게 하였느냐? 대답해 보아라.”(미카 6,3). 하느님의 속상한 마음, 슬픔과 좌절이 묻어 있는 구절입니다.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함께 기억하는 첫 장면은 바로 이집트 탈출 사건입니다(미카 6,4-5). 하지만 하느님의 구원 업적을 이스라엘 백성은 기억하지 못합니다(미카 6,5 참조). 하느님의 탄식에 이어 참다운 경신례가 무엇인지에 대한 가르침이 전해집니다. 하지만 그들의 반응은 자신을 구원하여 주신 하느님께 몸과 마음과 정성과 힘을 다하여 예물을 봉헌하는 이의 모습이 아닙니다. 미카서 6장 6절에 등장하는 화자의 모습은 사뭇 건방져 보이기까지 합니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가고 무엇을 가지고 높으신 하느님께 예배드려야 합니까? 번제물을 가지고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분 앞에 나아가야 합니까? 수천 마리 숫양이면, 만 개의 기름 강이면 주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미카 6,6-7). --- 「제5과 미카서」 중에서 나훔 예언자는 하느님의 보복과 진노의 모습을 우리에게 전해 줍니다. 물론 이 모습으로 하느님의 모든 특성을 담아 낼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이방 민족을 향한 심판을 통해 드러나는 하느님의 모습입니다. 아시리아라는 강대국도 하느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강대국과 그 지도자들을 심판하시고 처벌하시는 하느님이야말로 이 세상의 진정한 통치자이심이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 「제6과 나훔서」 중에서 세상의 악행이 심판 받지 않는 모습을 보게 되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폭력과 불의가 만연한 세상을 보면, 탄식 섞인 한숨과 함께 ‘하느님께서는 왜?’라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하바쿡 예언자도 우리와 비슷한 생각을 가졌던 인물입니다. 하바쿡은 자신이 마주한 상황에서 하느님께 질문을 던지고,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응답해 주십니다. 하바쿡과 하느님의 대화는 크게 두 부분(질문: 하바 1,2-4; 응답: 하바 1,5-11/질문: 하바 1,12-2,1; 응답: 하바 2,2-6ㄴ)으로 구성됩니다. --- 「제7과 하바쿡서」 중에서 하느님 심판이 모든 것을 태워 버리고 파괴하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요? 스바니야는 하느님의 심판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심판은 피할 수 없지만, 하느님 심판에 살아남은 자들을 이야기합니다(스바 3,12-13). 그럼 어떤 사람이 하느님 심판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하느님께서는 직접적으로 그들을 “가난하고 가련한 백성”(스바 3,12)이라고 지칭하십니다. 남은 자들은 능력 있는 사회 지도층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빈곤했기에 “주님의 이름에 피신”(스바 3,12ㄴ)하는 이들이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빈곤한 이들은 가진 능력이 없기에 하느님 외에는 의지할 곳이 없습니다. 부유한 사람들이나 사회 지도층은 자신의 부와 지식, 능력과 힘을 믿습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하느님만을 믿는다고 하지만, 내면 깊은 곳에서는 하느님 외에도 믿는 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의탁처를 스스로 만드는 사람들에게는 하느님의 심판이 내려지지만, 하느님만을 유일한 피난처로 삼는 이들은 하느님의 심판에도 살아남는 이들입니다. --- 「제8과 스바니야서」 중에서 이어서 주님의 날이 선포되면서 “수가 많고 힘센 민족”(요엘 2,2)이 다가온다고 예고합니다. 이로써 메뚜기의 재앙, 주님의 날, 수가 많고 힘센 민족에 대한 이해가 생기게 됩니다. 메뚜기의 재앙으로 황폐해진 땅은 이방 민족의 침입으로 이해되며, 그들이 침입하는 그날은 바로 주님의 날과 연관 지어서 이해됩니다. 요엘서는 메뚜기에 의한 황폐화보다 힘센 민족에 의한 침입을 더 잔혹하게 묘사합니다(요엘 2,2-11). 그러므로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게 됩니다. 주님의 날은 메뚜기의 재앙보다 더 무섭고 끔찍한 날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은 회개입니다. 여기서 유명한 구절이 등장합니다. “옷이 아니라 너희 마음을 찢어라.”(요엘 2,13). 하지만 요엘 예언자는 회개를 통해 단순히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회개한다고, 용서를 구한다고, 무조건적으로 하느님께서 구원을 베푸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만 회개를 통해 하느님께서 자비를 베푸시기를 바라고 희망할 뿐입니다(요엘 2,14). --- 「제9과 요엘서」 중에서 오바드야서는 에돔을 향한 심판과 그들의 멸망을 예고합니다. 먼저 에돔을 향한 심판이 예고됩니다. 그 심판의 바탕에는 에돔의 교만이 있습니다(오바 1,3ㅁ). 스스로를 높다고 생각하는 교만은 다른 예언서에서도 하느님 심판의 이유가 되었습니다(참조: 이사 10,5-19; 14,3-21). 이제 교만으로 가득한 에돔은 하느님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됩니다. 이어서 에돔의 멸망이 예고됩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에돔은 예루살렘을 침략하는 바빌론 군대의 길잡이 역할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전리품이 아니라 오히려 약탈과 배신이었습니다(오바 1,6-7). 그럼 에돔은 왜 멸망하게 되었을까요? 에돔이 멸망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들의 죄악 때문입니다. 오바드야서 1장 10-14절은 에돔의 죄악이 무엇이었는지 상세하게 나열합니다. 살인과 폭행(오바 1,10), 예루살렘이 무너지던 순간을 방관한 죄(오바 1,11), 오히려 그날을 기뻐한 죄(오바 1,12), 예루살렘 재앙의 날에 약탈한 죄(오바 1,13), 유다의 백성을 노예로 팔아넘긴 죄(오바 1,14)가 그것입니다. --- 「제10과 오바드야서」 중에서 유배 이전 이스라엘 백성 공동체에게 중요한 축이 두 개 있었습니다. 하나는 예루살렘 성전이고, 다른 하나는 다윗 왕조였습니다. 하지만 유배를 통해 중요한 두 축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귀환 이후 여러 가지 악조건 속에서 성전 재건을 시작합니다. 이와 함께 이들은 다른 하나의 희망을 품게 됩니다. 그것은 다윗의 자손 가운데 등장할 새롭고 이상적인 통치자의 출현이었습니다. 즈루빠벨을 향한 신탁은 이러한 그들의 열망을 보여 줍니다. 곧 하느님께서 그를 선택하셨기에, 그를 받아들이시고 인장 반지처럼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하까 2,23). 이를 통해 메시아에 대한 기다림을 표현합니다. 이처럼 하까이 예언자는 귀환 이후 공동체를 향한 하느님 말씀을 전해 줍니다. 그는 성전 재건에 대한 독려와 메시아 통치에 대한 희망을 통해 유배로 무너지고 사라졌던 중요한 신학적 의미를 강조하면서 귀환 공동체를 독려합니다. 부서지고 무너진 것들에 대한 재건 선포는 기원전 515년에 성전 재건으로 성취됩니다. --- 「제11과 하까이서」 중에서 즈카르야서를 살펴봄에 있어서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책은 다른 소예언서들과 달리 한 시대를 배경으로 삼지 않습니다. 분명 한 권의 예언서로 구성되어 있지만, 크게 두 부분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다만 두 부분은 다른 시대적 배경과 신학적 주제를 다루며, 아울러 문학적으로 연속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학자들은 즈카르야서를 한 권의 책으로 다루기보다 제1 즈카르야서와 제2 즈카르야서로 분리해서 봅니다. --- 「제12과 즈카르야서」 중에서 말라키서는 율법의 가르침과 함께 새로운 시대를 열어 줄 주님의 날이 오기 전에 벌어질 일을 알려 줍니다. 바로 엘리야 예언자의 파견입니다. 엘리야 예언자는 어떤 인물인가요? 그는 이방 신과 우상을 섬기던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 하느님께 돌아올 수 있도록 애썼던 인물입니다. 그의 활동도 인상적이지만, 그의 마지막은 더욱 인상적입니다. 그는 죽어서 묻히지 않고, 불 병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2열왕 2,11). 그러므로 그는 언젠가는 다시 돌아올 인물로 여겨졌습니다. 그리고 말라키서는 그 엘리야가 다시 와서 주님의 날을 파멸의 날이 아닌 구원의 날로 바꾸어 줄 것을 예고합니다. 말라키서가 신약으로 넘어가는 교두보 역할을 한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말라키서의 이 말씀은 신약 성경에서 인용되면서 다시 오기로 예정된 엘리야 예언자가 바로 요한 세례자라고 알려 줍니다(마태 17,10-13; 마르 9,11-13; 루카 1,17 참조). 요한 세례자의 탄생으로 주님의 날이 다가옴이 예고되고,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새로운 시대, 주님의 날이 시작된 것입니다. --- 「제13과 말라키서」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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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대 순으로
열두 소예언서 꿰뚫기 ‘예언서’는 일반적으로 ‘이사야서’부터 ‘말라키서’까지 총 18권의 책을 가리킨다. 예언서를 분류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지만 일반적으로 분량에 따라 대大예언서 4권과 소小예언서 12권, 그리고 예레미아서 다음에 위치한 애가와 바룩서를 통틀어서 말한다. 『지혜 여정 예언서1(열두 소예언서)』은 이 중에서 열두 소예언서를 성경의 순서가 아니라, 예언자가 활동한 시대 순으로 보는 성경 공부 교재다. 그래서 『지혜 여정 예언서1(열두 소예언서)』의 첫 4과에서는 문서 예언자 중에서 가장 먼저 활약한 아모스와 호세아 예언자를 톺아본다. 그 이후로도 역시 활약한 시대 순으로 각기 한 과씩 미카, 나훔, 하바쿡, 스바니야, 요엘, 오바드야, 하까이, 즈카르야, 말라키 예언자 순으로 꼼꼼히 살펴본다. 모든 텍스트가 그러하지만, 예언서의 경우 특히 그 예언자가 활동한 시대를 알아야 그 메시지를 제대로 이해하게 된다. 열두 소예언서와 관련된 예언자들의 활동 배경은 매우 다양하다. 그들은 남왕국과 북왕국이 병존하던 시대부터 북왕국이 멸망하던 시기(아모스, 호세아), 이어서 남왕국마저 멸망하고 바빌론으로 유배를 당하던 시기(미카, 나훔, 하바쿡, 스바니야), 바빌론 유배 중과 그 이후의 시기(요엘, 오바드야, 하까이, 즈카르야, 말라키) 등 다양한 시대에 활동했다. 『지혜 여정 예언서1(열두 소예언서)』은 이 역사의 흐름에 따라 순서대로 살펴보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역사를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고 동시에 그 시대에 활동한 예언자와 그 메시지를 연결시켜 이해하게 된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예언서 공부를 시작하려는 이들에게 이 『지혜 여정 예언서1(열두 소예언서)』은 좋은 안내서가 될 것이다. 예언자들의 이름과 그 의미 그들이 활동한 지역 지도 누군가를 알려면 먼저 이름을 묻는다. 예언자들도 이름과 더불어 그 예언자를 알기 시작할 것이다. 『지혜 여정 예언서1(열두 소예언서)』은 열두 예언자 이름의 히브리어 표기와 그 의미를 하나하나 살피면서 그가 세상을 향해 던진 메시지와 연결시켜 이해한다. 『지혜 여정 예언서1(열두 소예언서)』에서는 요나서가 제외되는데, 요나서는 그 특수성 때문에 『지혜 여정 예언서5(요나 다니엘서)』에서 다니엘서와 함께 공부하게 된다. 예언서 각 과는 예언서의 말씀, 개요, 구조, 주요 내용과 신학적 가르침 그리고 묵상으로 구성된다. 이 열한 권의 책을 살펴보자면 이스라엘 역사의 대장정을 기꺼운 마음으로 함께하는 다채로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본문 중에는 각 예언자들이 활동했던 지역을 지도로 제시한 부분도 있어, 예언자들이 어느 지역에서 활동했는지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 예언서들의 말씀은 과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발에 등불이 될 것이다. 북왕국의 대표 예언자 아모스와 호세아 『지혜 여정 예언서1(열두 소예언서)』 첫 4장에 소개된 아모스와 호세아 예언자는 여느 대예언자 못지않게 중요한 메시지를 선포한 예언자들이다. 두 예언자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멸망을 앞두고 거의 동시대에 북왕국 이스라엘에서 활약했다. 아모스 예언자는 남왕국 유다 트코아 출신이지만 북이스라엘에서 예언 활동을 한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당시 북이스라엘은 역사상 가장 번성했던 때로 정치 경제 외교적으로 안정된 시기였다. 그럼에도 아모스와 호세아 예언자는 사회 정의를 구현하지 않고, 마음에 없는 형식적인 예배를 하며, 우상 숭배와 종교 혼합주의에 빠진 북이스라엘을 비판하면서, 사회 정의와 올바른 하느님 경배를 하지 않으면 이스라엘은 멸망하게 되리라 선포한다. 하지만 이들의 간곡한 외침에도, 특히 호세아가 전하는 하느님의 뜨거운 사랑 고백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은 회개하지 않고 결국 멸망의 길로 들어서고 만다. 저자는 아모스와 호세아 예언자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아모스와 호세아는 거의 동시대에 북이스라엘에서 활동한 예언자입니다.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선포한 내용은 매우 유사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선포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과 그분의 뜻을 제대로 따르지 않았습니다. 이 두 예언서가 이러한 사실을 전하고 선포하는 방식은 조금 다릅니다. 아모스는 공정과 정의가 결여된 사회를 강하게 비판합니다. 그래서인지 아모스가 전하는 하느님의 모습은 조금 냉정하게까지 보입니다. 무섭고 두려운 심판과 징벌의 하느님이 선포되는 것입니다. 반면에 호세아는 자신의 혼인을 통해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를 밝히면서,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알려 줍니다. 그러기에 호세아는 아모스가 보여 주는 냉정하고 차가운 모습의 하느님보다 더 따뜻하고 감성적인 하느님의 모습을 전해 줍니다. 동시대를 배경으로 삼는 두 예언자이지만, 하느님의 전하는 방식은 이렇듯이 차이를 보여 줍니다. 이러한 차이는, 어느 것이 맞고 틀린 것이라기보다 하느님께서 지니신 다양하고 풍요로운 모습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 본문 58쪽 왠지 낯익지만, 정확한 출처는 알지 못했던 구약 명언들 『지혜 여정 예언서1(열두 소예언서)』에서는 어디선가 많이 보고 들었지만, 실제 그 구절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잘 알지 못하는 유명 성경 구절들의 출처와 그 배경지식을 명확하게 알게 되는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 예컨대 우리가 매 성금요일에 부르는 ‘비탄의 노래’의 원래 출처 구절로, “내 백성아,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하였느냐? 내가 무엇으로 너희를 성가시게 하였느냐? 대답해 보아라.”(미카 6,3)를 들 수 있다. 이는 미카 예언자가 전하는 예언 내용으로 하느님께서 얼마나 속상하시고 슬퍼하시는지, 그 좌절의 마음을 절절하게 전해 준다. 이러한 하느님의 탄식과 더불어 미카 예언자는 다시 참다운 경신례를 알려 주는데, 이 구절 또한 유명하다. “사람아, 무엇이 착한 일이고 주님께서 너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그분께서 너에게 이미 말씀하셨다. 공정을 실천하고 신의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느님과 함께 걷는 것이 아니냐?”(미카 6,8). 또한 회개에 대한 가장 유명한 구절인 “옷이 아니라 너희 마음을 찢어라.”(요엘 2,13)도 열두 소예연서의 한 구절임을 알려 주며,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가장 잘 드러내는 구절 또한 그러함을 알려 준다. “그는 너그럽고 자비로운 이 분노에 더디고 자애가 큰 이 재앙을 내리다가도 후회하는 이다.”(요엘 2,13). 묵상하기 난감한 예언서를 초보자도 깊이 묵상할 수 있게 이끌어 『지혜 여정 예언서1(열두 소예언서)』은 각 권의 특성, 구조, 집필 목적, 시기 등을 해박한 성서학자 박형순(인천가톨릭대학교 성서학 교수) 신부의 핵심을 꿰뚫는 해설로 일목요연하면서도 쉽고 명료하게 안내한다. 또한 다양하고 자세한 ‘묵상’을 제시하여 묵상을 어렵게 생각하는 초보자도 감명 깊은 묵상에 들도록 이끄는 묵상 안내서이기도 하다. 이 책은 본문의 신학 사상에 바탕을 두고 우리의 일상과 긴밀하게 연결시킨 다양한 묵상 주제들을 통해 자신의 삶의 자리에 적용할 수 있게 해 준다. 나아가 깊은 묵상으로 이끄는 영적 안내에 이어 묵상한 내용을 스스로 내면화할 수 있도록 돕는 이미지의 ‘컬러링’을 통해, 어렵게 느껴지는 예언서를 쉽게 묵상하고 내면화할 수 있다. 명료하게 시각화시킨 지도 등 다양한 자료들 『지혜 여정 예언서1(열두 소예언서)』은 각 성경 내용의 핵심을 집약한 그림과 지도 등의 시각적 자료들을 풍요롭게 제공한다. 예를 들면, 열두 소예언서와 관련 있는 예언자들의 출신 혹은 활동 지역 지도, 최초의 문서 예언자이자 목 놓아 사회 정의를 외친 아모스 예언자가 심판을 선포한 곳의 지도 등을 본문에 수록하였고, 열두 예언자들이 활약했던 시기의 이스라엘과 유다 왕국 지도를 뒤표지 앞에 두어 어렴풋이 머릿속으로만 상상했던 지명을 눈으로 확인해 볼 수 있다. 이러한 시각화된 자료들은 성경 본문의 맥을 꿰뚫어 보면서 전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지혜 여정 예언서1(열두 소예언서)』의 구조와 특성 『지혜 여정 예언서1(열두 소예언서)』은 본격적인 성경 해설에 앞서 열두 소예언서 입문을 통해 각 성경의 전체적인 내용을 개관하며, 그 안에 담긴 중요한 신학적 주제들을 알기 쉽게 풀이한다. 본론에 해당하는 각 과에서 ‘함께 읽을 말씀’을 통해 해당 부분의 핵심적인 이야기를 파악하게 된다. 그리고 성경 말씀과 설명에 도움이 되는 명화들과 다른 시각 자료들을 통해 한층 더 쉽게 성경 말씀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러한 시각 자료들로 더욱 구체적이고 동시에 문화적인 이해가 가능해지며 인문적 교양도 높여 준다. 나아가 이러한 모든 것들이 종합되어 열두 소예언서가 전하는 역사를 바로 알고 그 이야기가 나의 삶 속에 자리하게 되어 올바른 신앙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인도한다. 하느님 지혜를 일상에서 살게 하는 ‘지혜 여정’ 시리즈 성경을 지적知的으로 이해할 뿐만이 아니라 우리 삶에 꼭 필요한 영적靈的 지혜까지 얻어 일상에서도 그분을 닮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진 최신 성경 공부 교재 ‘지혜 여정’ 시리즈는 학문적 성경 연구와 영성 생활이라는 두 영역을 아우르는 성경 공부 교재이다. 성경을 잘 모르는 초보자부터 신학을 전공한 사목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들이 개인적인 성경 공부, 그룹 토의, 영상 강의 등에서 활용하는 소중한 자원이 될 것이다. 이미 발간된 ‘지혜 여정’ 시리즈를 통해 많은 분들이 구약 성경 속 역사서의 참맛을 느끼고 나아가 하느님께서 전해 주시는 지혜를 경험하게 되었다. ‘지혜 여정’ 시리즈는 완간된 ‘역사서’ 편을 필두로 ‘오경’ 편, ‘시서와 지혜서’ 편, ‘예언서’ 편, ‘복음서’ 편, ‘서간’ 편, ‘사도행전’ 편, ‘묵시록’ 편에 이르기까지 성경의 모든 책들을 한 권 한 권 빠짐없이 공부할 수 있도록 출간될 예정이다. 생활성서사의 다양한 여정 성경 공부 교재 한편 생활성서사에서는 성경 공부 교재인 『여정』 시리즈를 비롯하여, 성경을 처음 대하는 이들을 위한 기초 교재 『여정 첫걸음』 시리즈, 그리고 어르신을 위한 교재 『은빛 여정』 시리즈가 있으며, 컬러링 말씀 교재인 『성화 기도 여정』 시리즈도 출간되어 말씀의 감동이 기도로 이어지도록 이끌어 주고 있다. 이러한 교재를 토대로 하여 전국에 ‘여정 성서 사도직’ 수도자들과 봉사자들은 신자들로 하여금 풍요로운 말씀의 세계에 한층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동안 다양한 성경 공부 모임을 통해 신앙의 참된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는 분들의 진솔한 고백을 들으며 큰 기쁨과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더불어 그분들의 말씀에 대한 열정과 사랑은 가슴 벅찬 응원이 되어 늘 새로운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다양한 교재를 펴내고자 준비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